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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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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에 찾아온 거짓 형제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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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확정된 이방인 신자의 규례-

[지난 줄거리]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들의 활발한 전도에 의해서 그 토대가 세워졌고 바울과 바나바 등의 모범적인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방선교의 센터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A.D. 41년부터) 모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서 열심히 연보를 보내어 성도 섬기는 일에 모범을 남겼다. 바울과 바나바는 상업과 정치의 중심지인 안디옥을 거점으로 하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교인 수를 늘리기보다는 생활의 모범을 통해 교회를 튼튼히 세워 뿌리가 박히도록 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거짓 형제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을 통해 구브로(키프러스), 갈라디아 지역(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및 그 근방)에 복음을 전하고(행14장) 다시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 그 일을 교회에 고한 후 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A.D. 45년~50년 사이의 일) A.D. 50년경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행15:1)고 하여 안디옥 교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킨 일이 아닌데도 그들 스스로 열심을 내어 안디옥까지 와서 여러 성도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미혹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의 생활양식을 간섭하거나 강제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이방인에게 복음만을 전했던 바울

사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였다. 초대 교회의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데 그 회당에 참석한 이방인들 중에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성경(그 당시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는 매력을 느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복음 전도를 듣고 구원을 받는 일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는 반드시 율법을 준수할 것을 서약하고 입회식으로 반드시 할례를 해야 했다. 그밖에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성전에 희생 제물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는 등등 여러 가지 율법의 규례와 의식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초창기 복음 전도자들은 모두 할례 받은 유대인이었으나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거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일은 전혀 없었다.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한 죄 사함을 믿으면 할례를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접붙임을 받을 수 있었다.

전통 유대교와 유대인들의 종교관념

사실 바울이나 바나바 같은 복음 전도자들의 이방인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정통 유대교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혁명적이고 이단적인 것이었다. 정통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 자체를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여겼다. 특히 유대인들의 음식에 관한 복잡한 규례는 이방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고 다라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교에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신앙이 깊어지고 구원에 이른다는 종교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은혜로 값없이 단번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의 종교 관념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단적인 사상이었다. 이러한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 속에서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초창기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특히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 (처음에는 ‘나사렛 당’이라고 불렀음)은 여전히 음식, 조례, 할례, 절기, 그 밖에 율법의 여러 가지 규례 등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율법을 잘 지켜야만 구원이 보존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과는 구별된 유대인으로서의 생활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구원을 얻게 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짐을 깨달은 베드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오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짐승이 있는데 그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베드로가 보고난 후 로마 군대의 백부장인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최초로 깨어지게 된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베드로와 그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진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니라” (행 10:45-46)

베드로는 고넬료와 몇몇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이 소식을 예루살렘의 할례자들이 듣고 처음에는 그 일을 비난하였다(행11:2-3). 그러나 베드로가 자기가 본 환상과 고넬료의 집안에 복음을 전하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일을 자세히 보고하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일은 이것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일단락이 되었다. 아마도 팔레스타인 안에서는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일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방인 신자가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급증하는 이방인 신자와 율법 문제의 대두

그러나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 특히 안디옥 지역을 중심으로 이방인 신자의 수가 점차 급증하자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던 율법에 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가 태동되기 훨씬 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유대인들과 그 회당이 퍼져 있었는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엄격하게 율법의 규례를 지키며 살았던 유대인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자연히 이방인 신자들도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유대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로 인해서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그 문제가 전 교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게 된 것이다.

율법에서 자유로웠던 안디옥 교회의 분위기

안디옥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어떤 율법적인 규례나 의식을 강요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았고 바울과 바나나 같은 지도자들 역시 율법에 대해서 자유함이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사실 율법의 규례와 의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정통 유대교의 가르침은 유대인들 자신도 지키기 힘든 멍에였다.
그래서 바벨론 유수 이후로부터 전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 중에는 이미 생활방식이 그 당시의 세계적인 조류였던 헬라의 문화와 풍습에 동화되어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율법을 그렇게 철저히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또한 유대인들의 모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그 당시의 세계어인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미 예수님 이전 A. D4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 없이 사이좋게 교제를 나눌 수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어떤 사람들의 거짓된 가르침과 주장으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복음을 위한 바울의 변

바울과 바나바는 그 사람들과 앞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변론하였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다툼이 일어났다.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초대 교회를 내내 괴롭힌 거짓되고 이단적인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나중에는 율법주의로 발전되는데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된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였다. 이 율법주의는 영지주의, 율법폐기론 등의 이단적인 사상들과 더불어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교회 안에 퍼져 있는 거짓된 가르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바울은 사실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기 이전에는 철저한 정통 유대인이요 율법주의자였다. 그는 율법을 철저히 연구했던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수제자였다. 율법을 힘써 지키기 위해 주님을 배척했던 바울로서는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구원받는 데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도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고 은혜를 따라 살아야 함을 역설하게 되는데 이러한 바울의 변증은 거짓된 형제들의 가르침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더욱 확고한 형태로 정립되게 되는 것이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 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갈 2:1-5)

거짓 형제들의 주장과 교회 분열의 위기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이 사건이 일어난 뒤 몇 년 후에 쓴 갈라디아 서신에서 할례를 주장한 어떤 사람들이 사실은 교회 가운데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은 어떤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교제를 나누고 있는 교회 속에 들어와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자신들을 따르게 하여 어떤 이익을 취하려 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교회 역사 속에서도 종종 나타나는데 어떤 특별한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난 후에 파문을 일으키고 결국 무리를 지어 나가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들 거짓 형제들의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지만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규례와 의식들을 이방인 신자들도 어떻게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그리고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들이 서로 충분한 토의와 의견 교환을 거쳐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문제로 부각되었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는 심각한 분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 공회

이에 안디옥 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어 이 문제를 명확히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A.D. 50년경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 그리고 안디옥에서 파송된 바울과 바나바 등이 모인 가운데 「예루살렘 공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 등이 맞선 가운데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령도 받는 줄을 우리가 이미 알고 믿고 있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유대인들도 능히 메지 못하는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씌우려 하느냐”고 역설하였다.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에 대한 보고는 베드로의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을 받으며 그 밖에 것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명확한 결론이 여기서 내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특이한 식사법과 생활의 규례를 지키며 이방인과의 교제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교육받아 온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함께 동거해야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침이 확정되어야만 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바울처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관습을 다라서 이방인에게는 그들의 형편을 따라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규례와 의식을 따르자면 가령, 주님의 ‘성만찬’의식에 유대인과이방인 신자가 함께 참석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몸된 교회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율법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차원에서 모든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표준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각각의 자유에 맡기는 현명한 결단이 필요했다.


의인 야고보의 최종적인 견해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여 정통 유대교인들로부터서도 의인으로 불리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야말로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 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였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행 15:13-21)

장막에 거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우상의 제물,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 하는 것 등의 네 가지 규례를 제외하고는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 신자들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권하였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이 야고보의 권유를 교회의 의견으로 확정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로 결의 하였다.

최소한 이방 신자가 지켜야 할 규례

야고보가 내놓은 규례를 보면 유대인과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의식인 할례나 안식일 준수, 음식 규례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세의 율법을 크게 도덕법과 제사법, 의식법(절기, 할례, 안식일 등을 지키는 법)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사법과 의식법은 오직 유대인들만이 지키는 독특한 법이었다.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도덕법은 이방인들도 양심으로 알 수 있는 법으로 그것을 어길 때 양심이 죄라는 것을 지적해 주지만 제사법과 의식법 등은 오로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이방인들의 양심과 상관이 없는 법이었다. 야고보는 도덕법 가운데서는 특히 음행을 멀리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로마시대 당시에는 음행을 별로 죄로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매춘, 혼음, 동성연애, 자유로운 이혼과 동거, 일거다처, 이방신에게 제사 지내는 기간 중의 문란한 성관계, 가정 성 윤리의 파괴 등등 온갖 성적 범죄가 죄의식 없이 저질러졌다. 오늘날도 로마시대의 풍습을 이어받은 서양 사람들 가운데 서로 좋아서 하는 간음이나 간통, 이혼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야고보가 다른 도덕법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런 죄를 지어도 좋다는 율법폐기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한 양심이 그것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도덕법은 그것을 어길 경우 누구나 죄로 여겼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음행을 금하는 규례는 혼인을 귀히 여기고 교회와 가정의 질서를 지켜주는 것으로 그 당시 일반인들과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일처를 엄격히 지키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가정은 그 당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야고보가 내놓은 나머지 규례들은 제사법이나 의식법과 관계가 있는 것들로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의 공동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목을 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는 피를 빼지 않은 고기로 만일 이방인 신자들이 그 고기를 여전히 먹는다면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누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음식 규례는 대단히 복잡한 것들이어서 이방인들은 그것을 다 지킬 수 없으나 이 규례만은 반드시 지켜야 했고 또 지킬 수 있었다. 피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을 귀히 여기고 예수님의 흘리신 피의 의미를 왜곡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나 피를 멀리해야 했던 것이다. 레위기서에는 왜 피를 먹지 말고 멀리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라.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레 17:10-14)

우상의 더러운 것, 즉 우상의 제물에 관한 규례는 제사법과 관계된 것으로 그 당시에 널리 만연된 우상 숭배에 관한 죄를 경계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는 이방신전의 축제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고기를 일반 상점에 공공연히 내다 파는 시대였다. 어떤 음식이 우상의 제물인 줄 모르고 먹으면 양심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알고 먹거나 또 먹는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특별히 언급한 것이다.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 전서 8:1-13에서 우상의 제물에 관한 견해를 자세하게 피력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라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많이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제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 8-4-13)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가는 교회

예루살렘 공회를 거쳐서 야고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사이를 가로막는 율법의 규례와 의식에 관한 분분한 의견들을 없애고 교회 안에서 하나의 통일된 공동생활의 규례를 확정짓게 되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 온 바울과 바나바의 몇몇 일행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회의 결의를 증명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인도자인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이방인 형제들에게 보내어 교회의 통일된 의견을 공표하였다.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차 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행 15:23-29)

물론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도 거짓 형제들이 끊임없이 초대교회의 역사 속에 나타나 복음을 변절시키는 일들이 나타나지만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은 교회의 통일된 말씀과 성경의 역사 속에 함께 동참하기만 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형제 자매로서의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친 이후에 더욱 굳건한 토대 위에서 교회의 복음을 더욱 널리 힘차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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