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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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확신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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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 : 13)

구원의 확신이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교회에는 나가지만 중생하지 못한, 즉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다르려고 하지 않는, 즉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장소에 기꺼이 참여하지 않고 다른 장소를 채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물을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상당히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확신은 의혹의 그늘을 넘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지식을 가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의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어덯게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도록 도울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가 물에 빠져 위험에 빠졌는데 해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단단한 지평 위에 올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나의 도움의 손길을 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소경이면서 다른 소경에게 광명을 찾는 법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먼저 당신 자신을 치유하고나서 나에게 말하시오."
최근에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죄를 극복하지 못한 한 젊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주 죄를 짓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할 시간이나 망므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의 의심이 있는 만큼 남을 보살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지고 가는 짐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의심과 불확신이 존재하는 곳에는 안식, 즐거움, 평안, 치유, 혹은 권능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의심

우리가 경계해야 할 3가지의 사탄의 간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탄은 우리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도록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우리를 "철저한 의심"으로 인도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명백하고 확고한 증거를 가진다면 그는 우리를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증거들을 속이려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신을 주제넘는 것으로 생각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누구든지 그들이 30년동안 어떤 사람을 알고 지내고 있는데 아직도 그를 의심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모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10년, 20년 혹은 30년을 하나님을 알고 지내왔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만일 바울과 초기 기독교인들과 순교자들이 그러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이 행했던 일들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화형을 당한 뒤 그들이 천국으로 가게 될지, 지옥으로 가게 될지를 알지 못했다면 박해를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황새가 전나무를 만났을 때 그곳에 자신의 둥지를 틀 권리를 의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토끼가 바위 위로 올라가도 되는지 물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황새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오, 여기에 전나무가 있군, 이곳이 우리의 자녀들을 기르기 위한 둥지를 트는 데 적당할까? 그래 좋아! 그들은 집을 지을 재료들을 모아서 쌓기 시작합니다. 그곳에는 어떤 심사숙고도 없습니다. '여기가 괜찮을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막대기를 주워다 그들의 둥지를 만듭니다. 험한 바위산 위에 사는 야생 염소도 "내가 이곳에서 살아도 되는 권리가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바위가 있으면 그들은 그 위에 올라갑니다.
이처럼 말 못하는 짐승들도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알건만 죄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가 그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예비처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구차스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가 해도 될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연려가 되는데,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그것은 너무 좋아 진실일 수 없을까봐 두려워!' 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직 아무도 황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전나무 위에 집을 지으면 누구도 집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토끼에 대해서도, 이 가파른 바위 위로 올라가면 그 바위 위에서 내쫓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같이 말해준다면 저들의 확신은 곱절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여기에 죄인들을 위하여 주신 바 된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는 죄인들이 필요로 하는 구세주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 : 3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 : 17)

믿으라 그러면 알리라

자! 이제 말씀을 살펴봅시다. 요한은 우리에게 그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변호자로 천국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복음에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장은 단 2장밖에 없습니다. 이 두 장을 제외하고는 요한복음의 각 장에는 "믿으라! 믿으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 20 : 3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즉 요한이 복음서를 쓴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5 : 13을 보면 왜 그가 이 서신을 썼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는지에 대해 주의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당신에게"
그러므로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음을 알 것입니다.
이 서신은 단지 짧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안다'라는 단어가 50번 이상 나옵니다, 안다! 안다! 안다!가 계속 반복됩니다. 이 서신의 핵심은 '안다'입니다. 그 서신 전체를 통하여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수년 전 봄에 나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1200마일을 내려갔었습니다. 매일 저녁 해가 막 지고나면 남녀들이 그 강 양쪽 제방 위에서 노새나 말을 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관리등을 켜기 위해서 걸어서 옵니다. 그 거대한 강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어느 곳에나 항로 안내인들에게 위험 지역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자신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불빛이나 표지판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될 필요가 있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증거를 검증하는 일입니다.
요한 1서 3장에는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5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째 것은 5절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즉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요일 3 : 5)라는 구절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주님께서 실패하신 일이 있습니까?
주님 자신이 오셔서 하시고자 했던 일을 할 수 없었을까요? 천국에서 보낸 어떠한 사람도 아직껏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셨습니다.
다시 19절에 다음과 같은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째의 구절이 나옵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 3 : 19)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 : 36)

세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14절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 : 14)

자연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도 그들을 친구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적 생명을 영유하지 못합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24절입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 : 24)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을 소유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령이 어떤 분인지를 담대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가지셨던 성령입니다. 그 성령이 계시면 나는 온순하고, 점잖고, 너그럽고, 평화와 즐거움이 있게됩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처럼 오래 참으며 온유하다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다섯 번째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라는 낱말에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죽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 : 2)

믿는 이들의 죄를 위한 대비책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렇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믿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기독교 신자가 된 뒤에 계속 죄를 짓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되고 난 뒤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습닏.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그들이 기독교적인 삶을 경험한 뒤 때때로 죄를 범하지 않거나 죄를 지으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 영혼은 과거에도 있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이들의 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대비할 수가 없으나 하나님은 마련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명심하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 : 1)

여기서 요한은 의로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여기서 요한은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얼마나 훌륭한 대언자이십니까! 그리스도는 가장 좋은 장소인 하나님의 보좌에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중재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십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 : 7)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과 대언자가 되시려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중재하는 어려운 일을 맡으셨으니 그 중 하나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불멸의 재산을 주께 맡긴다면 주는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유 24)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자마자 그들의 과거의 죄는 용서받습니다. 그 죄를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면 그것은 그 죄들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 죄들은 다시는 기억되지 않으며 하나님은 더 이상 언급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만일 저에게 한 아들이 있고 그가 내가 집을 비운 동안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집에 왔을 때 그 아이는 제 목을 껴앉으며 말합니다.
"아빠, 나는 아빠가 나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일들을 했어요. 미안해요. 나를 용서해주세요"
"그래 내 아들아!"
그리고 그에게 키스를 해 줍니다. 그는 눈물을 훔치며 즐거워하며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니는 말합니다.
"아빠! 어제 잘못한 것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이미 용서해 줬는데 두 번 말할 것 없단다."
그런데도 아이는 계속 졸라댑니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나를 용서해 주시길 원해요. 아빠가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마음이 놓여요."
그것이 과연 나를 존경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이가 나를 못미더워하는 것인데 나를 슬프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다시 말하니다.
"나는 너를 용서한단다."
만일 그 다음날 다시 나의 아들이 과거의 죄를 들추어 내서 다시 용서를 청한다면 그것은 나를 매우 슬프게 하지는 않을까요?
그러므로 여러분!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를 다시 들추어 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것들을 향해 나아갑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높으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해 푯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과거의 죄들은 던져버립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1 : 9)
재판소에 일어난 일 가운데 이 원리를 잘 나타내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사례가 지방의 한 법원에 상정되었습니다. 나는 그곳이 어느 곳인지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남자가 부인의 잘못으로 싸웠는데 그는 그녀를 용서해 줬습니다.
그런데 후에 그는 그녀를 법원에 고발했습니다. 그가 그녀를 용서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재판관은 그 일은 해결된 것이라고 이미 말했습니다. 그 재판관은 만일 어떤 죄가 한번 용서됐다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원칙이
정당함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영원히 가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잊어버리는 일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제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살피고 그것을 시험해보십시오! 당신은 원수를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당신을 모욕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선한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욕하지 않는다고 인정 받습니까? 당신은 오해 가운데 있을지라도 아직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까?
또 하나의 좋은 시험은 갈라디아서 5장에 있습니다.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들을 주의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 : 22-23)

만일 내가 성령이 맺어준 열매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성령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내가 성령의 도움없이 성령이 맺어주는 그러한 열매를 지니는 것은 내가 오렌지 나무 없이 오렌지를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마 12 : 33)

나무를 잘 기르십시오. 그러면 그 열매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시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매우 분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모든 외형적인 요소가 갖추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문제가 정리돼야 합니다.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졌다는 것이 당신이 거듭났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당신이 중생했다 할지라도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순간적이나 성화는 일생에 걸친 작업입니다. 우리는 지혜 가운데 점점 성장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시기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 : 18)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 1 : 5-8에서는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야 합니다. 어떤 나무가 첫해에 완전한 나무로 자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이지만 성숙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는 그 구절에 매우 친숙합니다. 14절에 사도 바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병사들이 자신의 장교의 인도를 받고 학생들이 선생님의 인도를 받고 여행자가 안내인의 안내를 받는 것과 같이 성령은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도자가 될 것입니다.

/ 디엘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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