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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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심판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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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존 지라드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게 되어 그것이 선한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행한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형제들이여, 나는 일반적인 엄숙함과 경외심을 넘어선 주제로 여러분의 관심을 돌리고자 한다. 한편으로, 대단히 숭고하고 경험을 초월하는 중요한 주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 진가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을 받고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결과 더 두렵게도 그 주제를 무시하고 경시하고 있지 않은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 위험을 인지하고, 나는 다루게 될 진리를 모든 심령들이 통감하도록 진심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하는 바이다.

 

본문은 우리의 주의를 이 세상 역사라는 위대한 드라마의 마지막 장으로 안내한다. 미래에 있을법한 이슈들을 추측하기를 좋아하는 사상들 중에서, 최후의 심판과 관계된 어떤 환경들에 관련된 중요한 논쟁들이 있어왔다. 최후의 심판은 그 사건 자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명백하게 확실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도래하는 정확한 시간, 집회의 장소, 그리고 심판의 기간이 문제인데, 어쨌든 우리가 그 문제들에 관하여 추측해볼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결코 적합하지 않다 생각하신 것으로 보인다.

 

심판이 시작될 시기에 관하여 우리는 다행히도 완전한 무지상태에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의 날은 밤에 도둑처럼 이를 것임을 알려주시는데, 그 때는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부르짖음으로 자위할 때가 될 것이며, 갑작스런 파멸이 아이를 낳는 산모가 겪는 진통처럼 그들에게 이를 것이며, 그들이 결코 도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정확한 시간에관한 지식을 밀봉시킨 그 무지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부지런히 예비하도록 고무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된다.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는 인자가 오는 그 날과 그 시각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마25:13)

 

장소에 관하여 추측컨대--얼마나 정확한지 감히 말할 수 없지만--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한 데살로니가 전서의 성경 구절을 참조할 수 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뵙게 되리니”(살전4:17) 지구를 둘러싸고있는 대기가 최후의 심판의 무대가 될 것이다. 심판 절차의 기간에 관해서는, 성경이 심판의 날을 언급하는 일반적인 어법은 예언의 해석에 따라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어왔고, 이 상태를 유지하게될 중요한 관계로부터 심판과정이 새로운 세대를 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왔다. 어쨌든 대다수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확실한 의미로 성경의 어휘를 이해하여, 모든 인류의 최종 운명이, 결코 불가능란 없는 전능하신 권능과 무한한 지식으로 신속하게, 즉시 그리고 영원히 결정되어질 한 마지막 날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 날을 정하시고 그 날에 친히 택하신 그분에의해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것이다.”(행17:31)

 

I

 

두 개의 독립적이지만 동시적인 논쟁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미래에 있을 심판과 관련하여 강한 논리적 추론을 제공해준다. 첫째로, 양심의 결정들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가망있고 전조적인 것이라고 느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양심은 인간 영혼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그것의 권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양심은 인간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법이고, 하나님의 법정이며, 하나님의 심판이다. 의인들에게 평안을 부여하는 것도 바로 양심의 능력이고, 불신자들의 육신적 안전을 깨뜨리는 것도 바로 양심의 능력이다. 상급 법정의 제재에 그 판결들을 맡기는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양심이 내는 미약한 소리들을 비웃을 것이며, 정욕의 맹렬한 아우성과 귀를 멀게하는 난리 중에 양심의 헛된 저항들을 비웃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무능이 그 양심의 법정을 우스갯거리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손가락은 또 다른 법정과 또 다른 심판석을 가리킨다. 양심은 미래와 관련하여 양심의 판결들을 선고한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권위를 양심에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양심은 영원한 정직에 근거를 두고 있고, 전능한 특성에의해 지지된다고 여겨진다. 양심은 영혼으로부터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엄숙한 선고들이 상급 재판장의 판결에의해 비준될 것이고, 저항할 수 없는 힘에의해서 이행될 것이라는 신념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 미래에 있을 최종 심판에대한 두렵고 확실한 증거는 우리의 도덕적 본성의 심연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사실은, 한 도덕적 정부가 그 자체로 완전한 성분으로 구현되어지고, 상과 벌의 분배가 시작되지만, 이 생에서 결코 완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그 자연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응보의 원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등하게 명백한 사실은 그 원칙이 합법적인 범위까지 적용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도덕적 행위들의 본질과 도덕적 행위자들의 행위에까지 상과 벌이 정확하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무리 가혹한 고통이라도, 그가 가장 독실한 자라해도, 그에게 합당치 않은 고통은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어떤 신실한 사람들은 불경건한 어떤 자들보다 상습적이고 일정기간 계속되는 시련들을 견디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결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보다 또 다른 세상에서 인과응보에따른 적합한 상벌의 분배가 없다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불가해한 이상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도덕적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라 그러면 무덤 너머의 상태에서 현재 존재하는 응보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추론은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시작되나, 그것의 주도적인 원칙들을 세울 만큼만 효력있는 그 도덕적 정부(양심)의 완성된 진열은 또 다른 생까지 연기된다.

 

모든 의로운 원칙에대한 사악하고 무모한 불법자들, 자신의 창조주와 인도적인 모든 신성한 관계를 발아래 유린하는 자, 하나님의 면전 그분을 저주하는 자, 그리고 자기 형제의 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살아있는-피에 자기 손을 적시는 자; 부정하고 음탕하게 반역하는 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고귀한 언약들을 자신의 욕망의 제단 위에서 학살하는 자, 선(善)의 품으로 독사처럼 몰래 기어들어가서 의심하지 않고 무력한 순수함에 독인 든 자기 엄니를 꽂는 자, --그렇다. 이 지구는 그 괴물 아래서 신음하고 하늘은 그 괴물 위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그 괴물의 머리 위에서는 상처입고 모욕당한 인류의 음성이 복수를 호소하며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 잔잔한 물가의 푸른 월계수처럼 번성하는 것이 이 사람에게 허용되고, 마침내 아무런 다툼이나 고통없이 평안하게 누워서 죽을 수도 있다. 이것이 완전한 정의가 요구하는 전부인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이제 돌이켜 살펴보자.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한결같은 열심으로 행하였다; 그는 매일의 일출과 일몰에 아내와 아이들과 모임을 가졌다 - 그는 가족들을 자신의 하늘 아버지의 선물이라 여겼다; 그는 주님의 집의 뜰을 밝는 것과 그분을 찬송하는 것과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묶어주는 모든 관계들을 존중하였다; 그는 “짓밟는 자가 되기보다 오히려 짓밟히는 자”가 되고자 하였다; 자신의 사방 주변으로 참 사랑의 샘물을 넘쳐흐르게 하는 달콤하고 넘치는 샘의 원천인 심령을 지닌 자였다; 그는 그의 원수가 죽어가는 침상 곁에서 날이 샐 때까지 앉아서 지켜보았다; 그는 부드럽게 고아들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적절한 동정으로 과부의 심령에 기쁨의 노래가 있도록 하였다,--이 사람은 가난하고 부족하고 지독하게 초라한 삶을 오래 지속하여야 했고 종국에는 순교자의 불꽃 속에서 태워지거나 혹은 벌거벗겨진 채 언 땅에 내동댕이 쳐지거나, 죽어가는 그의 눈을 감겨줄 친구도 하나 없이 마지막 숨을 쉬어야했 했다. 오, 말하자면, 미래에 심판이 없겠는가? 이 사람이 보상을 받게될 심판석이 그 무덤 너머에 없겠는가? 그렇다, 있다, 반드시 있다. 공의 자체가 그 질문에 위엄있게 분연히 일어나, 눈썹을 모으고 당당한 손가락으로 활활 타오르는 재판석을 가리키는데, 그 재판석에서는 손에 공정한 저울을 들고 공평하고 무오한 재판관이 삶의 불평등을 교정하시고 모든 영혼에게 적합하고 논의의 여지가 없는 심판을 명하실 것이다.

 

미래의 심판에 대한 사실과 관련하여 이러한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추론들은 성경의 무수하고 명시적인 증거들에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적하고자 멈추지 않고, 다음 부분을 살펴보기위해 넘어가겠다:

 

II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심판자이실 것이다. 사법적 권위와 관련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 심판자이시리라는 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시편기자는 훌륭하게 공포하고 있다. 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선포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곧 주님께서 해가 뜨는 곳으로부터 지는 곳까지 지구를 부르셨다.” 의심할 바 없이 절대적이고 무한하신 신격의 공포와 광채, 영광과 진노가 심판의 보좌 주변에 모이며, 무서운 그날의 견딜 수 없을만큼 당당하고 위압적인 장관을 보일 것이다. 임재하신 하나님의 권력과 강제력을 그 현장에 부여하는데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날의 절차들을 강조하기위해서 천국은 그 영광들을 더할 것이고, 지옥은 그 공포들을 더할 것이다. 최상의 은혜, 천국의 자비, 흠없는 거룩함, 손상당한 정의, 과오가 없는 진리, 저항할 수 없는 힘, 그리고 타오르는 진노가 모두 현재(顯在)하고, 그 장엄한 행사를 관장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세 인격의 하나님께서 본래의 권위에 따른 심판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보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법적 특권의 즉각적 이행과 분배에 관한 심판자이심을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한 날을 정하시고 그 날에 친히 택하신 그분에의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려 하시고”(행17:31) 그분께서는 그 중요한 광경을 목도하게 될 모든 눈들에 보이시기 위해서, 갈보리 위에서 자신이 받으신 모든 고통의 상처들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지극히 합당한 것은, 중보자로서 예수님께서 심판자이셔야 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심판이 구속 계획의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하며, 그 적용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 장이자 그것과 인간 사이의 범할 수 없는 봉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피로-사신 사람들의 구원은 그분께서 심판석으로 오실 때까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배운 바 믿고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때 지상으로 살아올 것이고, 세상, 육신과 마귀와 다툴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공식적이고 최종심판이 공포되어질 것에 관하여, 그것은 그들의 완전한 구속의 사인일 것이고 우리 주님이시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왕국으로 그들의 총제적인 개성안에서 충만한 입성의 사인일 것이다. 그분의 지램의 공포가 될 때까지, 모든 그분의 성도들은 미래에대한 갈망하는 눈을 고정시키고 위대하신 하나님, 심지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대한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전 교회가 자백한채 있을 것이고, 그 교회는 승리자이며, 전쟁의 땀에 젖은 무장을 벗고, 승리의 영원한 꽃으로 관 쓰고, 흰 옷으로 단장한 채 말이다.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분은 믿는 모든 자들 안에서 경배를 받으시고, 그들의 구원의 머릿돌이 그것에대해서 은혜, 은혜의 축포들을 가지고 나타나실 것이다! 그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솔로몬의 영광을 멀리까지 발산하는 당당한 성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중요한 모퉁잇돌이시며, 대속하시는 피로써 접합되고, 살아있는 돌들로서 구성된, 마쳐진다, 그리고 속죄받은 죄인들의 상승하는 호산나 소리와 천사들의 합창소리로 진동하는 할렐루야 한 가운데 머릿돌이 놓여져 있다. 그때 도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지상의 의식들의 발판이 제거되어질 것이고, 윗 성전의 막이 둘로 갈라지고, 천국의 지성소의 신성들이, 우리의 선조들이 어디로 갔던지 간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성도들의 미칠듯이 기뻐하는 눈에 똣렷이 보이게 된다. 지상의 성소는 닫혀질 것이고, 성경이 닫혀지고, 설교단이 무효해지고, 그 아름다운 곡조의 찬송, 희년의 떨리는 나팔소리--지옥과 죄와 사망의 노예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여 침묵하고 옆으로 물러서게 한다: 영원한 복음을 들고 천국을 날아다니는 계시록 천사가 그의 날개들을 접을 것이고 그의 비행을 중지할 것이다; 긍휼의 초청들과 체화된 사랑의 호출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고, 은헤의 날의 발공하는 태양이 영원한 밤의 암흑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분의 구속 사역의 마지막 장으로서 우리의 구주께서 은혜의 소리들을 닫고 영원한 심판의 소리를 여실 것이다.

 

그것이 또한 정해져 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자이실 것이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인자이시기 때문이고, 왜냐하면 그분께서 심판석에서 심판받으실 것처럼 그 본성을 소유하셨기 때문이며 육신안에 인간들의 동료였었기 때문이며, 경험적으로 그들의 유혹들을 알고계셨고, 비록 그 자신은 죄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한 인간으로서 실질적인 관찰로서 그들의 구성적 동기들, 연약함들, 그들의 환경들, 기회들 그리고 챈스들을 인지하셨기 때문이다. 인류에대한 어떠한 이방인도 인류가 천국이나 혹은 지옥으로의 철회될 수 없는 지명을 받고자 서야만 하는 그 심판석을 체울 수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심판자일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사건의 잣대를 알고 계신다.

 

더구나 정해져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재판자이셔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분의 심판보좌 착석과 사법적 특권의 실행이 그분의 중재적 사역의 이행기간동안 그분의 굴욕의 약속된 보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이러한 보상의 관점에서 인류의 구속의 엄청난 일을 수행하기위해서 자발적으로 그 자신을 낯추셨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에게서 자신의 영광을 벗기셨고, 수치의 사다리를 내려오셨고,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입으셨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구유통 안에 누이셨고, 각각의 고생스러운 날의 노동들이 행해졌을 때 그분의 머리를 누이실 그 베게도 엇으셨고,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를 드리셨고, 중죄인처럼 거칠게 체포되셨고, 법정에 서셨고 종교재판의 인간 심판석에서 정죄받으셨고 그분 자신의 가시적인 교회로부터 파문당하셨고, 두 강도들 사이에서 큰 죄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고, 그분의 임종시의 고통중에 사역자들과 장로들에게서 조롱을 받으셨고, 그분의 육신의 일부가 쉬실 수 있는 조금의 땅도 없이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 날에 그분의 수치의 부끄러움이 비교될 수 없는 보상의 영광을 높이는데 유일하게 기억될 것이다.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것을 웅장하게 묘사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탈취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그분 자신의 명성을 만들지 아니하시며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그분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지극히 높이시어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께 주셔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이는 한번, 적어도, 천사들, 사람들과 마귀들이 한 커다란 무리로 모여질 것이고--그것은 저쪽의 빛나는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의지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영광을 받으신 나사렛 예수님께 경배를 표시하기위해서 일 것이다.

 

여전히, 더 나아가서, 그것은 적합한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자이실 것인데, 그 사람이자 불명예를 당하신 구주의 요구들이 모여진 세상 앞에서 해명되어져야할 것이다. 비록 그분께서 천국의 무리들의 영광과 경배와 예배를 포기하셨고, 가난하게 되셨는데, 이는 그분의 가난함을 통해서 우리가 부요하게 되고; 비록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나 죄인들이 왕관을 쓰게되엇고, 그러나 우리의 축복받은 주인께서 사람의 경시를 받으셨고 거절을 당하셨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른 땅으로부터 나온 한 뿌리였고, 형체도 없으시고 고상함도 없으셨고, 그들이 그분을 보았을 때 그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전혀 없으셨다. 비록 그분께서 살아계신 선의 화신이셨다해도--한 광경을 플라톤이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길로부터 끌려나와 의의 길로 이끌릴 것이며, 비록 그분께서 가루쳐온 모든 거룩한 신념들을 그분 자신의 행동으로 실증하셨다 해도 그리고 오점이 없는 성품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의 사람들 사이에서 독점적인 예로 서셨다해도--활짝 개화된 인류애의 꽃과 빛나는 신성한 영광의 반영, 그러나 그분은 오만무례와 고집으로 대우를 당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생명을 댓가로 세우셨던 그 신성한 종교, 인간 구원의 조직, 인류가 앓는 병을 치유하기위한 진료소, 인간 재난의 피난처, 그리고 인간의 희망의 선언서는 기만이라 희화되었고 거짓이라 거부되었다. 불신은 기적들을 보고 주저없이 비웃게 하는데, 그 기적들은 긍휼의 일례들로서, 인간의 비참함을 구제하기위해서 자연을 정복하였고, 권능의 증거로서는 마귀들 스스로들 안에서 자각시켰다. 그분은 그들의 모든 질병의 아픔을 치유하셨다; 그분은 만지시는 것으로 나병을 낫게하셨고, 그분은 한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강건케하셨으며, 그분은 벙어리들을 말하게 하셨고, 귀머거리들을 듣게하셨으며눈먼자들에게 시각을 주셨다; 그분은 말씀하시면 사나운 폭풍우가 고요하게되었고, 거센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처럼 잠잠해졌고, 폭풍우에 흔들리고 성난 파도들이 돌연하고 놀랍게도 평안하게 가라앉았다; 그분께서는 관으로부터 시신을 일으키심으로써 장례 행렬을 멈추셨고, 무덤 입구에 서서 그분의 전능하신 음성으로 무덤의 수의들로부터 썩은 육신을 일으키셨다. 그리고 한편, 그분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을 때, 그분을 비웃고, 채찍질하고, 침을 뱉었던 자들은 바로 그분의 신성한 권능의 이러한 놀라운 실연들 그리고 이러한 그분의 신성한 사명의 나무랄데 없는 신임장들을 목격하였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며, 그분의 찢겨진 시신주변으로 몰려들어 그분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요구하는 그 잔인하고 동정심없는 고함을 질렀다. 오 너 하늘이요, 이에 놀라라 그리고 너는 공포스럽게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분의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그분의 심지가가 올려졌던 곳이 어디든 그분의 은혜가 거부된 이래로, 그분의 대신 죽으신 사랑의 선물들은 모멸당하거나, 혹은 거룩하고 고귀한 예수님의 이름이 대담한 불경스런자들의 입술들에 일종의 놀잇감이나 별명으로서 올려지는 것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오래지 않아서 그 장면은 바뀔 것이다. 이제 그분께서 심판하시기위해서 두 번째 영광스럽게 오실 때에관한 성경의 증언을 들어보자. 산에 올라가서 푸른 하늘로 사라져서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신 그분의 멀어지는 형태를 목격하였던 제자들에게 하늘로부터 한 대표자가 말씀하셨다, “너희 갈릴리의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 모습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그분께서 친히 그분의 지상의 심판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서 하늘의 구름중에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렇다, 수치스럽게 대우받으시고 나무에 달려 못박히신 이 예수님, 그분의 요구들이 이제 아마도 이 모임중에서 몇사람에의해 무시되어지는 이 예수님,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께서 오실 것이지만, 피흘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분께서 오시되,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과 함께 오시고,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이고, 그분을 찌른 자도 볼 것이요, 지상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떨 것이라. 아멘 그리할 것이로이다,” 그분께서 오시되, 빽빽한 천사 그룹들로 들로싸여서 오실 것이고, 승리하고 개선하는 교회의 무리들에의해 둘러쌓인 채. 그분께서 오시되 구원의 휘날리는 깃발들과 사탄, 죽음 그리고 지옥으로부터 떼어낸 승리의 트로피들을 수반한채. 그분께서 오시된, 군대들의 노래, 천지를 진동시키는 나팔 신호와 죽은 자들을 깨우는 함성소리로 선도되어.

 

“보라,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신다,

한번은 은혜받은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지만;

수천의 수천의 성도들이 참석하여

그분의 행렬의 승리를 노래한다.

할렐루야!

예수 오시네, 통치하시기 위해 오시네.”

 

오, 그분의 수치의 지위로부터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한번은 가시 왕관이 그분의 성전주변에서 휘감겨졌으나; 이제 그분의 이마에는 중재자의 왕관이 빛난다. 한번은 그분의 손은 저주받은 나무에 못박혀졌으나; 이제 그분의 전능하신 오른손이 수천의 천둥-번개들을 쥐시고 우주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통치의 왕권을 휘두르신다. 한번 집도 없이 그분께서 한밤중의 공중에 누우셨고 그분의 머리는 하늘의 이슬과 찬서리로 젖으셨지만; 이제 그분은 커다란 백보좌에 위엄있게 앉으시고, 구름으로 덮여있고, 포진된 체루빔으로 둘러싸여서. 한번 그 고요한 분노의 눈물이 그분의 핏기없는 얼굴로 흘러내렸지만; 이제 보라! 그분의 위압적인 얼굴 앞에 위축된 땅과 하늘이 서둘러 도망한다.

 

“주님, 심판자, 그분의 보좌 앞에서

온 땅을 가까이 나오도록 명령하신다;

떠오르는 태양 근처의 민족들이

그리고 서쪽 하늘 근처.

 

더 이상 대담한 불경자들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심판이 결코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분의 오랜 지체하심을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오만과 죄에대한

 

구름위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실 것이다,

빛나는 화염들이 그분의 길을 마련한다;

천둥과 암흑, 불과 폭풍우

그 무시무시한 날을 인도한다.

 

천국 위로부터 그분의 부르심이 들릴 것이다,

동행하는 천사들이 온다;

그리고 땅과 지옥이 알고 두려워할 것이다

그분의 공의와 그들의 심판을.”

 

III

 

이제 마지막 설명의 그 날을 동반하고 위엄을 높이게될 그 무서운 풍경들중 몇몇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떤 입술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떤 마음이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영광과 그 장엄함과, 그 흥분, 떠들썩함과 경종, 놀라움, 기쁨, 화, 무엇이 “모든 다른 날들이 만들어졌던 그 위대한 날”을 표현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 손에들린 성경의 조명을 받아서 그 두려운 주제에 접근해보자.

 

우리는 어떤 사인도 그 날의 다가옴에 관하여 국가들을 미리 경고할 수 없다고 배워왔고, 누구도 그것이 세상에 갑자기 닥칠때까지 그것을 거의 의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배워왔다. 비밀리에 그리고 은밀하게 거대한 종말이 다가올 것이다. 세상은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 그 시업과 유희를 즐기는데 바쁠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인자가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이는 홍수 이전의 날들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가던 그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인자가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24:37-39) 누구도 그 위대한 날이 임박한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자기들의 몇몇 일상사들로 인해서 바쁠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말할 것이다, “그분이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는가? 왜냐하면 조상들이 잠자는 이래로 모든 것들이 그들이 세상의 기초로부터 있었던 것처럼 지속되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의 책들과 함께 감금되어 어떤 좋아하는 작가의 서적에 몰두할 것이고 혹은 어떤 난해한 논문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몰두해 있을 것이다. 상인들은 외상장부를 계산하거나 혹은 열중하여서 어떤 대규모 투기대상을 셈할 것이다. 농부는 자신의 수확을 실어나르거나, 혹은 자기 곡간이 가득찬 것과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자축할 것이다. 정치가는 몇몇 최근 정보를 정독하느라 심취되어 있거나 보다 높은 명성의 정점을 쫓기 바쁠 것이다. 군대장군은 “전쟁의 모든 장관과 환경들”을 정복하고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신랑은 자신의 신부로 인해 기뻐할 것이고,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신생아로 인해 기뻐할 것이며, 애도하는 자들은 그들이 결코 차지할 수 없을 마지막 집을 향해서 분리된 친척의 남은 자들을 쫒을 것이다. 상원의원들은 소집되고, 법정은 착석하고, 여행객이 몰리고, 상업은 표류하고 대양은 수많은 돛들로 새하얗다.

 

세상의 한 부분에서는 한 밤중의 침묵이 지배하고 있다, 음악과 어떤 유흥모임의 웃음소리로 침묵이 깨어진 곳을 제외하고는. 또 다른 곳에서는 바쁜 정오의 혼잡과 소동이 있거나, 혹은 살벌한 벌판에서 전쟁에 임하는 군대들의 충돌이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저녁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태양이 더 이상 떠오르고자 움직이지 않으며, 저녁별이 심판받은 세상위에 마지막 때를 위해서 유례없는 광휘로 빛나고 있다; 반면에 또 다른 곳에서는, 일찍 일어난 새가 새벽을 깨우고, 이슬이 여전히 잔디 위에서 빛나고, 일출이 영광중에 막시작되려하고 있다, 소돔이 하늘로부터 불태워질 때 그 청명한 아침에 일어났던 것처럼. 모든 것이 다가오는 위험에 무지할 것이다; 갑자기, 한 순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천둥폭발소리가 세상을 뒤덮고 땅위의 기둥들을 흔들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어보라! 하늘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질풍같은 나팔소리가 동, 서, 남, 북을 향하여 강한 바람들의 날개를 타고 몰려들어 수만은 매장지들을 관통하고 그곳에 고용히 잠든자들의 “닫혀지고 차가운 귀”들을 깨울 것이다.

 

 

 

 

 

아치를 따라 돌아서 굉음이

천국까지 울려퍼진다. 지옥은 신음소리를 되돌린다;

그리고 일순간에 몸서리치는 지구가 당황해서 휘청거린다

지구의 고정된 경로를 지나쳐, 비틀거리는 배처럼,

융기하는 몇몇 산으로 인해서 인사불성이 된채 휘청인다. 작은 섬들은

융기하는 해저암석과 함께: 산들은 흔들린다

그들의 오랜 소관(小冠)들을: 쇄도하는

뇌성: 만국에 침묵이 이어진다.

땅은 결코 이와 같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은 여전히 자연의 일반적인 맥박을 때리고,

그리고 무딘 사망의 잠을 영원히 깨운다.”

(제임스 힐하우스의 심판에서, 시제에따라서 조정됨)

 

그 모두가-일어나는 소환에서 회의론자들은 자신의 억지이론들을 그칠 것이고, 책을 보던 학생들은 놀라서 벌떡 일어날 것이고, 상인들은 자기의 장부를 버릴 것이며, 농부들은 자기의 수확과 곡간을 잊어버릴 것이고, 정치가는 승진이라는 백주의 꿈에서 깰 것이고, 군인은 칼을 쥐고 있던 손을 내릴 것이고, 신랑은 안고있던 기절한 신부를 내려놓을 것이고, 어머니는 품에서 신생아를 떨어뜨릴 것이며, 애도하는 자는 인류애의 미지막 사무실을 무시할 것이며, 상원의원은 혼란중에 일어나고, 법정은 더 이상 다음 회합을 잡지 않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경고가 울릴 때 자연의 바퀴는 멈춘다; 시간의 흐름도 중지된다; 사망은, 중도에서, 그의 창백한 말을 고삐를 잡아 멍추고 그 지명적인 화살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제 어떤 전능한 광경들이 드러나는가! 위로 창공이 두동강으로 쪼개지고, 험한 협곡사이로 두려운 눈에 보이지않는 세상의 영광이 빛난다, 반면에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함성과 함께 하강하신다, 대천사들의 음성과 함께,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그리고, 보라, 한 전능하신 천사가 머리위에 무지개와 구름으로 옷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의 얼굴은 마치 태양처럼, 그리고 그의 발은 불기둥처럼; 그리고 바다와 땅위에 서서, 그의 손을 하늘에까지 들고 영원히 영원히 사시는 그분에의해 맹서한다,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하리라” 무시무시한 선포이다! 이 현세의 장면의 변화와 기록들이 멈출 것이다; 아침과 저녁의 달콤한 교대들이 끝나고, 계절들은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다. 복음의 기간의 날들과 주들, 달들과 해들은 더 이상 회전하지 않고, 사람들은 측량할 수 없는 영원의 기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이후로부터 두가지 불변하는 존재의 형태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인데--그것은 바로 깨어지지 않는 안식, 혹은 끝이 없는 영혼의 장례식.

 

시간은 흘러 무덤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아들의 음성을 듣고 나타날 때가 온다; 선을 행하였던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리고 악을 행하였던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엄청난 광경을 보라!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이 광대한 육신의 집의 모든 곳으로부터 사망의희생자들이 그들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 그들을 그들의 심판대에 출석하도록 명령하시는 호출에 순종한다. 웅장한 무덤들이 터지고, 그 안에는 왕권을 쥐고있던 전제군주들의 재들이 납골된 채 누워있다; 이끼가 덮힌 분묘들이 터지고, 그 아래 제사장들과-수제사장들, 귀족들과 군주들, 입법자들과 전사들, 철학자들, 웅변가들, 그리고 시인들이 묻혀있다; 반면 노예들과 소작농들이 죽어서 들어있는 잡초가-무성한 토분들은 천국의 호출에 불복종하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대성당의 회랑들로부터, 모든 붐비던 교회무덤들로벝, 숲속의 장례지로부터, 깊고깊은 해구로부터, 오랫동안-잊혀졌던 죽은 자들이 심판의 날에 무시무시한 실체들 한가운데서 새롭고, 불멸하는 존재로 시작한다. 고독한 여행자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땅에서 발견된 채 외로운 무덤으로부터 그가 일어난다; 반면에 조밀한 공동묘지에서 나란히 묻혀있는 온 가족들이 좁은 침상에서 함께 일어난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다시 보고, 남편이 그 불활의 아침인사를 아내에게 보낼 것이며, 어머니가 그녀와 함께 같은 무덤에서 잠자며 그녀와 함께 티끌 속에 묻혔던 아기를 다시 한번 자기 품에 꼭 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보좌가 준비되고, 운명의 최고 조정자께서 자기 자리를 잡으시고, 책들이 펴지고, 인류는 심판받으러 소환된다. “내가 보니 한 백보좌가 있는데”(계) 이제껏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시간의 가장 먼 경계들까지 살 모든 자들이 최후의 날에 의장대 역할을 할 천사들에의해 심판석 앞에 모이게될 것이다. 우리의 최초의 조상들로부터 그 부활의 날 아침에 생명의 첫 호흡을 내뱉고 같은 순간에 어머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최초의 애정의 말을 듣고대천사장의 무시무시한 음성을 들었던 아기까지,--모두 그곳에 있을 것이다. 지상의 셀 수 없는 수백만중 한 사람도 그 무시무시한 심판에 불참한 자는 없다. 족장들,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 국왕과 그 백성들, 주인과 그 종들, 부모와 그자녀들, 사역자들과 그 양떼들, 신앙고백자들의 선량한 무리들과 순교자들의 고상한 군대-모두가 거기 있을 것이다. 이교도들, 회교도들, 기독교도들, 무신론자들, 불신자들과 회의론자들, 모두 그곳에 있을 것이다. 창백한 얼굴의 코카서스인종들, 숲의 붉은 유랑자들, 황색 몽골인들, 그리고 거무스레한 이디오피아인들--모두, 모두 그곳에 있을 것이다. 무리 뒤에 무리가, 군중 뒤에 군중이, 민족들 위에 민족들이, 폭풍우 내리치는 바다의 깊고 공허한 파도소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회합하기 위해 무더기를 이룰 것이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설 것이다.

 

“굴러가는 하나의 광대한 군중속에,

파도를 따르는 파도,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있고,

모든 민족과 모든 언어: 모두가 경고하는 돌풍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놀라운 자극에의해 이리로 오게 인도된다.”

 

마귀들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지옥이 친히 그 거주자들을 토해낸다; 영원한 감옥의 문들이 거칠게 삐걱거리며 우레소리를 내며 절망적이고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밖으로 나가도록 회전하며 열릴 것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음울한 수증기들과 함께 올라오며 자기들의 영원한 수갑들을 절거덕거리며, 셀 수 없는 타락한 천사 군단들이 위로 밀어올려질 것이며, 전능한 권능에의해 던져진 그들은 대규모 군중과 연합될 것이고 그들의 심판의 선고를 기다릴 것이다.

 

나와 함께 상상해보자, 독자들이여, 미구에 당신이 실제로 그래야만 하듯이, 심판의 법정앞에 서야만할 그 배경으로 상상해보자. 얼마나 말할 수 없이 장엄한가! 하나의 광대한 회중 속의 세상이란! 보라, 군중들, 결정의 계곡 속에 있는 군중들! 경계가 없는 인류의 바다다 볼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하다, 새롭고 말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여 앞뒤로 동요되는. 존엄한 심판장앞에 모든 민족들이 모여있고, 염소들로부터 양떼를 나누는 목자처럼, 그분께서 그들을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을 속행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른편에 양들을, 그리고 왼편에 염소들을 두신다. 모든 인간적이고 죽어가는 특징들은 일소된다. 위선의 가면이 찢겨지고, 비밀의 커튼이 벗겨지고, 기만의 얼굴로부터 화장과 겉치레가 씻어진다. “작고 잠시뿐인 권위”를 과시하거나 쩔쩔매던 것이 사라진다. 삼중관, 주교관, 홀장, 제의, 영대와 승모가 공허애 보인다. 번쩍거리는 계급장과 금박을 입힌 고귀한 지팡이들, 병기의 문장들과 영예로운 별들과 십자표식들이 인류에게서 떼어져나가고, 그들이--“벗거벗고, 꾸미지 않고 첨가되지 않는 인간”으로서 나타나게 한다. 지상의 행렬의 기준들, 표시들, 그리고 깃발들이 심판의 여명의 대기중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부와 권력, 재능, 은사들 그리고 명성--중 진실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믿음 말고 그들에게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적대자들---이것들이 그 압도적인 임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유일한 구별일 뿐이다.

 

대규모 군중중 각 사람이 보인다. 각각은 알려져있다. 각각은 하나님께 자기자신에 관하여 설명해야 한다. 누구도 자기 동료들과 책임을 공유할 수 없다. 누구도 타인의 교육, 조언, 예 뒤로 자신을 숨길 수 없다; 누구도 자신을 목사, 부모 혹은 친구라는 치마로 가리울 수 없다. 가족들이 분리된다; 개개인들은 지독하게 철저하고 개별적인 식별을 통해서 개개인들과 헤어진다. 오, 대단한 감별이다! 여호와의 팬이 그분의 손에 있고, 그분께서 알곡에서 가라지를 키질하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곡간으로 알곡을 모으시고, 가라지들은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넣으신다.

 

이제 완전한 구속의 날이 유혹들과, 심판들과, 두려움들 죽에서 자기들의 주님을 섬기며, 기다리고 기도하며 그분의 두 번째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바라던 자들에게 온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예수님의 피에 씻겨지고, 예수님의 구속의 선물들을 기쁘게 받은 그들이 그분의오른손에 서서 그분의 미소짓는 얼굴을 바라본다. “오라” 왕께서 말씀하셨다, “오라, 너희 내 아버지의 축복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로부터 너를 우해서 준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왜냐하면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갈급할 때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다: 내가 이방인이었을 때 내가 나를 안으로 맞아주었다; 벌거벗었을 때 네가 나를 옷입혔다: 내가 아프고 감옥에 있을 때, 내가 나에게 왔다. 네가 이들중 가장 작은 자들에게 한 그것이 내 형제여 너희가 나에게 한 것이니라.” “너는 너의 주님의 기쁨에 참여할지라” 오, 환영사여! 오 몹시 행복한 영혼들이여! 그들의 고난은 자나갔고,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의 그들의 싸움은 끝이났고, 좁은 질은 모두 지나샀고, 죽음, 그들의 마지막 적도 정복되었고 그들중 한 사람도 무덤의 장막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 전쟁이 싸워졌고, 마지막 죄가 행해졌으며, 마지막 눈물이 씻겨졌다.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도 더 이상 있지 않다. 더 이상 십자가도, 불도 화형도 없다. 더 이상의 쇠사슬도, 지하감옥도, 누더기도 없다. 소리쳐라, 너 값을 치르고 사진 죄인들이여, 소리쳐라! 왜냐하면 황금으로 된 하프, 의의 왕관, 지극한 하나님의 환상, 그리고 결코 희미해지지 않는 천국의 영광이 당신들 것이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그분의 오른편에서 서로서로 만난다. 지구의 갈라졌던 끈들이 다시 재건된다; 그리고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들이 더 이상 영원히 깨질 수 없는 한 공동체로 재집결된다. 얼마나 열정적인 포옹인가! 상호간의 축하인사인가! 기쁨의 환희! 구속자의 피로-사진 온 교회가 최초로 그분의 즉각적인 임재 앞에서 만나는 그 날의 영광이여!

 

그러나, 오호! 그러나 저 분리선을 가로질러서 비참한 심판의 자녀들이서있다. 그들의 용모들은 절망의 공포감에 쌓여있다. 그들은 신실한 자들의 무리와 소망의 위로에서 저항할 수 없는 손에의해 갈라져있다. 오, 죄인들이여, 제때에 경고를 듣고 그 날을 예상하라. 어떻게 불경건한 부모들이 육신적으로는 자기들의 자녀였지만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을것인가? 회개하지 않는 자녀들이 경건하고 거룩한 부모들과 함께 할 수있겠는가? 어떻게 그들이 마지막 손의 움켜쥠과 그들의 영원한 이별을 견딜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강퍅한 죄인들이 어린 양의 피 안에서 구원을 발견하도록 헛되이 그들에게 간구하고, 그들의 자존심 위에 비밀한 곳들 속에 울고자 그들의 거절들에의해서 끌려간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얼굴로 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모든 설교가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을 쳐다볼 것인가 그리고 모든 깨어진 안식이 그들에 반하여 신속한 증거들을 지니고 있을 것인가? 어떻게 불신자들, 회의론자들, 그리고 박해하는 종교재판가들이 매도당하고 중상당했던 성경을 쳐다볼 수 있겠는가, 그 성경은 지금 심판석 앞에 펼쳐져 놓여있으며 그들이 그 법에 따라 판단을 받는다? 그것을 저항하였고,그것을 반대하였고, 그것을 비방하였고, 그것을 불태우고, 그것들이 그들이 과거에 해왔던 일이지만, 그러나 이제 그들은 반드시 그것을 마주 대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깨지지 않고 영원한 말씀으로서. 양심의 무시자들이 어떻게 그 최종 심판대 앞에서 그 증거들을 마주볼 것인가? 어떻게 양심이 무장한 용사들같은 그들 위에 일어나서 그들을 향하여 틀림이없는 손가락을 가리키고, 그들에게 그들이 잊고있었으나 이제 소생된 죄들로 송사하겠는가? 영혼의 기저들에 가라앉아있는 감추어진 동기들, 영의 은밀한 방들에 사람의 눈을 피해 감추어져 있는 부끄러운 생각들과 감정들, 밤의 암흑 속에 관통되어진 사악한 행위들,--보라! 그들이 이제 빛 가운데로 끌려나오고 모여진 세상 앞에 폭로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셔서 그분의 거룩함, 공의와 법의 견딜 수 없는 영광을 심판대에서 떨고있는 조인에게 부으실 때, 그분의 심령은 게걸스런 불꽃 속에서 밀초같이 그 안에서 녹을 것이다. 위선자들과 거짓 신앙고백자들에게 예수님의 무시무시한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 날에 많은 자들이 와서 주여주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치명적인 실수를 자각할 수 있기까지 너무 늦게 깰 것이다. 심판석 앞에서 그들의 오른편에 거짓말을 가지고 서서, 얼마나 끝이없는 절망, 분노와 공포가 그들의 영혼을 사로집을 것인가? 그들이 알게될 때, “거기에 심지어 천국문으로부터 지옥가는 길이있다.”

 

너 음란하고 부정하고, 악하고 냉담하고, 너 안식을 깨는 자와 속이는 자들이여, 어떻게 너희들이 시나이 산의 두터운 암흑으로부터 불꽃 중에 한 번깨어졌으나 이제 타오르는 밝음과 무시무시한 진노 속에서 번뜩이는 그 맹렬한 법의 권위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그리고 오 너 그리스로를 거절한 자여, 어떻게 네가 그분의 손과 발에 못자국과 그분의 심장을 둘로 가른 그 창의 자국을 지니고 너의 재판자로서 앉아계신 그분을 어찌 대면할 수 있겠는가?

 

“경멸당하셨던 나의 구주께서 저쪽에 앉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표식들을 지니시고;

오, 나는 그분의 은혜를 구하였네

내가 그분의 성령의 움직임을 느꼈을 때!

황금과 같은 순간들

내가 그분의 성령의 움직임을 느꼈을 때!”

 

그분께서 당신에게 그분의 복음을 주셨다; 당신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분께서 당신에게 그분은 손을 내미셨다; 당신은 그것을 던져버렸다. 그분께서 당신을 위해 그분의 눈물을 흘리셨다; 당신은 그것들을 발아래 짓밟았고 그분의 가장 귀중한 피를 거룩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구원! 구원! 당신은 그때 그것이 얼마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것인가? 당신의 얼굴이 얼마나 창백하게 될 것이며, 떨림이 얼마나 심하여 무릎이 꺾일 정도일 것인가? 당신의 심장이 어떤 분노의 신음소리를 낼 것인가? 얼마큼 당신은 피눈물을 흘릴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는가? 안식, 성경, 설교자, 긍휼의 자리, 복음 -- 그것들이 모두 깨끗하게 영원히 사라지는가? 그렇다, 불쌍한 죄인이여,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사라지시고, 은혜의 성령님도 사라지시고, 천국도 사라지고, 빛의 광선을 지닌 가장 맹렬한 폭풍우로 덧입혀지곤 했던 소망, 심지어 사망, 심판 그리고 영원을 참을 수 있게했던 소망, 그 소망 역시 영원히사라진다. 그리고 심판이 온다, 거룩한 보복이 온다, 칠흑같은 어둠과 두 번째 죽음이 온다. 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온다, 즉 긍휼이 풍성하신 구주 예수님, 즉 너무나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분께서 그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맞으시고 피흘리셨던 그분깨서 이제 그들의 심판을 선포하셔야만 한다. 축복속에 말씀하시는 데 익숙해졌던 그 입술들이 반드시 그들의 영혼들에 철회할 수 없는 저주들을 말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들에게 은혜를! 가장 깊은 천둥의 어조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너 저주받은 자들이여, 떠나서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준비된 영영한 불 속으로 가라.”

 

운명의 선고들이 선포된다; 그러나 보라, 어떤 떠오르는 빛이 그 거대한 집회위로 무시무시한 섬광을 흘리고, 심판 받은 자들의 창백하진 얼굴위에 붉은 음영을 던지고, 백보좌의 표면을 진홍색이 되게하는가? “이는 불 위에 세상이다! 불타오르는 대기가 불꽃의 촛농속에 지구를 휘감고, 엄청난 양의 연기가 위로 돌돌 말리고 천국의 빛들을 검게한다; 태양이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은 피가 되고, 별은 제 때가 아닌 무화과처럼 떨어진다. 산꼭대기부터 산 꼭대기까지 화염이 뜀을 뛰며 놀고, 반면에 불바다가 자연의 표면을 휩쓸어 버리며 도시들, 마을들과 촌락들을 그 바다같이 굽이치고 요동하는 중에 덮친다. 불을 끄는 물 자체가 삼켜진다; 대양들이 카멜의 작은 심판-날에 엘리야의 제단 주변에 참호 속의 물같이 그들의 침대까지 훓어지고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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