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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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심판석(The Judgment Seat of Christ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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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심판석(The Judgment Seat of Christ)
작성자 페리 락우드  ip 주소 221.154.189.24  
조회수: 45 작성일 2007-02-14 12:49:26  
파일명 070213_그리스도의_심판대_락우드.pdf  파일크기: 342974 byt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Perry F. Rockood-

1. 구원과 행함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받을 사람들의 행위를 분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인간과 관련된 심판은 마지막 날에 단지 하나의 일반적인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가지의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종류의 심판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귀나 천사에 대한 심판이 있고 인간에게 해당하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죄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심판은 이미 과거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죄는 이미 골고다 상의 나무의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되어졌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그분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오히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도 같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친히 골고다 상의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구원얻은 자들의 자신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는 항상 현재에 대한 심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11:31)
이는 우리 자신들의 삶속에서 죄를 직면할 때 주의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 일서 1장 8-9절에는 우리가 해야 할 바가 나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 말하면 우리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함이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한일서 1:8-9)

셋째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개인적으로 행한 일을 대한 심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심판은 미래에 곧 일어날 심판입니다.

넷째는 모든 민족들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도 또한 미래에 일어날 최종적인 (크고 흰 보좌)심판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그때에 그가 자기 영광의 보좌 위에 앉으리니 그가 모든 민족을 자기 앞에 모으고 마치 한 목자가 자기 양들을 염소들로부터 갈라놓은 것같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아서 그가 양들은 그의 오른편에, 염소들은 왼 편에 두리라. 그때에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그 왕국을 상속받으라.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고 또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문안하였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찾아왔음이라, 하리라. 이에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니, 어느 때에 우리가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나이까? 또 어느 때에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어느 때에 우리가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나이까? 또 어느 때에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나이까? 또 어느 때에 우리가 주님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복 찾아뵈었나이까? 하리니 그리하면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 하리라. 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로부터 떠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어떤 사람들은 이 심판이 일반적인 심판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전 세계의 모든 민족들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심판을 총칭한 크고 희 보좌(백보좌) 삼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모든 사람들이 심판받기 위해 세워질 것이며 그 후에는 영원한 불 호수 속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내가 한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분의 얼굴로부터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을 위한 처소도 보이지 아니하리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있는데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들의 행위들에 따라 책들 속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고 또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 속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 안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호수 속에 던져지더라.”(계 20:11-15)

성경에서 우리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두 가지 심판과 거듭난 사람들 위한 세 가지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위한 것 중 하나(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는 이미 지나갔고(*이 심판을 그리스도와 함께 받은 자는 더 이상의 지옥에 대한 심판은 없음), 하나는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일어나며 하나는 미래에 일어납니다. 미래의 심판은 로마서 14장 10절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되리라.”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니, 이 믿음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엡 2:8-9)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들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긍휼하심에 따라 새 출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며”(딛 3:5)

구원은 사람의 어떠한 행위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장 1절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죽은 행실”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행실이 죽은 것이라면 그 삶은 죽은 것이며 하나님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얻기 위해 우리 모든 인간은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 기도를 많이 하거나 주기도문을 외우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세례명을 받거나 침례를 받거나 교회당에 열심히 나가면, 또는 주의 만찬예식에 참여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와 좋은 행실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교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예식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우리의 최선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다 무엇인가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종교일 뿐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는 될 수 없습니다.

2. 구원과 보상

죄인의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다음 그리스도의 행위는 그 보상이 아주 철저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그 보상의 자리를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밝히 드러나고 , 그 불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 시험할 것이니라.”(고전 3:13)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첫 번째는 구원을 위해서,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날마다 그 분 앞에 섭니다. 세 번째는 성도의 부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 심판석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분 앞에 선다는 것은 주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것이며 각인이 행한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보상 자이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 불가능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그분께서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느 날 구원 이후의 그들의 행실에 따라 보상을 받기도 하고 잃기도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이니라.”(고전 3:8)
“이는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줄을 아나니 너희가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4)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위에 따라 주리라.”(계 22:12)

주님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그 때가 밤이 될지 낮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등불 밝혀 기다리는 나를 아실까?

이른 아침 새벽이라면
주님 나를 조용히 부르시겠지
맡겨두신 달란트를 찾으실 때
그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꼬?

일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1. 보상은 은밀한 헌신 안에서 주님에게 충실한 자들에게 베풀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드러나게 보상하시리라.”(마 6:6)
주님은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기도를 통해 그분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일들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 주님께 헌신하는 시간은 너무도 적습 니다.

2. 하나님의 보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그 분의 뜻에 따르는데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들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고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말고 빌려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들이 되리라. 이는 주님께서는 감사할 줄을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3. 우리 마음의 태도가 보상을 결정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아니할 것이요. 정죄하시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정죄받지 아니할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를 받으리라.”(눅 6:37)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중요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아주 좋지 못한 점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혹평하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의 주님을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갈 때나 만찬에 참여할 때 자신을 살펴보라고 했지 남을 헐뜯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4. 거듭난 이후 우리가 주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은 보상이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어 마시게 하는 자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결코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모든 기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5. 보상은 우리의 진실과 행위의 능력에 따라 다른 등급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심은 대로 거두지만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위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본래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열매의 보상을 얻기 위해 좋은 씨를 뿌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씨앗을 뿌려라.
해가 쨍쨍 내리는 한 낮을 지나 이슬 촉ㅊ폭한 저녁에도 뿌려라.
오랜 성숙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린다면
기쁨으로 열매를 얻으리라

가서 주인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려라
잃어진 씨앗이 우리의 영혼을 슬프게 할지라도
우리의 눈물이 끝나는 날
주님 우리를 맞이하고
기쁨으로 열매를 얻으리라

6.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의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복되도다, 인자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그들의 무리에서 너희를 소외시키고 너희를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림받은 너희여, 그날에 너희는 기뻐하며 그 기쁨으로 인하여 뛰놀지니 이는, 보라, 너희의 상급이 하늘에서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도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2-23)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의 고난을 이겨내고 있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통속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확실하게 세상과 분리되어서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님을 위해 산다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상급을 위해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얼마나 진실 된지 궁금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와 같은 말을 했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받으면서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요 5:44)

이런 사람들은 분명히 사람의 영광은 얻고 싶어 했으나 하나님의 영광은 얻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심판석에서 상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주는 영광은 기뻐하면서 받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상을 업신여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업신여기는 것이나 같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그의 상을 내리는데 있어서 아주 공평하십니다. 우리의 행위만을 보시는 것은 아니고 그 섬김의 목적과 동기를 보십니다.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교회나 우리 종파의 발전을 위해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름이 유명해지기를 바라면서 일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6장 1절을 살펴봅시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자신을 베풀지 아니하게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로부터 너희 보상이 없느니라.”(마 6:1)
“그러므로 그 때가 이르기 전, 곧 주님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을 빛으로 비추시고, 마음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리니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각 사람이 칭찬을 받으리라.”(고전 4:5)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분명히 예수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는 신선한 “자극”입니다. 우리 모두 칭찬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그 날을 기다립시다.

3. 상급의 자리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오심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우리 몸으로 행한 행동을 모두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게 되어, 그것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받으리라.”(고후 5:10)

이는 주님이 그분의 교회를 데리러 오실 때 반드시 행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복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으므로 의인들의 부활 때에나 네게 갚게 되리라, 하시니라.”(눅 14:14)
“이는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서 남아있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뵙게 되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이제 심는 자와 물주는 자는 하나이니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경작지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나니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웠느니라. 그러나 각 사람은 그 위에 어떻게 세울 지를 주의할지니라. 이는 이미 닦아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제 만일 어떤 사람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들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이 기초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밝히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 시험할 것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일하여 그 위에 세운 것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일한 것이 불타버리면, 그는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에 의해서 얻은 것과 같으리라.”(고전 3:8-15)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반드시 거듭난 사람들만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없이 천국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으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선하게 살았고 최선을 다했고 또 많은 종교 활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천국으로 절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본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이미 닦아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3:11)

우리가 한번 구원받으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용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보상”이라는 의미의 “BEMA”에서 나온 말입니다.
올림픽 경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기를 할 때 채점하는 심판자들을 위한 자리가 항상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자가 발표되면 그들은 경쟁자를 이긴 영광의 승리에 대한 상을 줄 심판관 앞으로 행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 설 곳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신 곳입니다. 거기는 속죄의 보좌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구원받은 이후 자신의 삶을 그분 앞에서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주의하며 자세히 살펴서 미련한 자같이 행하지 말고 현명한 자같이 행하며, 시간을 아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라.”(엡 5:15-16)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이니라.”(고전 3:8)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의 자리는 모든 믿는 자들이 그들의 몸으로 행한 모든 일을 주님 앞에서 말해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줄을 아나니 너희가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그 악에 대하여 보응을 받으리니, 거기에는 사람들을 편애함으로 보는 일이 없느니라.”(골 3:24-25)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저가 비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만 합니다(요일 1:7).

빛 가운데로 걸으라
그리하면 당신을 알 수 있으리
오직 빛 가운데 계신 주님만이
사랑의 사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빛 가운데로 걸으라.
그리하면 당신은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으리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이
당신의 더러움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을

빛 가운데로 걸으라.
비록 당신의 길이 가시덤불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은 그대 안에 머무를 것이다.
하나님 그 분이 바로 빛이기 때문에

고린도 전서 3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전혀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보상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구원받은 사실만 알았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영적인 성장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와 같이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그들의 생각은 매우 편협 적이고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상태에 많이 머물러 있습니다.(히 5:13-14)

다음은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터 위에 무엇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주님 앞에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봐야만 합니다.

2.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모든 구원받은 사람은 이 터 위에 생명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말하는 모든 것이 이 터 위에 건축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세웠던 그 건축물은 어느 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평가받을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건축 재료는 두 분류로 나누어집니다. 그것은 불에 타지 않는 금과 은과 각종 보석이 있고 불에 타 없어지는 나무와 풀과 짚이 있습니다. 두 재료의 차이점은 임시적인 것과 영구적이라는 차이점입니다.

금(金)은 그리스도의 전지, 전능하심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를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반드시 그 분의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은(銀)은 속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속전을 은으로 지불했습니다. 20살이 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영혼을 속죄하는 뜻으로 은(銀)을 지불했습니다(출 30:12-16). 우리의 삶은 속죄 이후 이 영광스런 사실을 공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충실한 그의 백성을 “그의 보석”이라고 불렀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마련하는 그날에 그들은 나의 것이 될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 자신의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라.”(말 3:17)

위와 반대로 믿는 자들이 나무, 풀, 짚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재료들은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만약 나무, 풀, 짚과 같은 재료로 세웠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들인 많은 노력이 그날에 태워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영원한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그리스도 심판석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각각의 우리의 행한 일이 나타나기 때문에(고전 3:13) 우리의 행위가 심판되고 우리 삶의 동기가 밝혀집니다.

5.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서있지만 우리의 보상은우리가 지금 세우고 있는 건축물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일하여 그 위에 세운 것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고전 3:14)

6. 그리스도의 영광 외의 자신의 이득이나 자신의 이름을 위한 행위는 모두 불살라질 것입니다. 자신이나 교회나 자신의 종파의 영광을 위해 했던 모든 것도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아주 소수만이 참으로 영광 받으실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4. 면류관과 상(常)

“경기장에서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도 상을 받도록 달리라. 이기려고 힘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월계관을 받으려니와 우리는 썩지 아니할 왕관을 받고자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방향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노라.”(고전 9:24-27)

“버림이 되다”라는 말의 뜻은 “거절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접을 주님이 받아들이지 않으실까 염려를 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심각하게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일하여 그 위에 세운 것이 남아 있다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고전 3:14)

일 한 것이 그대로 있는 자들이 받을 면류관은 5종류가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1. 달리는 자를 위한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전 9:24-27절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썩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삶의 경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영원한 목표에 눈을 맞추고 달려온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절제와 자기 조절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가 그러한 삶을 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낙담하게 되고 뒤를 돌아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2. 야고보서 1장 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복되도다 시험을 견디는 자여. 그가 시련을 이겨낸 후에,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해놓으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 이 면류관은 삶의 유혹을 참고 이겨낸 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들에게도 약속된 것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그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너는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열정을 가지고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과연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3. 양 무리의 목자나 목사에게 주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도 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한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나게 될 영광에 참여할 자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보살피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너희에게 맡겨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5:1-4)

4. 딤후 4장 7-8절에는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었으므로,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실 것이니라.”

사도바울은 이제 그가 이 땅에서 그의 생명이 다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에게 이 축복된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8절)


그리스도의 오심
Alfred J. Strum

바위들이 거칠고 가파른 아주 오래된 산에 올랐습니다.
그림자 깊은 곳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촛불과도 같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새벽을 깨우는 자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날이 가까이 왔다고.

그리하여 나는 여명의 날이 빠르게 물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마누엘 얼굴에 서려 있는 회색빛 그림자가 물러가는 것처럼.
나는 싸움을 향해 서두르며 민족들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힘 센 주인이 아마겟돈을 준비 하였구나
나는 혼인 잔치로 올라오라는 초청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멀리서 새신랑의 황금마차를 보았습니다.
붉은 날개를 동쪽으로 밝히며
오, 시온산의 성벽의 야경꾼들이 크게 떠들고 노래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주여!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임마누엘 우리의 왕이십니까?”

나는 죄악 된 세상과의 싸움으로 지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는 영원한 날을 기다리며 나는 긴 한숨을 또다시 내쉽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가장 슬플 때 나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노래할 것입니다.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나의 왕이시여!”

5. 승리한 영혼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을 너희가 아니냐? 이는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니라.”(살전 2:19-20)

바울은 주님을 위해 얻은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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