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그날이 있었는가?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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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종교적인 예배와 복음적인 예배가 있는데 거듭난 사실 없이 교회당에서 예배드린다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종교적인 예배이며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배는 그날이 있어야하고 그날 곧 죄 사함을 받은 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출 이집트 한 그날이 있고 그 사실을 기념하면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는 삶이 올바른 예배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받은 그날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그날을 확실히 기억해야하지만 기억을 할 수 없다할지라도 자신이 구원받은 날은 있고 그 사실을 알고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51절에 있는대로 예배는 이집트가 아니라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써 그 절기는 어떠한 절기인가? 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430년 동안이나 종노릇하면서 하나님도 없이 절기도 없이 파라오의 폭정아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옵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면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면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 하리이까? 하매.”(3:13)
여기서 알 것은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사람들은 이제까지도 조상들 이후부터 하나님도 알지 못하였고 절기란 없었던 백성인데 절기를 지키기 위해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그 절기란 무엇이냐? 입니다.
이날은 너희에게 기념이 될 것이니, 너희는 그것을 온 세대에 걸쳐 주께 절기로 지킬 것이며, 너희는 그것을 영원히 규례로 삼아 절기로 지킬 것이니라.”(12:14)
여기서 알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터 절기가 있어왔던 것은 아니고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린양의 피로서 저주가 넘어가고 출 이집트 한 그날이 처음으로 절기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날이 절기가 생겨났고 그것이 절기가 된 것입니다. 이집트 전역에 장자가 저주를 받아 죽어 버리는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상한 표적을 두게 하셨는데 곧 양을 잡고 그 피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집의 문설주(기둥)와 인방(천정문지방) 우슬초로 뿌리고 정작 죽어야 할 장자가 심판에서 구원받아 살아나는 놀라운 날 이였습니다. 멸망 받아야 할 그들이 양이 대신 죽어 흘린 그 피 때문에 살아난 날 이였습니다. 다음으로 모세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 시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이집트에서, 곧 종의 집에서 나온 이날을 기억하라. 주님께서 손의 권능으로 그곳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나오셨나니, 누룩 있는 빵은 먹지 말지니라. 너희가 아빕월 이날에 나왔느니라.”(13:3-4)
그들이 나온 그날은 아빕월 이날 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유월절(逾越節)이란 절기가 설정 되었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집의 장자가 죽는 심판이 넘어가버린 절기였습니다. 그 심판이 뛰어 넘어갈 수 있었던 증표는 곧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려 놓은 것으로서 그것이 표적이 되어 장자를 죽이는 심판자가 그 피를 보자 즉시 그 집을 넘어 가버리고 큰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나는 그날을 기념해서 절기가 설정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곧 구원받은 날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종노릇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등허리에는 채찍이 내려치고 있었고 멍에가 지워져 있습니다. 지푸라기도 없이 매일 매일 1일 할당량의 흑 벽돌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사는 날들 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집트 안에 있는 장자 곧 짐승이나 사람이나 를 막론하고 다 죽어 버린다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도 더욱 크게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죽지 않을까? 그리고 또다시 해결책이 들려왔습니다. “10일까지 양을 잡아라. 양은 1년이 되고 숫컷 이어야 하며 더불어 흠도 없어야한다. 그리고 14일 저녁때에 양을 죽여 피를 받아서 우슬초로 각자가 살고 있는 집 대문에 기둥과 인방에 뿌리고 저주가 지나갈 때 까지 가족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집안에 있어야한다는 소식 이였습니다. 그들은 살기위해 바로 그대로 순종했고 드디어 밤이 닥아 왔습니다. 밤은 고요했습니다. 지도자의 말에 따라 피 뿌린 집안에서 온 가족들이 들러 앉아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빵과 양고기를 먹으면서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고요한 밤중에 공기를 깨뜨리는 통곡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울음소리인지를 알았습니다. 피를 뿌리지 않은 집들에 심판자가 들어가서 장자들을 친 것을 알았습니다. 공포의 밤 이였고 멸망의 밤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밝아왔습니다. 길고 무서웠던 지난밤에 피를 뿌린 집은 한사람도 죽지 않고 무사 했습니다. 피 뿌린 집은 한사람도 한집도 상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기 전에 그 밤에 밝은 보름달의 빛을 받아 채찍의 땅, 한숨의 땅, 노예의 땅에서 길고긴 광야의 여정 길을 떠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입니까? 죽어야 할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았으며 거기다가 노예에서 해방까지 받았으니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을까요? 이 얼마나 위대하고 귀중하며 영광스러운 날입니까? 바로 그날이 유월절이요, 해방의 날이며 자유의 날 이였기에 그들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이 그들의 절기였습니다. 바로 장자가 죽어야할 그날에 양이 대신 죽어 구원받은 그날을 기념하는 것이 그들의 예배였습니다. 그들의 간증 찬송이 그것을 입증 합니다.
이스라엘이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 위에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보고서, 그 백성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14:31)
이같이 그들이 큰일을 보았기에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계속해서 구원의 간증 노래를 들어봅시다.
그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이 노래로 말하여 말씀드리기를, 내가 주님께 노래하리니,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승리하셨음이요, 주님께서 그 탄자를 바다 속으로 던지셨기 때문이로다. 주님은 나의 힘이시요, 노래이시며 주님은 나의 구원이 되시는도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처소를 예비하겠사오며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높이리로다.”(15:1-2)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절기도 없었으며 고난의 세월 뿐 이였으나 과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보니 감사해서 노래가 자연히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참으로 어느 날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면 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삶이라면 그 놀라운 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복음의 능력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날 그 영광이 임하던 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던 날, 죄에서 해방을 받은 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모태에서 출생한 날이 있기 때문에 생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에서 참으로 해방을 받은 날이 있습니다. 비록 그날을 잊었다 할지라도 그날은 있었습니다. 죄에서 해방된 날이 언제입니까? 영원한 지옥의 저주에서 심판이 지나간 날이 언제입니까? 필자 역시 잊을 수 없는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사망이 지나가고 생명으로 옮긴 날 이였습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 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209)
이 찬송을 아무렇게나 부르고 있으나 이 찬송 가사에 있는 대로 참으로 내 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찬송을 부르고 있는지요? 중생의 날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을 기념해서 절기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분명히 그날이 없었다면 예배는 막연한 관념적인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인 예배에 불과합니다. “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 되게 하고 그것이 너희에게 해()의 첫 달이 되리라.”(12:2)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들에게는 역사가 있었는데 그 역사는 노예의 역사였고 암흑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이 출 이집트한 날 죽음에서 살아난 날 이 생명의 새 역사의 시작 이였습니다. 독자여러분, 그날이 있었으며 생애가 완전히 변하는 새 역사의 시작이 어느 날입니까? 한 개인의 신기원이 언제이며 새사람이 된 날이 언제입니까? 바울사도는 그날을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위의 말씀처럼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날이 언제입니까? 그날 새 노래가 심령 깊은 곳에 시작된 날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오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하리니 주님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을지라도 이제[ 주님의 노여우심을 돌이키시고 주님께서 나를 위로 하셨나이다. 하리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신뢰하리니 이는 주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시오, 내 노래시며 그분께서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샘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또 그날에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을 찬양하라. 그분의 이름을 부르라. 백성들 가운데서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밝히 선포하라. 그분의 이름이 높이심을 받았다, 말하라.”(12:1-4)
이 예언의 말씀에서 .그 날에 그 날에.하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찬양하면서 영광을 돌릴 날이 신약시대에 올 것을 말하고 있는데 언제입까?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주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주신 그날에 성령님으로 내 안에 들어오신 날입니다. 그 구원의 날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각종 교파의 홍수 속에 잡다한 교리의 종으로 일종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여! 지금 교회당에서 뿐 아니라 24시간 성령님 안에서 진정으로 그날 곧 죄 사함을 받은 그날을 기념해서 절기를 지키고 있는지요? 정말로 죄를 완전히 사함 받고 그 기쁨에 감격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그날 때문에, 그 피로 구원받은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 보아야합니다. 성령님이 계시면 심령 안에 생수가 솟아날 것입니다.
그 명절의 큰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기록이 말씀하신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 하시니라. (이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님에 관하여 주님께서 전하시는 말씀들이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직 성령님을 주지 아니 하셨기 때문이더라.)”(7:37-39)
여기 말씀같이 진실로 믿어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에, 그 배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있기 때문에 그 생수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막연한 종교적인 본능에서 나오는 가인의 예물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고 하나님의 예배의식 안에 있더라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이집트 안에서, 사탄의 노예상태로서 드리는 헛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예배와 복음적인 예배는 바로 천국과 지옥의 차이임을 알아야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태어난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다 감사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일을 잊지 않고 절기로 축하 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결혼 기념일도 잊지 않고 기념을 할 것이며 나라의 개천절이나 광복절등도 그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그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한 지옥이냐? 영원한 천국이냐? 실로 자신의 영혼이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 이 중차대하고 절실한 문제가 걸려있는 지옥에서 해방을 받은 사실이 이루어진 그날을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종교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교회 지도자의 말에 그냥 안주하며 이렇게 알아주는 것을 보면 구원을 받았겠지..하고 세월을 허송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탄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멀리 여행을 할 때는 여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여비가 있는지를 확인할 것이며 비행기를 탈 때는 여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입국비자도 확인할 것입니다. 아는 길도 물어가고 돌다리도 두들겨 가라는 속언도 있습니다. 그날에 한번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면 두 번 다시 구원의 기회는 절대로, 절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이나 자신의 생각에 자신의 영혼구원의 문제를 내 맡기고 구원의 기회를 허비하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제 양심이 맑아서 자신의 양심에 죄 때문에 심한 노예시기가 있었고 지옥의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하나님 앞에 심한 부끄러움, 심한 양심의 채찍에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가 해방 받은 그날을 잊을래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날이 지옥에 속하였다가 천국에 속한 날이며 마귀의 자식 이였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날이요, 죄인 이였다가 의인(義人)인 된 날이니 이 얼마나 복되고 복된 날입니까? 오히려 그 날을 모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래가 없이 노래 부르려는 고통, 기쁨이 없음에도 기뻐해야하는 위선 이런 것들이 바로 바로 그날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닌가요? 그러나 빈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몸으로 서서 기록된 말씀 앞에 서서 그리고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이 입었는지 벌거벗었는지? 그리고 입었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시기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딤전2: 4)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그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희생물들은 상한 영이라. 오 하나님이시여, 주님께서는 상하고 죄를 뉘우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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