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성경공부

좋은 땅에 떨어진 좋은 씨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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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예수님께서 그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니라 큰 무리들이 주님에게로 더불어 모여들므로 주님께서 한 배 안으로 들어가서 앉으시니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라 주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비유들로 말씀하시기를 보라 한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씨를 뿌렸더니 어떤 씨들은 길 가에 떨어지므로 새들이 와서 그것들을 삼켜버렸고 또 어떤 씨들은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들이 나오나 해가 솟아오르자 시들어 버렸고 뿌리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말라버렸고 또 어떤 씨들은 가시덤불들 사이에 떨어지니 그 가시덤불이 돋아나 그것들을 질식시켰고 또 다른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지니 어떤 것은 일백 배로 어떤 것은 육십 배로 어떤 것은 삼십 배로 열매를 맺었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더라”(마13:1-9)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마13:18)라고 하셨고 또한 그 씨가 심겨진 사람들을 왕국의 자녀들(마13:38)이라고 하셨다. 농부가 ‘씨’를 심는 것은 풍성한 결실을 바라보고 심는 것이다. 농부의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밭에 심어진 곡식이 가을에 풍성한 소출을 내는데 있다. 예수님은 성경에 하나님을 농부라고(요15:1-2) 표현하셨고, 역사의 가을에 곡식이 익어 추수의 낫을 대신다고 표현하셨으며(계14:14-20) 또한 여섯 남편을 소유했으면서도 영혼에 평안이 없었던 여인에게 그리스도 자신을 알려주시어 평안을 얻게 하신 후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요4:35)고도 표현하셨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을 ‘한 알의 씨앗’(요12:24)으로 비유하셔서 한 알의 씨앗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많은 열매들(구원얻은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씨앗이 역사의 중심에 세상 중앙 땅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한 씨앗으로 심어져 예루살렘에서부터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계속하여 생명의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 씨는 뿌려져 싹이 나고 자라 어느날 대 수확을 거둘 것이다.

 

“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왕국은 이와 같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토지에 씨(seed)를 뿌려놓고 밤낮으로 자고 일어나고 하는 중에 그 씨는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그 사람이 모른 것과 같으니라 이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니 처음에는 싹이 나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이후에는 이삭 안에 곡식이 채워짐이라 그러나 열매가 맺으면 그가 즉시 낫을 내나니 이는 추수 때가 왔음이라 하시니라”(막4:26-29)

 

참으로 성경은 인류 역사라는 밭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밭에 예수 그리스도이신 생명의 씨를 심고 추수하고 그러는 중에 가라지도 덧뿌리기도 하면서 열매를 맺어가다가 어느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알곡은 모아 곡간(천국)에 그리고 죽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 호수 지옥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라고 기록되었다.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심오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좋은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생명인 좋은 씨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온 지면에 있는 씨맺는 모든 채소와 속에 씨를 맺는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나니 그것이 너희에게 양식이 되리라”(창1:29)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고 현미식을 권유한다. 필자 또한 이 사실을 알기에 수년간 현미식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씨는 생명이다. 살아있는 씨는 생명 그 자체이기에 ‘생명되는 씨’에 온갖 영양분이 모아져 있는 것이다. 모든 곡식들, 나무들, 과일들, 채소들 중에 가을에 찬바람이 나고 서리가 오면 그것들이 무섭게 푸르르던 여름철의 왕성한 모습은 자취를 감초고 누렇게 변색되어 말라죽어 버리고 불아궁이에 태워져 버린다. 왜냐면 그것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은 ‘씨’에게는 생명이 있어 결코 죽지 않는다. 적당한 온도에 좋은 땅에 떨어져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씨는 곧 싹을 내고 또 다시 푸르른 후에 또 다른 후손 씨앗들을 낸다. 이것을 생명의 지속운동 또는 생명의 반복 활동 이라 부를 수 있다. 씨앗 속에는 온갖 영양분이 들어있다. 단백질, 풍부한 비타민, 아미노산 등 우리 몸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들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 씨앗들을 날 것으로 또는 화식으로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즉 생명의 씨앗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말의 뜻은 ‘좋은 씨’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요, 죽은 씨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좋은 씨는 어디 있는가?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많은 사람들을 가리켜 씨들 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을 가리켜 너의 씨(thy seed)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씨는 곧 그리스도시니라”(갈4:16)

 

아담은 처음부터 살아있는 ‘씨’는 아니였다. 그가 비록 범죄하기 이전이였을지라도 생명을 주는 산 씨는 아니였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씨는 반드시 산 생명을 낳는다. 아담은 처음부터 흙으로 만들어 진 자로서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씨앗은 아니였고, 단지 산 혼(a living soul)이 되었을 뿐이다(고전15:45). 그러나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a quickening spirit, 고전15:45)이신 것이다.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지 못할뿐더러 그냥 ‘산 혼’으로 있다가 그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범죄하고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은 혼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죽은 씨앗은 죽은 열매를 양산할 뿐이기에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범죄가 들어오고 동시에 사망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롬5:12). 아담이 죽은 씨앗이 되어 그 사망으로 오염된 씨앗을 심고 심어 죽음이 필연적인 열매들을 맺어왔을 뿐이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여 진 것이요”(히9:27) 사망이 사망을 낳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을 ‘죽은 자’(요5:25, 눅9:60) 들이라고 하셨고 바울은 그들을 또한 자연인(natural man)이라고 비유하고 있다(고전2:14). 그 죽은 씨는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하고 애쓴다 하여도 스스로는 생명을 맺거나 창조할 수 없다. 그러나 아담 이래 오늘까지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얻어보려고 온갖 방법을 통원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종교를 창출하고 철학을 산출하였고 결국은 자포자기 상태의 멸망의 과학물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즉 죽은 자들로부터 죽은 것들만 나왔을 뿐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 온 역사요, 검은 피부를 스스로 희게 해보려는 헛된 노력(렘2:22)의 역사요 스스로 수치를 덮어보려는 헛된 역사의 되풀이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들은 죽은 씨앗의 후손으로 죽고 죽어가고 있고 영혼까지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죽음의 조상 아담이 아닌 참으로 살아있는 생명의 구주 산 씨앗이 필요한 것이였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씨앗

 

  ‘죄의 삯인 사망(롬6:23)’은 하나님의 법칙이며 공의의 원칙이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마치 식물이 태양을 등지는 것과 같고 우주인의 모선과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 끊어진 상태와 같다. 진정한 죽음이란 생명되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림받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죄인은 결코 살아있는 씨앗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담이 아닌 새로운 씨앗이 필요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요1:1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시다(요일3:5). 그러므로 그분 예수님은 살아있는 생명이시며 씨앗이신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으로 가는 곳마다 죽은 자를 살려주셨다.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려주셨고(요11:44),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그외에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들도 많이 살려주셨을 것이다. 모든 질병은 죽음의 시작이며, 진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질병이든지 모두 고쳐주셨다. 그분 자신은 질병이 없으신 분이다. 오직 살려주시는 생명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그 속에 생명이 있으시며 모든 죽은 자들을 살려주실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럴지라도 살아있는 씨앗 자체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또 다른 생명의 열매를 결실할 수가 없다. 때문에 예수님은 진정한 생명의 증명으로 열매를 맺기위해 산 씨앗이 심어져야 하셨다. 세상 중앙 땅 골고다에 그리고 역사의 한 중간에 이스라엘 땅에 심어 지셨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진정한 생명의 증식이시다. 왜냐하면 산 씨앗이 죽는다면 그것은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았다 하는 의미는 죽음과 상관이 없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죽으심으로 새로운 구원의 열매가 열 두 사도 120명 3천명, 5천명 열매를 맺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산 씨앗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의 활동이 되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만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살아있는 씨 말씀

 

이제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오셔서 기록된 말씀으로 산 씨앗이 되셨다.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가 다시 육신이 말씀이 되셨다. 그 말씀은 기록된 성경에 산 씨앗으로 살아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씨앗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히4:12)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벧전1:23)이 오늘날 살아있는 ‘씨앗’인 것이다. 유사 씨앗들이 아무리 많다할지라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KJVB 말씀은 오염되지 않고 곰팡이가 없고 손상되지 않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언제든지 좋은 밭에 심어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내실 수 있는 참으로 “좋은 씨”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왕성하고 번성하니라”(행12:24)

 

말씀은 검(눅2:35)으로 심령을 찔러 쪼개고 죽이기도 하고 골수까지 찔러 쪼개는 날카로운 검이라고 한다. 거만한 심령을 어찌할꼬? 애통하게 하는 검(행2:37)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는 능력있는 기록된 말씀(눅24:32)은 죄인을 찔러 회개케 하시고 죄 때문에 애통하는 영혼에게는 복음의 생명수(시107:20)가 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살릴 자는 살려주시는 말씀은 확실히 살아있는 씨앗이며 사단도 무서워하는 무기(마4:1-12)이며 적그리스도와 사단까지도 머리를 깨버리는 날서고 이한 검(계19:15)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씨’인 것이다.

 

좋은 땅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세아 10:12)

 

‘좋은 씨’와 ‘좋은 땅’ 그것은 상호관계에 있어 절대적이다. 아무리 좋은 씨가 있어도 좋은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결실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좋은 땅이 있어도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면 또한 독보리나 가라지를 얻을 뿐 알곡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다. 좋은 씨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좋은 땅은 사람이 준비해야하는 것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러하겠다. 좋은 땅이란 어떤 땅인가? 잡초가 제거되고 주변에 불필요한 수목이 뽑혀져야 한다. 다음에 곡괭이로 돌맹이가 파헤쳐져 제거되어야 하고 뭉쳐지고 굳어진 흙덩이들이 깨어지고 부스러져 높고 낮은 곳이 평평하게 되고 발바닥을 거치던 덩어리들이 곱게 부수어져 맨발로 밟아도 솜털같이 부드러워진 땅을 좋은 땅이라고 한다. 그 땅에는 잡초의 뿌리가 숨겨져 있어도 아니되고 죽은 나무의 잘린 뿌리들까지 흙속에 숨겨져 있어서는 아니되며 깊숙히 팔수록 부드러운 흙으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하늘에서 내린 비를 흡수하여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땅은 참으로 좋은 씨를 기다리는 밭인 것이다.

 

오랜 종교의 잡초, 유전의 불필요한 초목들, 깊히 숨겨져 있는 교리들, 철학들과 세속욕망의 돌맹이들이 찔리는 말씀의 곡괭이들에의해 뿌리채 뽑혀지고 자만과 자아와 고집, 그리고 의심과 불신앙등의 덩어리들이 부숴지고 으깨져서 고운 가루로 부숴졌을 때 영혼이 목마르게 되고 의에 주린 자가 되며(마5:6) 목마른 영혼이 생수를 기다리는 심령이 되는 것이다. 세리가 좋은 땅이 되어 좋은 씨앗을 받고 생명을 얻었으며(눅18:13-17),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5)는 말씀을 듣고 삼일간을 식음을 전폐하고 심령이 여름낮에 눈같이 녹아내려 곤고한 심령이 되어진 좋은 땅이 된 사도 바울 심령에 생명의 씨앗이 심겨져 결실하였고, 율법사요, 교사요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의회원으로 잡초와 율법의 뿌리들과 자존심의 돌맹이들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타인의 눈초리가 무서워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네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느니라”(요3:7)는 말씀의 곡괭이에 그 돌맹이들이 산산 조각나기 시작하고 좋은 땅이 되어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과 침향을 백근이나 가져온 좋은 땅이 되었으며, 헬라 이방인이면서도 자존심의 돌맹이를 가슴에 숨겨두고 감히 ‘주여’라고 불렀던 여인에게 “자녀의 빵을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마15:26)는 주님의 말씀의 쇠망치에 두들겨맞고 거만의 얼굴을 숙여 내리고 쓰린 마음이 되어 처량한 개같은 자신으로 내려앉았을 때에, 가련하고 불쌍하고 처량한 갈아진 좋은 땅으로 돌아섰을 때에 “네 믿음대로 되리라”(마15:28)는 생명의 씨앗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탕자가 집 떠날 때의 굳은 심령의 땅에 이방인나라 돼지 치는 자 옆에서 굶주리며 헐벗었을 때 그의 굳은 흙덩이들은 부숴지고 갈아져 주인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좋은 땅이 되었고,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눅15:18) 그 갈아진 심령에 “내 아들은 잃었다가 얻었고 죽었다가 살았도다”(눅15:24)라는 말씀으로 산 생명을 받았으며 항상 외롭고 고독했던 삭개오의 갈아진 좋은 땅에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눅19:1-10)라는 좋은 씨가 떨어져 생명을 받은 사실이 있다.

 

  좋은 씨,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준비된 좋은 씨 그것은 살아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좋은 땅, 그것은 죄 때문에 곤고하고 가련한 심령으로 통회하는 마음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리요”(롬7:24)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선생들이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16:30)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눅5:8)

자기의 죄에 애통하는 심령-좋은 씨를 심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좋은 땅도 농부가 만든다

 

잡초가 우거진 수목과 뿌리들이 심겨져 있고 돌맹이들과 굳어져있는 흙덩이들은 비를 주어도 흡수하려 들지 않고 씨를 뿌려도 받아들이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농부의 뜻에 저항하고 눙부를 피곤케한다. 흙 깊숙히 숨겨져 있는 돌맹이는 옹고집을 의미한다. 좀처럼 꺽이려 들지 않는 옹고집과 자아, 자존심등 그래서 지혜로운 농부는 그런 땅에 좋은 씨를 허비하지 않는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줄 수는 없다. 높은 지역에 물은 흐르지 않는 법이다. 태양은 등돌린 식물까지 찾아가서까지 비추이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서 좋은 씨는 준비되어 있는데 좋은 땅이 없을 때 농부는 기필코 그것을 파고, 뽑아내고 뒤집고 깨고 뭉개고 으깨서 부스러기와 부드러운 고운 흙으로 만들어 좋은 땅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 돌이 튀기고, 흙덩이가 튀기고, 풀뿌리 나무 뿌리 엉겅퀴들이 농부를 찌르고 때리며 때로는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럴지라도 결국에는 농부의 뜻대로 좋은 땅으로 만들어져 좋은 씨를 받을 준비가 된다.

 

  하나님은 농부이시다. 예수님은 농부이시다. 성령님은 농부이시다. 말씀은 돌맹이와 흙덩이를 부수는 쇠망치이며 동시에 농부이시다. 듣고 또 읽고 듣고 또 읽고 하는 과정에 좋은 땅이 되면 그 부드러운 심령에 성령님의 단비가 내리고 그 좋은 땅은 종용히 그 비를 흡수하여 좋은 씨 하나님의 복음을 받고 싹을 내어 결실하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수양회는 영혼의 농사짓는 기간이다. 좋은 씨는 넘치건만 좋은 땅이 없는 시대에 갈아진 심령으로 복음을 듣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이래서 은혜이며 선물이다. 영생은 은혜로 얻는 것이다. 생명의 씨앗을 받은 자들은 알곡으로 하늘 곡간에서 재회할 것이다.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후에 그분을 신뢰하였으며 또한 믿은 후에 거룩하신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 이는 우리의 상속에 보증이 되셔서 값주고 사신 그 소유물을 구속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3-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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