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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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돕기의 본을 보인 안디옥 교회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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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일어난 이후 흩어진 헬라계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가 형성되고 바나바, 바울 등의 뛰어난 지도자들 의해 안디옥 교회가 이방선교의 중심지로서 발전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유대인이 중심이 된 예루살렘 모(母) 교회와 이방인이 중심이 된 안디옥 교회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상호협력의 과정을 중심으로는 어느 시대의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여러 교회 가운데서 환난에 처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부조(扶助)를 보낸 최초의 교회였다. 자기 지역을 초월하여 다른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어려움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물질적으로 구제하는 모범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느라” (행 11:27-30)

안디옥 교회는 초창기에 헬라계 유대인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도활동을 한 결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안디옥 교회를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바나바를 파송한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을 종종 보내어 교회의 성장을 도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인 아가보 선지자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에게 장차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였다.
안디옥 지방은 이미 언급했듯이 알렉산드리아, 로마에 이어 세 번째로 번창한 국제도시로 상업적인 부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도시였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반면 팔레스타인 지역은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적인 지위나 부가 높은 사람들보다는 병들고 가난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소외된 계층들이 주님을 많이 영접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바울이 여러 교회들에게 특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아가보 선지자가 안디옥 교회에 왔을 당시 팔레스타인은 헤롯 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아그립바는 표면적으로 유대인의 율법을 존중하는 척하고 한편으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호의를 받았던 매우 악하고 교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기 시작한 때부터 이미 팔레스타인에는 기근이 시작되었는데 아가보는 기근이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을 심각하게 강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러한 기근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부유층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돈이 없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생존마저 위태로운 심각한 문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굶주려 죽고 사회적으로는 혼란이 일어나고 식량이나 물건을 약탈하는 강도들이 떼를 지어 활보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그 당시의 극심한 기근과 사회적인 혼란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데 대한 무서운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징조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가보의 예언대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A D.41-54년)의 통치 기간 중에 전 지역에 걸쳐 큰 흉년이 일어났다.
그러나 안디옥은 행정과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이러한 큰 기근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도시였다. 아가보 선지자가 앞으로 닥칠 이 기근의 재앙에 대해서 예언했을 때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장차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 한마음이 되어 동침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일에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각각 믿음의 분량과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여 동참한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 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 34-35)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강요나 체면 때문에 억지로 부조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모교회인 예루살렘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부조를 했다. 그들이 사랑의 빚을 지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물질적인 부조를 통해 아름다운 교제의 악수를 나눈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되던 당시에 성도들이 서로 재산과 소유를 내놓고 서로 돕는 유무상통의 역사가 잠시 있었지만(2:43-46) 그 후에 다른 지역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물질을 보낸 것은 이것이 최초의 일이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바나바 역시 그러한 일에 일찍이 모범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을 당시 자기 밭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던 사람이었다(행 4:37). 이러한 그가 바울과 함께 성도 돕는 일에 기꺼이 앞장섰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순절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유무상통의 정신과 안디옥 교회의 부조의 모범은 나중에 세워지게 되는 이방의 여러 교회들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울이 쓴 서신들을 보면 성도를 물질적으로 돕는 이 부조의 일을 연보(고전 16:1 ; 고후 8:2, 9:5, 11, 13)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연보’로만 번역하고 있지만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로는 이것이 ‘로기아’(모금) ‘하플레스’(기쁨으로 드린다). ‘율로기아’(좋은모금), ‘코이노아’(교제) 등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서, 억지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고후 9:5-13)

안디옥 교회는 드디어 부조를 모아 바나바와 바울 편에 예루살렘으로 보낸다. 그때는 A. D.46년경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닥친 기근으로 유대인들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의 칼을 들이댔다. 그 결과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아그립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예루살렘을 잠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롯은 얼마 후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충이 먹어 죽게 되고 예루살렘 교회에는 말씀이 더욱 흥왕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바나바와 바울은 기근 구제기금을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무사히 전달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핍박했던 바울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자신이 과거에 핍박했던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가지고 온 사건은 너무도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바울은 A. D.33년경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화심한 이후에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온 후 3년만인 A. D.36년경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15일 동안만 머무르다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 후 고향 다소에 있다가 안디옥에 있는 바나바가 찾아와 안디옥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받고 이방인의 전도에 힘쓰다가 A.D.46년에 드디어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다(갈1:18-2:1참조). 이 방문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들인 야고보, 게바, 요한과 교제의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동안 안디옥 교회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간증했고 사도들은 말로만 전해 들었던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확인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사도들은 베드로가 할례자(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같이 하나님께서 무할례자(이방인)에게 복음 전함을 바울에게 맡기신 것을 인정하였다. 이로써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선교의 중심지인 안디옥 교회 사이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몸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유대인의 전도에 주력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의 전도에 주력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의 전도에 주력하기로 하고 다만 다른 지역보다 궁핍한 상태에 처해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늘 유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바울도 이에 대해 자신도 어려운 성도들을 돕는 일을 본래 힘써 행한다고 대답하였고 평생을 통해 이 약속을 지켰다.
안디옥 교회의 부조 덕택으로 특히 A. D.45-47년 사이에 있었던 로마 지배하의 전 지역에 걸친 큰 흉년과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의 여러 궁핍한 성도들은 무사히 환난을 피할 수가 있었다. 다른 이방 교회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도움도 그 뒤에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음을 우리는 바울 서신에서 엿볼 수 있다. 바울은 일생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함께 성도들의 어려움을 돌보는 일에 전심을 기울였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그 뒤에도 계속 큰 재앙과 기근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너무도 배가 고파 어머니가 자식을 잡아먹는 사건까지 생겨났고 A. D.70년에는 결국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이러한 일들이 닥칠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고 성도들이 극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돕는 사랑과 봉사의 역사를 통해서 환난을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대환란의 때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던져준다. 제 살 길만 찾던 이들이 아귀다툼을 하다가 죽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며 물질을 아낌없이 드려 환난을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 베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러한 환난 앞에서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의 성도 섬기는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나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 8:2-5)

안디옥 교회는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있어서 나중에 세워지게 될 사도 시대의 여러 교회들의 모범이 되었고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하는 데 소요되는 필수적인 경비를 끊임없이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 안디옥 교회의 성장과 평온을 뒤흔드는 사탄의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찾아온 일부 유대인들을 통해서 시작된다. 팔레스타인계 유대인 신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지켰는데 이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처럼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여 평온했던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다음에는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가는가.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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