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칼럼

로마 카톨릭의 종교재판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47:00
  • hit99
  • vote0
  • 1.245.98.13
일반적으로 종교 재판은 그 희생자를 한밤중에 체포했다. 체포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본인은 위험의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한밤중에 태평하게 잠들어 있을 때에 검은 그림자들이 집 앞에 소리 없이 모여들어 돌연 문을 두드렸다.
“누구의 이름으로 연향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으면 “종교 재판소”라고 대답한다. 그 한 마디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The Holy office’라는 말은 “당신을 종교 재판의 죄수로 체포하는 것입니다.”라는 말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겁났다. 놀라고 벌벌 떨다가 그 불행한 사람은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여 즉시 혼절하고 만다.

그는 자기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안다. 아마도 영원히 모르게 될지도 모르는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떠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입술에는 비통의 외마디가 나온다. 가족들의 혼란과 절망 속에서, 이웃들이 동정하는 가운데 그는 축축한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오로지 벽만이 그의 고뇌의 증인이 될 뿐인 지하 감옥에 수감된다.
종교 재판소의 벽 안에는 이미 잡혀 온 죄수들이 따로따로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 독방은 너무나 협소했고 목제 침상 한 개, 테이블 한 개, 어떤 때는 의자 한 개 이상의 가구는 없었다. 지하 감방은 위 아래 두 줄로 건축되어 있었다. 윗줄은 삑삑거리는 조그마한 창을 통해서 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아랫줄 감방은 완전히 깜깜했다.
죄수들에 대한 대우는 그들의 신분에 따라 각기 달랐다. 지하 감방의 아랫줄은 완전히 이단들을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죄수들은 고독한 침묵 속에서 그들이 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간수 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각기 곁에 있는 감방에 갇혀 있어도 전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어떤 비밀이 탄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자비한 간수들은 죄수들이 조그마한 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감시를 철저히 했다.
만일 어떠한 죄수가 자기의 불운을 슬퍼하거나,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면, 그는 즉시 잠잠하게 만들었다. 죄수들이 신음 소리와 한숨 소리를 통해서 통해서, 또는 알아들을 만한 말을 통해서 곁에 있는 죄수들 끼리 서로를 알고 있다 해도, 종교 재판소의 지하 감방에서는 자신의 슬픔을 한숨 짓거나 신음을 토해내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감기에 걸린 한 죄수에 관련된 얘기를 예로 들어 보자. 감방 안에서는 조그마한 소리를 내어도 규칙 위반이기 때문에 간수는 기침하는 죄수들에게 와서 조용히 하라고 경고를 하고 돌아간다.

 그 죄수는 자기 힘으로는 기침을 멈추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간수들은 기침을 참으라고 두번째로 경고를 했다. 그래도 감기 환자는 기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간수들은 그를 홀랑 벗기고 모진 매를 때렸다. 기침은 점점 심해졌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다시 그를 때렸다. 마침내 그는 감기에다 매맞은 상처와 벗은 몸으로 떨며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다.
죄수들은 지하 감방에서 자주 끌려 나와서 재판관이나 상담자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죄수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말을 듣게된다.

“너는 진실되지 못해. 너는 아직 다 불지 않았어. 너는 감춰두고 있는 것이 많아, 그래서, 다시 지하 감방으로 돌아가야 해.” 대답하지 않는 죄수들은 재조사를 요구 받았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침묵을 지킨다면, 그들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입을 열도록 하는 고문을 받았다.

 

종교 재판의 고문
 

종교 재판관들로부터 조사를 받은 후에도 죄수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항의한다면, 그는 고문대에 끌려가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지하실의 어두침침한 불이 켜진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 고문을 집행하는 사람의 으시시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머리와 얼굴 전체가 가리워지는 두건이 달린 검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이 으시시한 인물 주위에는 그의 일거리인 무서운 고문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머리와 얼굴을 가리운 두건에 뚫려있는 두 개의 눈 구멍을 통해서 초췌해진 죄수를 노려보았다.
종교 재판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고문은 밧줄과 도르래와 고문대를 이용한 고문이었다.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한 고문은 죄수의 양 손을 등 뒤로 묶고 묶은 손에 밧줄을 매고, 천정 부근에 달려있는 도르래에 밧줄을 걸어서, 권양기를 틀어서 죄수를 공중으로 감아 올렸다. 죄수의 두 발을 역시 묶어서 거기에 무거운 물체를 매달려 놓았다.

 죄수의 팔과 어깨가 심히 당겨지면서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죄수가 이렇게 공중에 매달려 있을때 그들은 그에게 심문을 하였다. 재판관은 찬찬히 그의 기억을 도와주면서 심문을 하다가, 가끔씩 밧줄을 왈칵 놓았다가 죄수의 몸이 땅바닥에서 불과 몇자 높이에 갑자기 멈추게 하면서 겁을 주고 심문하였다.
고문대는 아주 오래된 고문 기구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용되었다. 종교 재판소에서 발견된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밧줄 도르래, 권양기가 걸려있는 넓은 사닥다리처럼 세운 고문대였다. 이 고문대의 가로대에 희생자의 사지를 쫙 펴서, 가하려고 하는 고문의 종류에 따라서, 희생자는 여러 가지 위치와 방식으로 묶었다. 그러한 고문들은 각기 고문의 이름이 있었다. 밧줄과 권양기는 죄수의 관절과 사지를 늘어뜨리고 탈골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도르래와 고문대 외에도, 많은 살인적인 기계가 사용되었다. 불행한 희생자들은 간혹 유죄가 인정되는 피의자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범죄를 전혀 모르고 무엇 때문에 당하는지 모르면서 고문에 의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종교 재판 청사


 

종교 재판 청사는 회의실과, 지하 감옥과 고문실을 포함하는 거대한 석조 건물이었다. 전체 건물 구조가 너무나 커서 나그네가 그 안에서 길을 잃기 쉬웠다. 수석 종교 재판관의 아파트는 특별히 우아했다. 정문에는 거대한 대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통해서 법정 뜰로 들어간다.

이 뜰 정면에 바깥 관람석이 있는 이층 회의실이 있었다. 이들 관람석은 왕과 왕의 가족들을 위해 지은 것이다. 만일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죄수의 처벌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종교 재판에 걸려든 윌리암 라이트고우의 수기

윌리암 라이트고우는 존경 받는 가문의 영국인으로 1580년경에 태어났다.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젊었을 때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랜드, 그리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녔다. 스위스와 스페인에서 몇 개월을 보낸 후에 그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말라가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프랑스 배와 여행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생겨서 뜻대로 그 나라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의 배가 출항하는 전날 밤에 당시에 알제리의 해적선을 쳐부수기 위하여 영국의 해군 함대가 말라가 해상에 닻을 내렸다. 말라가 사람들은 그들을 적군 터키 함대로 오해하고 큰 소요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침에 그들이 오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말라가의 총독이 영국 해군 제독의 배에 올라가 보고 돌아와서 백성들의 두려움을 씻어내었다.

그 함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해안에 상륙하였다. 이 사람들 가운데 윌리암 라이트고우의 친구들이 여러 사람 있었다.

그들은 그를 배에 초대하였고 그는 초대에 응하여 해군 제독으로부터 친절한 영접을 받았다. 다음날 함대가 알제리를 향해 출항할 때 그는 해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하숙집으로 돌아가서 같은 날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를 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갑작스럽게 아홉 명의 사내들이 그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그의 머리에 검은 코트를 씌우고 총독의 집으로 그를 끌고갔다.
총독이 나타났을 때 그는 왜 자기가 이렇게 무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하였다. 총독은 다만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죄수를 잘 지키라는 명령만 내렸다. 동시에 말라기의 시장과 교도관과 공증인을 오게 해서 그를 조사하고 신문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영국 상인들을 자극시키지 않도록 이 사건에 극비에 부쳐두라고 당부하였다.
이 명령은 잘 준수되었고 총독이 라이트고우에게 돌아오자마자 심문을 하려고 그를 끌어내었다.

총독은 그의 고국이 어디며,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며, 스페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한 후에 죄수는 다시 지하 감옥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다시 교도관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교도관은 큰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그가 최근에 시빌리에서 왔는지 묻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고우로부터 어떤 자백을 강요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떠났다.
다음에 총독은 방금 떠난 영국 함대의 사령관이 왜 말라가 항에서 배를 대었는지 죄수에게 물었다. 그는 또 영국을 떠나기 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공증인에 의해서 낱낱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총독은 그가 영국 함대의 작전 계획을 전혀 모른다는 데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스페인을 치기 위해 영국이 음모를 꾸미기 위해 영국의 뒷돈을 받고 파견된 것이라 단정하였다. 스페인 함대가 인디아에서 오는 시간을 알아내기 위하여 그가 시빌리에서 9개월 동안 묵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였다.

이를 증거하기 위하여 그들은 라이트고우가 함대의 장교들과 잘 아는 사이임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그는 그날 아침 해군 제독의 배에서 작전 회의를 하고 돌아왔으며,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남아있다고 말하였다.
라이트고우는 이러한 혐의점을 부인해 보았으나 소용 없었다.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그의 여행증과 서류들을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 말에 동의하고 패스포트와 당국자들로부터 받은 추천서들을 발견했지만, 편견을 가진 재판관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심은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죄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하여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교도관은 그를 시중에 있는 감옥에 넣고 특별히 경찰 책임자에게 당부하면서 말하기를 “영국 사람들이 그가 갇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그 사건을 다룰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을 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최종적으로 그를 총독의 집에 감금하기로 하여 비밀을 엄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라이트고우는 옷을 벗기우고 조사를 받았다. 몸에 지닌 많은 액수의 돈은 모두 빼앗기고 총독의 집에 있는 한 뒷방에 감금되었다.
한밤중에 하사관과 터키인 노예 두 사람이 그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심한 불행에 그를 빠뜨리기 위한 짓이었다. 그들은 정원 근처에 있는 궁궐에서 조금 떨어진 공무집행실로 여러 개의 통로를 통해 그를 인도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그에게 쇠고랑을 채웠다. 1야드가 넘는 쇠꼬챙이로 그의 두 다리를 벌리게 했고 쇠꼬챙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는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고 다만 등을 대고 계속해서 반드시 누워 있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총독이 그를 찾아왔다.

만일 그가 스파이라는 것을 고백만 한다면 그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가 전적으로 혐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그에게 화를 내면서 감금해 두었고 더 심한 고문을 해서 그가 고백을 할 때까지는 다시는 그를 보내지도 않겠다고 하면서 그를 떠났다.
불운한 라이트고우는 초라한 빵과 물을 나르는 노예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고, 그렇게 며칠 동안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드디어 총독은 죄수에 관해서 문의한 서신의 답신이 마드리드에서 온 것을 받아 보고 그 안에 적혀있는 지시 사항을 따르기 위하여 총독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잔인한 고문을 죄수에게 가할 준비를 하였다.
새벽 3시경에 라이트고우는 거리에서 가까이 오고 있는 마차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곧 이어 그의 옥문이 열리었다. 즉시 사납게 생긴 장정 네 사람이 들어와서 한 마디 말도 없이 쇠고랑을 채운 채 그를 끌어내어 다짜고짜 마차 바닥에 던져넣고 마차를 몰았다. 사네들 중 둘은 그와 함께 탔고 나머지는 걸었다.

그들은 철저히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시내로부터 약 일 마일쯤 나아간 후에 그들은 포도주 짜는 기계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돌집 안으로 들어갔다. 돌집 안에는 고문 기계가 장치되어 있었다. 여기에다 그들은 그를 바닥에다 눕혀두고, 이 불길한 친구들과 함께 그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날 새벽에 총독과 교도관이 도착하여 즉시 그들 앞에 라이트고우를 내려오게 해서, 또 심문을 시작했다. 죄수는 통역할 사람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마드리드의 고등 법원에 상소하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다.

 긴 조사로 인해 그 날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간 후에, 그의 대답은 모두 앞서 그가 말한 내용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심문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거의 외우다시피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듭거듭 압력을 넣으며, 그가 온전한 자백을 하도록 강압하였다. 즉 그가 범하지 않은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총독은 이렇게 위협하였다.

“너는 아직 내 수중에 있어. 내가 협조한다면, 나는 너를 석방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형집행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어.”
그러나 죄수는 여전히 무죄를 고집하였고, 총독은 마침내 그를 고문대에 보내도록 명령하였다.
그래서 라이트고우는 고문대에 끌려갔다. 고문대에 그를 눕히기 전에, 고문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그의 발목에 차꼬를 떼었다. 그는 심한 통증을 느꼈다. 빗장을 너무나 단단히 조여서 고정시켰기 때문에 심한 타격을 입고 차꼬가 풀리면서 그의 발꿈치의 약 1/2인치가 찢겨져 나갔다. 쇠약해진 상태에다 이러한 고통이 겹쳐져서 그는 쓰라린 신음을 토했다. 무자비한 교도관은 말했다. “나쁜 놈! 반역자! 이것은 네가 겪어야 할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다!”
차꼬가 풀리자마자 라이트고우는 하나님께 간단히 기도를 하였다. 그가 견디어야 할 시험이라면,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그 후 그는 옷을 벗기우고 고문대에 단단히 매달렸다. 이 고문은 종교재판관들이 혐의가 있는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죄수로부터 자백을 강요하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그가 이 무서운 기계 위에 누워 있는 동안 그가 당한 여러 가지 고문을 다 기록할 수는 없다. 그것들 중 다수가 극악무도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그들이 계속했더라면, 그는 아마 숨을 거두고 말았을 것이다.
고문대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다시 차꼬를 차고 다시 이전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따뜻한 포도주가 공급되었다.

동정심에서라기보다는 가까운 장래에 처형할 모양이라고 짐작하였다. 이 무서운 상황에서 그는 여러 날 동안 살아 있었다. 드디어 라이트고우는 어쩌면 고국을 다시 볼지도 모르는 실날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소식을 들었다. 한 사람의 영국인 신부와 스코틀랜드 사람 등 제조업자 한 사람이 영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하기 위해 총독에게 고용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모든 책들과 문서들이 번역되었다.

그 결과 죄수는 일급 위험스런 이단이라는 말을 충독의 집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하게 되었다.
약 이틀 후에 한 사람의 종교 재판관과 간수가 지하 감옥에 들어왔다. 몇 가지 쓸데없는 질문을 한 후에 그가 교황의 지상권을 아는지, 라이트고우에게 물었다.
영혼의 고통 속에서 쌓이고 쌓인 감정을 가지고 그는 두 사람의 비열한 놈들을 향해 꾸짖고 다음과 같은 말로서 결론을 내렸다. “너희 놈들은 나를 간첩과 반역죄로 거의 죽여놓고 혐의점을 찾지 못하니까 이제는 나의 신을 이유로 해서 나를 순교자가 되게 하려는구나.”
이에 대해서 종교 재판관은 말했다. “너는 스파이로 체포되어 반역 죄인으로 기소되어 심문을 받았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스파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네가 쓴 글과 책들은 네가 순전히 이단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이단 사상을 받아들인 이상 반역죄인 이상으로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
그후 그들은 그에게 신앙을 바꾸든지 안 바꾸든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8일동안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이 기간 동안 종교 재판관과 교도관은 그를 종종 찾아와서 설득하고 권면하였지만 그는 귀머거리처럼 그들의 말을 외면하고 듣지 않았다. 마침내 종교 재판관은 그들의 설득이 소용 없음을 알고 형벌로 위협했지만, 그의 결심과 확고한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8일이 지난 후에, 사형 선고를 내리기 직전 마지막 심문을 하기로 하고 그들은 그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아주 변해 있었다. 아주 비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가 비참한 죽음을 맛보게 되어서 마음으로부터 깊이 동정하고 있는 척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의 값진 영혼을 잃게 되어서 슬프다고 하였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오, 형제여 회개하고 돌아오시오.” 이에 대하여 라이트고우는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죽음도 불도 무섭지 않소. 나는 죽음도 불도 다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소. 당신들이 하고 싶은 제일 못된 짓을 하도록 하시오.”
그 날 밤에 라이트고우는 11가지 각기 다른 고문을 받도록 하는 형을 선고 받았다. 만일 그가 고문 중에 죽지 않는다면 그는 부활절 후에 그레나다로 끌려가서 화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첫번째 형벌이 냉혈한들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가엾은 희생자에게 하나님은 육체에 견딜 힘을 주시고 혹독한 시련에서 살아남을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그들은 다시 그를 그의 지하 감옥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터키인 노예 한 사람에게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그 노예는 그의 소매 속에 건포도와 무화과를 숨겨 가지고 와서 그에게 주었다. 라이트고우는 묶인 몸으로 감지득지해서 핥으며 그것들을 삼켰다. 라이트고의 목숨이 그렇게 끈질기게 붙어있는 것은 이 노예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는 그에게 날마다 음식을 가져왔다. 그 불행한 사람이 이 무섭고 잔인한 부상에서 살아 남도록 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었다. 그는 또 흑인 노예의 도움도 받았다. 그는 음식물 뿐만 아니라 병에 포도주를 감추고 와서 그에게 주었다.
라이트고우는 이제 체념하면서 죽을 날을 기다렸다. 그 날은 고통도 끝날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스페인의 귀족 한 사람이 그레나다에서 말라가로 왔다. 그는 교도관의 저녁 식사에 초대 받은 자리에서 그는 교도관이 체포한 영국인 죄수가 비밀리에 고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교도관으로부터 확실히 듣게 되었다.
교도관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플랑드로 사람 인 한 청년이 스페인 귀족의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는 나그네의 고통을 깊이 동정하고 놀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의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그가 들은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렸고, 그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자 그는 조용히 시내로 들어갔다. 그는 영국 상인(와일드) 씨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주인과 교도관 사이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죄수의 이름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 상인에게 죄수의 이름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고우의 실종 소식을 들었으므로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체하지 않고 시내에 있는 모든 영국 상인들에게 가서 고향 사람의 위험을 말해 주었다.
급히 협의를 가진 후에 사건의 전상을 마드리드에 있는 영국 대사 월터 아스톤경에게 즉시 보고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즉시 그렇게 되어서, 대사는 스페인 왕과 국회에 호소함으로써 라이트고우를 즉시 석방하라는 명령을 얻어내었다. 그 명령서는 영국상인들에게 전해졌다.

 

명령은 말라가의 총독에게 전해졌고 살인 종교 재판관들이 그것을 접수하였다. 그들은 죄수에 대하여 다시 공포의 만행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데 놀라고 원통히 여겼다.
그러므로 라이트고우는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그의 시중을 들었던 노예의 등에 업혀서 그는 지하 감옥에서 나왔다.
부스비치라는 상인의 집에 안내되어 그곳에서 온갖 보호와 위로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때 마침 영국 함대가 그때 말라가 항에 들어와 있었다.
고향 친구가 당한 고난 소식을 들은 리차드 호킨스의 명령으로 다음날 적당한 호위병을 보내어서 그를 상인의 집에서 데려오게 하였다. 그를 즉시 담요에 싸서 전함 벵가드 호에 승선시켰다.
상인들도 기부금을 내놓고 의류들을 가지고 와서 불행을 당한 고국 사람들을 도왔다. 온갖 필수품 외에도 그들은 그에게 은 100달러를 주었다. 그들은 또 그의 문서와 책과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것들은 하나도 회수하지 못했다.
며칠 후에 배는 닻을 올렸다. 약 2개월 뒤에 영국의 데프트포트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다음날 아침 라이트고우는 허트포드셔의 데오발드스로 깃틀 침대에 실려서 운반되었는데 그때 영국의 국앙과 왕의 가족들이 거기서 어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라이트고우는 불구의 몸으로 병상에 누운채 그들 앞에 나아갔다. 그는 자기가 겪은 고난을 할 수 있는 대로 세밀히 이야기하였다. 왕은 그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깊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용안이 창백해지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깊은 동정심을 표하고 바드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라이트고우는 못 쓰게 된 상태에서 어느 정도 건강과 원기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왼쪽 팔은 쓸 수 없었다. 작은 뼈들이 심하게 부숴지고 여러 개로 깨어져서 맞추어서 재생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