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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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성도의 십일조 해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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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성도의 십일조 해설


 


 “복되시도다,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더라.” ” (창14:20)


 “이같이 내가 내 아버지의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하신다면, 그때에 주님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것이며,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가운데 내가 반드시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리겠나이다.” (창28:21-22)


“너희가 모든일에 부요하게 되어 후한 선물을 넘치게 함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는 것이니라.” (고후9:11)

오늘날 한국 교회에 십일조(十一條)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있고 십일조의 정의를 정확하게 파악을 하지 못하고 십일조를 떼어 먹었기 때문에 가정불화가 있고 사업이 안되고 병들었다고 기복적으로 해석하는 부류가 있으며 또는 십일조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교회생활에 헌금이 필요없다는 성도의 의무를 할 줄 모르는 성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에 따른 십일조는 복과 상관없이 성도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말라기나 구약의 신명기 등에서 십일조는 복음의 그림자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복음으로 거듭난 교회는 말라기 십일조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꼭 “십일조”라는 명칭을 붙히지 않더라도 구원받은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감사 십일조는 명칭과 상관없이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 성령님의 뜻이며 열매일 것이다. “참십일조”란 거듭난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경을 근거로 율법 십일조와 감사 십일조의 차이점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류의 감사헌금을 드려야 하는가? 해답을 얻고자 한다.

1. 율법적 십일조

십일조”라는 히브리말은 “마샤르(무엇의 십분지 일을 주다)”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데카테(dekate)”라고 하는데 제사장이나 종교적 목적을 위해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선 십일조는 율법이 주어져서 율법에 속했을 때 드리는 율법적 십일조가 있는데 우선 교회는 율법과 직접 관계가 없는데, “율법 없는 이방인이”(롬2:14)라고 했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고 했기 때문에 율법적 십일조는 일차적으로 교회와는 상관없이 율법 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유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주었음
십일조는 신명기에서 두 가지로 언급 되었는데 첫째는 농산물의 십분지 일로써 매년 거행되는 제사에서 드려졌고 이 제사는 모든 농부의 가족들이 참여하게 되어 있다.

“너는 네 성문 안에서 네 곡식이나 네 기름의 십분의 일과 네 소떼들과 네 양떼들의 처음 난것들이나 네가 서원하는 네 서원예물이나 네 자원 예물들이나 ...” (신12:17)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시리니, 너흰 s 그곳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 곧 너희 번제예물과 너희 희생물들과 너희 십분의 일과 너희 손의 거제예물과 너희가 주님께 서원하는 너희의 모든 서원예물들을 가져와서...” (신12:11)
십일조의 명령은 농산물을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드렸으며 다른 율법과 동시에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십일조 뿐만 아니라 다른 율법도 동일하게 지켜야만 했는데 그들은 다른 율법은 지키고 십일조 율법은 지키지 않거나 또는 십일조는 지켰을지라고 다른 율법은 지키지 않는 습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것도 행하고(십일조) 저것도(의,인,신)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고 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실때에는 아직 주님의 피가 흘려지기 전이라서 율법이 유효할때인것이다. 그런데 이말씀 때문에 현교회는 이런 율법과 직접 연관이 없기 때문에 율법에 따른 십일조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23절의 십일조도 이렇게 매 3년 구제년에 드리는 십일조, 율법에 따라 유대인들의 고아, 과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도 있었다. 이 십일조는 매 3년에 한번씩 구제년에 드리는 십일조였는데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십일조였으나 여기서도 레위인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역시 율법적 십일조다.
“매 삼 년 끝에 너는 그 해의 소산에서 모든 십분의 일을 내머 너는 그것을 네 성문안에 쌓아두어 레위 사람과(이는 그가 너와 함께 몫이나 상속이 없음이니) 네 성문들안에 거하는 낯선자와 아버지 없는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만족하게 할지니라. 그리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가 행하는 네 손의 모든 일에서 너에게 복을 주시리라. ” (신14:28-29)

율법적 십일조의 근본목적은 레위인을 위해서 였다.

레위인은 12지파 중에서 기업(基業)이 없었다. 12지파 중에 11지파는 모두 각자 자신의 직업이 있었고 농사를 지어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레위지파는 아론때부터 제사장 직분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출28:1-3) 아론의 아들들이며, 후손들인 레위지파들은 다른 기업을 가질 수 없고 오직 성막,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만 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었다. 그러니 모든 지파들은 각자 스스로 일을 해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레위지파는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만 해야했기에 그들의 형제들인 11지파들이 생활비를 지출해서 도와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것이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였다.

“보라, 내가 레위의 자손에게 상속으로서 그들의 섬기는 일 곧 회중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십일조를 주었은즉 ....그러나 레위 사람들은 회중의 성막에서 섬기며 자기들의 죄악을 담당할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그들에게는 상속이 없나니 그것은 너희의 대대에 걸쳐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거제 예물로서 드리는 그들의 십일조를 내가 레위 사람들에게 상속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그들에게는 상속이 없으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민18:21-24 신 12:17-19. 14:28-29참조)

“네가 십일조의 해인 삼 년째에 네 소산의 모든 시분의 일을 드리기를 마친후에 그것을 레위 사람과 낯선자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네 성문 안에서 배부를게 하고...” (신26:12)

이렇게 십일조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없는 레위인에게 생활비로 드렸으며 동시에 가난한 과부들, 고아들 그리고 여행 나그네들에게 주어졌는데 그 보다 더 우선적으로 레위인의 생활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렸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비유하였고(레27:30), 레위인은 11지파들이 가져온 십일조로 생활하면서 성막, 성전에서 제사의 일을 생활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다.

레위인들도 비록 그들이 성막에서 일을 할지라도 모두가 제사장은 아니였고 제사장은 30세에서 50세(민4:1-3)까지만 해당되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11지파로부터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바쳐야만 했다.

왜? 레위인들은 기업이 없었는가?

성경은 죄사함과 구원의 책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나 이삭, 야곱, 12지파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중에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는”(히9:21) 진리를 계시하시기 위해 광야에서부터 성막을 세우도록 하셨고(출25장) 제단뜰에서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 받은 진리를 계시하시면서 송아지, 염소, 양 등의 피를 흘려 미래의 예수님의 피를 계시하셨으며(히10:1-5) 이런 죄사함의 일을 레위인이 전담을 해야만 헀다.

“또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그와 함께 네게로 오게하여, 그가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 (출28:1)

“내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고, 내가 또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출29:44. 민 3: 5-10 참조)

이렇게 성막을 세울 때에도 레위지파를 따로 분리해서 성막에서 제사의 일을 하게 하셨고 성막의 이동, 설치도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 등(민4장)이 분담을 하게 하였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이나 레위지파들은 24시간 범죄할 수 있고 또 그들은 범죄할 때마다 성막에서 양이나 송아지, 염소를 잡아 피를 뿌려(레 4:32-35) 죄사함을 받았고 11지파는 죄를 범했고 레위지파는 그 죄를 성막에서 사함받는 속죄 희생제사를 드리는 일을 전담했었다. 때문에 자기들의 죄사함의 일을 전담했기 때문에 11지파들은 자신들의 속죄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속죄를 끝내기까지 필요했다.

말라기서의 십일조는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려느냐? 이미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도다.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나니 곧 십일조들과 헌물들이이니라....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서 양식이 있게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라.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창문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3:8-10)

여기서 말라기는 문자 그대로 율법을 받았고(롬3:1) 율법아래 있는(롬3:19)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주신 명령이었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말1:1) 때문에 이스라엘 전민족과 더불어 십일조를 내지 않는 11지파에게 주신 경고였기 때문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말1:6)하셨고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말2:4-5)하셨고 십일조 부분에 와서 이스라엘에게 민수기 18장과 신명기 14장, 12장 등에 명령하셨던 십일조를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너의 열조의 날로부터”(말3:7)라고 너희 열조인 이스라엘 조상들을 지칭하셨고 십일조 등을 잘 지키며 “열방(이방족속)이 너를 복되다 하리라”(말3:12)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말라기의 십일조는 문자 그대로 완전 11지파에게 하신 말씀이지 오늘날 교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는 교회가 없었고 교회는 예수님 이후에 세워졌으며(마16:18) 비록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도 구약의 율법을 신약교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더구나 신약의 성도들은 모두가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별다른 제사장이 필요없다.


  십일조를 잘 내지 않았던 11지파들

이스라엘 11지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우상 숭배에 빠졌고(사사기2:11-13) 솔로몬 사후 성전에는 온갖 우상들로 가득 찼었으며 제사는 드려지지 않았었다.

“또한 그들이 낭실의 문을 닫고 등불을 껐으며, 분향하지도 아니하였고 성소 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 에물도 드리지 아니 하였음이라.”(대하29:7)

그런 세월을 보낸 후에 종교개혁자 히스기야 왕의 주선으로 예물을 드리는 경배가 다시 시작됐고 속죄희생이 회복 되었으며(대하29:31-36) 그 제사 일을 전담하던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대하31:5-6). 그러나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다시 귀환하여 느헤미야 시대에 와서 제사장을 선출하였는데 예물드리는 의식을 다시 회복하려고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설교했었으나 훈련이되지않앗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들의 농산물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게을리한적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익은 밀가루와 우리의 예물들과 각종 나무의 열매와 포도즙의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녀오다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들에 두며, 또 우리 토지의 십분의 일을 레위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가 경작하는 모든 성읍들에서 십분의 일을 받는 자들이라.”(느10:37)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기들의 죄를 사함받는 일을하고 있었던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주지 않았기에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 일을 하기 싫어 했었다.
“또 레위사람들이 몫(십일조)을 받지못한것을 내가 알았으니, 이는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자 자기들의 밭으로 흩어져 도망하였기 때문이라. 그때에 내가 치리자들에게 꾸짖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나님의 전이 버려 졌느냐? 하고, 내가 그들을 함께모아 그들의 처소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분의 일을 가져와서 보물 창고에 들이므로...” (느13:10-12)

먹어야 제사장 직무를 할 수 있는데 11지파들이 십일조를 주지 않음으로 레위지파들이 성전에서 일을 하지 않고 전리(田里) 즉 밭과 동네로 가서 일해서 음식을 먹으려고 성전에서 도망쳐 버렸던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말라기 선지자는 유대인 11지파들에게 “도적들”로 비유하면서 십일조를 내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말라기의 십일조와는 상관이 없는데 말라기를 근거로 십일조를 내야 복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무지함을 가르침이다.

말라기적 십일조는 복음으로 비추어 볼때는 짐짓 죄의 행위가 될 수 있다.

구약에서는 염소, 송아지, 비둘기, 양, 참새 등의 희생예물로 피흘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성전에서 매일 희생제사를 드려야 했는데(히10:1-4) 그 제사일을 레위지파가 전담했기 떄문에 자신들의 죄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려야만 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드렸기 때문에(히9:12) 이제 더 이상 동물 희생제사도 끝났고 더불어 레위인의 성막직업도 끝났고 그들도 다른 지파처럼 기업을 가질 수 있고 더불어 말라기적 십일조, 즉 율법에 따른 기업이 없는 레위인에게 드리는 십일조가 끝나버렸다.

“이는 제사장 직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요.” (히7:12)

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단 한번에 거룩한 처소안으로 들어가시어,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9:12.10:9-10참조)

“또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내가(하나님)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기 때문이라. 이제는 이것들(모든죄들)을 사면 하셨은즉 더 이상 죄를 위하여(죄사함받으려고)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 (히10:17-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보혈을 부정했고 계속 염소와 송아지 그리고 양의 피로 죄사함을 받으려 했기 때문에(서기 70년 예루살렘 멸망때까지) 히브리서 1-10장까지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의 피로 단번에 끝난 속죄를 믿지 않는 그 행위는 예수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에 짐짓 죄를 범하는 행위가 되는것이다

때문에 말라기의 십일조는 아직도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고 동물의 희생으로 죄사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여겨 계속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희생제사를 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격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단번 속죄를 부정하게 되는 짐짓 죄를 범하는 행위가 된다.

2.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십일조를 능가 하는 감사헌금

지금까지 율법적 십일조를 조명한 목적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를 능가하는 감사헌금을 드리지 말아야한다거나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유대인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자기의를 쌓는 대항의 행위(롬10:2-3)였고 니고데모도 율법사였으나 거듭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유대이들의 하나님이신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구약의 율법적 십일조와 복음적 감사헌물을 잘 구분하지 못하면 성경의 절대진리인 죄사함의 진리가 왜곡될 수 있고 율법과 은혜가 혼동되며 하나님은 물질을 받고 복주시는 뇌물성하나님으로 섬길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을 두려워 함이 너희에게 있게 하고 조심하여 그 일을 행하라. 주 우리 하나님은 불의함도 없으시고 사람들에게 편애하지도 아니하시고 선물을 받지도 아니 하시기 때문이라.” (대하19:7)

“너는 선물들을 받지 말지니라. 그 선물들이 현명한자의 눈을 멀게하고 의로운 자들의 말들을 왜곡 시킴이라.” (출23: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

“...복되시도다,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더라”(창14:20)

아브라함은 육신으로는 이스라엘의 조상이나 믿음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최초에 믿음으로 의인되었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가 감사로 십일조를 드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면 아브라함처럼 감사함의 십일조가 그것을 초월하여 드려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두가 같아야 하며 일부만 같을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된것은 그를 위한것만이 아니요, 우리도 위함이니, 만일 우리가 죽은자들로부터 우리 주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신 그분을 믿는 다면, 의로 여기심을 받으리라.” (롬4:23-24)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 318명을 데리고 소돔성에 내려가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평화의 왕이요 예루살렘 왕인 멜기세덱을 만났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모형이었는데 의의 왕이요, 시작도 죽음도 족보도 없는 왕이였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의와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그가 여러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해 주엇으며 아브라함도 그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렷느니라. 그르 해석하면 첮째로 의의 왕이요, 다음은 살렘왕이니, 곧 평가의 왕이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없고 계보도 없고 생명의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7:1-3)

여기서 멜기세덱은 완전히 주 예수님의 모형이다. 때문에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먼저 선물을 주었는데 떡과 포도주와 그 다음에 복을 빌었고 세번째로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감사로 드렸다(창14:17-20). 이 내용을 순서 배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멜기세덱의 빵과 포도즙 -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심
2)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보시고 하늘의 복을 주심
3) 아브라함이 감사의 십일조 드림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감사로 십일조를 능가하는 헌물을 드림


 

이제 정리를 해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감사 십일조를 초월한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이며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요8:39) 또한 아브라함의 드렸던 멜기세덱이 완전한 예수님 모형이었고 그의 빵과 포도즙(창14:18)이 예수님의 살과 피의 그림자였고(마26:26-28), 그 후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빈 것은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의인으로 인치셨고 하늘나라를 선물로 약속하셨고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던 그림자라면 오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림자가 아닌 멜기세덱의 실체이신 예수님께로부터 구원받은 감사의 헌금을 드려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것이다. 헌금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얻은 감사 생활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아혀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지시한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그 주의 첫 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대로 모아 두었다가,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 (고전16:1-2)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인색하게 뿌리는자는 인색하게 거둘것이요, 또한 후하게 뿌리는자는 후하게 거두리라.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 미리 정한대로 할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후9:6-7)

“이 직무의 증거에 의하여 그들이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한것 같과 자기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의 후하게 넘치는 나눔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후9:13)
 

최초의 감사 십일조는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였다. 아담은 그것을 볼때마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는 기억이 났을것이고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그 나무를 통해 과일을 먹고 죄를 범케 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였고 더불어 감사치 않게(롬1:21)해 버렸다.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최소한의 표현이고 간증이었다. 레위인들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형인데(벧전2:9, 롬12:1, 히13:15) 레위인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었다.

“그리고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태의 문을 연 모든 처음 난것 대신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 사람들을 택하였으므로 레위사람들은 내것이라” (민3:12)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이었기에 그들의 십일조도 하나님의 것이었듯이 오늘날 예수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로 사셔서(행20:28) 예수님것이 되었기에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기 때문에 성도들의 것은 곧 예수님의 것이된다. 때문에 모두가 주님의 것이라는 감사의 표현으로 십일조가 드려져야 할 것이며 그것이 즉 십일조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감사로서 하나님께 물질의 표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복과 상관없이 오직 감사 때문에

“이는 모세의 율법에 가록되기를, 너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쒸우지 말지니라., 하셨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소들을 염려하신 것이냐? 아니면 오직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냐?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강아야 하며, 소망을 가지고 곡식을 떠는자도 자기 소망의 참여자가 되어야 하리라” (고전9:9.10)

“이와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살리라, 명령 하셨느니라” (고전9:14)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었다(행2:44-47). 야고보도 교회는 서로 도우며 살라고 명령했다(약2:14-17).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성도의 감사생활로 얻어진 물질로 운영이 되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광야의 성막을 세울 때는 출애굽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자의적 자원해서(출35:21) 그리고 마음에 원하는자들(출35:5)과 즐거운 마음으로 낸 자들(출25:1)의 헌물로 성막을 만들었는데 그 성막은 모두 앞으로의 교회를 의미하고 백성들은 어린양의 피(요1:29, 출12:13)로 구원얻은 성도들의 모형이었다. 때문에 성도들은 감사하고, 자원해서 즐거움으로 감사를 드리되 교회는 그것으로 복음 전하는 자를 돕고 구제하며 교회생활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헌금을 복 받는것과 연관시킬 수 없으며 복 중에 최고 복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복을 찾지 않고, 이 땅에 있을때, 먹을것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줄(딤전6:8)알아야 하고 가능한 헌금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6:4)하는 것이 원칙이니 무명으로 해도 가능하나 자랑이 아닌 순수한 구원의 감사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확실한 고백이 있을 때는 이름을 밝혀도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덕이 될 수 있는 것이라 그것은 자신들의 양심문제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받고 싶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은 아니다(엡2:8). 감사를 드릴때는 기꺼이 받으신다. 그것까지도 감사하는자의 상급을 위해서다(눅7:36-50, 눅17:15-18). 마태복음 23장 23절의 십일조는 결코 율법이 완성된 이후의 교회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 아직 피 흘리시기 전인 율법아래에 있는 율법사 바리새인들에게 “화있을진저”(마23:23, 눅11:42)를 전제 조건으로 율법을 지킬려면 똑바로 지키라는 명령이었을 뿐 결코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기 때문에 받으시기 보다는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니, 그분은 손으로 지은 신전에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같이 사람들의 손으로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것들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 (행17:24-25)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이 있다.

성도들의 물질에 대한 상급이 없느냐? 아니다. 반드시 상급이 있다. 다만, 마음의 동기가 복을 받기 위함이냐? 감사의 연보냐?에 따라 상이 주어질 것이다(고전3:10-15,4:5, 마6:5,16).

“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보물들을 땅 위에 쌓아 두지말라.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적들이 뚫고 도적질하느니라.오직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들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도 슬지 아니하며 도적들이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해 가지도 못하나니 이는 너희 보물이 있는 거기에 너희마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마6:19

달란트 비유(마25장)나 므나의 비유(눅19장) 등에서도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가난한 과부의 연보(막12:42) 사례에서도 상급이 있음을 보여주시고 있다. 어려운 생활 중에도 나의 모든 재산은 주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의 십일조 그리고 성도를 돕는 연보에 대하여 그날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 롬14:10)에서 반드시 빛나는 면류관으로 바꾸어져 주어질 것이다

결론; 성경의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였다

사실 십일조라는 어감 자체가 계산적이라서 하나님의 마음은 진정으로 십일조의 의미속에 참된 진리를 숨겨 두신것이다. 감사의 생활, 레위인들 ,과부들, 고아들, 나그네들을 위한 배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중심에는 그런 물질만이 있으신것은 아니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아들까지도 거져 내어 주신분이시다. 굳이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를 내지 않을 지라도 전지 전능 하신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이신것같이 얼마든지 먹이실수가 있으신 분이시다.

그러면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더많이 헌금을 내게 하시려면 십일조가 아니라 오분의일조(오일조) 칠분의 일조(칠일조)등으로 거두실수도 있으시다. 하지만 왜 십분의 일인가? 여기서 “ 열” 즉 “십 10”은 지상의 완전숫자이다. 열처녀, 열발가락, 열뿔, 열머리, 등등 성경의 모든 “십”의숫자는 지상의 완전 숫자로서 그중이 하나 즉 십분의 일을 드리면 모두 드린 것으로 간주하셨는대 즉 십분의 일을 바치면 모두 바친것이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상의 완전 숫자로서 우리의 십일조가 되시어 우리의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드리신바 되어 죄덩이 투성이 였던 우리까지도 하나님께 의인으로서 바친바가 된것이다 여기에 복음이 들어 있는것이다.(엡2장)

예수님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시고 우리죄인들이엿던 사람들은 죄의삯은 사망(롬6:23)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어 저주를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십일조로 완전하게 율법을 이루시고 대신 골고다 나무위에 달리시어 처절하게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십일조로서 저주를 담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부횔 승천 하시어 우리의 십일조로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십일조의 참된 의미를 희생과 부활하심으로 완전하게 성취하신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여, 이미 이루어지고 폐기된 율법에 속한 말라기십일조를 앞세우고 축복이란 이름을 앞세워 착취하지 마시라. 말라기 선지자로부터 욕을 먹기 싫커든 그리 하시기 바란다.


“ 그러나 너희는 그분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시어,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으니 이것은 기록된바, 자랑하는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 할지니라, 함과 같으니라.”(고전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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