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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 여신의 도시에 세워진 에베소 교회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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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의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의 중심지요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의 근거지였다면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지역 선교의 전략적 요충지요 교두보였다. 이 에베소 교회를 근거지로 하여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인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세워졌고 그밖에도 골로새, 히에라볼리, 밀레도 등지에 교회가 형성되었다. 바울은 이 에베소 교회에 큰 관심과 비중을 두고 3년 동안이나 머무르며 직접 생활의 모범을 보이면서 눈물과 기도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여러 지역의 교회를 세웠지만 이 에베소 교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직접 가르침을 베풀었다. 우리는 소아시아 지역 상업과 정치, 종교의 최고 중심지요 우상 숭배와 죄악의 도시였던 에베소에 어떻게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소아시아의 관문이요 교통의 요지인 에베소
 
멀리 마게도니아 지역과 알렉산드리아를 마주보고 있는 소아시아 서쪽과 남쪽 지역은 맑고 푸른 에게해와 지중해가 육지와 만나 6.000km의 장대한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다. 에베소는 이 소아시아 지역의 관문이요 교통의 요지인 항구도시로 카이스터(cayster)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에게해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서쪽 해안 뱃길을 따라 육지 쪽으로 카이스터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에베소 항구에 다다르게 된다.
이 항구는 카이스터 강에서 계속적으로 떠내려 오는 진흙 침전물로 메꾸어져 결국은 늪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전까지는 오랫동안 소아시아의 중요한 해상 무역로의 역할을 했었다. 카이스터 강은 길이가 짧았고 산의 두 봉우리 피나지르다그와 뷜뷜다그 사이에 있는 좁은 해안평야에 다다르면 매우 빠르게 흘러 결국 진흙으로 항구를 덮어버린 것이다.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에베소 항구에서 이곳까지 550m의 대리석도로가 연결된다
 
 
 
항구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550m의 직선도로는 온통 대리석으로 깔려 있는데 그 폭이 21미터로 곧장 야외 원형극장까지 이어진다. 귀족들이나 장군들은 말이 끄는 이륜전차를 타고 이 길을 질주하였다고 한다.
길 양편에는 으리으리한 코린트식 돌기둥이 늘어서 있고 밤에는 가로의 횃불이 대낮같이 밝혀져 있었다 하니 처음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의 눈을 현란하게 했을 것 같다.
이 에베소 지역에 항구가 조성되고 하얀 대리석으로 빚어낸 호화찬란한 도시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 것은 천혜의 입지조건 때문이었다.
굴곡이 심한 아시아의 서쪽 해안에는 많은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계곡을 형성했는데 강들이 날라다 주는 비옥한 토양은 풍성한 곡식과 과일들을 선물하였고 계곡을 따라 형성된 천연적인 여행로는 큰 도시들이 생겨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특히 에베소의 카이스터 강은 헤르무스강(서머나 지역), 마이얀데르강(밀레도 지역)등등의 여러 다른 강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헤르무스와 마이얀데르 강 양쪽 계곡으로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통로를 제공해 주었다. 이 길들을 축으로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다른 여러 지역으로 연결되었고 교통과 상업의 요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세계 무역의 중심 도로인 세 개의 무역 로가 이 에베소 지역과 연결되었다.
제 1 무역로 : 유프라데스→골로새→라오디게아→에베소(동방지역의 무역품이 들어옴)
제 2 무역로 : 갈라디아→사데→에베소(소아시아의 무역품)
제 3 무역로 : 남쪽에서 바다를 거쳐 에베소로 오는 무역로
또한 에베소 지역을 기점으로 해서 서머나→버가모→두아디아→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지역이 순환도로로 연결될 수 있었다.
 
에베소 당시의 도서관         에베소 옛도시에서 발굴된 조각들
 
 
에베소 옛도시의 유적. 돌기둥이 서 있던 받침이며, 쓰러진 기둥과 벽돌들의 무더기가 그 옛날 소아시아의 중심지였던 에베소의 영화를 간직한 채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에베소 지역의 역사적인 내력
“막대기만 꽂아놓아도 싹이 튼다”는 이 지역의 속담처럼 에베소 지역은 땅이 비옥하여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농경문화가 발달되었고 나중에 그리스인(B.C. 1000년경), 리디아인(B.C. 555년경 크로에수스가 이곳을 점령), 페르샤의 고레스왕(B.C. 546년), 알렉산더대왕(B.C. 334년), 시리아의 셀류코스 1세(B.C. 281년), 로마(B.C. 133년)이 차례로 이곳을 정복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된 곳이다.
산과 들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있고 뽕나무, 복숭아, 귤, 무화과 등의 유실수가 지천으로 자라나 벌 때들이 몰려들어 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에베소 사람들이 큰 신으로 섬겼던 아데미 여신은 농경문화와 모계 사회의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곳의 전설에 의하면 고대의 전설적인 여자 전사 부족인 아마존(남미의 아마존 족이 아님)부족이 이곳 에베소와 이즈미르 그리고 흑해 연안에 트라부론을 건설했다고 한다. 호모의 「일리아드」에 의하면 이들은 궁술에 능하고 매우 용맹했다고 한다(호머의 작품에 나오는「트로이의 목마」는 실지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임이 밝혀졌다. 소아시아의 트로이는 신약성서에 드로아로 되어있다).
이 부족들은 10개월은 자기 마을에서 살고 2개월은 이웃 가가리안족의 마을 남자들과 동거했는데 딸을 낳으면 데려다 기르고 아들이면 남자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들 부족은 꿀벌을 부족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히타이트어로 여왕벌인 ‘아파사스’를 부족장으로 명칭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아시아 지역의 모계 중심 사회가 나중에 부계사회로 이행된 후에도 여전히 여성 숭배 사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에베소 지역이 헬라화된 후에도 여전히 ‘비옥의 신’인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전통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전통은 헬라인들의 여신 숭배 사상과도 잘 조화가 되어 이 지역에 아데미(아르데미) 여신을 위한 대신전을 짓고 소아시아 지역 전체의 신앙중심지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은 제우스의 딸이요 아폴로의 누이인 로마의 다이아나(Diana)나 그리스의 아데미 여신과는 다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은 실제 리디아 (Lydia)의 모신(母神)으로 헬라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B.C1000년 경 직후부터 이주하기 시작함)훨씬 전부터 이미 카이스터강 어귀에서 숭배되고 있었다.
이 아데미는 그리스와 로마의 여신인 다이아나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땅딸막하고 검은색의 혐오스런 모양을 하고 있다. 다산(多産)과 대모신(大母紳) 상징인 여러 개의 유방(어떤 학자들은 유방이 아니라 알이라고 주장하기도 함)을 달고 있으며 한 손에는 곤봉을 들고 다른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다. 맨 밑바닥에는 이상한 기호가 새겨져 있는데 에베소인들은 이 기호를 부적의 글씨로 사용했다.
아데미는 열왕기상 11;5에 나오는 시돈(시리아)의 여신 아스다롯과 유사하다. 이렇듯 보기에는 흉측한 신상이었지만, 소아시아의 많은 도시들은 서로 이 여신의 신전을 수호하는 전각지기(네오코른:neoko-ron)의 영예를 얻기 위해서 경쟁을 벌였다.
 
“서기장들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느냐” (행 19:35)
사도행전의 이 기록은 에베소 사람들이 얼마나 신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데미 신전은 그리스 신전 중 최대 규모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었다.
아데미 신전은 두 번씩이나 불이 나서 재건축하였는데 알렉산더 대왕 때에 건축된 신전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B.C. 356년경에 착공하여 막대한 수고와 희생을 치르며 무려 220년이나 걸려 완공되었다고 한다.
B.C. 1000년경 아테네의 안드로클루스가 이곳 정착민들을 추방하고 에베소를 창설한 후 그리스인들을 이주시켰고. B.C. 500년경 데오도루스가 이곳에 아데미 신전을 짓기 위한 기초를 놓았다. 첫 번째 신전이 어떻게 완공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B.C. 400년경에 불이 타서 다시 두 번째 신전을 지었는데 이것도 B.C. 450년 알렉산더 대왕이 탄생한 바로 그날 어떤 정신병자의 방화로 소실되어 다시 재건축을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에베소 사람들은 “신이 자기 신전 하나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느냐”며 문제를 삼았다.
그러나 어떤 에베소 철학자가 “그 때는 아데미 여신이 마게도니아 출신 알렉산더 대왕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외출 중이었다.”고 둘러대어 에베소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에베소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 건축가 디노크라테스를 불러 그를 중심으로 신전을 재건하였다.
이 신전의 길이는 127.5미터(425피트), 폭은 36미터(120피트)로 건물 내부에 여신상이 놓여 있는 신당이 있었다. 신당의 지붕은 백향목으로 만들었고 높이 18미터(60피트)의 파리안 대리석 기둥이 127개가 세워졌다. 그중 36개의 기둥은 다채로운 조각이 새겨져 있고 값비싼 돌과 금속으로 장식되었다. 신전의 거대한 문은 삼나무로. 지붕에 오르는 계단은 키프러스의 포도나무로 만들어졌다.
안쪽의 성소에 거대한 제단이 있는데 벨벳 커튼이 쳐져있는 제단 뒤에 아데미 신상이 봉헌되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조각품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운석이었다. 그 신상 뒤에 내부 성소가 또 있었는데 그곳은 고대 세계의 은행과 같은 곳이었다. 각도시와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해도 이곳 신전은 감히 쳐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저축 장소였다.
이러한 우상과 돈을 사랑하는 에베소인들의 기질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한 사람들은 은이나 기타 보물 진흙 따위로 신당 모형(은감실)이나 여신상 축소판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들이었다.
사도행전 19장 23~41절에 보면 바울의 전도로 인해서 에베소 사람들 중에 우상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지자 생계에 위협을 느낀 은장색 동업자들이 모여 소동을 일으킨 데메그리오 사건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성전의 예배는 히스테리컬하고 사악한 분위기였다. 괴성과 울부짖음, 플루트 연주, 예배 자들의 열광과 광기 그리고 부도덕하고 수치스러운 음행과 피의 제전이 베풀어졌다.
사제들은 거세된 남자들(내시)이었고 멜리사라는 수천 명의 여제자가 있었다. 또 신전 마당을 청소하는 ‘네오코러스’라는 노예와 하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아데미의 종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에베소의 동전에는 아데미 신전의 네오코스임을 자랑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데미 신전은 또한 고대 죄인들의 은신처요 도피처였다. 신전을 중심으로 활을 쏘면 나가는 거리인 300미터 주변으로만 피신하면 죄를 면죄 받을 수 있어 신전은 죄인들이 들끓는 집이었던 셈이다.
이 신전의 영향력으로 인해 에베소는 마술과 미신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아데미 여신상의 발이나 허리띠, 관에 새겨진 문자들을 모방하여 양피지에 주문을 기록하고 이 마술 책을 부적으로 사용하였다. 이 마술 책은 매우 고가였는데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바울의 설교를 듣고는 에베소 사람들이 마술을 책을 불사르는 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네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11-20)
심지어 바울의 전도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이 미신과 마술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바울이 행한 강력한 능력을 보고서야 비로소 두려워하여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행한 일을 고하며 책을 불사른 것이다. 아데미 여신과 그 신당을 중심으로 한 우상 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얼마만큼 에베소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 예인 것이다.
 
에베소에 비추이는 복음의 서광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던 이 부패하고 타락한 우상의 도시, 소아시아 최고의 국제도시인 에베소에 과연 어떻게 복음의 밝은 빛이 비칠 것인가?
사도 바울은 A.D. 49년경에 안디옥을 출발하여 다소→더베→루스드라(이곳에서 디모데가 합류함)→이고니온→드로아(마게도니아에서 어떤 사람이 바울을 부르는 환상을 봄)→네압비볼리→아볼로니아→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고린도→겐그레아를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제2차 전도 여행(A.D. 49~52)길에 잠시 에베소에 들른다.
A.D. 52년 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대동하고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그들을 그 곳에 머무르게 하고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을 한다. 그러나 그 때는 다른 지역에서처럼 유대인들이 반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오래 있으라고 청했으나 사정상 팔레스타인으로 가야 하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두 사람만 거기에 남겨두고 떠난다. 이 때부터 이 에베소에는 복음의 서광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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