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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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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 가스펠송의 진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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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송의 진실

 

고든 시어스
 

일대변혁이 교회 음악에 일어났다. 많은 이가 아무런 반대와 의심의 여지없이 열렬히 새로운 현대음악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명한 상태로 바로 잡아야 하고 필요한 변화를 감내해야한다. 그러나 변화를 받아들이기 전에 교회는 그 변화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실히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크리스쳔 현대음악(CCM)의 유효성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갖는 것이 놀랍게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음악(CCM)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당신과 당신 가족, 당신의 교회에게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간에 당신은 이미 CCM에대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나요?”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쳔들이 CCM에대해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8가지 유형이 있다.
1. 필요에 따라 교회가 변화하고 있는 세상과 함께 맟추어 나가야 한다는 크리스쳔들
2. 우리가 이 신세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런 종류의 음악으로만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크리스쳔들
3. CCM은 이 시대의 자연스런 변화의 일부분이며 누구나 다 이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크리스쳔들
4. 나뭇 가지처럼,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구부러지는 크리스쳔들, 그들은 시류에 따른다.
5. 음악은 단지 선책에 불과하다는 크리스쳔들
6. CCM을 좋아하는 교회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CCM이 필요하다는 목사들과 음악지도자들
7.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크리스챤들
8. CCM이 세계흐름의 산물이고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와 동일시되어선 안된다고 믿는 크리스쳔들
이 리스트에서 당신의 입장을 찾았습니까? 이제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말씀에 동의하는 입장입니까? 당신은 이 음악이 신실한 예배와 동일시 되든지 않든지 간에 관심이 없는 지도 모른다. 그저 받아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종종 우연히 CCM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괜챦다고 하는 유명한 TV설교자나 목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수에 따라가는 사람들에 의해 옳은 것으로 되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에 대해 진실로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를 것이다. 이것을 염두해 두면서 우리는 묻는다. CCM은 신성한 것인가?
기독교 예배 요소
예배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성경 말씀에서 가르치시고 수세기에 걸쳐 행해져 내려온 4가지 중요한 기독교 예배 방식이 있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말씀의 선언 2. 기도 3. 찬송 4. 헌금
물론 이 외에도 만찬과 침례 의식이 있다.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 기도, 헌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것들은 때론 너무 비판적으로 여겨져 기독교인의 믿음이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배를 위해 어떤 종류의 음악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금지되어야 하는 특정한 음악 형식이 있다고 믿는가? 만약 당신이 “예, 예배에 부적절한 음악들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모든 음악이라고 해서 예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관점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진실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예배 안에서의 음악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첫 째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칭송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는 먼저 하나님께 직접 드리기 위함이다. 시편100: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두 번째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강하게 북돋아 주는 것이다. 성경에는 교회 예배에 있어서 “오락적 요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세속적 음악(감성적 음악)은 신성한 예배와 양립되어질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골로새서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성한가? 세속적인가?
가스펠 음악 프로그램이 “신성한 음악회”로 불려졌던 때를 기억하는가? 당신은 “신성한”이라는 단어가 가스펠 음악에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으로 고무되어 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공연”과 “오락”적 특색을 띠었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봉사와 연관이 있는가? “공연” “쇼”라는 단어와 교회 봉사를 향한 박수 갈채들과 후반부의 “아멘”같은 말들은 이제는 많은 교회에서 흔한 것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성경이 박수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재빨리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주님을 향한 열성적 감사와 예배 안에서의 박수이지 사람들의 공연에 대한 박수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오늘날 많은 예배 장소에서 만약 당신이 교회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떤 오락적인 장소에 와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삼하6: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에서 다윗이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는 것을 읽었다. 박수치는 것처럼 춤추는 것은 주님을 향한 기쁨의 감사예배 표현이었다. 오늘날의 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죄있는 부도덕함과 비신앙자들이 자주 접했던 음주 때문에 오래 전부터 크리스쳔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점을 잘 살펴보자. 최근 5년간의 박수 갈채는 TV의 종교적인 쑈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엄연히 예배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공연자들의 밖으로의 표현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이런 종류의 종교적인 프로그램을 쇼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교회는 계속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가르침에 있지 않는 변화들의 수요에 대해 반대할 필요가 있다. 음악에 있어서 세상과의 분리를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분리들 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에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면 결국 다음과 같이 거기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a. 만약 “세상 음악”이 교회이 교회에 들어온다면, 그 다음 단계는 세상처럼 공연하는 것이 될 것이다.
b. 만약 우리가 “선교”의 역할에 “공연”을 가미한다면 우리는 오락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c. 만약 우리는 예배에 있어서 오락적 요소를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같은 예배가 첨가될 것이다.
d. 오락적 요소를 갖추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표를 팔면서 입장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점에서 멈출 것인가? 천만에! 음악은 우리 삶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CCM은 세속적 록음악과 같이하는 반항의 사운드와 같은 비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적인 삶의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에서 CCM을 받아들여서 아주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기회가 많다.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여....”(엡5:10)
비록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분명히 표현되고 있음에도 최근에 많은 목사들과 설교자들이 논쟁적으로 치닫을 수 있는 특정한 주제들을 피하고 있다는 것은 꽤 분명하다. 무신론, 동성연애 등의 이론은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몇몇 예들이다. 이것들은 성경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들이지만 오늘날의 많은 모임에서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편의주의의 한 방편인가? 논쟁이 되고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가스펠 음악이다. 그것은 전염병처럼 강단에서 피하고 있는 주제이다. 정말로 설교자들이 나쁜 음악의 해악에 관해 말하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왜 하나님의 종들이 그러한 중요한 주제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을까? 일종의 무시일까? 확실히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학식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기사들과 책들이 충분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의견으로는 현대음악의 주제는 많은 지도자들이 새 음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지고 있는 주제이다. 그들 자신의 아이들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기있는 현대음악 가수들의 열렬한 지지자들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목사들이 그 문제를 고의로 지나가거나 그 문제로 그 지위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목사들이나 음악 지도자들이 예배에서 영적인 중요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소 의미심장한 특별한 것으로 CCM을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에 그것을 진보된 부분으로 느끼고 그것 모두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비록 많은 기사들과 책들이 이 새 음악의 해악에 대해 쓰여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들이 성가대가 현대 록 음악의 비트에 맞추어 노래부르도록 촉구하는 것을 들었다. 어찌 사람들이 혼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7에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말씀의 가장 까다로운 부분을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는 공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논쟁이 되는 문제를 설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음악의 기준이 하나님 말씀 안에 주어졌는가?
 

성경은 예배 음악에 대해서 큰 방향과 지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시편 92:3절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라며 우리에게 예배음악이 “신성한 소리”여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예배는 진지한 태도에 의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음악은 세상 사람들의 음악처럼 화려하거나 천박해서는 안된다. 현대음악의 음조는 완전 무결하지 않은 인간적인 사고방식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종종 그 음의 멜로디는 강한 비트에 의해 분명치 않고 지나치게 압도되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이 CCM에서도 너무 현저히 드러나서 그 멜로디가 완전히 가사를 압도해 버린다. 이것은 음악 속에서 자아를 표현하는 세상적인 교만한 태도이며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기만하는 자세다.
시편 100:1 “너희 온 땅들아, 주님을 향하여 즐겁게 소리 칠지어다”라고 말씀하신다. 구원하셨음에 대한 기쁨의 노래와 오늘날의 록음악에서 나타나는 방관과 절망의 노래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이 두 노래들은 비슷하지도 않으며 성령 충만된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그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쁨에 차서 부르는 “오 크신 여호와여, 저를 인도하소서”는 감사와 영광으로 영혼이 깊이 고양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노래이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의 세상적인 노래는 이 인생에 대해 희망이 없고 오직 일시적인 삶에 정신을 쏟는 사람들의 노래일 뿐이다.
 

확실히 이 두노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고린도 전서 14:8은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준비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음악들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즉 만약 노래가 분명치 않다면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가사에 대해 혼동될 수도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대 음악에 있어서 진실로 사실이다. 음악에서 어떤 노래와 형식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가? 그것이 세상이 사용하고 있는 노래와 같은 것들인가? 아니면 구별된 음악, 거룩한 음악인가? 그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노래처럼 들리는가? 아니면 구원받지 않은 자들의 노래처럼 들리는가? 성경적으로 그 가사가 옳더라도 노랫 소리가 양립되어 질 수 없다면 그것은 혼동만을 줄 뿐이다.
에베소서 5:17-18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우리에게 크리스쳔 음악이 신성시된 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그 음악이 성령 충만되어야하고 세상과는 떨어져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년전 내가 젊은 크리스쳔이었을 때, 구원받지 않은 영화배우가 교회에서 부르는 음으로 노래를 불렀을 때 그것을 듣는 것이 내게는 무척 거북스러웠다. 그것이 예술적으로 옳게 불려졌을 지는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은 전혀 성령의 은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노래를 부르고 있던 사람은 진실로 그가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 경험한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쳔의 음악은 감성의 음악과 비교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 후 산에서 돌아올 때에, 여호수아는 사람들의 소란을 듣고 말했다. “진 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출32:17-18) 여기서 그가 들은 소리가 승리나 패배의 소리가 아닌 시끄러운 노랫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구분하기 힘든 이상한 소리였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진영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 희생제사를 하며 춤추고 노래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교도적 노랫소리는 그 진영에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 음악이 주님과 동떨어져서 육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천은 무엇이 신성한 음악인지를 어떻게 결정할까?

교회 밖의 세상은 무엇이 신성한가에 대한 대답을 가지지 못한다. 엡4:17-18절은 이 진리를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고 주님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같이 허망한 마음으로 행하지말라 그들 안에 잇는 부지와 총명이 어두워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이는 그들의 마음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 ”
먼저 “우리는 성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주신다는 것이다. 많은 우리의 중요한 소망이 주님을 영광되이 하는 것이라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떤 음악이 주님을 드높을 것인지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다음 구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곧 위로자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기억 나게 하시리라(요14:26_)
두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음악의 선택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명시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
딤후 3장에서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마지막 때의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가 나온다. 우리는 하나님을 종종 2차적으로 놓고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보다 더 염려해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마22:37)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자는 곧 나를 사랑하는자니, 나를 사랑하는자는 곧 나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사랑하여 그에게 나 자신을 나타 내리라, 하시니라”(요14:21)
셋째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 가까이 하고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 알아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에대한 이해가 더욱 늘어갈 것이다. 다음 구절을 묵상해보자.

주님을 두려워 함이 지혜의 시작이요,가룩하신 분에 대한 지식이 총명이니라”(잠9:10
나에게 명철을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님의 법을 지키리이다.”(시119:34)
너의 모든 길들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인도 하시리라”(잠3:6)
“모든것을 입증하여 선한것은 굳게 지키고...”(살전5:21)
바울 사도는 선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해 증명하고 그것들을 재빨리 붙잡으라고 교회에게 권고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찬송가가 수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안식과 은총을 주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찬송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고 아름다운 찬송가로 쓰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진실임을 확인해 준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앙심을 증명하는 지에 대해 신중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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