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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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세우셨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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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시 33:22).

이제 창조주로서의 지위에서 자연히 발생되는 측면을 살펴보겠다. 왜냐하면 창조하신 자는 지도하고 및 다스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장 22-23절에서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다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대리하여 창조하신 것처럼 아버지를 대리하여 율법을 세우고 집행하신다. 몇 구절의 성경 말씀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줄 믿는다. 민수기 21장 4-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에 일어난 사건의 그 일부를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을 읽어보자.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 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면서 왜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했느냐고 말했다. 그들의 지도자에게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 이런 행위 때문에 뱀에 물려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제 이 사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을 읽어보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이 말씀은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그들이 원망했던 인도자는 바로 그리스도였다. 이것은 모세가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기를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운명을 같이 했을 때에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보화로 여겼다는 사실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히 11:26).

고린도 전서 10장 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조상들이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던 인도자이셨다.

히브리서 3장에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하시기를 사환으로서가 아니고 그의 집맡은 아들로서 하였다(1-6). 이어서 말하기를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지키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권고하시기를 그의 음성을 듣고 조상들이 광야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그리스도).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게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히 3:14-17).

여기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십년간 유리 표박할 때에 그리스도를 그들의 인도자와 사령관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여호수아 5장 13-15절에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근처에서 손에 칼을 빼어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여호수아가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물었을 때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리스도께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인도자가 되셨다는 것을 아무도 논박하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보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으나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 모세더러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이제 출애굽기 20장 1-3절로 읽어보자.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누가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던 분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의 지도자는 누구였는가? 그리스도이셨다. 그러면 누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말씀하셨는가? 그리스도이셨다. 그는 바로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며 하나님을 인간에게 보여 주신 분이었다. 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모든 심판을 위임받은 분이시다.

 

이 점을 다른 방법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호령(살전 4:16).으로 무덤을 꿰뚫어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실 것이다(요 5:28,29). “여호와께서 높은데서 부르시며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시며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 세상 모든 거민을 대하여 포도 밟는 자같이 외치시리니 요란한 소리가 땅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5:30,31).

이 말씀을 계시록 19장 11-21절과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늘 군대 장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아가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며 모든 악인들을 멸하실 것인데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의 처소에서 세상 모든 거민들을 향하여 외치며 열국과 다투시는 자가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다. 선지자 요엘은 여기에 덧붙여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욜 3:16).

다른 성경 구절을 좀더 들수 있지만 생략하고 이상과 같은 성경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하려고 오실 때에 하늘과 땅을 진동하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같이 흔들리며 …”(사 24:20).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벧후 3:10). 이제 히브리서 12장 25,26절을 보도록 하자.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땅에서 말하신 자의 음성이 땅을 진동시켰던 때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다(출 19:18-20; 히 12:18-20). 그 두려웁기가 전례에 찾아볼 수 없고 앞으로도 주께서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같이 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까지 없을 그런 사건이었다. 그러나 꼭 알아 두어야 할 점은 당시 땅을 진동시켰던 그 음성이 장차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열국과 다투실 때에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만큼 내는 큰 소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실 때에도 들린 음성은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며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자연히 내릴 수 있는 결론에 불과하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점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며 또 창조주시요 율법을 세우신 자라는 사실은 구속의 경륜에 나타난 유일한 능력이 된다. 이것만이 구속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었다(벧전 3:18). 그러나 만일 일점이라도 부족하여 하나님과 동등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를 하나님에게 인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다만 인간적인 제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만일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지성적인 존재로 창조함을 받았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랬다면 율법에 얽매인 종이 되어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셨을 것이다. 일찌기 창조함을 받은 가장 높은 천사라 할찌라도 하나님과는 무한한 간격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높은 천사라도 타락한 인간을 끌어 올려서 신성에 참여자가 되도록 할 수 없다. 천사들은 섬겨서 도와 줄 수 있을 뿐이며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 감사 찬송드리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도다. 신성의 모든 충만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육체로 거하시며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에게 나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우는 까닭에 관하여 보다 완전한 이해를 갖도록 해 준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인간에게 알려 주셨다. 이를테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변자이요 보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선포하셨고 알려 주셨다.

아버지의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창조주와 율법을 주신 분으로 높인다고 해서 혹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제이의 지위로 격하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영광이 아들을 통해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오직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 5:2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면서 어떻게 율법을 주신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할 필요는 없고 다만 성경에서 이러이러하다고 하신 말씀을 받아들일 뿐이다. 또 그렇다고 하는 사실은 구속의 교리에 활력을 준다. 죄인이 값없이 완전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보증은 율법을 세우신 자가 반역하고 거절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치셨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의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하나님의 순수한 의도와 우리를 향한 온전히 선한 뜻을 어느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구속을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서도 하나이셨다. 두분 사이에는 평화에 관한 의논이(슥 6:12,13). 있었으며 비록 땅에 계시는 동안이라도 독생하신 아들은 아버지의 품 속에 계셨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셨는가? 무죄한 자가 죄인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셨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위해서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서 율법을 제정하신 자가 범법자를 위해서 왕이 그의 반역한 신하들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셨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거저 내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바치셨는데 어찌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지 않겠는가? 이보다 더 크고 무한한 사랑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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