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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90년의 시작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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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90년의 시작: BC457년

(The Beginning of the 490 years: 457BC)

 

BC536년에, 5만명의 유대인 추방자들은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명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그들의 도시는 폐허 상태였으나,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해서, 그 기초를 놓았으며 또한 자기들의 집을 건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에스라 1-4장에서 즉시 독자들의 주의를 사로잡는 한 가지는 에스라 4장이 오늘날 우리들을 위한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건축작업을 하는 동안 부딪쳤던 반대와 그들의 희망과 소망들을 무너뜨리려는 굳건한 노력들은 승리를 얻는데 있어서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확실히 사탄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도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던 한 백성과 성전을 경멸했다. 그의 전략들을 살펴보라.

 

1. 대적자들은 그 성전(진리)이 회복될 것이란 소식을 듣고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다.

2. 반대 계획의 제1 단계는 교묘히 농간을 부리고 그 진행 과정을 방해할 수 있도록 연합하는 척 한다(침투한다).

3. 중요한 주장 “우리도 너희가 하는 것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고, 또 우리도 동일한 희생물을 드린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는 현명하게 거절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들처럼 현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서 너무 많은 혼란을 가지게 된 주요 원인은 우리의 교회 안에 대적자 들을 받아들여 그들로부터 교리를 재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4. 만일 제 1 단계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반대운동은 2단계에 들어간다. 그것은 건축자들의 사기를 꺾고, 그들의 목적들을 좌절시키며, 그들을 낙담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반대의견을 내놓는 조언가들을 고용한다.

5. 제 3단계는 법률 제정을 위해 로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이 패역하고 나쁜 도시를 만들고 있다”, “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이스라엘을 비방하면서, 아닥사스다에게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방해하는 모함들을 글로 써 보냈다.

6. 일의 진척을 방해하기 위해서 정부에 로비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또한 모든 이전의 과오들을 캐내고 선전한다.

7. 마침내: 그 작업을 중단시키도록 한 법안이 통과된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메시지를 회복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대적하여 사용되어지는 전략과도 같다.

이제 다니엘 9장 25절에 예언된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정확한 날짜로서 BC457년에 관한 주제로 돌아가자.

 

다음은 간략한 약사(略史)이다:

 

고레스왕(Cyrus)은 BC536년에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허락했으나, BC530년에 고레스왕은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감비세스(Cambyses)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다시 거짓 스메르디스(False Smerdis)에의해 계승되었다. 스메르디스는 오직 육개월만 통치하였는데, 그 기간 동안 그의 군사들은 그 제국 주변의 수많은 신전들을 충분히 파괴시킬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던 중 이제까지 진행된 작업들 역시 이 기간에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학개2장 18절에 의하면 BC520년에 이스라엘인들이 그 성전의 기초를 놓음으로써 작업을 재개하였기 때문이다. 십중팔구 스메르디스의 법령 아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의 성전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모든 소망을 포기했을 것이다. 학개는 기록하기를, 그들이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믿으며 그 작업을 중단했으며, 그 성전이 “폐허” 상태였다고 말한다. BC522년, 한 호인 통치자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다시 모든 것을 제자리에 세웠다. 그의 지원과 학개의 격려로, 성전 건축은 재개된다. BC520-515년부터 그 작업은 진척되기 시작했고, 그 성전은 건축되었다.

 

근본적으로 BC536-457년부터 이스라엘인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정부, 도시 또는 확고히 경계가 정해진 도시를 갖추지 못한 채 다만 투쟁하는 백성 그룹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가가호호를 건축하였고, 한 성전을 간신히 건축하였다. 우리가 실제로 그들이 그 도시를 재건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은 BC464년 아닥사스다(Artaxerxes)왕이 왕위에 오를 때였다. 이스라엘인들이 “패역하고 나쁜 도시를 건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적들이 이스라엘인들을 중지시키는 법안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하였던 것도 바로 아닥사스다 통치 기간이었다.

 

다니엘 9장 25절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그 메시야이신 통치자에게 이를 때까지 칠 주간들이 있을 것이요, 또 육십 이주간들이 있을 것이라 그 거리와 그 성벽이 다시 건축되리니 곧 고난스러운 때들 중에 되리라”

 

따라서 우리는 에스라가 BC457년에 아닥사스다로부터 칙령을 받았다고 본다.(아닥사스다 7년에) 그 칙령은 그 성전을 건축하는 데 한층 도움을 주었으나,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자치 정부에 대한 권리도 주었다. BC457년경까지 유대에 있는 지도자들은 지방 장관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지역 문제들을 돌볼 수 있었으나, 사법적 또는 행정적 권위를 갖고 있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법률들을 집행할 수 있는 자기들만의 행정관들과 재판관들을 세울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한 국가로 인정받았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회복에 있어서 이 칙령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

 

이스라엘은 이 칙령을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한 칙령으로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다음을 읽어보자: “아닥사스다의 통치 기간에” 그들은(대적들) 아닥사스다왕에게 “그 성벽을 완성시키고, 그 기초들을 보수하고, 패역의 도시” 이스라엘을 재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대적들이 말하기를)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폭동 중에 세워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아닥사스다왕을 언급할 때, 나는 그것이 감비세스가 아니라 아닥사스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닥사스다왕은 다시 한 명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페르시아 국왕들의 명령들과 아주 상이한 것이었다. 마치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 것처럼, 그것은 우유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너희는 명령을 내려 이 사람들로 중단하게 하고 내가 별도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이 성읍이 건축되지 못하게 하라”

그는 그 이전에 자신이 내렸던 것과는 상반되는 명을 내리면서, 다만 그 일을 중단하라는 일시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 법으로부터 한 길을 허용해 준다.

이것은 아마도 BC456-454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즉 중동의 (서부) 구역을 관할하는 페르시아 총독, 메가비조스(Megabyzos)가 아닥사스다에게 모반하여, 백성들을 자기 세력으로 삼았다. 그것은 사마리아가 그 페르시아 군주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완전한 장비였고, 심지어 이스라엘과도 그랬다.

 

아닥사스다가 그 사마리아인들을 믿었는가? 그가 신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 지역은 반란 중이었고, 그는 모험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왕의 대답은 즉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커다란 승리가 되었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로 가서 그들로 하여금 강제로 중단하게 하였다.(에스라 4:23) 그들이 그 일을 막 시작하면서, 그들은 아마도 그 벽의 재건된 부분들을 부수었고, 몇몇 성문들을 불태웠다.(느1:3)

아닥사스다와 므가비조스는 화평을 맺었고, 모든 것이 다시 안정되었다. 이 때 가 느헤미야가 등장하였던 때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는 시도들이 전적으로 좌절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다. 그는 아닥사스다와 그에 관해 거듭해서 이야기했으며, 그 왕은 그에게 가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고 허락해주었다. 아닥사스다는 자신이 내린 “중지 명령”을 파기시키는 안을 받아들였고, 이제 그 반역은 끝났기에, 그는 BC444년에 다시 한 번 그 일이 진행되도록 허락해 주었다.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 때 그 성벽들이 성공적으로 놓여졌다. 다니엘 9장 24절은 그것들이 고난의 때에 재건되어질 것이라고 기록하였고, 그것들은 진정으로 고난을 당했다.

 

BC457년이 맞는 년도인가? 다니엘의 위대한 시간 예언의 시작점이 그 때인가?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에게는 수긍이 가는 이론이다. 483년 후에 메시야의 오심, 그리고 490년 예언의 마지막 주의 중반에 끊어져 없어지심, 희생예물 의식이 중단시키심 등 일련의 성취된 일들과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70주”를 위한 시작점은, 역사적 메시야적 해석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단9:25)이다. 69주 또는 483년 후에 우리는 그 통치자 메시야의 기름부음인, AD27년 즉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눅3:5) 15년 예수님의 침례 받으신 사건에 도달한다. 그 주의 중반 혹은 3년 반 후, AD31년에 메시야는 우리의 범죄함 들로 인하여(사53:8) 끊어져 없어짐을 당하신다. 그 후, 이스라엘에게 할당된 490년 끝(주후 34년 10월)에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임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기독교인들에 대적하는(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자기들의 공격을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난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보지 않으시고, 신실한 믿음 안에서 그분께 오는 누구나가 그분의 자녀들이다.)

 

BC457년에, 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사실이 그 날짜에 관한 정확성에 관한 의심들과 논쟁들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줄 수 있다. 각각의 국가들은 그 국왕들의 통치기간을 산정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사용했다.

 

에스라 7:7-8은 우리에게 그 칙령이 아닥사스다 1세의 제 7년에 반포되었다고 알려준다. 아닥사스다 1세의 제 7년은 상대적으로 458/457년이었음이 확실하다. (기원전 년도는 후진함을 기억하라.)

 

그것은 458년 가을에 아닥사스다왕 제 7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457년 여름까지 지속되었다.

 

몇몇 역사가들의 말에의하면 아닥사스다의 제 7년 기간은 BC458년 가을부터 BC457년 가을까지 또는 458/457년까지이다.

 

에스라는 팔레스틴으로 BC 457년에 돌아왔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에스라의 여정은 니산월에 시작하여 BC457년 아빕월에 끝났다.(에스라7:8-9) 따라서, 우리의 달력에 의하면, 에스라의 여행은 BC457년 4월부터 7월말까지 계속되었다.

 

아닥사스다 1세의 칙령은 BC457년의 초가을- 또는 늦 여름에 에스라가 팔레스틴에 도착한 이후로 발효되었다. 이것이 다니엘 9장 25-26절에 기록된 그 칙령의 “발표”였다.

 

그렇다, 일년 365와 1/4일로부터 새 달들과 더해지는 달들에 관한 수많은 논쟁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아닥사스다의 제 7년”이 BC 457년도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가?

 

역사가들은 역사상의 많은 것들을 우리가 인용할 수 있는 한 역사적 달력에 맞추기 위해서 비교한다. 보다 믿을만한 방식들중 하나는 이집트 달력과 프톨레미의 법규 또는 역사 기록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달력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의 해에 정확하게 365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 달력이 별들의 것을 앞섰다 해도 걱정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이삭 뉴튼 경(Sir Isaac Newton)은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을 연구하였고, 에스라가 BC457년에 예루살렘으로 아닥사스다의 칙령을 가져갔다고 결론내렸다. 이것은 1701년 킹 제임스 역본의 난외 주석에 들어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정확성에 의심을 품지만, 그러나 그 날짜에 증거를 더해주는 것으로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책들에 열거된 사건들과 장소들과 사람들에 대한 수없이 많은 세부사항들이 있다.

만일 가브리엘이 직접 예수님께서 483년 후에 정확하게 기름부음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 칙령이 456, 457, 또는 458년에 나왔는지 아닌지 내가 누구와 논쟁하겠는가? 단지 그 이유는 내가 그것을 정확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수학적 기술을 가지고 않기 때문이다. 이 490년 예언이 아닥사스다가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지상에 그분의 사역을 성취시키러 오실 때까지 그 기간이라고 믿기 원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그렇다, 나는 메시야 그 통치자(the Messiah the Prince)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the Messiah Jesus Christ)이심을 믿는다! 메시야는 가증한 것을 세우지 않으셨고, 이스라엘이 계속 동물 제사를 함으로 그 짓을 했다. 이스라엘인들은 한 선택을 했으며, 그들이 가이사 외에는 그들에게 왕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진정한 메시야 대신에 또 다른 통치자를 영접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 예수님을 못박아 버렸고, 자기들을 파괴시킬 로마에게로 자신들을 돌이켰다.

다니엘 9장은 지상 성전이 숭배의 중심이었을 때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다니엘 8장과 7장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이야기이며 그분의 성전 사역의 이야기이지만, 이제 그것은 하늘에 있다. 그것은 계속해서 또한 다른 통치자의 성장에 관하여 비유할 수 있다---교황청 로마로 등장하는 로마, 진정한 성전을 반대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기독교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은 로마이다. 교황권 로마는 하늘에 계신 그 통치자를 대적하여 높아졌고, 천국 성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면죄부, 고해성사, 성체와 고해와 같은 자기의 시스템으로 대체시켰다. 교황청 로마는 스스로를 만군의 통치자에게까지 높이 올렸고, 영원한 대제사장 사역을 그분으로부터 빼앗고자 노력하며 진리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옳다, 이 거짓 시스템은 7장에서 그려진 대로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분의 대제사장이 계시며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며, 그것은 예수님을 통한 길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중보자가 계시며 그분은 예수님이시다(지상의 제사장들과 마리아의 허상들, 그리고 죽은 성인들은 우리의 중보자들이 결코 아니며,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심판 때 그 성도들(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자들, 계14:12)은 신원될 것이다. 심판은 성도들을 위하여 행해졌다. 그러나 그 짐승과 그의 표를 가진 자들은 파멸될 것이다. 그 심판 메시지는 침례 요한의 것과 같은 메시지이다 - 하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그것이 에스겔 18:30-32절의 메시지이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심판하리니 각기 자기 행위들대로 하리라 회개하라 너희 모든 허물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돌이키라 그리하면 죄악이 너희의 패망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범죄한 너희의 모든 허물들을 너희로부터 던져버리고 너희를 위하여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가지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어찌하여 너희는 죽으려 하느냐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죽는 자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돌이키라 그리하면 너희는 살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책을 통해서 BC457년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명확해지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사역에 반대하는 일이 이 세상에 있어서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리가 권해질 때마다, 우리는 많은 도비야, 산발랏 그리고 게셈과 같이 반대하고 좌절시키고자 하는 자들을 만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말로 우리에게 조언할 많은 엘리아쉬드와 스마야가 우리 회중들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메시지는 주님에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전진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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