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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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역사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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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정한 영적 부흥과 활기찬 복음 전도가 이루어졌던 교회들은 항상 사도 시대 초대교회의 정신과 신앙의 원리를 충실하게 본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서 진리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걸어왔던 길과 생활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방 선교의 중심지였던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초대교회 순례여행을 통해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되새겨보고 나아가 현재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핍박과 확산되는 복음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15년 간은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면, 그 이후의 20년 간은 안디옥 교회를 이방선교의 중심지로 하여 이방 세계에 활발하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율법적인 유대인들은 늘 ‘나사렛당’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핍박했지만 ‘나사렛당’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 이외에는 흠 잡을 데 없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로마 지배하의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함부로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평온한 가운데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으며 그 수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 : 46-4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 : 7)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전해졌는데 특히 보수파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잘 준수하고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사회에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의 의인 야고보 같은 이는 나중에 순교를 당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나사렛당’들의 수가 자꾸만 늘어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율법적인 유대인들은 급기야 음모를 꾸며 스데반을 죽이고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다(행 6:8 - 8:3).
그 결과 열두 제자와 의인 야고보를 비롯한 팔레스타인계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의인 야고보를 비롯한 팔레스타인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준수하고 유대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이 일어난 후에도 오랫동안 큰 탈 없이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었지만 특히 이방인과 율법에 관해 그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을 가졌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그 당시의 세계어인 헬라어로 이해하기 쉽게 널리 전파할 수 있었으며 스데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성전과 율법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정통 유대교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을 떠나 각처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서 이방세계의 땅끝까지 전해지게 되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서의 여건을 갖춘 수리아 안디옥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였던 수리아 안디옥은 바닷길로는 지중해 세계와 수리아 내륙의 동방 국가들간의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육로로는 소아시아와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사이의 교차로가 되는 지정학적 위치로 동서양과 중동 지역의 교량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던 사도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 코스를 보더라도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바울은 늘 수리아 안디옥에서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옴으로써 끝을 맺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여 교회를 형성한 도시들을 순서대로 연결하면 진주 목걸이처럼 시작과 끝이 안디옥에서 맞닿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를 피해 안디옥에까지 오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교통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뱃길을 이용하려면 욥바항에서 로마행 화물선을 타고 가이사랴항을 거쳐 수리아 지역의 관문인 셀류기아 피에리아 항구에 도착하면 된다. 거기서 다시 몇 마일쯤 육로로 걸어가면 안디옥에 도착하게 된다. 그 당시로는 예루살렘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 이 코스가 가장 안전하고 빠른 것이었다.
육로로 가자면 500km나 되는 먼 길을 가야 했다. 예루살렘에서 평탄한 서해안 평야지대를 따라 나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 다시 레바논 산맥의 골짜기와 구릉과 강과 거친 들을 지나가야만 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다.
예루살렘에서 고향 구브로(키프러스) 섬으로 일단 돌아갔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오게 된 사람들은 해로, 육로를 포함하여 100km정도의 여정을 거쳐야 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이곳 안디옥까지 오게 된 것은 물론 안디옥을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겠지만 안디옥이 전 세계의 문화, 종교, 인종들을 포용하고 자유로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수리아 안디옥은 인구 20만의(그 당시로서는 매우 큰 인구였음) 거대한 도시로 소아시아의 에베소보다 규모가 컸으며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실크로드의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세계적인 상업의 중심지로 이미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막료들이 헬라 세계를 3분하여 통치할 당시, 셀류코스 니카토가 시리아(수리아) 왕조를 세우고 이곳 안디옥에 대도시를 건설할 당시에 이미 유대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셀류코스의 군대에 소속되었던 유대인 퇴역 군인들이 군 복무의 대가로 안디옥 주변의 비옥한 토지를 받아 정착하면서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이곳은 인구 분포에 있어서 수리아 토착민과 마게도니아인, 헬라인, 유대인이 섞여 살게 되었고 폼페이우스의 침략을 받아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아프리카인과 유럽인까지 뒤섞여 마치 세계 인종의 전시관과 같은 곳이 되었다. 세계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진 이곳은 여러 종교와 문화, 사상, 인종들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며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고 예루살렘에 박해가 있은 후에는 원래 안디옥에 거주하다 예루살렘에 들른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그밖의 그리스도인들도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는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들을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특히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열심히 전하기 시작했다. 이미 안디옥은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도시의 평화와 질서, 경제적인 풍요는 여러 종교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우상과 관련된 신비주의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고등종교인 유대교의 윤리관과 신앙에 이미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보다는 더욱 차원이 높은 생활 양식과 신앙심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 집단의 출현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평신도들의 전도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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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다가 나중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몇 사람이 안디옥에 도착하게 되면서부터 이방인에게도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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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 :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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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피난 온 성도들이 전도한 유대인 집단과 구브로(키프러스)와 아프리카 북북의 구레네에서 온 성도들에 의해서 개종한 이방인 집단이 하나가 되어 설립된 독특한 공동체였다. 안디옥 교회는 처음에 특정한 목회자가 없이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이들을 올바로 지도할 사람이 필요했고,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구레네의 지주이며 레위족인 바나바를 파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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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행 11 :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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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에 나타나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안디옥 교회가 언어, 인종, 지위, 교육의 장벽을 뛰어넘어 뜨거운 교제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니게르’라는 별명의 흑인 시므온과 아프리카 북부 구레네 사람 루기오(흑인인 듯), 헤롯 왕의 젖동생이었던 안디옥의 귀족 마나엔, 다소 출신의 바울 등 실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복음 전도에 합력했다.
그 당시 안디옥에는 아데미와 아폴로 신을 섬기는 큰 신전이 있었고 종교상의 매음과 우상 숭배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들의 영향으로 인해 성도덕은 문란하고 남녀간의 부도덕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터키 동부 최대의 공원으로 남아 있는 다피네(Daphne) 숲에서 저질러진 신전 매음은 안디옥의 역사에 큰 오점으로 기록된다. 로마의 풍자가 주비날(Juvenal)은 안디옥의 이러한 문란한 성적 타락의 풍조가 그곳에서 1,3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로마에까지 악영향을 미친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풍자하고 있다.
“수리아 오론테스 강의 하수 오물이 오랫동안 로마의 티베르 강으로 흘러 들어왔도다.”
레바논 산과 헐몬산을 끼고 흐르는 긴 레온테스 강과 오론테스 강 사이의 계곡에 위치한 안디옥은 수많은 맑은 샘들과 다피네강의 폭포수로 인해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말세적인 타락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온갖 종교의 잡신들과 우상 그리고 성적인 쾌락과 방종 속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진리의 생수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생활로써 전파하는 기독교의 진리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그 당시 일반적인 안디옥 사람들의 생활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은 좋지만 저 교인들과 교회는 싫다.”는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듣는데, 그것은 복음 전도가 단순히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복음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을 중심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사랑이 넘쳐 흘러 불신자들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열심히 주님을 증거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
안디옥 교회는 모든 평신도들이 실로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을 증거했던 교회였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일과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놀라운 일들을 열심히 증거하였다.
행운신, 운명신, 세라피스(천사), 불멸신, 아데미, 아폴로 등 등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는 도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그 일을 이루어냈다. 그 결과로 성적인 타락과 방종의 굴레, 물질적인 소욕과 악령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이 도시의 곳곳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 거듭난 사람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두지 않고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교제의 장으로 인도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안디옥 교회를 더욱 강건하게 붙들어 주기 위해서 이에 적합한 인물인 바나바를 파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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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행 4 :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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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인물로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은혜로운 성품을 지녔으며 헬라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과 소양도 아울러 구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먼길을 달려 안디옥에 이르렀고 거기서 하나님이 활발히 일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기뻐했다. ‘권위자’라는 그의 아름답게 새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그들의 신앙이 더욱 굳건하게 되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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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1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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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거듭나는 역사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고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의 숫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자 동역자를 구하게 되었다. 이에 바나바는 원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사울(바울)을 떠올리고 그를 동역자로 부르기 위해 다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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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행 9 :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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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회심한 이후 3년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바나바는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해 준 일이 있었다.
회심 이후 바울은 다메섹과 유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부지런히 전도를 하다가(행 9 : 20-22) 아라비아로 가서 2-3년을 머물렀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갈 1 : 17)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고(갈 1 : 18-19, 고후 11 : 32-33) 나중에는 고향 다소에 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안디옥에서 북북서로 240km의 먼 길(사흘길)을 찾아온 존경하는 옛 친구 바나바의 요청으로 40대 초반의 바울은 안디옥으로 건너와 이방 전도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30대에 다메섹에서 회심한 직후 바나바의 주선으로 박해를 피해 탈출한 일이 있었다. 바나바와 이미 친교가 있었던 셈이다. 이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에서 일 년 동안 가르치고 침례를 베풀었다. 나중에 바울의 동역자가 된 의사 누가도 이곳에서 일할 때 침례를 받았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과 이들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굳게 서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였다. 그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서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며 상종하지 않았으나 이들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흑인이나 백인, 부자가 가난한 자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누었다. 성령께서는 언어, 인종, 지위, 빈부, 교육의 장벽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해 주셨다. 바나바, 바울, 시므온(흑인), 루기오(흑인), 마나엔 등등의 지도자들은 인종, 지역, 피부색, 교육 수준 등이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겸손과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평신도들도 그들을 본받아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열매가 넘치는 교회가 되었고 주변 이방인들에게도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하였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세속적이고 타락한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너무도 뚜렷하게 세상과 구별된 삶은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 의해 비로소 ‘그리스도인’(chriltiani)으로 불리우게 된다. 그 이전에는 ‘나사렛당’(Namarenes)이나 ‘도의 추종자’(followers of the ways) 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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