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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회당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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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회당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전도여행을 마친 후(행 16:6~18:17)이방 선교의 중심지인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에베소에 들르게 된다(A.D. 52년 가을 경). 바울은 1~2차 전도여행 중에 들렀던 여러 지역들에서처럼 에베소에서도 선교의 최우선 거점으로 유대인들의 회당을 택했다.
그 당시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모든 주요 도시와 촌락들 심지어 무역로에서 떨어진 외진 곳까지도 회당을 중심으로 강력한 유대인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처럼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을 떠나 대규모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 때문이었다.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앗시리아(B.C. 722년)와 바빌로니아(B.C. 586년)에게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각각 정복당하여 이집트(알렉산드리아, 다프네, 얼레판티네, 시에네 등지), 길리기아(다소, 실루기아, 가이사랴 등지), 수리아(안디옥, 알렙포, 답사, 레셉, 브돌, 하란 등지), 메소포타미아(니느웨, 레센, 갈라, 바빌론, 수라 니푸르 등지) 지역으로 집단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했고 그 뒤에 또 페르시아와 항쟁하다(B.C. 356~338년) 페르시아 각 지역(히르카니아, 네하밴드, 엑바타나, 수시아나 등지)으로 끌려가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B.C. 586~550)페르시아(B.C. 550~333), 알렉산더(B.C. 323), 프톨레마이오스(B.C. 270), 로마 제국에 차례로 정복당하면서 유대인들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이산) 역사를 보면 강제적으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역이나 시리아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이주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는 소아시아와 시리아의 신흥 도시에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살 것을 권장하였고 유대인들도 보다 나은 경제적인 여유와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셀류코스 왕조와 대립했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도 유대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집트에는 이미 B.C. 500년경에 이르러 외곽 지역에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B.C. 322년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할 때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필로는 이집트 내에 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70인역 헬라어 구약 성서가 만들어진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였고 유대인들이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아볼로가 바로 이 도시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에베소 지역에서의 유대인의 지위


유대인들의 기독교 개종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 선교의 중심지로 선택한 에베소 역시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앞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에베소는 알렉산더(B.C. 334).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B.C. 281)를 거쳐 B.C. 133년에는 로마의 통치하에 들어갔는데, 셀류코스 왕조에 이어 로마도 에베소의 유대인들을 매우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로마인들은 에베소의 원주민들보다 유대인들에게 오히려 더 큰 혜택과 호의를 베풀 정도였다. 소아시아 제1의 로마 관할령인 에베소는 가이사 아구스도 시대부터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며 점차 국제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거기에 큰 몫을 담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군복무 면제 혜택까지 받았는데 이것은 원주민들은 가지지 못한 큰 혜택이었다. 로마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관습을 존중하여 군복무를 면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자치권을 허락해 주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로마의 시민권은 로마 제국의 광범위한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큰 특권이었는데 이 시민권을 큰 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
시리아의 다소 출신 바울은 부모가 가진 시민권을 물려받아 로마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이 지배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행 22:25~28 참조).
바울 당시에 로마 제국 전체 인구의 약 10%인 700여만 명이 유대인으로 추정되는데(디아스포라 유대인이 400만,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300만) 로마인들은 제국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현지 원주민들을 다스리기 위해 이러한 정책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인들이 모든 도시에서 유대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 도시 자체의 시민권만을 부여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에베소는 유대인들에게 큰 특권을 부여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종교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로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갈등을 빚지 않는 한 평온한 삶을 유지하며 그들의 종교와 전통을 지켜갈 수 있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렘 29:7)


바울이 3차에 걸쳐 전도 여행을 했던 그 시대에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이 말씀을 대체로 잘 지킨 결과로 각국에서 비교적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바울도 그러한 가운데 효과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1-7)

바울의 이 같은 가르침은 예레미야서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 내에서 어떠한 국가관과 사회관을 가져야 할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나중에 유대인인들은 이러한 말씀을 거스르고 로마 제국에 대항하다가 결국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 헛된 재앙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이방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비록 율법적인 데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며 이방인들, 특히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비록 그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특정한 문화에 외형적인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잃지 않았다.

바울 당시에 유대교는 비록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참된 종교와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높은 표준을 보여주는 고등종교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율법을 보다 가까이 전해주는 것”이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여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유대교를 전도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배척했지만 그들의 전도활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의 역사에 밑거름이 된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의 섭리요 복음 전도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선교의 발을 내딛는 모든 곳에서 가장 먼저 회당을 찾은 것은 참으로 현명한 일이었다.

회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의 생활양식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은 에베소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회당을 찾았다. “우선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거절하면 이방인에게 나아가는 순서였다. 바울의 이러한 선교 전략을 이해하는 데 회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의 생활양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예로부터 각 성에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행 15:21)

회당은 대부분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산 정상에 서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닮게 하기 위해서였다. 회당은 또한 물이 흐르는 곳 가까이에 자리를 잡아다. 이것은 강이나 해변 가까이에서 기도를 드리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반영한 것이며 또한 세정식(물로 깨끗이 씻는 의식)을 위한 필요에서였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는데 이러한 의식 역시 물이 필요했다.
팔레스타인 영토 밖에 있는 회당은 그 방향이 팔레스타인을 향했고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회당은 예루살렘을 향했다. 유대인들은 열왕기상 8장에서 솔로몬이 기도했던 그 동일한 장소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다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 8:29-30)

회당은 이방 나라에 의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빼앗긴 이후부터 그들이 흩어진 각 지역에서 성전 예배와 동일한 종류의 예배를 수행할 수 있는 성전 비슷한 장소를 소유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바벨론 유수 이후부터 등장하였는데 나중에 예루살렘이 회복된 후에도 여전히 회당 제도가 보존되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도 돌을 깎아 만든 집회장 안에 회당이 있었다. 그곳은 율법을 낭독하고 연구하는 장소였다.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신”(눅 2:46) 곳이 바로 이 장소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전 밖에도 회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행6:9:24:12). 예루살렘 밖의 여러 팔레스타인 도시들과 큰 촌락에도 회당이 있었다.(나사렛회당 - 눅 4:16, 가버나움 회당 - 눅 4:31)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선교 활동의 거점으로 이용했던 로마제국 여러 지역 내의 회당들이 나온다.
다메섹(9:2,20), 구브로의 살라미(13:5),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빌립보(16:12), 데살로니가(17:1), 베뢰아(17:10-11), 아덴(17:6), 고린도(18:4), 에베소(18;19~)??.
이들 회당은 유대인들의 종교, 교육, 정치, 행정, 재판, 집회, 사교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상당한 부분까지 개방이 되어 있는 일종의 유대 문화원이요 선교 센터이기도 했다.
회당에서는 3년을 주기로 하여 안식일에 모세 오경을 낭독하였다. 모세 오경은 155단원(Sedarim)으로 구분되어 읽혀졌다. 예언서의 낭독은 모세 오경처럼 도식적으로 읽혀진 것은 아니었다. 회당에는 회당장, 핫잔, 전언자 등의 지원이 있어 회당 업무를 관장했다. 회당 장은 모세 오경과 예언서를 낭독하고 주제를 정해 설교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처음에는 선거제로 1년 임기였는데 점차 평생제로 바뀌어져 갔다. 회당장은 집회의 전반적인 진행을 맡아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했다(신약성경에 나오는 회당장으로는), 분개한 회당장(눅13;10-17),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장(행13;14), 고린도의 그리스도(행18;3), 소스데네(행18;17)등이 있다.
핫잔은 회당장의 보조자로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이동식 상자인 ‘토라 성감’을 예배 때 방에서 회당으로 끌고 와 두루마리를 넘겨주는 일을 했다. 안식일이나 절기가 되면 핫잔은 회당 지붕에서 나팔을 세 번 불어 그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전언자는 회중들이 그의 선창을 따라 복창할 수 있도록 기도문을 크게 송하는 일을 했다. 회당장이나 핫잔은 이 일을 할 사람을 회중에서 지명하여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했다.
회당에 어떤 유능한 인물 (가령 랍비)이 참석했을 경우에는 성경의 낭독에 이어서 그 낭독한 본문에 주해 설교를 했다. 회당에 우연히 어떤 낯선 사람이 참석했을 경우에는 그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바울은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했던 것 같다.
회당은 두루마리 성경과 유대인들의 각종 문서, 자료가 보존되어 있어 율법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교육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어린이들은 회당에 인접한 방과 뜰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바빌로니아 지역의 어떤 회당에는 400여 명의 어린이 교사가 있었다고 하니 교육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철저한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첫 교육은 모세 오경 두루마리를 읽는 것이 아니고 서판에 기록된 내용을 읽고 그다음으로 작은 단원들을 포함한 두루마리를 읽었다. 매 안식일에는 회당의 두루마리를 사용하여 정해진 성경구절들을 낭독하고 암송하였다.
회당의 두루마리는 유대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읽으려는 열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었다.
한편 회당은 세속적인 용도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회당은 행정관의 거처와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대인들의 자치적인 재판에 있어서 법정의 기능을 담당했다. 핫잔은 체벌을 수행하기도 했다. 회당은 정치적인 집회를 위해서도 허용되었는데 안식일에 공고사항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회당은 정치적인 집회를 위해서도 허용되었는데 안식일에 공고사항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회당은 각국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와 상업적인 교류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모금운동의 센터로도 사용되었다.
회당을 중심으로 결속된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며 고향땅 팔레스타인과 그 유산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예루살렘 순례 여행을 했으며 매년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성전세를 바쳤다. 유대인들의 정보를 생생히 전해주는 소식 등의 역할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일체감을 조성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처음에는 시리아 상인들이 경제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점차 유대 상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울의 에베소 선교전략

이러한 유대인의 생활양식과 회당의 존재는 이방인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이방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대인들의 고등종교와 미풍양속에 호감을 느끼는 이방인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와는 정반대로 유대인들을 싫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이방인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에베소 지역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울이 도착했을 당시 에베소에도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면서부터 유대인, 개종자, 유대인과 그 문화에 호기심을 가진 이방인 (적대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행 19장, 13장 참조).
물론 나면서부터 유대인인 자들도 여러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 지역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히브리 이름이 아닌 헬라식 이름을 사용했고 헬라의 운동 경기 등을 관람하는 등 외형적인 면은 헬라화되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은 전통과 관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이미 헬라의 풍습에 완전히 동화되어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진 이후에 에베소 지역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과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두 부류로 분명하게 나뉘어지게 된다.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먼저 전해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복음은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상당수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계층으로 성경 말씀에는 감동했으나 아직 유대교로는 개종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할례의식, 구전 율법을 공부하는 일 여러 가지 율법을 공부하는 일, 여러 가지 율법의 요구 사항, 유대교인에게 붙은 사회적인 낙인 등으로 인해 유대교에 가입하기를 주저하는 자들이다. 유대인들도 지기 힘든 멍에를 이방인이 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과 그들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의 아굴라로 인해 에베소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는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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