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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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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파괴하는 세대주의 교리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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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파괴하는 세대주의 교리
성경적 진리로의 회복인가
아니면
모조 그리스도교로의 타락인가?
-존 저스트너-
“그리스도교에 분명하고 절대적이며 타협의 여지가 없이 필수적인 것은 구원의 교리이다.
만약 세대주의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부터 사실상 이탈했다면 우
리는 세대주의가 그리스도교를 떠났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중요한 진리를 얼마나 많이 선
포하든지 간에 그리스도교의 필수적인 복음의 진리가 없다면 세대주의는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교에 필수적인 것인 복음이 없는 종교를
사이비 종교라고 정의한다. 만약 세대주의가 그러하다면 세대주의는 사이비 종교이지 그리
스도교회의 한 지파가 아니다. 이 사실은 상황의 중대성을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만든다.”
존 저스트너 (John H. Gerstner),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눔: 세대주의에 대한 비판
(Brentwood TN: Wolgemuth & Hyatt, 1991), 150.
목차:
1. 세대주의 교리에 관하여 논쟁하는 이유
2.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3.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는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다른가?
4. 세대주의가 복음을 파괴하는 방법
스코필드 (Scofield) 이단 교리 문제
챠퍼 (Chafer) 이단 교리 문제
유대인의 왕국 제안
문자적 이스라엘과 교회
새 언약
5. 7년 대환난 전 휴거가 복음을 파괴하는 방법
6. 세대주의자들에 대한 질문
7. 부록
용어 풀이
불변의 세대주의
1. 세대주의 교리에 관하여 논쟁하는 이유
“형제들아, 이제 내가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슬러 분열을 일으키며,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는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유창한 말과 아첨으로 순진한 사람들
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 롬 16:17-18 KJV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리에 관해서 서로 간에 혹은 다른 사
람들과 논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붙은 모든 사람들은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회는 모두 동일한 기본 교리를 가르치
는 것이 아닌가?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그대 자신과 그
대의 가르침에 주의하라”고 권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초기 교회 회의가 교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거짓 가르침을 대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마틴 루터의 95개조의 아우크
스부르크 신앙고백도 필요 없었을 것이며, 종교 개혁 자체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가장 큰 목소리로 그리고 가장 분명한 설명으로 공언지만
세상과 마귀가 그 순간에 공격하고 있는 점을 제외시킨다면, 내가 아무리 담대하게 그리
스도를 공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스도를 공언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병사의 충성이 입증된다. 전선 이외의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단지 도
피하는 것일 뿐이고 그 지점에서 주춤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마틴 루터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최초로 정의된 이래 노골적이고 음험한 두 가지 방향의 공격이 계속되
어 그리스도 및 건전한 가르침에 그들의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않은 사람들이 이탈하도록
만들었다. 교회는 신조와 신앙고백을 정의하고, 교리 문답을 가르치며, 목회자에게 정통 교
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도록 요구함으로써 이러한 현실에 대처하고자 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미국 교회는 신조를 “증언”으로, 교리 문담을 “청소년 야간 피자 파
티”로, 목회자에 대한 신학적 훈련을 교회 성장 세미나로 대체한 신앙 부흥 형식에 사로잡
혀 있다. 대부분의 평신도들과 다수의 전파자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바를 정확하게 말로 표
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교의를 진술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성경적 근거
와 역사를 인용하고 기존 교리에 대한 논리적인 방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
들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말씀과 성체가 아니라 감정과 경험에 바탕을 둔 신학에 대한 저
주이다.
사도 바울은 교리의 주제에 대하여 확고했다.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용한 그의
권고는 교리의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달된 것과 반대되게 가르치
는 사람들을 구별하려 하고 있다. 유다는 편지를 쓸 당시에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정립되었
지만 이단이 교회 속으로 들어왔음을 언급한다.
“사랑받는 자들아,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 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너희를 권면해야 할 필요를 느꼈나니, 이는 뜻밖에 슬며시 들어온 어떤 자들이 몇이 있
기 때문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요 불경건한 자들이
라.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으로 바꾸어 유일하신 우리 주 하나님과 우리 주
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 -유다 1:3-4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일부 문제 아니면 모든 문제에 관하여 분열되어야 하는가? 점점
더 많아지는 교파와 분파는 관련된 자들이 교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논쟁을 통
해서 주로 존재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해, 축제나 신월이나 안
식일과 관련하여 논쟁을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육체적 건강이나 형식에 대한 선호와 관
련하여 합당하기 때문에, 분할하는 선은 훨씬 더 실질적인 기준에 그어져야 한다.
2.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세대주의는 일종의 전 천년주의이며 1830년대 초 플리머스 형제단 (Plymouth Brethren-
형제교회) 가운데서 형성되었다. 세대주의의 아버지인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는
법률 교육을 받았고 영국 성공회 성직자로 임명되었으며 영국 국교회의 지각적 공허한 형식
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의 주요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그
형제교회는 참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성직과 성체를 배척하는 배교한 “눈에 보이
는” 교회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세대주의 신학은 각 세대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는 (보
통) 일곱 가지 뚜렷한 섭리 혹은 “시여”로 구분되는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개념에 중심
을 두고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역사를 통해 두 가지 뚜렷한 목적을 추구하시는 분
으로 보는데, 하나는 땅에 대한 목표 및 땅의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목표 및 하늘의 사람들(교회)과 관련된다.(1)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다윗 메시야에 의해 통치되는 땅의 왕국을
약속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자신이 예언한 왕국을 문자적인 유대인들에
게 제시하셨다고 믿는다. 다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땅의 왕국을 배척했을 때, 약속은 연
기되었고, 왕국의 “신비한 형태”, 즉 교회가 설립되었다.
세대주의 교리에 따르면 교회는 구약에서는 예언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괄호”였다. 미래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이 재수립될 것이며 영원히 계
속될 것이다. “괄호” 혹은 교회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않게 오셔서 (구약의 성
도들을 제외한)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늘로 데려가셔서 7년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어린 양의 결혼 잔치”를 축하하게 되는 휴거의 때에 교회는 끝날 것이다.(2)
세대주의 교리는 그때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7년 대환난과 적그리스도와 분
노의 대접과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는 144,000 유대인들과 아마겟돈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오심과 (만약 전 환난 휴거를 계산한다면 세 번째 오심), 전체 이스라엘 국
가의 즉각적인 회심과, 대환난과 구약의 성도들의 부활 및 “양과 염소의 심판”이 있다. “염
소”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고 “양”과 믿는 유대인들은 결혼하고 출산하며 죽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천년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신비의 교회”와 부활된 환난 및 구약의 성도들은 땅의
도시 위에 들려 있는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살 것이다. 이 천년기는 큰 평화와 번영의 시기
로서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릴 것이다. 1,000년 이후에 사탄이 천년기 시작 시
점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것이며, “양”에게서 태어난 많은 어린이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탄을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대항할 것이다. 왕은 그분의 적들을 멸망시킬 것이며, 그 이후
에 의로운 사람들의 또 다른 부활과, 불의한 사람들의 또 다른 부활, 마지막 심판 및 마지
막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다.
전 천년기 견해는 초기 교회에서 기록된 것이지만, 인정된 체계의 아버지로서의 세대주의
신학과 그에 따른 종말론은 새로운 것이다.
“나는 주님의 오심과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 오심의 의미에 관하여 직접적인 증언 이상
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
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이 점을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효모처럼 작용
하며, 그 열매는 현재 전혀 보이지 않는다. 효모가 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새로운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은 그러한 생각에 작용하며, 모든 옛 습관, 즉
상황상의 모든 이득과 모든 세상적인 동기는 그들의 느낌에 반대된다. 우리는 대중에 대
한, 즉 대부분 반대되는 습관으로 훈련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보통의 수단들
은 그 효과가 느리다는 것에 놀라서는 안 된다.” 존 다비의 편지들, 1권 p. 25-26.
새로운 세대주의 이단교리는 미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그 이유는 나이아가라 성경 회
의와 같은 대중적인 예언적 모임 때문이었다. 스코필드(C. I. Scofield)는 자신의 스코필드
관주 성경을 통해 세대주의 생각을 선전했다. 수백 개의 세대주의 성경 연구회가 미주에 생
겨났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은 무디 성경 연구소(Moody Bible Institute)와 달라스 신학교
(Dallas Theological Seminary)이다. 제리 팔웰(Jerry Fallwell), 페트 로버트슨(Pat
Robertson), 잭 반 임프(Jack Van Impe) 및 할 린세이(Hal Lindsey)와 같은 매체 복음 전
파자들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오늘날 대중화시켰다. 여러분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교회 설교단을 통해서 이러한 교리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신학적 체계를 세대주의로 그리고 그 기원을 1832년경의 존
다비로 정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거의 1,800년의 암흑 기간 이후에 성경적 신학으로 회
귀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존 다비가 그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 이래 성경적인 경건한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반대했다. 그 교묘한 체계의 오류를 폭로하기 위해 많은 책들이 발행
되었다. 대부분은 지엽적인 것들을 난도질하였으며 부차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우리
는 진리의 도끼를 그 이단 교리 나무의 뿌리에 대고자 한다.
“형제들이여, 나는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사람입니다. (존 다비의 교리에 따라) 믿어야 하
는 것으로 내가 가르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을 나는 곧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존 다비나 나의 값진 성경 중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나는 존 다비 씨를 떠나서 나의 성경에 고착하기로 선택하
였습니다.” - 조지 밀러(George Müeller), 존 다비와 동시대의 사람이며 한 때 그의 지
지자였다. 이 글은 로버트 카메론(Robert Cameron)의 저서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한 성
경 진리 pp. 146-7에 인용된 것임.
3.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는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다른가?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와 고전적인 역사적 전 천년주의는 두 가지 매우 다른 종말론적 체
계라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출처: 브루몰 (Wick Broomall ) 박사의 성경과 미래.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예수님의 교회가 구약의 예언에서 예견되었다고 가르쳤다. 세대주
의는 교회가 전혀는 아니더라도 거의 구약의 예언에 나오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구약의 예언의 많은 부분은 죽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
(첫 번째 오심)과 왕국 시대(두 번째 오심)에 대해 가르쳤다. 세대주의는 구약의 예언의
많은 부분은 문자적 유대인의 왕국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첫 번째 강림을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특정
한 때라고 가르쳤다. 세대주의는 (땅의) 왕국이 첫 번째 강림 때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
고 가르치는 데, 그 이유는 그 때가 첫 번째 오심의 예언된 때이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은혜의 현 시대는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구약에 예언되어 있
다고 가르쳤다. 세대주의는 현 시대가 구약에서 예언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괄호”가 도
입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왕국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두 번째 강림 후에 천년을 허용한다면 시간이 바람직한 방법으로
나누어진다고 가르쳤다. 세대주의는 시간을 나누는 유일하게 허용되는 방법은 일곱 가지
시대라고 주장한다. 현 시대는 여섯 번째 시대이고, 마지막 시대는 두 번째 강림 후의 천
년 시대일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세대주의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
은 시대 구분 때문이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두 번째 오심이 단 한 번의 사건일 것이라고 가르쳤다. 세대주의는
두 번째 오심이 “휴거”와 “계시”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에 그들은 (그들에게) 성취되지 않은 다니엘 9:23-27의 일곱 번째 주(7년)를 배치하
며 그들은 그것을 “7년 대 환난”이라고 부른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어떤 징조가 두 번째 강림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세대주
의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휴거 단계”를 선행하는 징조는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
나 두 번째 강림의 “계시 단계”를 선행하는 징조는 있다. “휴거”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계시”는 반드시 대 환난 7년 후에 일어난다. 첫 번째 단계는 날짜가 정해지지
않으며 알려지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는 날짜가 정해지고 알려진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에는 한 가지 부활, 즉 의로운 사람들의 부활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
이 있다. 세대주의는 세 번째 부활, 즉 두 번째 강림의 “계시-단계”에서 “환난-성도들”의
부활을 소개한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는 계시록을 “역사적 상징”으로 보는 견해를 보통 가지고 있다. 이 견
해는 계시록을 현 시대의 주요 사건의 상징적 형태의 그림이 되게 한다. 세대주의는 계시
의 책에 대한 “미래주의자”의 견해를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그 견해는 거의 전체 책
(특히 4장부터 19장까지)을 “7년 대 환난”을 묘사하는 것으로, 혹은 세대주의자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다니엘의 일곱 번째 주 중(다니엘 70주중 남았다고 하는
마지막 1주 7년)에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만든다.
전통적 전 천년주의의 일반적인 태도는 성경에 대한 그 접근 방법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온건하고 경건하다. 전 천년주의가 올바른 견해라는 것을 확신한 일부 탁월한 학자들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세대주의는 훨씬 더 독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세대주의는 교회가
1세기 전에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예언적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도입하
였다.
역사적 전 천년주의는 정통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천년기 체계로 고려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적 천년 왕국에 반대하는 주장들은 필수적이 아닌 것들에 관하여 그들 간에 서로 일치
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세대주의 체계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정통 그리스도인 교리와 다르
다.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러한 탈선의 대부분은 영원한 복음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
다.
4. 세대주의가 복음을 파괴하는 방법
“내가 이상히 여기는 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부르신 그분으로부터 이렇게
속히 떨어져 다른 복음을 따름이라. 다른 것은 아니니 다만 너희를 혼동시키는 어떤 자
들이 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
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해 준 것 외에 너희에게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그는 저주
를 받게 하라.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
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게 하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얻어야 하겠느냐? 혹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냐?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
이 아니니라” -갈 1:6-10
세대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 구원의 방법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세대주의
지도자들은 [불링거 파 (Bullingerite) 혹은 고수파 제외] 이러한 혐의를 오랫동안 부인해
왔다. 그러나 논증에 의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몇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자.
스코필드 (Scofield) 이단교리 문제
텍사스 달라스의 제일 조합 교회(First Congregational Church)와 그다음으로 매사추세츠
노스필드의 무디 교회(Moody Church)의 목회자였던 스코필드(C. I. Scofield)
(1843-1921)는 1901년에 주석판 성경을 쓰려는 그의 계획을 개벨라인(Arno C.
Gaebelein)과 함께 검토했다:
“그 주간의 중간쯤의 어느 날 밤 스코필드 박사는 저녁 예배 후에 해변을 같이 걷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해협의 해변을 따라 우리는 한밤중까지 걸었다. 그
는 관주 성경을 발행하려는 계획과 그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윤곽을 최초로 언급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에 대해 생각해 왔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나 그
다지 큰 격려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계획은 댈러스에서의 그의 봉사 초기에 떠올
랐고, 그리고 후에는 나이아가라 회의의 화창한 날 중에 여러 명의 형제들에게 그의 의
도를 제시하였는데, 그들은 승인은 하였지만 어떤 결과도 없었다. 그는 이 해식 절벽에
서의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고백이 관주와 풍성한 각주가 있는 그러한 성경의 출판으로
인도할 길을 열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월간 무디지 43 (1943): 278.
이 토론의 최종 결과는 1909년의 스코필드 관주 성경이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체제와
주석과 상호 참조 성구가 결합된 지금까지 발행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주의 신학의 저서
가 되었다. “예언에 대한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 가르침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널리 보급되
었는데, 그 이유는 특히 1909년의 스코필드 관주 성경과 그에 이어진 판들 때문이었다.”3
그의 관주 성경에서 스코필드가 제시한 신학은 표준적인 세대주의 교리이며, 그 중요성에
대해 다음의 인용문을 참조할 수 있다:
“섭리로서, 은총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한다.... 시험의 요점은 더 이상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율법적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열매로서의 선한 일과 함께 그리스
도를 받아들이느냐 배척하느냐 하는 것이다.”(4)
스코필드는 여기서 구원의 은혜는 신약의 현상이며, 과거의 세대에서는 누릴 수 없었다고
진술한다. 과거 세대의 구원의 조건은 율법적 복종이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라고 스코필드가 설명하는 것에 유의해보라. 이것은 스코필
드의 세대의 정의와 일치한다.
세대는 하나님의 일부 특정 계시에 대한 복종과 관련하여 인간이 시험되는 기간이다.(5)
사실, 그 각각의 “세대들”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과 관련하여 인간이 시험된다면 보
상이나 처벌은 무엇인가? 율법 세대와 관련하여 스코필드가 분명히 가르쳤던 것처럼 보상이
구원이라면, 구원은 은혜가 아니라 행위의 보상이다! 율법과 복음의 개념을 오해한 세대주
의자들은 그들이 시험받는 “세대”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제시함으로써,
심지어 은혜의 세대에도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합당하게 하는 행위가 되게 만든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충분한 “믿음”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세대의 조건
을 충족시킬 수 있고 구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6)
한편 정통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인간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으며, 조금도 자신의 조건을 개
선하지 못하고, 경건치 못한 사람들을 의롭게 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믿음은 새로운 탄생을 통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말씀과 성령님의 일이다.
“아담이 죄를 지은 이래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죄 가운데 수태되고 출생한다
는 것을 우리는 가르침 받아 왔다. 즉,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악한
욕망과 경향이 가득하며, 자연적으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타고난 병과 유전 죄는 진정한 죄이며 말
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 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당하도록
정죄한다. 이와 같은 연관성을 배척한 것은 원죄가 죄라는 것을 부인한 펠라기우스교도
들 (Pelagians) 등의 사람들인데, 그들은 자연적인 인간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의롭게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고통과 공적을 경시한다.(7)
“스코필드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 세대주의는 “세대”라는 용어를 재 정의하기 시작했다.
1967년의 신 스코필드 관주 성경은 스코필드의 용어법을 반복하긴 하지만, 현대 주석가들
은 1909년 판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정의는 세 가지 개념을 암시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계시, 그와 관련한 인간의 관리자로서의 성격, 그 계시를 위한 일정한 기간. 이러
한 암시된 개념은 그에 대해 해설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까지의 권한을 갖게 되었
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대주의의 새로운 정의는 그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의
문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각 세대의 목적은 인간을 특정 행동 규칙 하에 두기 위한 것이지만, 그러한 관리 직무
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 갱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실패했고, 현
세대에서도 실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믿음을 통한 하나
님의 은혜에 의해서 얻는 것이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다.”(8)
수정주의적 이단교리 세대주의는 이제 세대의 목적이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특정 행동 규칙”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는 목적은 무엇인가? 각종 세대에서 인간
의 실패의 의미는 무엇인가? 스코필드가 자신의 설명에 매우 솔직하였더라면 그의 계승자들
은 “세대”라는 용어로부터 어떤 의미의 유사성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을 가졌을 것
으로 보인다. 또한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그가 얻을 수 있는”이라는 말에서
“믿음”이 타락한 인간의 내재적인 능력인지 아니면 새로운 탄생의 산물인지에 관하여 여전
히 불명확한 점을 남긴다는 것에 유의하라.
여기서 핵심 의문은 세대주의 신학이 정통 그리스도교처럼 회심이 믿음의 원천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세대가 이어지는 것을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승인을 얻는 기회로 본다. 과거 세대들에서는 아무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를 하
여 살라”는 기회는 있었다. 현재의 은혜의 세대 중에는 가로장이 낮추어졌으며 필요한 것은
“믿음”뿐이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기회”를 얻어서 믿는 자신의 도덕적 능력을 실행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챠퍼 이단 교리 문제
루이스 스페리 챠퍼(Lewis Sperry Chafer) (1871-1952)는 스코필드의 제자이고, 1924년
에 댈러스 신학교를 설립했으며 초기 30년 동안 세대주의 본거지 학교를 운영했다. 챠퍼는
또한 세대주의 최초의 결정적인 조직 신학을 만들었다. 루이스 스페리 챠퍼의 조직 신학,
총 8권(댈러스: 댈러스 신학교 출판부, 1948)은 스코필드 식 세대주의 사상의 표준 연결 고
리이다. 그의 스승에게 항상 충실했던 챠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댈러스 신학교는 스코
필드 성경을 사용하고 권장하며 옹호하는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9)
“세대주의의 예루살렘”으로 알려진 그 학교의 설립자 겸 그 학교의 조직 신학의 저자가 다
음과 같은 진술을 한다고 해서 세대주의 체제의 심각한 잘못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놀
라운 일이 될 수 없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과 율법을 주신 두 가지 크게 다른 표준화된 하나님의 마련이 있
어서 완전히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10)
챠퍼의 조직 신학은 구약에서 사람은 율법에 의해 의롭게 되었지만, 신약에서는 행위에 의
하지 않고 믿음이 그렇게 한다는 점에 이른다.(11) 그의 세대주의 430쪽에서 그는 또 다시
은혜에 대한 그의 오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게 된] 어떤 조건으로든 하
나님께서 죄 많은 인간을 위해 하시는 것은 그러한 행동, 즉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하여 하시는 모든 것은 성격상 은혜이며,
그 모든 것에 어떤 인간적 요소도 없는 하나님의 언약이 다른 것보다 성격상 더 은혜롭
다는 사실과 일치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구분은 언약의 하나님의 측면에만 적용된다. 인
간적 측면에는 어떤 경우든 은총의 실천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이 부과하는 인간
적 요구 조건은 전혀 없거나,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과 관련하여 무미건조하게 부과
된 약간의 것이 있을 뿐이다.”
세대의 표준적인 정의를 유지한 챠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를 다양한 시대에 걸쳐서
은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는 데, 그것은 구원을 그 특정 세대의 부가된 요구 조건
에 관계없이 은총으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이 부과하는 인
간적 요구 조건이 전혀 없는) 은총 하에서 인간이 필요한 믿음을 산출할 수 있다면 그는 은
혜를 받을 수 있다. (혹은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과 관련하여 무미건조하게 부과된) 율
법 세대 하에서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요구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획득한 구원은 (챠퍼에 따르면) 은혜인 반면에, 그 두 가지 모두는 은혜
에 의한 구원이 아니다. 현대의 세대주의자들은 스코필드와 챠퍼가 의도한 것이 그들이 말
한 것을 통해 적절하게 분별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에 대해서 우리는 세대주의를
일관성 있게 그 논리적 결론으로 인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고수파 (혹은 불링
거 파 세대주의자들을 살펴보도록 권한다.
유대인의 왕국 제안
세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의 목적이 유대인들에게 지상의 왕국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 왕국은 구약의 법적 체제를 회복하고 메시야를 통해서 전 세계로
그 율법적 체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 제안을 배척했
을 때 B 계획이 발효되어 그리스도께서는 은총과 “신비의 교회”의 세대를 시작하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다. 이스라엘이 왕을 받아들였다면 십자가도 복음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의로 왕국과 권능을 제시하셨다.(12)
그러면 유대인들이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여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인류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없는” 십자가는 어떻게 되는가? 십자가를 가리키는
예언은 어떻게 되는가? 자신이 흘린 피에 의한 인간의 구원이 없는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왕국을 설립하시려는 제안을 하실 수 있는가?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그분에
게 도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아신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개념
의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그분은 오시기 전에 그들이 그것을 거절할 것을 아셨다. 영원 전부터 아셨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려고 오시는 것을 말한 예언자들이 있는 것이다.”(13)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대인들이 거절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왕국을
제안하셨다면 그 제안은 다시 시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제안은 진지한
제안이 아니라 기만이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진지하지 않은 제안을 하지 않으신다. 그밖
에 만약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위해 지상의 왕국을 수립하기 위해 오셨다면 확실히 그분은
기회가 있었고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자신을 억지로 데려다가, 왕으로 세울 줄을 아시고 혼자서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한 6:15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나무 위에 달려서 죽으
실 정해진 시간에 오셨다. 아브라함의 모든 진정한 아들은 그분을 인정했다. 그분이 자신의
왕국을 받으신 것은 승천하실 때였으며, 그분은 이제 그분의 왕좌에 앉아계신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주 예수님 안에 있는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드릴 때에 너희
를 말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성
령님을 너희에게 주시어 그분을 알게 하시고, 너희의 깨닫는 눈을 밝히셔서, 너희로 하
여금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또 그분의 위대하신 능력으로 일하심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를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분께서 그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시어 주님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시고 주님을 하늘의 처
소들에서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시어,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다스림과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며” -에베소
1:15-21
문자적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세대주의적 구분
“이스라엘과 교회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을 비교하면 우리는 기원과 부르심과 약속과
경배와 행동 원칙들과 미래의 운명 모든 것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14)
세대주의의 핵심 교리는 아마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분일 것이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
을 지상의 약속을 가진 이 땅의 백성으로, 교회를 하늘의 약속을 가진 하늘의 백성으로 본
다.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자연적 출산에 의해서이다.(15)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출생에 의해 교회에 들어간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서로 구분되는 영원한 운
명을 가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영원한 지상의 왕국을 받을 것이고 교회는 영원한 하늘
의 왕국을 받을 것이다.
세대주의의 아버지인 존 다비는 그 구분을 매우 분명한 말로 진술했다. “유대 국가는 결코
교회에 들어갈 수 없다.”(16) 라이리(Ryrie)는 이 표현을 가장 중요한 세대주의적 구분이라
고 생각하며, “세대주의의 기본적인 약속은 영원을 통해서 그들 사이의 구분을 유지하는 두
종류의 백성에게 표현된 하나님의 두 가지 목적”이라는 진술을 승인한다.(17)
반대로,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필수적인 지속성을 항상 유지한다.
모든 시대의 선택된 사람들은 하나의 백성, 한 분의 구원자, 하나의 운명으로 간주된다. 그
러한 지속성은 몇 가지 구약의 예언들의 성취를 통해 검토함으로써 알 수 있다. 세대주의자
들은 만약 교회가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면 그들의 체제는 끝이 난다
는 것을 인정한다.
“만약 교회가 신약이나 성경의 다른 곳에 포함된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성취한다면 그
러면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는 폐기된다.”(18)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
“그러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
도 없게 되리라.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하였던 그곳에서 그들
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리라.” -호세아 1:10
예수님의 교회에서의 성취 -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분노를 친히 보이시고 그 권능을 알려지게 하시려고, 멸하기로
된 진노의 그릇들을 오래 참으심으로 견디셨고, 또한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
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고자 하셨을지라도 어찌하겠느냐? 이 긍
휼의 그릇들은 우리니 곧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
르신 자들이니라. 호세아의 글에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가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
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며, 사랑받지 못하였던 자를 사랑받는 자라 부르리라. 또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
들이라 불리우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 9: 22-26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그 땅 속에 뿌릴 것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던 그녀 위에다
긍휼을 베풀 것이며, 또 내가 내 백성이 아니었던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리하면 그들이 말하기를,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 2:23
예수님의 교회에서의 성취 -
“그러나 너희는 선택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으로부터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
신 그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로 하여금 보여주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10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
“그 날에 내가 쓰러져 있는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세우고 그 무너진 곳을 막으리라. 또
내가 그의 폐허를 일으켜 내가 그것을 옛날같이 세우리니” -아모스 9:11
예수님의 교회에서의 성취 -
“하나님께서 처음에 이방인들 중에서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백성을 취하시려 그들을 돌
아보셨던 것을 시므온이 밝히 말하였으니 이것은 선지자들의 말씀들과 일치하도다. 기록
된 바, 이 일 후에 내가 돌아와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지을 것이며, 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지어 곧게 세우리라. 그리하여 남은 자들과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님을 찾게 하려함이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세상의 시작부터 그분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 -사도행전 15:14-18
똑같은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언급하는 여러 개의 구약의 구절들이 신약에서는 교회에 직접
적으로 적용된다.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
“그 뒤에는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쏟아 부으리니, 그리하면 너희 아들들과 너희
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늙은이들은 꿈들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볼 것이
며 그 날들에는 내가 내 영을 남종들 위에와 여종들 위에다 쏟아 부어주며 내가 하늘들
에서와 땅에서 이적들을 보이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들이라. 주의 크고 두려운 날
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둠으로 변하고 달이 피로 변하리라. 이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때가 이르리니,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에서와 예루살렘
에서 건져냄이 있을 것임이요, 또 주의 부름을 받을 남은 자들에게 건져냄이 있을 것임
이니라.” -요엘 2:28-32
예수님의 교회에의 적용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자, 그들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이 오리
니,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들과 너희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또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또
그 날들에는 나의 종들과 나의 하녀들 위에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
라.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을,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크고 찬란한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변하여 흑암이 되고, 달이 피로 변
하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
사도행전 2:1,16-21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
“너희는 내게 한 제사장의 왕국이 되며 한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들이 네가 이스라
엘의 자손들에게 전할 말이니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19:6
예수님의 교회에의 적용 -
“그러나 너희는 선택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으로부터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주신
그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로 하여금 보여주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
“나의 장막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참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에스겔 37:27
예수님의 교회에의 적용 -
“또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중에서 거주하여 그들 중에서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6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거룩할지니라. 이는
나 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라.” -레위기 19:2
예수님의 교회에의 적용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이는
기록된 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기 때문이라.” -벧전 1:15-16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 -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면,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더불어 새로운 언
약을 맺으리니” -예레미야 31:31
예수님의 교회에의 적용 -
“만찬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유언이니,
곧 너희를 위하려 흘리는 것이니라.” -누가 22:20
새로운 언약은 세대주의자들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데, 예레미야 31장이 부인할 수 없을 정
도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언약은 복음의 핵심이며, 새로운 언약
으로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교회가 성취시키고 있다면 세대주의는 폐기 처분된다. 라
이리는 그의 초기 글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언급을 했다:
“만약 교회가 새로운 언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러면 교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을 성취시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새로운 언약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신약이나 성경의 그 밖의 어떤
곳에 포함된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키고 있다면 그러면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
의는 폐기된다. 하나의 새로운 언약에 대하여 왜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없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다수의 전 천년주의자들이 취한 입장이지만, 우리는 그
입장이 새로운 언약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성취된다는 것을 실제 인정하
는 것이라는 이 견해를 말할 모든 권리를 무 천년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다는데 동의한
다.”(19)
세대주의는 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을 편다. 그 중 가장 대담한
것은 두 개의 새로운 언약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챠퍼가 이 개념의 창시자인 것으로 보인
다:
“이스라엘을 위한 선행 언약의 양식에 맞추어 “새로운 언약”이라고 한 하늘의 백성을 위
한 하늘 언약은 인정되고 있다. 그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졌으며 (마가 14:24
참조), 현시대까지 계속 효력이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로 만들어진 새로운 언약은 그 적
용이 미래이다. 이 두 가지 언약, 즉 이스라엘을 위한 언약과 교회를 위한 언약이 동일
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사
이에 공통적 이해의 폭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20)
고수파 이단세대주의자들은 그 문제를 오랫동안 인식하고 있었다. 불링거(E. W. Bullinger)
는 주의 만찬의 잔은 사실 예레미야 31:31-33의 새로운 언약이며,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을 향한 것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비의” 교회는 그 언약을 관리할 수 없다고 언급했
다. 성육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들의 “기념”을 유지하고자 하는 온건파 (비고수파)
세대주의자들은 그 곤경에서 교묘하게 빠져나오고자 한다. 달라스 신학교의 학장이 되었고,
두 번째 새로운 언약의 당대의 선도적인 옹호자로 보이는 존 왈부르드(John F. Walvoord)
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현시대에 두 개의 언약을 고수하는 관점에는 어떤 장점이 있다. 그 관점은 새로운 언약
의 피를 기념하는 현시대의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의 만찬을 수립하는 사리에 맞는 이
유를 제공한다. 고린도전서 11:25의 말씀은 그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유언이니, 이것을 행하여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그리
스도인이 잔과 새로운 언약을 구분할 것으로 기대할 합당한 이유는 거의 없는데, 이 구
절에서 그 둘이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3:6에서 바울은 자신에
관해 말하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기 때문이니라.
또한 그분은 우리를 새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들로 삼으시고.” 사실 현시대를 위한 새로
운 언약이 없다면 바울의 봉사가 그를 새 언약의 봉사자로 만들기는 어렵다.”(21)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검토하면서 왈부르드는 모세 (구) 언약과 신약 및 그의 새
로운 “더 나은” 언약을 대조한다. 구약을 대체하는 신약의 실체는 히브리서가 포함하고 있
는 예레미야 31장으로부터의 긴 인용문에 의해서 확실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세대주의자
왈부르드가 이를 부인하는 글을 우리가 읽는다면 놀랄 수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 제목에 따르면 유대 사람들에게 보낸 것이다. 그 편지
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모세와 모세의 언약을 대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
해 마련되었다. 히브리서에서 8장에서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다 나은 약속 위에 수립된
모세보다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는 계시에 관해 진행된다. 여기서 필자는 모세 언약
은 결코 영원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며 (다른 유대인에 대한 언약과는 반대로) 구약 그
자체가 그것이 지나갈 날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언약에 대한 예레미야서의 구절이 인용된다 (히브리 8:8-12)... 이스라엘이 히브
리서가 언급하는 더 나은 언약과 동일시된다는 내용에 호소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와
같은 호소의 부재가 바로 침묵이 할 수 있는 어떤 주장만큼이나 강력하다.”(22)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잘못된 구분에 고착하기로 결심한 이단 세대주의자들은 모든 진정
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언약의 교회에 대한 적용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
로 비 세대주의 주석가를 대표하는 알베르투스 피에테르스(Albertus Pieters)는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예레미야 31장이 이스라엘에게 의도된 것은] 온전히 정확하며, 그 성취는 이스라엘 집
에서이다. 그리스도교회가 그 기원에 있어서 이스라엘 계통의 몸이며,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을 요구할 온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이의가 제기된
다... 그리스도교회는 한 때 많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수립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이 “이방인 중의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마치 다수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
리나라에 들어와서 국민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이탈리아 사람들 중의 나라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약 백성의 이스라엘에 속한 성원들로서, 그들
에게 그 약속이 주어졌다. 그 약속과 그리고 언약의 역사의 보편적 원칙과 엄밀하게 일
치되게, 믿는 남은 자들인 그들에게 신약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그 약속은 “이스라엘 집
과 유다 집에” 한 것이며 지정된 당사자들에게 그 성취가 있다. 하나님이 보시는 데서
그리고 역사의 정당한 해석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이름
에 합당하다... 이 모든 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증거 없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언을 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거룩한 기록에 분
명하게 포함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기원 30년 봄경에 당시 자신을 이
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부르던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여 이스라엘
국가의 시민권을 상실함에 따라 예언과 언약의 목적을 위한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이
중단되었으며, 그 사건 이후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모든 특권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믿
는 남은 자들에게, 즉 그들에게만 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남은 자들이 그 이후 진
정한 이스라엘이고 유다였으며, 아브라함의 씨이고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그리하여 약속
은 지정된 당사자들에게 엄밀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성취되었다.(23)
5. 7년 대환난 전 휴거가 복음을 파괴하는 방법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세대”에 대한 이해는 모든 시대와 관련하여 은혜의 진실을 무효화
한다는 사실과, 세대주의적 “왕국 제안”이 하나님의 정직성을 공격하여 복음을 때늦은 생각
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방식과,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추정된 구분이 어느 쪽으로든 새
로운 언약이 부인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검토했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7년 환난전 휴거
라는 특이한 세대주의적 교리가 어떻게 이러한 오류를 드러내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7년 환난전 휴거라는 새로운 이단 교리는 세대주의적 가르침의 중심이다. 7년 환난 기간에
앞서 교회를 하늘에서 없애버리는 것과, 멈춘 예언의 시계가 다니엘의 “일곱 번째 주”와 함
께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째깍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존 다비가 고안해 낸 사이비 교리인 것
이다.
“존 다비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은 두 가지 단계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과거의 천년기 가르침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역사로부터 일탈했다. 첫 번째, 진정한
신자들의 “비밀 휴거”는 언제든지 일어나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을 때 시작
된 큰 “괄호” 혹은 교회 시대를 끝낼 수 있다.”(24)
스코필드도 챠퍼, 라이리, 왈부르드 등과 마찬가지로 이 교리를 가르쳤다. 세대주의 학교들
에서 7년 환난전 휴거의 교리에 꾸준히 고착하지 못한 것은 끔찍한 결과가 될 수 있다.
“...교회의 7년 환난전 휴거는 정통성의 리트머스 실험인 것처럼 보인다. 고전적 전 천년
주의자들을 포함한 “국외자들”에게 이 교리는 믿어진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교리는 댈러스 세대주의에서 강력하게 유지될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의 일탈은 사람
으로 하여금 의심을 받게 하며, 조직은 흔들리고 때때로 갈라지게 한다.”(25)
“국외자들” 즉, 역사적 전 천년주의자들, 후 천년주의자들 및 무 천년주의자들이 이 분명한
세대주의적 교리를 보다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 이유는 세대주의
적 신학이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대주의는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적 신학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유사 그리스도교 종파되게 하는 것임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전 환난 휴거의 교리이다.
7년 환난주의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논증은 그 교리가 신학상의 새로운 발전이고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해 왔다. 다양한 정통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천년
기 견해의 각각의 대열에서(26)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이 사실을 제시해 왔다. 따라서 우리
는 다른 방향을 취해서 그 이단 교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복음에 정 반대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대부분의 초기의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의 성도들이 7년 환난전 휴거의 때에 교회와 함
께 부활될 것이라는 것을 수용했다. 고전적 세대주의자인 알렉산더 리스(Alexander Reese)
는 확신케 하는 성경적 논증으로 이 입장을 철저하게 타도하여 구약의 성도들의 부활을 대
환난의 끝에 있는 주의 날에 배치했다.(27)
“그때에 미가엘이 일어서리니, 이는 네 백성의 자녀들을 위하여 일어서는 큰 통치자라. 또
한 고난의 때가 있으리니, 그것은 민족이 있은 이후로 그때까지 결코 그런 때는 없었던 고
난일 것이라. 또 그때에 네 백성이 건짐을 받을 것이니 곧 그 책에 기록되어 발견되는 모든
자니라. 땅의 티끌 속에 잠자는 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일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존할 생
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모욕을 받으리라.” -다니엘 12:1-2
“내가 들었으나 내가 깨닫지 못하였기에,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나의 주님, 이 일들의
끝은 어떻게 되겠나이까, 하였더니,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니엘아, 네 길을 가라. 이
는 마지막 때가지 그 말씀이 닫혀져 밀봉되어 있음이라. 많은 자가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며 단련을 받을 것이라. 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함으로 행할 것이요, 사악한 자들
중에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로되, 오직 지혜 있는 자들은 깨달을 것이니라. 또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제거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때로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될 것이니라. 복이 있도다.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에까지 이르는 자여. 그러나
너는 그 마지막이 이를 때까지 네 길을 갈지니라. 이는 네가 쉴 것이요 그 날들의 마지
막에 그 몫으로 정한 곳에 설 것임이니라. 하니라.” -다니엘 12:8-13
“민족이 있은 이후로 그때까지 결코 그런 때는 없었던 고난의 때”와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과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제거되는 것이 대 환난의 때와 관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부활이 그러한 사건들에 이어서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 대부분은 구약의 성도들의 부활을 휴거와 분리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수정했다.
“... 전 천년 진리의 주의 깊은 연구생 다수는 휴거의 때에 있게 되는 이스라엘의 부활이
라는 견해는 급조된 것이고 적절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니엘 12:2
의 부활을 교회의 7년 환난 전 휴거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에 이어지는 문자적
인 부활로 간주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환난 전 휴거의 때에 부
활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포함한 구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시작 시점에
부활 될 것이다.”(28)
이 점에 관하여 세대주의자들은 프라이팬을 나와서 불속으로 뛰어 들었다. 교회의 7년 환난
전 휴거라는 값진 교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들은 구약의 성도들을 교회 시대의 성도들과
별도로 부활시킨다. 우리는 이 사실이 “세대들‘에 대한 세대주의적 이해와 그리고 이스라엘
과 교회 사이를 구분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에 유의해 볼 수 있다. 또한 이 사실은 세대주
의가 여러 가지 방법의 구원을 가르친다는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하는 오랫동안 지속된 비난
이 절대적 사실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성도들의 부활에 관한 일부 본문을 살펴보자.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육체와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나
니 곧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상속받을 수 없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신
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
팔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
으로 일어나게 되고 우리도 변화 받게 되리라.) 이는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
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이 썩을 것이 썩
지 아니함을 입고, 또한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그때에는 사망이 승리에게 삼
킨바 되었다, 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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