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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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큰 목표는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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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로버트 채프만은 값비싼 저택, 그리고 여러 명의 하인들과 집안의 문장에 새겨진 마차를 가진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 가족은 종교적이었지만, 확실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로버트 채프만이 20세가 되었을 때, 한 친구가 그를 제임스 해링턴 에반스가 말씀을 전하는 곳에 초대했습니다. 그 날은 채프만의 생애가 바뀌는 날이 되었습니다. 채프만은 며칠이 못되어 하나님께로 회심했습니다.
채프만은 신약 성경을 통해 신자들은 침례를 받아야 함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에반스씨에게 침례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신중했던 설교자는 “그 일을 좀더 신중히 생각해보기 위해 좀더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채프만은 이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저는 즉시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실제적이고, 순종적인 마음과 정신이 전 생애 동안 그와 함께 했습니다.
채프만이 비록 성공적인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는 주님이 자신을 전심 사역자로 부르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채프만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기까지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채프만의 경우에,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팔고, 큰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자신의 법조인으로서의 신망과 신분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는 말씀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마 11:5)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즐겁게 듣지 않았습니까?(막 12:37)
사람들은 이 “키가 크고, 늘 웃는 얼굴을 한 젊은 변호사가 가난하고, 늙어빠지고, 소경된 여인, 곧 아무도 예배당으로 데리고 올 생각을 못했던 그 노파를 자상하게 인도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예배당의 복도로 내려와서는 이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비록 바른 교리로 교훈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이기적이며, 또한 실제적인 사랑이 없는 일로 인해 생생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채프만은 영국 반스테플의 빈민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술 취함과 오물과 시궁창의 쥐들과 병이 득실거리는 가축 우리와 같은 곳이며, 가난에 찌든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프만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섬기는 사역을 했으며, 사람들이 그의 집에 올 때면 항상 환영을 받았습니다.
채프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리스도로(처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의 큰 목표는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년 후에, 존 넬슨 다비는 채프만에 대해 평하기를 “그는 내가 말씀 전한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채프만의 외투가 닳아 해어졌을 때, 한 그리스도인 친구가 채프만에게 새 옷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선물한 사람은 채프만이 그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채프만은 그 옷마저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로버트 채프만을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매우 이상한 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채프만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그의 희생적인 삶의 모습을 보고 무척 난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채프만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택시가 채프만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친척은 택시 운전사를 호되게 꾸중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채프만씨의 집으로 가자고 말했을텐데.”
“이곳이 채프만씨의 집입니다. 선생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란 그 방문자는 “이보게 로버트, 자네 여기서 무얼하는건가?”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보내신 곳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산다는 거야? 은행 계좌는 가지고 있겠지?”
“저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고, 제가 필요한 것은 다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은 결코 저를 실망시킨 일이 없습니다. 제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있고, 사역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방문자는 찬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에 먹을 음식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로버트는 그에게 어떤 식품점을 지목해서, 거기서 사오도록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그 식품점 주인은 채프만씨에게 그동안 몹시 못되게 굴어왔습니다. 이 식료품 주인이 R. C. 채프만에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배달해주도록 주문을 받자, 그 사람은 너무 놀라 압도를 당했습니다. 그는 곧장 주문받은 음식을 들고, 채프만의 집으로 가서는 눈물과 진실된 회개를 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접대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채프만은 자기 집 건너편에 있는 집을 한 채 사서, 주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숙박비도 없고, 또한 아무도 언제 떠날 것인지를 묻지 않는 그런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손님들은 신발과 부츠를 매일 밤 문밖에 벗어 두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것들은 모두 윤이 나도록 닦여있었습니다. 그것은 손님들의 발을 씻어주는 채프만씨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독신 남자에 의해 보여진 접대방식은 손님들에게 믿음의 삶과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삶에 대하여 가르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식탁에서는 매우 큰 기쁨이 있었고, 지혜와 은혜의 말씀이 계속해서 흘러나왔습니다. 대화가 시시한 잡담으로 흐를만한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집의 규칙이었고, 이러한 규칙을 어기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록 은혜로웠지만 엄한 책망을 받아야 했습니다.”
로버트 채프만이 가진 미덕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채프만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채프만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기를 원치 않아했습니다. 채프만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기를 원치 않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채프만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에 대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났을 때, 로버트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사랑하는 형제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회개하게 되었고, 다시 모임의 교제 가운데 회복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해외에 있는 한 친구가 단순히 봉투에 주소를 “R.C. 채프만(Chapman), 사랑의 대학교, 영국”이라고 써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채프만의 집에 정확히 배달된 것입니다.
채프만은 교회가 교파로 분열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채프만은 그들이 어떤 교회에 속해 있든지 상관없이 모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교회에서 분열이 일어나 따로 모이기를 원하고, 교회 재산의 소유권을 요구할 때, 채프만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시당국이 채프만이 모임을 위해 매입해두었던 예배당 부지를 요구할 때도, 그는 기꺼이 시당국에게 양보했습니다. 채프만은 변호사로서 충분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일로 법정투쟁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그는 성급히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기도에 의지했습니다. 언젠가 채프만이 J.N. 다비(Darby)의 성급한 행동을 지적하는 일이 있었는데, 다비는 이에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면서, “우리는 6개월을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자, 채프만은 이에 “우리는 6년을 기다렸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채프만은 시간을 기도와 말씀을 읽는 일과 음식을 장만해서, 집에서 집으로 심방하면서, 굶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노방 전도와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훈련된 삶을 살았습니다. 채프만은 토요일에는 금식하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용으로 나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선반작업을 했습니다.
채프만의 전기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프랭크 홈즈(Frank Holmes)는 채프만에 대해 “거룩한 삶과 중후한 인격, 자기 희생적인 삶 등 그에 필적할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채프만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겸손했다. …그는 영적인 거인이었다. 그의 공적인 명성에는 한 치의 육신적인 방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제자들에게 만일 그들이 주님을 위한 불꽃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들은 평범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R.C. 채프만의 삶 속에서 성취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채프만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은 무엇이 채프만으로 하여금 그처럼 이 세상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였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적인 힘이 채프만을 그러한 삶을 살도록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결여된 바로 그것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채프만에게 꽤나 솔직히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기도하면서,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 방문자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사람은 변화되었습니다.”
속임수와 교묘한 계략으로 가득한 위선적인 현시대에서는 채프만 같은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화성에서 온 사람이나, 또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채프만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채프만은 바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며)…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즉 채프만과 같은 사람들은 A.W. 토저(Tozer)가 말한 사람들과 같습니다.
참으로 신령한 사람은 약간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유익을 증진시키며 산다. 그는 사람들에게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도록 설득하며, 자신을 위한 몫은 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존경을 받기 보다는 자기 구주되신 주님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의 기쁨은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고, 자신은 낮아지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관심하고 있는 최고한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픈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떠들썩한 장사치 같은 종교 분위기 가운데서는 잠잠하거나, 혹은 다른 것에 몰두해있다. 이 때문에 그는 따분하다거나 너무 진지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 따라서 그는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이며, 따라서 자신과 세상 사이에 놓인 구렁은 더 넓어진다. 그는 유향과 침향과 상아 궁에서 가져온 계피 등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옷을 입은 친구들을 찾으나, 찾아도 극소수이거나, 아니면 거의 찾지 못하며, 따라서 그 옛날 마리아처럼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한다.
우리 시대에 참으로 신령한 신자들이 되는 것이 우리의 갈망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영웅적인 삶을 산 그리스도인들(크리스찬투게더 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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