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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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직분은목사와집사만있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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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만 있다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들로 또 어떤 이들은 선지자들로 또 어떤 이들은 복음 전도자들로 또 어떤 이들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함이요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4:11-12)

교파의 공해에 시달려온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직분에대해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장로교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구원받은 성경적 침례교회 성도들도 기존의 교파 교회에서 몸에 밴 유전을 버리지 못하고 복음 교회로 들어와 죄사함의 진리는 분명하지만 교회 진리에 있어서는 상당히 어두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과거 교파에서 하던 유전이 되살아나서 구원은 성경대로, 교회 직분과 관례는 교파의 형태를 따르려 하는 위험이 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교파의 죽은 형식과 조직의 비성경적 관습 등을 완전히 벗어나려는 뜻에서 성경에따라 교회 직분을 목사와 집사 명칭으로 호칭하면서 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히 집사 직분의 정확한 직분의 위치를 이해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목사는 안수를 받아 지명된 목회자를 말한다. 집사들 또한 원칙적으로 지명을 받고 안수를 해서 임직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 교회의 경우는 교파 교회에서 “장로” 직함을 가지고 있다가 구원받아 교회에 들어와 연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노형제”의 호칭을 하고 있을 뿐 교회의 신앙적 장로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거듭나면 갓 태어난 영적아이일 뿐이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한 어른(장로)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벗어난 교파중심의 장로교는 교회 운영 형태가 “장로” 중심이고 감리교는 “감독” 중심, 침례교회는 회중 중심이지만 성경의 침례교회는 교회 직분이 단지 목사와 집사 뿐이다. 여기서 목사 한 사람에게 그 역할에따라 부르는 별칭이 감독자, 장로, 교사인데 그 사역의 내용을 부각시키는 의미로 호칭하였을 뿐 목사와 장로, 감독의 직분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시한부적인 직분과 영구적인 직분을 분별해 보고 현재 교회의 직분중 목사와 집사의 직분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말씀과 성령님의 조명으로 분별하고자 한다.

1. 시한부적인 직분들

집을 건축할 때 땅을 팔 때는 굴착기가 필요하듯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는 그 때에 필요한 직분이 있었다. 땅을 다 판 후에는 굴착기의 역할이 끝나고 콘크리트를 부어 넣은 레미콘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주님의 교회도 교회가 건축될 때 사도들이 있었고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이미 그 시대에 그 역할을 모두 끝냈고 그들의 사명을 완수했으며 더불어 사도직이란 직분도 마감되었다. 더불어 사도들에게만 주셨던 은사도 거두어 가신 것이 성경의 진리인 것이다.

(1) 열 두 사도(Apostles)

“주님께서 그분의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대적하여 쫓아내며 온갖 질환과 모든 질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시니라 이제 그 열두 사도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마10:1-2)

사도(使徒)란 “보내다”란 뜻인 헬라어의 “아포스텔레오”(αποστελλω)에서 유래된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λος)로 특별히 주 예수님의 권위로 보냄받은 사도들이란 뜻이다.(막9:37, 행14:14, 고후8:2, 갈4:4, 빌2:25, 히3:1)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하셔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권위에 의해 부름받고 훈련받은 후 파송받은 특별한 직분이다. 그래서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음으로 증거하느니라”(요15:27) 하셨고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었고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았고 우리가 주목하였으며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고 친히 그 목격자 됨을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도 친히 목격자임을 강조했는데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1:18)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가장 확실하게 믿어진 일들의 선언을 순서대로 밝히려고 손을 대었으니 처음부터 목격자들이요 그 말씀의 사역자들이었던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 맨 처음부터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도...”(눅1:1-3)

다만 교회가 세워지면서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바나바를 사도라고 호칭한 사례가 있지만(행14:14)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는(보내다 - 아포스톨로스) 의미에서 사도였을 뿐 예수님이 세우신 권위로서 사도는 아니었다.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사도들의 특별한 사명은 예수님의 제자와 목격자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을 받아 기록하고 병고치고 예언하고 새 방언(막16:16-17)을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마16:16) 하나님이시며(요20:28) 구원자(마1:21)이심을 증거하는 사명에 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면서 “사도”로서의 직분은 끝이 났고 더불어 사도들에게만 주셨던 특별한 은사(막16:20)는 모두 종료되었고 오늘날 예수님의 교회에는 사도가 없다.
다만 복음 전도 사명을 받아 교회로부터 파송되는 선교사, 전도자, 사역자들이 있다. 그러나 파송하는 행위는 보내다의 뜻인 “아포스텔레오”는 될지언정 주 예수님이 권위로 세우신 사도는 될 수 없다. 제자들이 제비뽑아 세웠던 맛디아(행1:26)도 사도에 들게 되었는데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계21:14) 성의 기초석 위에 새겨진 12사도의 이름은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믿는 것이 성경적이다. 바울 사도는 특별한 사도로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사도들의 권위는 선지자들의 권위보다 앞선 것을 참고로 알아야겠다.

(2) 선지자들(Prophets)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들로 또 어떤 이들은 선지자들로...”(엡4:11)
“또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선지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고전12:28)

선지자(先知者-prophet)란 “앞서다” “미리”라는 뜻이 들어있는 헬라어의 “프로”(προ)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말하다는 뜻인 “폐뮈이”(φημί)가 합쳐져서 “프로폐테스”(προφήτης)가 된 것이다. 예언자, 즉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알아서 말하는 사람이다.(신18:18, 왕상12:22-24, 고전12:10, 14:24-33, 엡3:5, 히1:1, 벧후1:19-21)
통칭 구약성경을 기록한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에스겔, 예레미야, 말라기 등은 전형적인 예언자, 선지자라고 불렀다. 또한 아브라함이나 다윗, 그 외 성경의 기록자들 외에 하나님의 쓰임받았던 구약의 인물들도 통칭 선지자로 호칭하도록 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사도들의 글이라고 한다면 구약성경은 선지자들의 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요한까지요...”(눅16:16)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기록들에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주시니라”(눅24:27)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들이 ...”(눅24:44)

선지자들은 자기 직분의 귀천없이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 말씀을 받으면 지체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의 귀에 거슬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했기에 그들에게는 극한 고난이 수반되었다.
에스겔 같은 선지자는 “또 주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겔6:1)이라고 했고 예레미야도 “주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렘19:1)이라고 하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면서 기록해서 예레미야서라는 성경이 된 것이다.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고 기록하고 미래의 생사회복의 예언을 밝히는 사역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완성되면서 그들의 직분도 끝이 났고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예언의 사명도 끝이 난 것이다.
“이는 예언(말씀)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따라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선지자들)이 성령님으로부터 감동하심을 받아 말하였기 때문이라”(벧후1:21)
“그것이 주님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에 의하여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엡3:5)

여기서 사도행전에는 교회의 과도기에 빌립의 딸들(행21:9) 아가보(행11:27-28, 21:10) 유다와 실라(행15:32)는 교회가 세워져 가는 과도기적 선지자였고 항구적인 교회의 은사로서 선지자들은 아니였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받아 말씀을 예언하는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직분도 종료되었다. 다만 오늘의 교회 직분자들이 선지자들의 사역, 즉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사역은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은 오늘날 없는 것이다.

2. 항구적인 교회 직분들

집이 건축되면서 그 집을 경영하며 살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 같이 땅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 있어야 할 직분은 성경에서는 오직 목사와 집사들 뿐이다. 건물이 존재하는데 전기 수도같은 것은 가정 생활의 필수품인 것처럼 교회가 존재하면서 목회자와 집사들은 반드시 필요한 영구적인 직분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엡4:11)
“너희에게 맡겨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5:3-4)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아니하며...”(딤전3:8)

1) 목사(牧師 pastor)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요21:15)

“목사(pastor)”란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ην)이라 하는데 그 뜻은 “양치는 사람”(a shepherd)이란 뜻이다. 목자 또는 목동이란 뜻의 어원 ‘pastor’는 파스코(pasco)로 “먹이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요21:15), “내 양들을 먹이라”(요21:16)는 말씀도 헬라오의 “포이마이노”(ποιμαίω)로서 먹이다의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요10:11)로서 양의 목자(포이멘)로 묘사하셨고 그리스도인들은 “양”으로 묘사하셨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하셨고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 목자(Pastor)로 비유하셨다. 구약에는 아벨도 목자(창4:2)였고 아브라함도 목자였고(창13:7) 야곱도 목자였으며(창46:32) 모세도 이스라엘의 목자로 비유되었다. 실제로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를 하였다.
“그때에 주님께서 옛적의 날들과 모세와 그분의 백성을 기억하여 말씀하시기를 자기 양 떼의 목자와 더불어 그들을 바다에서 데리고 올라오게 한 이가 어디 있느냐”(사63:11)
다윗도 목자로서 목자의 사역을 시편23편에서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때로는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로 묘사하기도 하셨다.
“요셉을 양 떼같이 이끄시는 오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시80:1)

교회에서 목회자의 직분을 호칭하는 것이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이유는 그 사역이 양치는 목자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부조직의 대표자는 대통령, 기업체의 대표는 사장, 어떤 그룹의 대표는 회장이지만 교회의 대표는 실제적으로 회장도 사장도 아닌 목사로 부른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목사의 임명은 성령님의 소명을 받아 자립된 교회가 안수(지명한다는 뜻)해서 한 지역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자립했으며 안디옥 교회는 새로운 목회자가 필요했기에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안수해서 파송했다.
“그들이 주님을 섬기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시킬 일을 위해 그들을 내게로 구별하라 하시니 이에 그들이 금식하고 기도드린 후에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떠나 보내니라”(행13:2-3)
“네 안에 있는 그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할 때에...”(딤전4:14)
교회는 오직 목사(감독, 장로, 교사)와 집사(섬기는 은사)에게 안수하여 직분을 세웠다.(행6:1-6)

목자로서 사역은 첫째, 양을 많게 하는 일을 한다. 즉 전도자로서 복음 전하는 일(엡4:11)을 해서 양을 많이 생산하는 일을 한다.(고전4:15)
둘째, 그 양을 잘 키우는 일을 한다. 그것을 “양치기”의 일로서 좋은 꼴을 많이 먹여야 한다.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여기서 목사는 성경 말씀을 잘 선포하고 먹여야 한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자(說敎者)이다. 영어로는 “preacher”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 선포하는 사역이다. 설교는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역이다. 때문에 성도들은 목자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좋은 양이 되어야 하고 목사는 좋은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양떼들을 잘 감독해야 한다. 양이 이리에 물려가지 않도록 하고 추위나 더위에 병들지 않도록 보살펴야 하고 구덩이나 계곡에 빠지지 않도록 살피는 일을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사는 감독자로도 불리운다.
넷째, 양떼들을 잘 길러서 젖을 짜고 털을 깎고 새끼를 낳게 하고 양질의 고기를 낼 수 있도록 목자는 모든 면에서 양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목사를 장로라고도 하는 것이다.

2) 성경에서 동일한 목사를 부르는 다른 호칭들

교회의 목회자를 그 사역의 내용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각기 다른 호칭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목사가 교회에서는 목사이지만 가정에서는 아버지도 되고 남편도 될 수 있는 원리이다. 때문에 목사의 사역이 크게는 감독으로 또는 장로로 불리고 작게는 복음 전하는 교사로도 불리운다. 목사를 부르는 다른 호칭을 말씀으로 분별해 보겠다. 그러니까 목사, 감독, 장로, 교사는 같은 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여러 사역의 명칭이다.

① 목사로서 감독자(監督者 Bishop)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들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행20:28)

감독이란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επίσκοπος)로 모든 면에서 관찰 관리 지도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 “비숍”(bishop)이라고 하고 킹 제임스에는 “오버시어”(overseers)로 나타나 있다. 과거에는 지방관리, 재산감독, 행정장관을 호칭하는 명칭이었다.
감독은 우선 바른 믿음으로 자라도록 지켜보며 감독하고 잘못된 신앙을 가지지 않도록 지도 권면하는 사역이다. 말씀을 먹이고 감독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말씀을 순종케 하며 죄에서 분리케 하고 낙심하여 시험든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감독이라고 한다. 때문에 “양떼”(행20:28)를 “치는” 목사의 일을 감독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목사를 감독으로 비유하면서 감독자의 자격요건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참되도다 이 말이여 만일 한 남자가 감독(목회자)의 직분을 원한다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런즉 감독은 반드시 비난받을 것이 없으며... ”(딤전3:1-2)
그리고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골로새, 빌립보 등 지역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는 같은 교회 성도들이지만 성도들과 감독과 집사들을 구분해서 편지를 보낸 사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의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1:1)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고...”(딛1:7)
베드로는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하면서 또한 성령을 목자로 묘사함과 동시 감독자로 묘사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감독은 같은 직분인 것이다. 별다른 감독 직분이 따로 없는 것이다.
“전에는 너희가 길 잃은 양들 같았으나 지금은 너희 혼들의 목자이시요 감독이신 그분께로 돌아왔느니라”(벧전2:25)
그러므로 신약교회의 지역 교회 성도들은 각 지역 교회 목사의 신앙의 감독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주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성령의 뜻임을 믿고 감독받는데 순종해야 할 것이다.

② 목사로서 장로(長老 Elder)

“그것을 실행하여 그 구호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30)
“또 두 사도가 각 교회마다 장로들을 임명하였으며 금식하며 기도드린 후에 자기들이 믿는 주님께 그들을 맡기고”(행14:23)
“너희 가운데 내가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도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한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나게 될 영광에 참여할 자로다”(벧전5:1)

장로란 그리스어로 “프레스비테로스”(πρεσβιτερο)로 그 의미는 단순히 연장자(年長者), 즉 “나이든 어른” 또는 “지도자”란 뜻이다. 영어로는 엘더(Elder)라고 하는데 “장로”라는 직함은 목사의 또 다른 사역의 측면 즉 교회의 행정업무 사역을 맡은 지도자로서의 목사의 다른 호칭일 뿐 목사 외에 별도로 장로 직분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로, 즉 나이든 어른, 연장자는 우선 육신적 연륜도 들어야 하고 영적 연륜도 있어야 한다. 때문에 장로는 안수로만 임직되어지기 때문에 장로를 따로 안수하는 장로교회와는 달리 성경에서는 목사이자 감독인 장로를 안수하는 것이다. 디모데는 목회자였고 감독이었지만 장로회(목사들인, 감독들 모임)에서 안수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네 안에 있는 그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할 때에 예언을 통하여 네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하지 말라”(딤전4:14)
바울 사도는 목사이며 감독자인 디도에게 그레데에 남겨둔 것은 그 지역의 지역 교회의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연유로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두었나니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내가 너를 임명한 대로 각 성읍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딛1:5)
여기서 바울은 “장로들”이라고 하면서도 7절에서는 그 ‘장로’들을 ‘감독’이라고 다르게 호칭하고 있다.
“이는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반드시 책망받을 것이 없고...”(딛1:7)
결국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 있는 감독의 자격을 알리면서 그 감독을 디도에게 “장로”라고 부르면서 또한 “감독”으로 호칭하고 그 자격 기준을 디모데 전서 3장의 감독의 자격과 같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성령님께서 감독자로 세우셨고 또한 하나님의 교회 양무리를 치게(목회하도록)하셨다고 밝힘으로 장로, 목사, 감독을 한 직분으로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목사)들을 청하니...성령님께서 너희(장로들)를 그들의 감독들(장로들)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행20:17-29)
여기서 교회 성도를 “양떼”로 비유하셨고 ‘양을 치게 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에서 목사 없이 장로가 양을 칠 수 없고 목사 없이 감독이 양을 칠 수 없다. 그러므로 목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장로이며 감독인 것이다.
사도였던 베드로는 자신이 양무리를 먹이고 길렀던 목자(요21:16)였지만 또한 자신을 장로(연장자)로 밝히면서 그 장로로서 양무리를 잘 치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희 가운데 내가 장로들(목사들이며 감독들)에게 권면하노니, 나도 장로요...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보살피되(목사의 일)...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5:1-4)
여기서도 목사 없이 장로가 양을 칠 수 없음을 보여주므로 결국 목사만이 장로이면서 감독자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도 자신이 사도였지만 연장자로서 장로라고 밝히고 있다.
“장로인 나는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택함받은 부녀와 그녀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라”(요이1)
“장로는 지극히 사랑받는 가이오 곧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니”(요삼1)
사도가 곧 장로인 것같이 목사가 곧 장로인 것은 같은 내용이다.

※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감독자로서 목사들)을 두 배나 존경하되 특별히 말씀과 교의에 수고하는 장로들(설교자로서의 목사들)에게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17)
여기서도 목사 없이 장로가 말씀을 가르치고 수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사가 말씀 전하는 장로인 것이다.

※ 목사는 병환중의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장로이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

여기서도 목사 없이 장로들이 따로 기도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장로로 호칭하면서 기도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목사를 감독, 장로로 호칭하면서 “모든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빌1:1) “에베소의 교회 장로들”(행20:14) “감독자”(행20:28) “혹은 목사와 교사”(엡4:12)라고 했다. 그러므로 감독은 상황에 따라 목사, 장로, 교사(고전12:28)로 호칭하였을 뿐 목사들과 장로들, 감독들과 교사들이 따로 분리된 것은 아니다.

③ 목사로서 복음전하는 자와 교사(Teacher)

“또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선지자들이요 셋째는교사들이요...”(고전12:28)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들로 또 어떤 이들은 선지자들로 또 어떤 이들은 복음 전도자들로 또 어떤 이들은 목사들과 교사들로 주셨으니”(엡4:11)

여기서 복음 전하는 자는 구원의 복음인 기쁜 소식을 전하는 행위를 말하고 안수받지 않고서도 누구든지 은사가 있으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가 있지만 특별히 목사는 복음 전하는 이에 해당된다. 복음을 전해서 교회로 불러모아 양치기 사역을 하기 때문에 전도 없이 목회가 있을 수 없다.
두 번째는 “교사”는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5),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는 말씀에 따라 목사가 담당하는 성도를 자라게 하는 말씀 선포, 설교, 교육의 사역행위를 의미한다. 지역 교회 내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기관 교사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목사의 말씀 선포(preaching), 설교(sermon), 또는 교육(teaching), 복음 전도(evangelism)는 목사의 말씀설교 사역에 모두 포함된다.
결론으로 목사, 감독, 장로, 교사, 전도자는 목사 한 사람의 직분에 붙여주는 다른 호칭이었을 뿐 신약의 침례교회는 목사, 장로, 감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2. 집사들(執事 Deacon)

“이와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아니하며...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 이는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긴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좋은 지위를 얻고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담대함을 얻기 때문이라”(딤전3:8-13)

집사라는 의미는 헬라어의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로 그 의미는 하인(요2:5-9) 일꾼(고후11:15, 딤전 4:6) 또는 심부름꾼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디컨(Deacon)이라고 하는 “집사”직은 “디아코네오”(διανεω)라고 하는 “대기한다, 섬긴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또한 “디아케오”(διακεω)는 “달린다, 서두른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여 뛰어 달리며 주님을 섬기는 직분이 집사의 직분인 것이다.
“주님의 어머니가 종들에게 말하기를...”(요2:5)
여기서 “종들”로 나오는 헬라어는 “디아코노이스”(διακονοις)인데 이것은 “집사들”로 묘사되었으며 킹 제임스 성경은 “종”이란 뜻인 “servants”로 표기되어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꾼이며 하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목회자, 성도들, 집사들은 모두 예수님의 일꾼들이며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3:9)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일꾼인 집사를 세우게 된 기원은 사도행전에서부터 찾을 수가 있다.
초대교회가 구원받은 역사의 열매로 숫자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목회자들이었고 감독이었으며 장로였던 사도들이 성도들의 생활과 구제를 하고 재산을 분배하는 일이 점점 늘어갔으며 그 일의 분량이 점점 늘어가면서 사도들은 성도들 섬기는 일에 일정을 다 빼앗기고 말씀 증거하는 일은 점점 등한이 되어 갔었다. 그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니었다.
“사람이 오직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람이 사는 것을 너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지혜를 주어 하나님의 뜻인 말씀 증거와 기도를 전념하기 위해 육신적인 문제인 구제 문제는 별도로 일을 맡기게 하셨는데 그 구제, 봉사, 섬기는 일을 전담맡은 형제들이 일곱 집사였던 것이다. 집사를 세우는 근본 목적은 말씀을 전적으로 증거하고 기도하는 일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섬기는 일만 전담하는 집사들을 선출했던 것이다.
“그 날들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그리스파 유대인들 중에 히브리사람들에게 불평이 일어나니 이는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있는 구제에서 소홀이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때에 열 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불러서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식탁 시중을 드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로 충만하고 정직한 것으로 알려진 일곱 사람들을 찾아내어 우리가 이 일을 맡기고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드리는 일과 말씀의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라 이 말을 온 무리가 기쁘게 여기고 그들이 믿음과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로 개종한 안디옥 출신 니골라를 선택하여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드린 후에 그들 위에 안수하니라”(행6:1-6)

여기서 집사는 전적으로 봉사 구제 즉 교회의 섬기는 일을 전담하는 목적으로 일곱, 즉 완전 숫자에 맞추어 3천명이 넘는 예루살렘 교회에 일곱 집사를 세웠던 것이다. 사도들의 전직 사역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 전혀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집사를 선출하여 안수를 하여 세울 때부터 이미 사도(감독, 목사, 장로)들과 구별했음을 알 수 있다.
집사들을 세우는 과정을 보면 첫째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고 둘째 칭찬듣는 사람들이었고 셋째 온 무리가 추천했고 넷째 사도들이 안수해서 세웠다.
“집사”란 그 명칭에 있지 않고 “일을 집행하고 전담하는 일꾼”이라고 표현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 이후로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행6:8)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8:5)라고 하였을 뿐 “스데반 집사”, “빌립 집사”라는 표현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이 “교회 구제의 일을 맡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성경에서 여자 목사와 여자 집사들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바울 사도는 감독(목사이며 장로)과 집사를 구분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의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1:1)
“그런즉 감독은 반드시 비난받을 것이 없으며...”(딤전3:2)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고...”(딤전3:8)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 감독(목사이며 장로)를 세웠으나 지역 개교회의 집사들을 세운 사실이 없다. 그것은 그 지역 교회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집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통칭 “집사들”이라고 불렀으며 “빌립보 지방” 이나 “에베소 지방” 그 외 갈라디아,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지역에 “많은 교회들”(churches)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교회들을 목회하는 “목사들”(pastors-엡4:11) 또는 “감독들”(빌1:1)로 불렀을 뿐 한 지역 교회에 여러 명의 목사들, 감독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열두 사도들과는 다른 차원이다.
베드로는 여러 지역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벧전1:1) 들에게 보낸 편지였기에 그 지역에 각각 지역 교회를 목회하고 감독하는 “장로들”(벧전5:1)이라고 호칭했을 뿐 오늘날 장로교회처럼 한 교회에 여러 장로들 또는 여러 목사들 감독들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더불어 바울 사도는 그 스스로가 목사를 감독, 장로로 불렀기 때문에 목사의 직분인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들” 과 “집사들”(빌1:1, 딤전3:12)을 구별해서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목사의 직분과 집사의 직분이 분명히 다른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자격에 있어서 감독들의 자격도 “한 아내의 남편”(딤전3:2) 집사들의 직분도 “한 아내의 남편”(딤전3:12)이 되어야 하고 그 외 기타조건도 동일한 기준으로 규정되어 있다.

2. 교회 운영에 있어 목사와 집사의 역할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러 함께 모였는데 많은 논의가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기를...”(행15:6-7)

안디옥 교회에 율법주의가 침투하자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의논하려고 사도와 장로들(목사이며 감독들)이 모여 많은 의논을 거쳤고 결과는 이방인교회가 음행, 피, 우상숭배, 목매어 죽은 것을 먹지 말라는 권면을 하기로 결정하고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결의하였고(행15:10, 19-20) 통보하였다.(행15:25-29)
여기서 시한부적 직분인 “사도들”과 항구적인 직분인 목사들과 감독들인 장로들은 회의에 참여하여 의논하였지만 이미 사도행전 6장에 선출된 “집사들”은 중요한 의논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집사들은 “섬기는 일꾼”들이었을 뿐 감독이며 장로들인 목사들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성경의 침례교회 행정과 감독의 모든 목회는 영적 연장자(장로)인 목사들에게 있고 집사들은 그 결정에 순종하여 섬기는 직분임이 분명해 진 것이다.
집사라고 해서 전도를 못할 이유는 없다. 빌립도 전도했고 침례를 주었으며(행8:12, 39) 스데반도 설교를 했지만 한 지역 교회의 목회와 감독권은 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성경의 근본 가르침인 것이다.
결론으로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며 관리하는 직분은 전적으로 “집사”의 직분이며 교회를 섬기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꾼”의 직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파 교회의 집사는 남녀 구분없이 무작위로 세웠고 그것이 제도화되어 계급적으로 변절했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제직회”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성경적으로 정확한 섬기는 자의 위치는 “집사들”의 직분임을 분명히 하고 주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섬겨야 할 것이다.
단독 목회의 장점은 목회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고 속도에 있어 진취적이며 그 목회를 적극지원하는 직분이 제직 집사 직분이기에 올바른 목사, 올바른 집사는 올바른 목회를 하게 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
또 단점으로는 목사가 잘못된 신앙으로 목회를 할 때는 그것을 견제하고 통제할 구성원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운영면에서 회중 성도들의 폭넓은 청취와 동의를 위해 제직 집사들을 선출하여 목회자가 제시할 경우 많은 의논을 거쳐 시행하고 있고 직분면에 있어 목회자의 목회결정을 적극 지원하여 오직 섬기고 봉사하는 일꾼, 하인의 직분을 다하는데 있는 것이다.
주님의 한 지역 교회에 있어 교회는 하나의 몸이며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지만(고전12:12, 골7:18) 교회질서 조직과 사역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목사와 집사가 있을 뿐이고 은사적인 면에서는 많은 은사들이 있고 그 은사의 중요성은 차별이 없다. 우리는 목사와 집사 직분을 잘하여 그날에 상급이 있게 하자. 그리고 교회는 목사와 집사들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목사도 없고 설교도 필요없으며 오직 형제 장로들만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의 소리는 성경을 파괴하는 마귀들의 소리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보살피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너희에게 맡겨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5:2-4)
“너희 젊은이들아 이와 같이 너희 스스로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참으로 너희 모두가 서로 복종하고 겸손함으로 옷 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라”(벧전5:5)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모든 선한 것들로 의사를 나누라”(갈6:6)
“이는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긴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좋은 지위를 얻고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담대함을 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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