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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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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옥의교리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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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교리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9-50)

 

지옥의 교리는 성경 전체중 가장 무시되는 교리들중 하나이다. 오늘날 지옥에 관해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비웃음당하기 일수이며, 마치 지옥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이 너무나 구식이어서 다만 순진하고 무지한 자들만이 그러한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정말 믿을 것이라 치부해버린다. 이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자연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기들의 삶을 설명해고 결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워하는데, 이는 그들이 죄를 사랑하고 그것과 헤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육신적인 생각은 지옥의 교리에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는데, 지옥의 실체를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일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오랫동안 무시하면, 그것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심지어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조차 현재 지옥을 공격하고 있다.

인간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고 해서, 어리석은 자들이 제기하는 사소한 이견들이 결코 지옥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지옥을 없애버리라는 요구가 커가는 중에도, 성경이 진실이라고 믿는 자들은 반드시 서서 목청을 높여야한다. 지옥의 공포에대해 당신이 심사숙고하는 일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들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그때에 누구든지 그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칼이 임하여 그를 제거하였으면 그의 피가 그 자신의 머리 위에 있을 것이라(겔33:4) 제발, 당신에게 간청하노니, 당신의 시간을 들여 이 자료를 끝까지 정독하라.

 

왜 우리는 지옥에 관하여 그토록 염려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지옥에 관한 글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1) 지옥의 공포에 관하여 들음으로써, 당신의 양심이 놀라서 당신의 거짓된 안전에서 당신을 깨울지도 모른다.

2) 지옥에 관하여 들음으로써 인간들이 죄를 짓는데서 돌이키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신실한 자들과 신앙이 없는 자들 모두 그들이 정기적으로 지옥의 공포에 관하여 상기될 때 그만큼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자신을 단도리할 수 있다.

3) 지옥의 공포에 관하여 들음으로써 우리중에 있는 어떤 자들을 깨울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거나 혹은 복음을 사실이라 믿기 때문에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하였고,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자들이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4) 지옥의 교리를 설교하는 것은 제시된 대로, 신앙이 있는 자들이나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 모두 유익하다.

왜 사람들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오늘날 지옥의 실제성에대한 두려움이 정말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교회에 속해있는 사람들과 세상에 속해있는 사람들 모두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벽에 붙여진 그림 속에 그려져있는 사자를 볼 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왜그런가? 왜냐하면 그것이 오직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밀림 속에 혼자 남겨져서 당신을 향해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진짜 사자를 마주 보고 있다면, 당신은 공포에 떨 것이다. 인간의 양심은 그림 속의 사자를 보는 사람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지옥에 관해 듣는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지옥에관하여 말씀하셨던 것을 알고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있는 누구보다 지옥에 관하여 여러번 말씀하셨다. 왜 사람들은 지옥이 실제임을 믿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지옥에 관해 충분히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지옥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공부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듣는 것만이 우리의 믿음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듣지 않는 것 역시 우리의 믿음의 체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만이 지옥이 우리 앞에 생생히 펼쳐진 것처럼 우리의 심령에 지옥의 공포를 제시하실 수 있다. 죄인들을 회심시키시기 위해, 성경의 다른 어떤 교리들보다 하나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것이 바로 지옥의 교리이다. 이제 이 글을 읽을 때 거룩하신 성령님께서 당신 앞에 실제하는 지옥을 펼쳐보이실 것을 기도한다.

 

지옥이 필요한 이유

 

오늘날 지옥을 비웃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몇몇 이유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의 죄의 결과에대해 자기들의 양심을 괴롭히지 않고 그 죄의 길을 쫒으려는 욕망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그러나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지옥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이 있게 하시겠어?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 받게 하시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죄의 본성에대한 오해는 쉽사리 그런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왜 지옥이 필요한가? 지옥이 필요한 지유를 몇가지 살펴보자.

 

1) 죄의 거대한 악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스러우신지를 불완전하고 부적절하게 이해하는 것과 관련있다. 우리는 가장 작은 죄 안에 얼마나 커다란 악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거룩, 그분의 공의 그리고 그분의 진노도 깨닫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죄를 가장 커다란 악으로 보고, 모든 죄가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에대한 거절이며, 그분께대한 냉소이자, 그분의 얼굴을 향해 우리의 주먹을 흔드는 것이며, 그분을 향해 똥을 던지는 것과 같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인간의 죄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매 시간, 우리는 우리 심령 안에 하나님대신 경쟁 신(rival god)으로 우리 자신과, 최고의 욕망을 세운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절하고, 피조물을 그분의 자리에 세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을 이해하고, 그것이 거룩하고, 순결하고, 완전하며, 고결하고 가장 작은 죄로도 오염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죄를 그토록 미워하시는지 더 잘 이해하게될 것이다. 절대적인 거룩은 가장 작은 죄도 용납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정결한 두 눈을 지니셨기에 사악함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또 패역을 보실 수도 없으시니이다(합1:13)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신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더욱더 죄의 가증스러운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지옥의 필요성에 아무런 문제를 두지 않을 것이다. “만 가지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인간의 마음은 병들었다. 인간의 마음은 악하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다. 마음의 부패로 인해서 우리는 기만당하여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 가지로 죄의 무시무시함을 간과한다.

 

2) 하나님의 무한성. 우리의 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하나님의 눈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존재이시다. 죄의 모든 행위는 무한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반하여 행해진다. 모든 죄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몰아내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보다 우위에 세운다. 모든 죄에 있어서, 문제는 다음이다, “누구의 의지가 행해질 것인가? 하나님의 의지인가 아니면 사람의 의지인가? 이제 죄로 인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보다 우위에 세우고, 따라서 하나님을 자신의 발 아래 오물처럼 차버린다.”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적하여 행해진 단하나의 죄의 행위도 무한한 형벌에 합당하다. 단 한번이라도 무한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은 무한한 악이다.

 

3) 거룩한 공의.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한 하나의 죄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완전히 합당한 처벌을 가하심으로써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공의를 입증하실 것을 그분께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입증하실 수 있고 입증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로마서 12:19절에서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된 바 주가 말하노니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중 한 사람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기록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큰 선이다; 그것은 창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께서 그분 스스로를 영예롭게 하실 한 방편이며, 불신자들의 영원한 파멸을 통해서 그분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거기서 그분께서 세상의 공의로우신 통치자로 드러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징벌의 공의는 엄격하고, 적확하며,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럽고 그리고 따라서 영광스럽다.”

 

지옥의 묘사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로 된 용광로이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 거기서 그 대상자들은 그들의 죄된 본성들과, 그들이 저지른 실질적인 죄들과, 그들에게 비추어졌으나 그들이 거절했던 영적인 빛의 양에 합당하게 그들의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는다.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이 거두어진 곳이며, 그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무시무시하고, 타오르는 불로 제시되며, 인간은 성취되지 못한 욕망들과 희망들로 영원히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산다.

마태복음 13:47-50에서, 주 예수님께서 심판과 관련하여 한 우화를 말씀하신다. 49-50에서,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들의 운명을 설명하신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9-50)

주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묵상함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지옥이 불의 용광로로 묘사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의 용광로는 일반적인 것보다 7배나 뜨거웠고 “불타는 용광로(단3:23)로 묘사되었다. 침례 요한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 하였고, 계시록은 지옥을 “유황으로 타오르는 불 호수로 묘사하였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단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상상할 수 있는가? 당신의 온몸 마디마디가 동시에 불 속에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리하여 당신 신체의 모든 섬유들이 불태워지는 극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은 그러한 형벌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통곡하며 이를 갈게되리라 잃어버린 자들은 불꽃이 그들을 불사르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온 몸 마디마디를 태울 때 느끼는 가장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만 하기에 통곡하며 이를 갈게될 것이다. 거기는 결코 위로가 없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옥 불이 어떨지 생생한 언어로 기록한다: “여러분 중 일부는 불에 타는 빌딩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매우 크고 맹렬한 불 가운데 있다면, 그 화염들과 싸우고 있는 당신의 나약한 손을 여러분 스스로 상상해보라. 여러분은 맹렬한 불 가운데로 던져진 거미나 혹은 다른 시끄러운 벌레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순간적으로 그것이 화염의 힘에 굴복하는 것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불을 향한 더이상의 투쟁도, 싸움도 없고, 열기에 맞선다거나, 혹은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자 버둥거릴 힘도 없다; 다만 그것은 순식간에 뻗었다가 항복한다; 그리고 그 불이 그것을 사로잡고, 즉시 그것은 불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여러분이 예수님께로 회개하여 날아가지 않는다면, 바로 그 모습이 지옥에 있게될 당신의 모습이다. 지옥의 고통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부추기고 할 수 있는한 자극시키는 것은, 마치 타오르는 용광로 속으로 막 던져질 한 벌레가 그 자신을 한껏 부풀리고 튼튼히 하며 그 화염과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과 같다.”

지옥은 또한 어두운 곳으로 묘사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깥 어두운데로 던져진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마22:13) 유다는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칠흑 같은 어두움이 영원토록 예비되어(유13) 있다고 기록하였다. 크리스토퍼 러브는 그의 책 “지옥의 공포”에서 말한다: “어둠은 무섭다 그리고 사람들은 빛에서 보다 어둠에서 더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지옥은 따라서 사람들의 심령을 공포에 떨게하기위해 너무나 무시무시한 표현 즉 단지 어두움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제시된다.”

지옥은 이사야 30:33에서 도벳과 비교된다. 도벳은 우상숭배하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가운데로 덤짐으로써 우상신 몰렉에게 그들을 희생물로 바치던 곳이었다. 밤낮 울부짖음과 고함소리가 그곳에서 들렸으며, 밤낮으로 아우성, 울부짖음, 그리고 통곡이 지옥에서 들린다. 이사야는 말한다, “불과 많은 나무로 된 더미가 있으니 주님의 호흡이 유황의 시내같이 그것에다 불을 붙이시리라 불타오르는 지옥이다. 하나님 자신이 지옥에서는 불이시라는 증거들이 성경에 들어있다. 히브리서 12:29절은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니라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관하여 선포할 때 지상에서 불신자들이 무지몽매하게 기쁨으로 춤을 추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그 사랑과 긍휼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시는 불이 되실 것이다. 히브리서 10:30-31절은 경고한다“이는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한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또 다시 주님께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그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

죄인이여, 당신은 지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옥이실 것이며, 그분의 진노가 당신을 불사르고, 그분께서 존재하시는 동안 내내 당신에게 쏟아부어질 것이다. “누가 주님의 분노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님의 두려우심은 주님의 진노와 같나이다(시90:11) 하나님 자신이 지옥에서는 불이실 것이기 때문에, 그 지옥에서 저주받는 자들의 공포를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가능한한 사역자들이 이 문제를 실제보다 이상으로 과장하지는 않는지, 가능한한 그것이 묘사된 것처럼 무시무시하지 않거나 공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설교자들이 그에대한 묘사를 단순한 범위를 넘어서 곡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우리는 지옥에 관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만 실제의 미약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다(그의 이름은 나사로였다). 두 사람 모두 죽었다. 가난한 사람은 천사들에 이끌려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 그 부자는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고, 그 가난한 자는 그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 대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으로 갔을 때 우리의 상황들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칠게 다루시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그렇게 대하지는 않으실 것이라 어리석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두 사람이 영원을 보내는 거주지는 그들이 지상에 있던 동안 하나님께대한 그들의 심령의 상태의 결과물이다. 나사로는 진실한 하나님의 신자였다. 부자는 아니었다. 성경이 부자와 그의 조건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우리는 심각하게 주시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지옥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23-24절은 우리에게 부자가 “고통중에 있음을 알려준다. “고통중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고통은 몸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인간의 몸은 불 용광로에서 고통받을 것이다. 모든 신체의 지체들이 그 불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극심한 위통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지만, 지옥에서의 고통은 훨씬 극심할 것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때때로 그 몸에 극렬한 고통을 야기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지옥에서의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 만일 여러분의 몸이 각기 다른 많은 고통스런 질병으로 한꺼번에 고통받는다 해도, 당신은 지옥에서 저주받는 자들의 고통에 다가가는데 아직 한 걸음도 떼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양심 역시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양심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벌레이다(막9:48;사66:24) 부자는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사람들은 극한의 고통으로 고통받을 것이지만, 그들은 또한 그들 자신의 기억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들은 지옥에대한 설교와 그것을 조롱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경고를 들었거나 혹은 예수님을 구주로 진실로 받아들임 없이 그저 천국의 축복들만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구원에 부족하다고 들었으나 그들이 그 경고들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멀리서 천국의 영광들을 봄으로써 고통받을 것이고(부자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영원동안 자신들이 저주받을 것임을 알고 고통받을 것이다. 그들은 성취되지 못한 욕망들과 채워지지 않을 바램들로 인해서 고통받을 것이다(부자는 심지어 그의 혀를 식혀줄 물 한방울조차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결코 지옥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고통받는다(부자는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 주변의 저주받은 자들의 울부짖음, 아우성 그리고 저주들로 인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사람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들은 지옥의 고통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악한 자들이 받을 미래의 형벌에 관한 설교에서 지옥에서 사람들은 단 한순간의 위안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옥에서 그들을 위로해줄 어떤 것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그곳에서 쉴 곳을 결고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휴식을 맛볼 수 있거나 그들의 극한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킬 수 있을, 다른 곳보다 조금 시원한 어떤 은밀한 구석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고통 뿐인 지옥의 어느 부분에서도 시원한 샘이나 개천을 찾아볼 수 없다; 결코, 그들의 혀를 시원하게해줄 물한방울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거나 혹은 그들에게 조금의 선이라도 베풀 동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일분도 남아서 쉬고 한숨을 돌릴 장소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들에게는 쉬는 낮도, 쉬는 밤도 없을 것이다.”

 

지옥의 영원성

지옥에 관한 모든 것중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의 길이 혹은 유효기간이다. 지옥은 영원하다. 지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여러분은 영원에 대한 감이 오는가? 어떠한 수학적 등식이나 공식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당신의 사고는 결코 영원을 감지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실제이다. 지옥의 이 특징만이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후회 안에서 끊임없이 울부짖게 만든다. 사악자들의 영혼절멸과 같은 교리들로 지옥교리를 대체시킴으로써, 여러 세대에 걸쳐 회의론자들이 지옥의 영원성을 공격해온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옥의 영원성을 입증해주는 성경구절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왜 지옥이 영원한 곳임에 틀림없는지 알게될 것이다. “그들을 속인 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 속에 던져지니 그곳에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무궁토록 낮과 밤으로 고통을 받으리라(계20:10) 이 구절은 명백하게 우리에게 지옥의 유효기간에 관하여 알려준다. 지옥은 영원하고 무궁하다. 그보다 더 강하고 보다 확실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사람에게 지옥의 영원성을 전달하시고자 하셨다면, “영원무궁하다(forever and ever)”라는 표현 보다 더 좋은 표현으로 전달하실 수 있었겠는가?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시는 그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에” 계시록 4:9에 나온대로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존재성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바로 그 어구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영원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영원무궁하다” 보다 더 좋은 표현을 성경은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원동안 살아계실 것을 의심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동일한 표현이 두 존재를 위해서 사용되었을 때 영원까지 지옥이 존재할 것임을 당신이 의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서 다만 아주 조금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어림짐작을 돕기 위해서, 뜨거운 오븐이나 커다란 용광로 속에 던져진 당신 자신을 상상해보라, 거기서 당신의 고통은, 그 열기가 훨씬 더 하므로, 일시적으로 불에 달구어진 석탄을 만지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또한 당신의 몸이 15분동안, 완전한 불 속에, 누워있다고 상상해보라. 순간에 느껴지는 고통스런 감각; 그러한 용광로 입구에서 당신이 느끼는 고통! 그리고 그 15분이 당신에게 얼마나 길게 느껴지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일분을 견딘후, 나머지 14분을 더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밀려오는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곳에서 온전히 24시간을 그 고통을 더 견디며 누워있어야됨을 알게된다면 그것이 당신의 영혼에 어떤 파장을 미치겠는가!... 일년을 …천년을! 오, 그때, 만일 당신이 영원을 거기서 견뎌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의 심령은 얼마나 깊이 가라앉겠는가! 그리고 그 기간이 끝이 없다면! 수백만년이 흐르고 또 수백만년이 흘러도, 당신의 고통은 그것의 끝에 조금도 다가가지 않았고, 당신은 결코 거기서 해방될 수 없다! 그러나 지옥에서 당신의 고통은 지금 보여준 이 그림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심판의 위대한 날을 묘사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들과 의인들의 분리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신다: “그런즉 이들은 영원한 형벌로 쫒겨날 것이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천국이 영원히 존재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있는가? 천국에서 축복받은 자들의 생명이 어느날 끝이 나게될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의로운 자들의 영원한 생명과 악한 자들의 영원한 형벌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이 구절에서 동일한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지옥은 천국이 지속되는 동안 지속될 것이다. 지옥에는, 성경에서 수차례 지시된 대로 사람에따라 정해진 고통의 정도가 상이할 것이다. “또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하지 아니하였거나 자기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채찍을 많이 맞을 것이나 알지 못하고 채찍을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눅12:47-48)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24에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날에 소돔의 땅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의 이 구절은 가버나움에 있는 사람들이 심판의 날에 소돔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큰 형벌을 받을 것임을 가리켜준다. 누가복음의 말씀들은 각자가 받았던 빛의 양에 근거한 심판의 상이함을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채찍을 받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보다 덜 받을 것이다. 다른 자들보다 큰 죄들을 지었거나, 혹은 다른 자들보다 많은 죄들을 지은 자들은 지옥에서 보다 큰 형벌을 받을 것이다(요19:11).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인 종교적인 위선자들은 다른 자들보다 훨씬 가혹하게 형벌받을 것이다(마23:14-15). 주님께서는 이스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느니라 죽음 이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영혼절멸이라면 위에 말한 것들중 어떤 성경말씀이 진실일 수 있겠는가? 형벌이 실질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은 고통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능력이 먼저 존재할 때야 오직 의미를 갖는다. 유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오직 영혼의 절멸이었다면 그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겠다고 유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겠는가?

영혼의 절멸은 결코 형벌이 될 수 없다. 불신자가 죄를 짓는 매순간, 그는 지옥에서의 자신의 고통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빛을 받은 또 다른 자보다 두배의 죄를 지은 사람은 형벌도 두배로 받을 것이다. 죄인들이 예수님께로 회개하지 않고 지상에서 살고 숨쉬는 매일, 그들은 지옥에서의 자신들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 로마서 2:5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다만 너의 완악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밝히 드러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주 예수님께서는 땅에서보다 하늘에 보화를 쌓을 것을 의로운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악한 자들은 지속적으로 죄를 지음으로써 그들의 미래의 진노와 지옥에서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형벌을 날마다 늘리고 있다. 지옥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결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챨스 하돈 스펄젼은 말했다: “지옥에는 결코 소망이 없다. 그들은 심지어 죽음의 소망-사라진다는 소망도 없다. 그들은 영원히-영원히-영원히 잃어버린 자들이다! 지옥에서의 모든 사슬에, “영원”이라고 쓰여있다. 그곳의 불속에서, “영원”이라는 단어가 빛나고 있다. 자기 머리 위에서 그들은 “영원”이라 읽는다. 지옥이 “영원”하다는 생각에 그들의 눈은 쓰라리고, 그들의 마음은 고통스럽다. 오, 만일 지옥이 하루면 불에 다 탈 것이고, 잃어버린 자들이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가 오늘 말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생각 만으로도 지옥에서는 희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영원히” 바깥 어두움에 던져졌다.”

크리스토퍼 러브는 영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에게 이해시키기위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지상의 모든 산들이 모래로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것들이 천국에 닿을 때까지 더 많은 산들이 거기에 더해져야 한다. 그런데 한 작은 새가 매 천년동안에 한번씩 이 산의 모래 하나만 가져가야 한다. 모래더미가 다 없어지도록 모래를 가져가려면 셀 수 없는 세월들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이 시간은 끝이 있다; 만일 지옥이 이 시간보다 길지 않다면, 그것이 인간에게는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지옥에서의 인간은 불행하다; 그는 그곳에서 수백만년을 보낸 후에도 빠져 나올 희망이 결코 없다, 그때도, 여전히 그는 최초로 그곳에 던져질 때의 그이다; 왜냐하면 그의 고통들은 끝이 없이,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를 저주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위에서 우리는 지옥의 필요성을 살펴보았고, 왜 지옥과 같은 장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를 보았다. 이제 우리는 왜 지옥이 다만 존재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이 영원히 존재해야하는지를 볼 것이다.  

왜 지옥이 영원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는 이것에대한 몇가지 답변들이 있다.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첫 이유로 위에 언급된 크리스토퍼 러브의 말이 그중 하나이다. “지옥의 절대적 영원성은 하나님의 본성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가? 하나님의 본성이 영원한가?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그분의 행하신 일은 존귀하고 영화로우며 그분의 의는 영원히 지속되는도다(시111:3) “오직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벧전1:25)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면, 만일 하나님의 의로움이 영원하다면, 만일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시다면, 왜 그분의 진노는 역시 영원하면 안되는가? 영원히 실존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영원하고 불변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인 지옥은 반드시 영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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