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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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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사람들 가운데 세워진 사마리아 교회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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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버림받은 사람들 가운데 세워진 사마리아 교회 2052
 
 
 
 
 
사마리아 야곱의 우물   사마리아 로마극장    사마리아 로마신전
 
 
 
사마리아 궁전터   사마리아 이스라엘 왕궁터    사마리아의 풍경들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은 기독교 역사상 중대한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의 제자들을 모아 감람 산으로 함께 데리고 올라가셨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그러나 너무도 잘 알려진 이 성경 말씀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이르는 대간선도로 상에서 만나게 되는 도시들을 지리적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언급하셨다. “너희가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유대로 들어가라. 그 다음에 북쪽으로 향하여 큰 지역과 도시들을 복음화 하라.” 예수님의 이 지상명령은 마치 예언이 성취되듯 바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되었다. 명절인 그날에 예루살렘에는 로마세계 전 지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유대인인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서 머나먼 자기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증거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들이 북쪽으로 갔다면, 여행길에서 맨 처음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오순절에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듣고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사마리아가 특별히 중요한 지역인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이 지역은 ‘선한 사마리아인’(눅 10:25-37) 이야기의 출처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진 내력을 알 수 있다. 그때는 다소 출신의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할 무렵이었다. 그는 아직 회심하지 않았고 바울이라고 불리워지지 않았을 때였다.
 
 
“사울이 그(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 8:1)
 
예루살렘 교회가 계속하여 성장하자 유대인들의 핍박이 시작되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예루살렘에는 사도들만이 은밀히 숨어서 남아 있었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이른바 ‘평신도’라고 불리우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도도 아니었고 ‘전임 ’ 교역자도 아니었다.
만일 복음이 거의 전파되지 않은 어떤 외국 땅에 우리가 살게 된다면, 그곳에서 계속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마침내 모임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일이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의 모형을 따라 형성된 최초의 교회인 사마리아 교회에 대한 흥미 있는 기록을 읽어보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행:4-6)
 
지금 우리들이 이 사마리아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보편적 교훈은 무엇인가?
 
사마리아 교회에서 배울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첫째, 초대의 많은 교회들이 그러했듯이 특별히 사마리아 교회는 사도들의 지도를 받아 평신도들이 시작한 교회이다. 물론 교회의 조직과 질서, 교리, 그리고 방향 제시는 사도들의 도움이 컸지만, 사마리아 교회는 사실상 사도나 교육 받은 목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신도에 의해서 시작된 교회였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이 특정한 성직자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둘째, 지금 우리들도 빌립이 전한 것과 똑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빌립은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장차 온 땅을 통치하시는 왕으로 재림하신다. 이 세상은 사탄의 소유가 되어 있으나 장차 주님께서 사탄을 결박하시고 지상에 그의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 8:12)
 
이 메시지는 오늘날도 동일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편지했다. 이것은 빌립이 전파하였던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에 대한 필요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셋째, 우리는 이 고대 도시 사마리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관찰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의 여명을 엿볼 수 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은 유대 회당이나 사마리아 회당에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복음이 사마리아에 들어왔을 때 “남녀가 구별 없이 다 침례를 받았다. 그들은 모두 침례를 통하여 교회에 입교할 수가 있었다. 침례는 그들이 교회에 속하였다는 것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유대교와 배치되기 시작했다. 초대 교회에서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두 한 지체가 되어 교제를 나누었다. 여자들은 더 이상 성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 게 되었다. 바울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 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6-28)
 
만일 어느 시대에 여자에 대하여 차별 대우를 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초대교회보다 훨씬 수준이 낮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초대교회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각각 성격이 다른 역할을 담당하긴 했지만 차별을 두었다는 성경상의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고대의 어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개나 이방인이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진부한 개념들을 버리고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남자”, “새로운 여자”가 되었다고 가르쳤다.
초대교회를 이해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여러분은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초대교회의 특성들을 저버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타락해 버렸다. 만일 그들이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랐다면 그 많은 악폐들과 사회악들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오늘날 기독교를 약화시키는 요인인 ‘성직자’ 와 ‘평신도’ 사이의 불필요한 구별 또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4-17)
 
여기서 믿는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곳은 순수 유대인들이 살았던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그들은 반 유대인인 사마리아인들이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천시하였다. 그와 같은 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마리아인은 여러 족속이 뒤섞인 민족이고 일부는 가나안 족속으로 구성된 반 이스라엘 족속이다. 따라서 순수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로 취급하였다.
그뿐 아니라, 사마리아인은 성경 중 첫 오경인 모세의 율법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예언서나 시편, 그리고 기타 구약 성령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그리심산과 그 맞은편에 있는 에발산에서만 예배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문맹이었으며 미개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예루살렘 밖의 최초의 교회가 개들로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 설립되었는데, 아마도 그 교회의 교인중 한 사람은 ‘우물가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5-18)
 
그러나 그녀는 회개하여 온전한 교회의 교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이 민족적, 사회적, 성적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역차별 등 인위적으로 형성된 장벽이나 어떤 사람을 부정한 자로 규정하는 것 등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모두 무너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 모두를 동등하게 귀히 여기시는 것이다. 사실상 사마리아 교회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워진 교회였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이 이방인은 아니었지만.
 
다섯째, 하나님의 은사는 언제나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자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마리아에 사는 마술사 시몬이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사려고 하였을 때, 사도 베드로가 단호히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서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행8:20)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올바로 갖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적용이 되는 진리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비결인 것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생기를 잃어버리거나 과거의 열심이 사라졌거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과연 올바른가? 이것은 오늘날 참 교회에 적용해야 할 보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올바른 마음으로 교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물질에 매어 있지 않은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눈을 들어 밭을 보고 추수할 곡식이 풍성한 것을 보고 있는지?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보고 안타까와 하는지?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지? 우리들은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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