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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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뿌리는 왈덴시스 재침례교회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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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뿌리는 왈덴시스 재침례교회

재 침례교 도서관 (The Primitive Baptist Library) 증정

 

성경의 역사

로버트 웹 (Robert L. Webb) 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복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영원한 구원의 수단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경 기록들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을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 성경 기록들이 곧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 - 요한복음 5:39.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말씀이며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고 온전히 그분에게 달려있다.

 

고대의 성경 본문들 및 필사본들 (원문 및 사본)

가장 초기의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 이전 1400년에 기록되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사실상의 원래의 필사본은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칼데아어 그리고 그리스어로 그분의 영감을 받은 말씀을 주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구약 성경들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은 섭리에 의해 유대인 혹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로마 3:1, 2). 고대의 마소라들(모세 율법의 연구생들)은 구약 성경의 보존과 복사를 완벽하게 하는데 그들의 생애를 바쳤다. 그들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자신의 말씀을 모든 세대에 걸쳐 보존하신 하나님을 놀랍게 증거한다. 히브리어 본문에 관해서는 논란이 거의 없다.

 

신약 성경들

약 5000개의 그리스어 신약 본문 사본이 현재 세계 전역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 사본의 절대 다수는 “공인 본문”(혹은 “다수 본문, 텍스투스 레셉투스 (TR)”, 혹은 “비잔틴 본문”이라고도 한다)과 같거나 거의 같다. 이 본문은 제침례교도들인 왈덴시스파(Waldenses)성도들에 의해서 사용되었으며, 시대를 거치면서 참 교회에 의해서 보존되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은 이 본문으로부터 번역되었다. 현재 발행된 그리스어 “텍스투스 레셉투스(TR)”는 연구를 하는 학도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번역 대 사적 해석

동일한 언어로 원래의 필사본의 더 많은 사본을 만드는 것과 원문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고센(Gaussen)은 번역을 “같은 몸에 다른 옷을 입는 것”과 동일시한다. [고센(L. Gaussen)이 지은 테오프네우스티아 (Theopneustia) 혹은 성경의 전체적 영감성 (The Plenary Inspiration of the Scriptures) 참조].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매우 가까이 다가오기 이전에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예수님과 사도들은 분명히 그리스어 역본(칠십인역)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용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독자는 이를 그의 정신 속에 뚜렷이 간직해야 한다. “해석하다”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때때로 “번역하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참조, 고린도전서 14:13, 27). 번역과 관련된 큰 의문은 (교회가 허락하였는가가 아니고 주님께서 그 번역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이 그분의 교회에 의해 보존되도록 그분께서 의도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교회가 존재하는 각 이방 지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도록 그분이 섭리에 의해 인도하셨다고 믿는다.

 

초기 그리스어 성경 역본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도 바울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둘 다 말하고 쓸 수 있었다 (사도행전 21:40 참조; 바울이 쓴 신약의 편지들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사도들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구약 히브리어 본문으로부터 인용하고 있다. 그들은 원래의 언어로 원래의 히브리어 본문에 접근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초기 영어 성경 역본들

성경은 라틴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했던 지역의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박해 때문에 교회가 영어권 나라들로 쫓겨 가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섭리에 의해 그곳에서 번역이 이루어지도록 지도하셨다. 초기 영어 역본들 가운데는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 역본 (1380); 윌리엄 틴데일 (William Tyndale) 역본 (1526); 크랜머 (Cranmer) 역본 (1539); 제네바 성경 (1557); 앵글로-레미시 (Anglo-Rhemish) 역본(1582)이 있다. 이 다섯 개의 역본은 영어 6개 국어 대조판(English Hexapla)이라고 하는 한 권의 책에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들어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예수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나라의 사람들에 의해서 동일한 역본이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유리하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거의 없다. 킹 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주로 청교도였고 영국 국교의 학자들이어서 개인적 선입관은 균형을 이루게 되었으며, 따라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역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재능과 성실성이 괄목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제임스 왕은 몸소 번역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의 특성과 이름은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영어 역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인도하심과 번역된 이후의 그분의 축복이었다.

 

재 침례교회의 입장

우리는 성경의 전체적 영감성을 믿는다. 전체적이라는 말은 “전부” 혹은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성경(**ure)”이라는 말은 “기록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이라고 기록하였을 때 사도 바울은 기록된 본문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하였다”고 기록하였을 때 사도 베드로는 (필자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말씀하신 것을 의미했다. 예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의미하며, 그리하여 우리는 그와 같은 표현 안에 구약과 신약을 포함시킬 수 있고, “성경 기록의 예언 중에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으로 된 것이 없다.”-베드로후서 1:20. 실베스터 하셀 (Sylvester Hassell) 장로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표방했다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 (History of the Church of God), p. 508): “17세기는 킹 제임스 성경 혹은 (1611년의) 흠정왕역 영어 성경, 즉 어떤 언어로든 만들어진 모든 성경 역본 가운데 최상이며 가장 고귀한 역본이 발행된 세기였다.”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이 영어라는 옷을 입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므로 킹 제임스 성경은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는 또한 그분의 교회의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번역을 인도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참된 성경과 참된 교회는 분리할 수 없다

 

고대 재침례교회인 왈덴시스파의 역사와 성경 본문 및 역본들을 주의 깊이 연구해 보면 참된 성경을 참된 교회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명백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사실은 교회가 공인 본문과 최상의 영어 역본인 킹 제임스 성경에 충성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엄숙한 경고를 발한다: “변조된 본문으로부터 만들어진 거의 100개에 가까운 역본들과 의역들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최근에 신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영어 역본 몇 개를 우리의 수집물에 추가했는데, 1611년의 원래의 킹 제임스 성경의 재 인쇄본과 “제네바” 신약의 1607년 판, 1526년의 틴데일의 신약, 그리고 위클리프 신약의 1388년 필사본을 포함한다. 우리는 또한 장 레제(Jean Leger) (1669), 조지 파버 (George S. Faber) (1838), 그리고 윌리엄 길리 (William S. Gilly) (1824)의 책들을 고대 왈덴시스파와 알비겐시스파(Albigenses)에 관한 서적 수집물에 추가했다. 왈덴시스파의 역사라는 제목에 관한 재침례교 도서관(Primitive Baptist Library)의 온전한 장서 목록을 보려면 이 팸플릿의 부록을 보라.

 

우리에게서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없는 벤저민 윌킨슨(Benjamin G. Wilkinson)이 지은 1930년대 판권의 입증된 우리의 제임스왕역 성경(Our Authorized Version Vindicated)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용하고자 한다:

 

“여러 세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단 두 개의 필사본 흐름이 있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전달하였고, 사도 교회들과 함께 시작하였으며, 계몽된 신자들 가운데서 서력기원을 거쳐 내려오면서 간격을 두고 다시 나타나곤 했던 첫 번째 흐름은 다양한 국면에서 순수한 교회의 지혜와 학식에 의해서, 기원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도피했던 팔레스타인의 펠라(Pella)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교회에 의해서, 뛰어난 학문을 산출했던 안디옥(Antioch)의 시리아 교회에 의해서, 북 이탈리아의 이탤릭 교회에 의해서, 그리고 동시에 남부 프랑스의 골의 (Gallic) 교회와 영국의 켈트 (Celtic) 교회에 의해서, 전 왈덴시스파와 왈덴시스파 및 종교 개혁의 교회들에 의해서 보호되었다. 이 첫 번째 흐름은 여러 언어로 된 프로테스탄트 성경에서, 그리고 영어권에서 300년 동안 사용되어온 킹 제임스 성경라고 알려진 영어 성경에서 거의 변하지 않고 나타난다.

 

두 번째 흐름은 매우 소수의 필사본에 의한 매우 보잘것없는 것이다. 이 흐름의 필사본은 (1) 그리스어로는, 로마의 도서관에 있는 바티칸 필사본 혹은 코덱스 B에 의해, 그리고 시나이 필사본 혹은 그 동생인 (모스크바의 러시아 박물관에 있는) 코덱스 알레프에 의해, (2) 라틴어로는, 불가타 성경 (Vulgate) 혹은 제롬(Jerome)의 라틴어 성경에 의해, (3) 영어로는, 나중에 두에이 (Douay) 성경 혹은 가톨릭 성경에서 엄청난 변경을 한 것이 드러난 1582년의 예수회(제수이트)의 성경에 의해, (4) 다시 영어로는, 종교 개혁의 프로테스탄트교도들에 의해 배척당한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가톨릭 본문을 사실상 모두 도입한, 그 중 두드러진 것이 개정 역본들인, 여러 현대 성경들에 의해 대표된다.--pp. 12, 13. “

 

하지만 재침례교회의 왈덴시스파의 역사가인 장 레제를 통해 왈덴시스파가 무엇을 믿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윌킨슨(Wilkinson)은 32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왈덴시스파 혈통의 이 고매한 학자는 1655년의 로마 카톨릭에 의한 끔찍한 대학살 당시 그의 백성의 사도였으며, 그들의 고대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지적인 수고를 했다. 1669년에 프랑스어로 발행되었으며 1825년에 “희귀본”이라고 불린 그의 저서 피드몽 계곡의 복음주의 교회들의 전반적인 역사(General History of the Evangelical Churches of the Piedmontese Valleys)는 학문 탐구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책이다. 바로 그 책을 내가 보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운이 좋다. 1535년의 (로베르) 올리베땅(Olivetan)의 프랑스어 성경을 “완전하고 순수하다”고 했을 때 레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순수하다”고 말한 이유는 과거에는 가톨릭교도 가운데서 발견되었던 고대의 모든 모범들이 변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베자는 그의 저서 저명한 사람들(Illustrious Men)의 보데파(the Vaudois)에 관한 장에서 프랑스가 오늘날 프랑스어로 성경을 가지게 된 것은 그 계곡의 보데파라는 수단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경건한 사람 올리베땅은 그의 성경 서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사도들이나 사도들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사람들의 시대 이래 복음의 횃불이 보데파 사람들 (혹은, 알프스 계곡의 거주자들, 이 두개의 용어는 같은 것을 의미한다) 가운데서 타올랐으며 그 이후 꺼진 적이 없다고 인정한다“ --레제, 보데파 교회들의 전반적인 역사 (General History of the Vaudois Churches), p. 165.

 

윌킨슨은 또한 에리스무스가 두 가지 평행적인 성경의 흐름을 인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pp. 42-43):

 

성경의 두 가지 평행적인 흐름

사도들 (원문)

배교자들 (변조된 원문들)

공인 본문 (그리스어) TR

시나이티쿠스 및 바티카누스 성경 (그리스어)

왈덴시스파 성경 (이탈리아어)

불가타 성경 (라틴어),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

에라스무스 성경 (복원된 공인 본문)

바티카누스 (그리스어)

루터 (Luther) 성경,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어 성경 등 (공인 본문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이탈리아어 성경 (불가타 성경에서 유래한)

1535년의 틴데일 (영어) 성경 (공인 본문에서 유래)

불가타 성경에서 유래한 렝스 (Rheims) (영어) 성경 (1582년의 예수회 성경)

킹 제임스 성경, 1611 (공인본문으로부터)

 

옥스퍼드 운동,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B와 알레프), 1901년의 개역 미국역 (American Revised)

 

 

이 사실은 독자들을 설득하여 이 두 가지 성경 흐름을 다 같이 순수하고 좋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하는데 충분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가장 본질적인 그리스도교의 교의, 예를 들면 창조, 성경의 전체적 영감성과 보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처녀 출생, 그리고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의 교의로부터 일탈한 주된 책임이 변조된 본문을 통해서 한 번역 때문이라고 믿는다.

 

왈덴시스파의 후예들인, 재침례교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일어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침례교도들은 그리스어 원어성경 텍스투스 레셉투스(TR)로부터 만들어진 역본의 지지자들이었다. 미국의 초기 침례교도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위클리프 역본이 그들로부터 선호되거나 지지를 받았다는 증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위클리프 영어 역본은 그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몰랐기 때문에 라틴어 불가타 성경(제롬의)을 가지고 번역했다.

 

위클리프가 죽은 후 일세기에 걸쳐서 이어진 “대 종교 개혁”은 가톨릭 성경을 “참된 성경”로 만들지 않았는데, 종교 개혁이 가톨릭교회를 참된 교회로 만들지 않은 것과 같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들과 재침례교회 왈덴시스파는 모두 가톨릭 필사본을 (불가타 성경이든지 바티칸 본문이든지) 사용하기를 거절했다.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역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신약 번역을 위한 기저의 유일한 토대는 그리스어 공인 본문(TR)이라고 믿는다. 공인 본문에 의한 번역은 세계의 대부분의 주요 언어로 완료되었다.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강조한나머지 그뿌리인 그리스어 (TR)성경을 흐려서는 아니된다.

 

왈덴시스파에 의한 성경 보존

(입증된 우리의 킹 제임스 성경에서, 1930, pp. 31-42)

벤저민 윌킨슨 박사

 

유대그리스도인 교회에서 가지고 온 왈덴시스파의 성경

예루살렘 유대의 교회들로부터 북 이탈리아의 교회들로 필사본을 가지고 온, 즉 왈덴시스파의 선구자들에게 로마 가톨릭교의 성경과는 다른 성경을 기자고 온 하나님의 사자들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나는 다음 문장을 인용한다:

 

“그의 피드몽의 교회들의 역사(History of the Churches of Piedmont)에서 알릭스(Allix)가 추구한 방법은, 교의의 사도적 순수성을 조회할 수 있는 충분한 초기라고 그가 간주한 4세기 이후의 모든 시대의 교회 역사에는 로마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교의들과는 다르고, 왈덴시스파와 재침례 교회들의 신념과는 일치한 교의들을 왈덴시스파가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까지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북 이탈리아의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결과적으로 왈덴시스파의 견해는 11세기나 12세기에 유럽에서 생소한 것이 아니었으며, 알프스 산록 교회들이 그 계곡에서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된 때로부터 중단 없이 성실하게 보존하였다는 것은 전통상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 길리 (Gilly), 왈덴시스파 연구자들 (Waldensian Researches), pp. 118, 119.

 

이 견해에 동조하는 많은 초기 역사가들이 있다. [알릭스, 레제, 길리, 콤바 (Comba), 놀란 (Nolan)]. 북 이탈리아의 전 왈덴시스파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이 로마 가톨릭의 성경보다 더 순수하지 않았다면 로마 가톨릭의 교의보다 더 순수한 교의를 그들은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성경은 로마 가톨릭의 왜곡된 필사본이 아니었다. (콤바, p. 188.)

 

북 이탈리아의 재침례교회 왈덴시스파는 교황권에 저항한 유럽의 원시 그리스도인 가운데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억압의 무게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이 그들의 손으로부터 넘겨받아 온 세상에 높이 들어 올린 진리의 횃불을 성공적으로 간직하기도 했다. 진정 그들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도피처를 가지고 있었던 왈덴시스파 속으로 도피한 교회에 관한 계시록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 계시록 12:6, 14. 그들은 신비한 교의들과 위계적 성직과 로마 가톨릭의 세상적 칭호들을 배척한 반면에, 성경의 단순성에 고착했다.

 

교황권의 대리자들은 왈덴시스파의 고귀한 과거에 대한 기록들을 없애고 그들이 자행한 잔혹한 박해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왈덴시스파의 특성을 비방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심지어 그들은 한술 더 떠서 이단자들의 이름을 삭제하고 그 빈자리에 왈덴시스파의 이름을 삽입하여 채우기 위해 고대 이단에 대한 기록을 이용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마치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같은 어떤 악한의 무법한 행동을 기록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에서 그의 이름은 삭제하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이름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다. 12세기와 13세기의 이단자들에 대해 기록한 책에서 로마의 사단군대 예수회의 그레처(Gretser)는 그와 같은 이단자들의 이름을 삭제한 바로 그 자리에 왈덴시스파의 이름을 넣었다. (길리, p.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로마 가톨릭과 항상 필적했던 왈덴시스파의 위대한 학자들의 역사를 환호하여 맞이한다.

 

4세기에, 북 이탈리아의 대학자인 헬비디우스(Helvidius)는 변조된 그리스어 필사본을 이용하여 가톨릭교를 위해 라틴어로 성경을 만들도록 교황이 권한을 부여한 제롬을 비난했다. [니케아 이후의 교부들 (Post-Nicene Fathers), 6권, p. 338]. 만약 헬비디우스가 순수한 그리스어 필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롬이 변조된 그리스어 필사본들을 채택한다고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그처럼 학식이 많고 글과 가르침에서 강력했던 사람은 헬비디우스의 제자인 요비니안(Jovinian)이었는데, 로마의 가장 유명한 교부들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와 제롬 및 앰브로스(Ambrose)가 요비니안의 영향력을 반대하는데 연합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교황의 유죄 판결과 황제의 추방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비니안의 추종자들은 살아남았으며 루터의 길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로마 가톨릭이 왈덴시스파에게 한 것보다 더 잔혹한 기록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 기원이 사도들의 날로 거슬러 올라가고, 주의를 끄는 흥미 있는 역사적 이야기로 장식된 이들 박해받은 사람들의 고무적인 역사를 온전히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마 가톨릭은 그 기록을 지워 없앴다. 로마에서 한동안 종교 재판의 공식 감찰관으로 일하다가 그리고 후에 프로테스탄트교로 회심한 오랫동안 가톨릭의 관리로 일했던 데산틱스 (DeSanctis) 박사는 그가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의 폐허를 가리키면서 왈덴시스파 학자와 대화를 한 것을 이렇게 보고한다:

 

“보세요” 하고 그 왈덴시스파가 말했다. “고대 교회의 이 아름다운 기념비를. 이 거친 재료들은 두 개의 위대한 팔라티노 도서관의 폐허인데, 하나는 그리스어 도서관이고 하나는 라틴어 도서관입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수집한 값진 필사본들이 있었는데, 대제라고 불린 교황 그레고리 (Gregory) 1세가 불에 태우도록 했습니다.” [데산틱스, 천주교, 퓨지주의 제수이트주의 (Popery, Puseyism, Jesuitism), p. 53).

 

기원 600년에 그레고리 1세에 의해 시작된 왈덴시스파의 기록의 파괴는 교황권의 비밀 대리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수행되었다.

 

길리는 말한다. “왈덴시스파의 문서에 그렇게 치명적이었던 파괴나 강탈은 심지어 보안이 된 장소에까지 미쳤으며, 남아 있는 모든 것이 모랜드(Morland)에 의해서 1658년에 캠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 인도된 것은 참으로 독특한 일이다. 이와 같은 가장 오래 된 유물들은 일곱 개의 묶음으로 표를 붙였는데, A에서 G까지의 알파벳 글자로 구분했다. 내가 1823년에 찾았을 때는 그 전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길리, 왈덴시스파 연구자들, p. 80).

 

왈덴시스파 재침례교회의 고대 문서들

왈덴시스파의 시작을 1175년에 그의 활동을 시작한 피터 왈도(Peter Waldo)에 맞추려는 현대 작가들이 있다. 이것은 실수이다. 그들이 살았던 계곡에서 합당하게 유래한 이 사람들의 역사적 명칭은 보데파(Vaudois)이다. 그러나 그들의 적들이 그들의 기원을 왈도에게서 구하려고 했다. 왈도는 분명히 로마 가톨릭의 오류와 싸우도록 하나님이 일으키신 대리자였다. 왈덴시스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한 길리는 프랑스 리옹(Lyon)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왈도를 “우리의 킹제임스왕역 성경의 번역자들처럼” 동료, 위원으로 묘사한다. [콤바, 이탈리아의 왈덴시스파 (Waldenses of Italy), p. 169, 주석 596). 그럼에도 불구하고 왈덴시스파 혹은 보데파의 역사는 왈도의 날보다 여러 세기 이전에 시작한다.

 

고대 왈덴시스파의 언어가 남아 있다. 기원 1100년경에 기록된 “고귀한 교훈(The Noble Lesson) (La Nobla Leycon)은 왈덴시스파에 대한 첫 번째 반대를 콘스탄틴 대제의 날의 로마 카톨릭교회에 돌리고 있는데, 그 때 교황은 실베스터(Sylvester)였다. 이 사실은 다음 인용문에서 추측할 수 있다:

 

“실베스터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모든 교황들.” (Que tuit li papa, que foron de Silvestre en tro en aquest.) [길리, 답사 (Excursions), 부록 2, p. 10).

 

이처럼, 바빌론이교 로마의 오래 된 박해로부터 부상한 그리스도교가 최초의교황 콘스탄틴 황제의 호의로 육성될 때, 나중에 왈덴시스파가 된 북 이탈리아의 이탤릭 교회는 교황의 로마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성경은 유명한 이탈라 (Itala) 계통이었다. 그것은 공인 본문을 대표하는 구라틴어 번역이었다. 그 이름 “이탈라”는 보데파의 영역인 이탈리아의 지방에서 유래했다. (기원 400년경에) 다양한 라틴어 성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역본의 순수성과 신뢰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제, 역본들 가운데서 이탈리아 역본(이탈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선호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역본이 편견 없이 말씀에 밀접히, 표현의 분명성에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니케아 및 니케아 이후 교부들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2권, p. 542).

 

세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그들의 경배 의식에 사용했던 왈덴시스파의 고대 전례식문은 “이탤릭(Italick)이라고 하는 고대의 성경 본문”을 포함하고 있다. [알릭스, 피드몽의 교회들 (Churches of Piedmont), 1690, p. 37].

 

왈덴시스파 재침례교회는 기원 120년경에 형성되었으며, 그 이후 죽 사도들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었다고 개혁자들은 주장한다. 라틴어 성경인 이탤릭은 늦어도 기원 157년에 그리스어로부터 번역되었다 [스크리브너의 소개 (Scrivener"s Introduction), 2권 p. 43). 우리는 칼뱅(Calvin)의 유명한 동료였던 베자(Beza)에게 이탤릭 교회는 기원 120년에 생겼다는 진술을 빚지고 있다. 기원 1590년에 베자 주위에 모여든 뛰어난 학자들의 집단을 통해 우리는 공인 본문이 위대한 역사적 교회들 사이에서 어떻게 연합의 띠가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도 있다. 16세기가 마감되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스위스의 도시 제네바에서 프로테스탄트의 탁월한 투사인 베자와, 후에 그리스의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된 학자인 키릴 루카(Cyril Lucar), 그리고 역시 뛰어난 학자인 디오다티(Diodati)를 만난다. 베자가 킹 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그리스어 신약 필사본을 복원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할 때, 디오다티는 그 필사본을 가지고 왈덴시스파에 의해서 채택되고 통용된 새롭고 유명한 이탈리아어 성경으로 번역했다. [맥클린톡과 스트롱의 백과사전 (McClintock & Strong Encycl.), 왈덴시스파 항목]. 자국민을 위한 왈덴시스파 역사가인 레제는 제네바에서 디오다티 밑에서 연구를 했다. 그는 왈덴시스파 목회자가 되어 돌아왔으며, 1655년의 잔혹한 학살을 피하는데 왈덴시스파를 선도했다. [길리, 연구들 (Researches), pp. 79, 80]. 그는 자신의 최상의 보물로서 디오다티 성경을 소중히 여겼는데, 그것이 그가 보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세속적 소유물이었다. 키릴 루카는 코덱스 A인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이 있는 알렉산드리아로 급히 갔으며, 종교 개혁과 개혁자들의 성경의 책들에 관한 순수한 빛을 소개하는데 그의 생애를 바쳤다.

 

이와 동시에, 첫 번째 집단에 매우 적대적인 다른 학자들의 집단이 프랑스의 렝스에 모였다. 로마의 도움을 받고 스페인의 강력한 힘에 의해 지지되었던 예수회(제수이트)가 불가타 성경의 영어 역본을 내놓았다. 서문에서 그들은 불가타 성경은 1300년에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1400년에 프랑스어로 반역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기만당한 사람들의 손에서 왈덴시스파라고 하는 분파의 이단적 역본을 더 빨리 털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이는 1300년과 1400년에 왈덴시스파의 역본이 존재했음을 증면한다. 왈덴시스파와 개혁자들의 공인 본문, 즉 사도들의 신약에 대적한 것은 로마 가톨릭의 변조된 성경인 불가타 성경였다.

 

로마 가톨릭은 초기부터 필사본을 변조하였지만, 이탤릭 교회는 그들의 사도적 순수성을 전달하고 있었다고 유명한 학자인 알릭스는 증언한다. 그는 이탤릭의 신앙 개조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는 “그들은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것만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로마의 교황과 다른 사제들이 자신들의 교의와 해석을 통해 성경을 부패시켰다고 말한다.”고 언급했다. (알릭스, 피드몽의 교회들, pp. 288, 11).

 

이탈라는 공인 본문으로부터 번역되었으며, 불가타 성경라는 것은 없애버린 공인 본문(호르트는 시리아 역본이라고 한다)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탈라라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케년 (Kenyon), 우리의 성경 및 고대 필사본들 (Our Bible and the Ancient Manu**s), pp. 169, 170).

 

개혁자 칼빈도 왈덴시스파의 성경 역본들을 사용했다

왈덴시스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4권의 성경이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자 죤 칼빈의 역사에 영향을 주었다: 말하자면, 그리스어 성경, 왈덴시스파 방언 성경, 프랑스어 성경 및 이탈리아어 성경이 그것이다. 칼빈 자신은 왈덴시스파인 올리베땅에 의해 그의 역작으로 인도되었다. 그리하여 파리 대학의 명석한 학생이었던 칼빈에게 종교 개혁이 다가왔다. 역시 왈덴시스파였던 파렐(Farel)은 그에게 제네바로 와서 일을 시작하도록 간청했다. 칼빈은 파리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레제에 따르면 칼빈은 왈덴시스파의 계곡 중 하나였던 성 마틴 (St. Martin) 계곡의 칼빈파와의 관계를 인정했다. (레제, 보데파의 역사, p. 167).

 

마침내, 파리에서의 박해와 파렐의 간청으로 인하여 칼빈은 제네바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베자와 함께 텍스투스 레셉투스(TR)의 한 판을 출판하게 되었고, 칼빈은 스크리브너에 의해 편집된 것을 그의 학교 수업에 사용하게 되었다. 베자에 관하여 에드거 (Edgar) 박사는, 그는 자신이 발굴한 그리스어 필사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공인 본문의 이 후기 판은 사실 왈덴시스파의 영향으로 출판된 그리스어 신약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종교 개혁의 지도자들은 공인 본문은 그 자체의 저항할 수 없는 역사와 내부적 증거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왈덴시스파의 형식으로 전해 내려온 공인 본문과 일치하기 때문에 참된 신약이라고 확신했다.

 

왈덴시스파와 연결되는 다른 세 개의 성경은 칼빈과 함께 혹은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인 베자와 제네바에 같이 있었던 세 사람, 즉 올리베땅, 레제, 그리고 디오다티가 원인이었다. 공인 본문을 잇는 두 개의 흐름이 그리스어 동부와 왈덴시스파 서부를 통해 어떻게 함께 흘러 내려왔는지는 올리베땅의 성경과 공인 본문의 만남에 의해 예시된다. 레제에 따르면 (레제, 보데파의 역사, p. 167) 칼빈의 친척이며, 명석한 학생이었던, 왈덴시스파 계곡의 가장 뛰어난 목회자 중 한 사람인 올리베땅은 신약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텍스투스 레셉투스(TR)와 일치하는 올리베땅 성경은 변조로 가득 찬 로마천주교의 성경과는 다르다고 증언한다. 후에 칼빈은 올리베땅 성경 제2판을 편집했다. 한편 올리베땅은 1611년에 킹 제임스 성경이 등장했을 때 잉글랜드에서 주도적인 역본이었던 영어 제네바 성경의 기초가 되었다.

 

제네바에서 베자의 신학 교수직을 계승한 디오다티는 공인 본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당시 그들의 독특한 언어로 된 왈덴시스파 성경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왈덴시스파는 디오다티 역본을 채택하였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보호로 새뮤얼 모랜드 경이 지금은 캠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왈덴시스파 신약을 레제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안다. 1655년의 파괴적인 학살 후에 레제는 입수할 수 있는 많은 고대의 왈덴시스파 문헌을 수집하여 새뮤얼 모랜드 경에게 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독일의 개혁자 마틴 루터가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보았던 재침례교회 왈덴시스파 성경을 거슬러 추적하는 것은 재미있다. 루터는 보헤미아(Bohemia)의 테플(Tepl)에서 이름을 딴 테플 성경(Tepl Bible)를 사용했다. 이 테플 필사본은 종교 개혁 이전에 사용되었던 독일어로 번역된 왈덴시스파 성경을 대표한다. [콤바, 이탈리아의 왈덴시스파 (Waldenses of Italy), p. 191). 이 괄목할 만한 필사본에 대해 콤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테플 필사본이 등장했을 때, 이 필사본이 대표하는 본문이 고대의 독일어 성경의 최초의 세 개의 판과 모든 내용이 일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학자들의 주의가 환기되었다. 그 이후 평신도의 확고한 견해를 가졌고 중세의 분파의 역사에 해박했던 원래의 필자인 루이스 켈러(Louis Keller)는 테플 필사본을 왈덴시스파의 성경라고 선언했다. 고대 가톨릭 당 소속인 또 다른 필자 헤르만 하우프트(Hermann Haupt)는 그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콤바, p. 190).

 

콤바에 의해 우리는 테플 필사본이 로마 가톨릭 교회가 채택한 역본과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제롬 이전의 라틴어 성경과 오히려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고, 루터가 자신의 번역을 하면서 이 필사본을 따랐다는 것도 알게 된다. 왈덴시스파를 따른다고 가톨릭교회가 루터를 비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콤바, p. 192). 또 다른 독특성은 크기가 작다는 것인데, 그 사실 때문에 왈덴시스파 복음 전파자들은 거친 외투 속에 숨겨서 가지고 다니는 소형 서적 중 하나로서 이것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콤바, p. 191, 주석 679). 그러므로 우리는 루터의 종교 개혁뿐만 아니라 루터의 성경도 왈덴시스파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왈덴시스파의 성경로부터이거나 왈덴시스파와의 관계에 의해서거나 왈덴시스파의 영향은 1611년의 킹 제임스 성경에 미쳤다. 킹 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을 언급하면서 어떤 저자는 그들이 사용하던 왈덴시스파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역본들 가운데서 그들이 참조한 것은 이탈리아 역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최근에 와서야 (1607) 제네바에 등장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지오반니 디오다티에 의해서 원래의 성경에서 번역한 품위 있는 역본이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벤저민 와필드 박사, 프린스턴 대학교, 견해와 평론 수집물 (Collection of Opinions and Reviews), 2권, p. 99].

 

그러므로 1611년의 번역자들은 왈덴시스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성경 즉 이탈리아어 디오다티 성경, 프랑스어 올리베땅 성경, 독일어 루터 성경, 그리고 영어 제네바 성경을 그들 앞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들이 고대의 왈덴시스파 방언으로 기록된 적어도 여섯 개의 왈덴시스파 성경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어 및 라틴어에 대한 학식과 이집트의 연대기에 대한 연구에 의해서, 그리고 유명한 강사로서 이미 명성을 얻은 놀란 박사가 공인 본문을 그 사도적 기원까지 추적하는 데는 28년이 소요되었다. 그는 왈덴시스파 성경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그 방향의 연구가 이탤릭 신약, 혹은 그들의 직계 후손이 왈덴시스파인 북 이탈리아의 원시 그리스도인들의 신약이, 공인 본문으로 판명될 것임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느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자는 연구하는 수고 없이, 로마 가톨릭과 비교하여 구별하기 위해 이탤릭이라고 명명한 주교 관구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음을 감지했다. 이 가정은 그 역본의 주요 사본들이 그 수도 교회가 밀라노(Milan)에 있었던 그 주교 관구에 보존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충분히 확증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원시 이탤릭 성경의 일부 잔존물이 이탤릭 교회의 직계 후손이며, 로마 키톨릭 교회의 권리 침해에 대항하여 독립을 역설했고, 성경을 언제나 자유롭게 즐겨 사용했던 왈덴시스파에 의해서 만들어진 초기 역본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상황을 지금 언급한다. 이와 같은 고려 사항의 인도를 받은 연구를 통해 저자는 가장 소중한 기대가 온전히 실현되었다. 원시 교회의 진정한 사도적 가지에 대한 명료한 증거, 즉 천적인 증거가 분명한 본문이 현대 불가타 성경이 소개되기 이전에 라틴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역본에 채택되었다는 증거가 제공되면서, 저자의 연구는 주로 다룬 점에 관한 풍부한 증거를 제공해주었다.” [프레더릭 놀란 (Frederick Nolan) 박사, 그리스어 불가타 성경의 완전성 (Integrity of the Greek Vulgate), pp. 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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