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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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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덫을 놓아 바울을 잡으려는 희망이 좌절된 유대인들은 당시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의 감독에 임명되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공격하였다. 그들이 야고보에게 가한 악한 조처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야고보를 공공장소로 데리고 가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을 부인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말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라고 고백했다. 덕이 많고 경건하여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의롭다고 여겨지는 이 사람의 증언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그들은 당시 무정부 상태로 인해 야기된 파격적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살해했다. 왜냐하면 이 무렵 유대의 총독 베스도가 사망하여 이 지방에는 총독이나 수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클레멘트가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성전의 익면에서 밀려 떨어져 곤봉에 맞아 죽었다. 사도 시대 직후에 활동한 헤게시푸스는 자신의 주석서 제 5권에 야고보에 관해 가장 정확한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당시 야고보라는 이름의 인물이 여럿 있었는데 의인 야고보라고 불리웠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의 시대로부터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통치를 맞고 있었다. 야고보는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졌었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생명이 있는 음식을 삼갔다.

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도 하지 않았다. 오직 야고보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는 결코 털옷을 입지 않고 베옷을 입었다.

그는 홀로 성전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종종 무릎을 꿇고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의 발처럼 딱딱해졌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 선포한 것과 같이 그는 지극히 경건했기 때문에 의인, 또는 오블리아스라고 불리웠다. 오블리아스란 공의와 백성들의 보호를 의미한다. 나의 주석서에 언급된 일곱 분파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이 그에게 예수께 이르는 문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분이 구세주라는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러나 악한 유대인들은 부활, 그리고 장차 그가 모든 사람의 공로에 따라 상급을 주러 오실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 때문에 그렇게 믿었다. 통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자, 유대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소요를 일으켰으며 백성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기대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야고보에게 와서 말했다.
‘백성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기대하여 그를 좇음으로 빗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을 제지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에 관해 올바르게 권면하여 주시기를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모든 백성들은 당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높은 곳, 당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음성을 쉽사리 들을 수 있도록 성전의 익면에 서십시오. 모든 지방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모여들 것입니다.'
이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야고보를 성전 익면에 세우고 그에게 소리쳤다.
'오, 그대 의인이여, 우리는 모두 당신을 믿습니다. 백성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좇아 잘못된 길로 가면서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문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 당신들은 나에게 인자이신 예수에 관해 묻습니까?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전능자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고보의 증언에서 확신을 얻고 영광을 돌리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쳤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 우리는 예수에 대해 그러한 증언을 제공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니 저리로 올라가서 그를 내려 던집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서워서 그를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오 오! 저스투스는 미혹되었도다' 라고 외쳤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바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11)는 말씀이 성취되었다.
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서 이 의인을 떨어뜨리고 ‘의인 야고보를 돌로 치자.' 고 말했다. 그들은 야고보가 땅에 떨어졌으나 죽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고보는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오, 주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행위를 알지 못하고 있나이다.'
이렇게 야고보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 예레미야가 말한 레갑의 자손인 제사장이 소리치며 말했다. ‘그만 두시오. 당신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의인은 지금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느 축융업자가 피륙을 두드릴 때 사용하는 곤봉으로 의인의 머리를 쳤다.
이리하여 야고보는 순교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성전 앞에 매장하였다. 이곳에는 아직도 그이 비석이 남아 있다. 야고보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충실히 증거한 증인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베스파시안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장악하였다.”


이것은 헤게시푸스의 증언으로서 클레멘트의 증언과 완전히 일치한다. 야고보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의 공의로움은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사건이 그 직후에 있은 예루살렘의 포위의 원인이라는 견해를 취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야고보에게 행한 그들의 범죄 때문에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요세푸스도 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증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일들은 의인 야고보를 죽인 죄에 대한 보복으로서 유대인들에게 발생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사람의 형제로서 지극히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를 살해했다.”

요세푸스는 「고대문물기」 제 20권에서 야고보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베스도가 사망했음을 안 황제는 알비누스를 유대의 총독으로 보내었다. 그런데 앞에 언급했던 바 제사장직을 얻은 아나누스 2세는 성질이 특히 과격하고 무모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재판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유대인들 중에 가장 무자비한 분파인 사두개인이었다.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었던 아나누스는 때마침 베스도는 사망하고 알비누스는 아직 부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판사들의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비롯한 몇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와 그들이 율법을 벌했다고 고발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지극히 경건하고 정확했던 그 도시의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크게 분노하였으며, 은밀히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나누스의 행동은 합법적인 것이 못되니 이런 일을 행하지 목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부임하러 오는 도중에 있는 그를 만나 아나누스가 그에게 알리지 않고 산헤드린을 소집한 것을 불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설명을 들은 알비누스는 격노하여 아나누스에게 그일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의 편지를 보냈다. 한편 아그립바 왕도 같은 이유로 그의 제사장직을 박탈하였다. 결국 아나누스는 3개월 동안 제사장으로 있었으며, 담매우스의 아들 예수가 그의 후임이 되었다.”


이 기사들은 야고보에 관한 것이다. 그는 보편서신들 중 최초의 서신을 기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네로의 박해와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

자신의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 황제는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고 높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광기 때문에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였고 심지어는 절친한 친구들까지도 무분별하게 살해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모와 아내, 그리고 많은 가까운 친척들을 마치 이방인이나 원수들을 죽이듯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해하였다. 그가 범한 온갖 죄의 목록에 추가해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그는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임을 드러낸 최초의 황제라는 것이다. 로마인 터툴리안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당신들의 기록을 살펴보라. 당신은 이 신앙을 박해한 최초의 인물이 네로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모든 동방 세계를 정복한 뒤에 로마에서 모두에게 잔인함을 행사하였다. 우리가 처형의 지도자라고 자랑하는 인물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또한 네로가 정죄한 것은 거의 모두가 위대하고 선한 것이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네로는 공공연하게 스스로를 하나님의 원수로 나타내면서 맹렬하게 사도들의 살해를 추진하였다. 그의 박해를 받아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되었고, 베드로도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기사는 오늘날까지 베드로와 바울의 이름이 로마시의 공동 묘지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의해 확증된다.


그러나 제피리누스가 로마의 감독으로 있을 무렵에 태어난 가이우스라는 이름의 기독교 작가는 브리기아 분파의 지도자 프로클루스와 논쟁하면서 이들 두 사도의 세상 장막의 위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나는 그 사도들의 기념비를 보여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바티칸이나 오스티안 거리에 간다면 교회의 기초를 놓은 이 사람들의 기념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스는 로마인들에게 행한 설교 속에서 이들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명하였다.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의해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습니다. 이들 두 사도들은 고린도에서 우리에게 교리를 가리치고 교훈을 주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거의 같은 방법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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