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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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망의 자취
 

   제 1장에서 살펴보게 될 전반적인 문제들을 개괄적으로 요약하는 성경 구절이 하나있다. 로마서 5:12로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스코틀랜드의 어떤 마을에 한 정신박약자가 살았는데, 그가 입고 있는 외투는 매우 기이한 형태의 것이었다. 그 외투의 앞면은 크기가 각각 다르면서도 비교적 큰 헝겊 조각들로 전체가 덮여있었다. 그처럼 별나게 꾸민 이유를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 조각들이 그 이웃들의 죄들을 나타낸다고 대답하고는, 그 각각의 조각들을 가리키며 모든 이웃들의 죄들을 헝겊 조각에 결합시킬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의 외투의 뒷면에는 작은 동전 만한 작은 헝겊 조각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물었을 때, 그 사람은 말했다, "오, 그것은 내 죄예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어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 아닌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들을 보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은 그가 죄인이라고 믿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몇몇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신다: (1) 죄가 세상에 들어 왔다: (2)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3)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이른다: (4)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죄의 기원
 

  죄의 시초는 에덴 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3:1을 읽어보자, "여호와 하나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기서 우리는 가면을 쓴 사단이 우리의 첫 조상들을 유혹하러 동산으로 갔음을 알 수 있다. 사단은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들이 의심하도록 하였고 다음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비난하였다. 그때 사단이 던졌던 두 가지 질문이, 현재도 동일하게 제기되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다고 확신합니까"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하실 것을 확신합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모든 사람과 죄에 관련하여,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자. 로마서 3:9-23을 읽어보자.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제 죄에 대해, 교육이 무엇이라고 제시하든지, 철학이 무엇을 가르치든지,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하든지, 혹은 당신 스스로가 무엇이라고 믿든지, 그것은 실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이다. 당신은 아마 시장, 시의회 의원, 의사, 변호사, 정치가, 수상, 교사, 간호사,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내, 남자 혹은 여자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누구이든지, 당신은 한 명의 죄인이다. 하나님은 당신과 나에게 오늘 말씀하신다: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당신은 동의하지 않고, "목사님, 이것은 확실히, 나와 도둑, 혹은 주정뱅이 혹은 살인자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한 부분에 있어서, 거기에는 차별이 없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하겠다.
 

  모든 신병은 반드시 1m 80cm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진 특수 군대가 있다고 가정하자. 세 사람이 이 부대에 지원하려고 왔다. 첫 번째 사람은 1m 70cm이고, 두 번째 사람은 1m 75cm, 세 번째 사람은 1m 78cm이다. 누가 뽑히겠는가? 정답은 그들중 아무도 뽑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필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한사람은 단지 2cm 부족하고, 다른 사람은 10cm부족하지만 그들은 자격 미달이었다.
 

  하나님은 의로움의 기준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죄인들이기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가난한 죄인들이고: 다른 이들은 부유한 죄인들이다. 어떤 이들은 경멸받는 죄인들이고: 어떤 이들은 존경받는 죄인들이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자: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마 19:17,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그분은 하나님이시다.(KJV- that is God.)"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 중 누구도 선하지 않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많은 사람들이 "글세, 나는 누구 못지 않게 선해. 어쩌면 더 선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당신은 그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며, 어느날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삶에 대해 바로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
 

  시편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왕상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이 구절은 모든 사람 각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죄에 대한 다음 문장을 주의해서 들어보라:

"인간은 죄를 사고(accident)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스러운 것(abomination)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큰 실수(blunder)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맹목(blindness)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우연(chance)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선택(choice)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결점(defect)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질병(disease)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실수(error)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적의(enmity)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유혹(fascination)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치명적 재난(fatality)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약점(infirmity)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부정(iniquity)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사치(luxury)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문둥병(leprosy)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자유(liberty)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불법(lawlessness)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실책(mistake)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광기(madness)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사소한 일(trifle)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비극(tragedy)이라 하신다. 인간은 죄를 나약함(weakness)이라 한다 - 하나님은 그것을 고의(wilfulness)라고 하신다."
 

                                   죄의 결과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 가를 우리는 이제까지 살펴보았다. 이 지상에서는, 인간의 지위 혹은 은행 구좌 혹은 교우관계 때문에 인간은 종종 호의를 얻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는 특별한 호의를 얻지 못한다. 로마서 2:11이 이 주장을 실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리고 로마서 3:9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잘못들을 간과하고, 죄를 무시하는 할아버지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다음 구절들을 주목하라:

  롬 2: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민 32:23,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유리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이방인이며, 타인들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 .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이 구절은 내게, 사막을 횡단하는 긴 원정에 올랐을 때의 나폴레옹을 상기시킨다. 날마다 태양은 뜨거운 모래 위로 부숴졌다. 뙤약볕과 반사열로 병사들은 물에 허덕였다. 타는 갈증을 느끼며, 그들은 도처에서 물을 찾았으나, 모든 우물이 말라버렸다는 사실만을 겨우 알았을 뿐이었다. 그때, 매우 기쁘게도, 그들은 얼마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크기의 아름다운 호수를 보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앞으로 달려갔고, 다만 그 우물 또한 앞으로 움직이고, 그들로부터 더욱 멀어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결코 호수가 아니었으며, 단지 사막의 신기루였을 뿐이다. 그것은 속임수이고 착각이었다.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은혜로우신 주 예수님으로부터 유리된 삶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삶은 속임수이다. 매혹적인 세상의 쾌락도 결코 당신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갈급한 죄인들이 와서 자유로이 마실 수 있는, 생수의 우물을 공급하신다. 이 영생의 물은 그분의 아들, 주 예수님 안에 있다. 그분은 자기 육신으로 나무 형틀 위에서 여러분의 죄들을 짊어지셨다. 왜 당신의 죄로부터 돌이켜, 당신의 구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가?
 

                     제 2 장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준비
 

  아모스 4:12 안에 제 2장에서 살펴볼 본문이 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제 1장에서 우리는 죄의 실체와 보편성에 대해 지적하였다. 우리가 죄를 - 선과 악의 거룩한 경계선을 넘어가는 위반: 혹은, 그릇된 행위함의 확인 행동인 부정: 혹은, 바른 것에서 비롯된 실수: 혹은, 하나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아서 표적을 잃어버린 것: 혹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우리의 의지적 침해: 혹은, 영적 무질서 상태인 불의: 혹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는 불신 - 이라고 간주하든 그렇지 않든, 죄는 실체이다.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되는 구원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지옥으로, 인도한다.

  오래 전, 그랜드 트렁크 철도 회사는, 철도 건널목에서 경고 문구로 사용되기에 가장 좋은 세 단어를 제시한 사람에게 $2,500의 상금을 주었다. 세 단어 "정지(stop)! 주목(look)! 경청(listen)!"이 채택되었다.          

  각각 $833.33의 가치를 지닌 이 단어들은, 사람들이 그것에 유의할 때에야 비로소 철도 건널목에서 안전을 줄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정지하지 않는다면, "정지"라는 단어가 어떤 가치가 있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면, "주목"이라는 단어가 무슨 안전을 주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경청하지 않는다면 "경청"이라는 단어가 어떤 도움을 주겠는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 경고는, 그러나, 만일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구명정은 바다에서 표류하면서도 구명정에 오르기를 거절하는 선원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탄광에서 나오기를 거절하는 광부들을, 견인하는 사람들이 구할 수는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을 하나님은 도우실 수 없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우리 모두는 예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젊은이들은 교육을 준비한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생활의 직업을 준비한다. 남,녀 커플들은 결혼을 준비한다. 우리는 사업을, 휴가를, 은퇴를, 그리고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경시되고 있다. 이 모든 다른 준비들은 일시적 시간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우리의 예비는 영원과 관계된 것이다.
 

  이 "예비하다"라는 단어를 현재와 연관시켜야 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준비하기 위해 미래의 언젠가를 계획하지만, 그들은 너무 늦게 시작하곤 한다. 늑장을 부려 기차를 놓치거나, 학교에 지각하거나, 보험이 효과를 잃어버리게 하거나, 의사에게 진찰받으러 가는 것을 미루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우리는 너무 늦을 때까지 구원을 미룬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이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내일이란 없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히 3:7,8)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많은 사람들이 "내일"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내일은 사단의 달력 위에 씌여져 있다 - 하나님의 달력 위에 있지 않다! 내일은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 보물 상자의 열쇠이다. 내일은 단지 꿈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KJV-now 지금)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롬 13:11) "너희가 (KJV-now 지금) 악한 길을 떠나서 돌아오라"(슥 1:4) "참 빛이 벌써(KJV-now) 비췸이니라"(요일 2:8).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모든 것이 지금 준비되었다." 어제는 지나갔다. 내일은 아직 우리에게 소유된 것이 아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한 남자가 어느 날 말했다, "내일 나는 그리스도 편으로 결정하겠다." 그날 밤 그는 죽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어느 날 말했다, "내일이 우리 결혼식이야!" 그날 밤 그녀는 죽었다. 한 남자가 어느 날 말했다, "특별 예배가 시작되는 다음 주일까지 기다리겠다." 그러나 다음 주일은 그가 이미 무덤에 들어간 후 였다.
 

  증기선 '센트럴 아메리카'호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항해 중이었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물이 새기 시작하였다. 그 배의 조난 신호를 본, 한 배가 그 옆으로 다가왔다. 구조선의 선장은 물었다, "무엇이 잘못된건가?" 대답은,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계속 가라앉고 있다. 아침까지 대기해라"였다. "그 배의 승객들을 지금 이 배로 옮기게 해달라", 고 구조선 선장이 요청했다. 그러나 대답은, "지금은 밤이고, 어두운 데서 승객들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아침까지 대기해라" 였다. "지금 그들을 옮기는 편이 낫다,"라고 선장은 주장하였으나, 역시 대답은, "아침까지 대기하라"였다. 약 1시간 30분 후 배의 불빛들은 사라졌고, '센트럴 아메리카'호는 실종되었다. 좀더 편리한 시간에 구조받으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승선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이것을 읽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과 제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순간을 당신에게 예비해 두셨고, 당신은 지금 그분을 만나기를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의 태양은 당신의 무덤 위에서 빛날 수 있다. 오늘이라는 날짜가 당신의 비석 위에 적힐 수도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시간은 지금이다.
 

  우리의 구원이 이미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죄(sin)는 빚(dept)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태복음 6:12에서 말씀하신다, "우리 죄(KJV- depts 빚들)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 모두는 어마어마한 죄의 빚을 쌓아왔다. 당신이 하루에 단지 10가지 죄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년 평균 3650이 된다. 20년 동안 과실은  73,000이 될 것이다. 80년 동안에는 292,000이다. 그리고 물론 이 수치는 적게 어림잡은 것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죄의 빚을 갚을 수 없다.
 

  우리 각자가 이 빚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우리는 어떠한 찬미를 하나님께 드려야하는가. 하나님께서 빚에 대한 완전한 지불의 의미로 그 귀한 그리스도의 피를 받으실 것임을,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성경은 가르쳐준다. 우리가 자유를 얻는 것이 가능한 까닭은, 갈보리 사형틀 위에서 주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리스도는 죄인의 자리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모든 죄인에 반대하여 정해진,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목마르다"고 외치셨을 때, 우리는 결코 목마르지 않게된 것이다. 그분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을 때,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우리 구주께서 갈보리 사형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은 부르짖으셨다,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이루신 일은 당신의 죄와 내 죄를 지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사야서 53:6에 기록된,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이 성취되었다. 디모데전서 2:6은 그리스도께서

". .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계시록 5:9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다 이루셨네, 다 이루셨네,

                           내 구원은 완전하고 값없는 것이네;

                        예수님께서 죄인들 대신 빚을 치르셨네,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돌아가신 그날.
 

  영국인 에벤에저 우튼은 정직하지만 좀 별난 복음전도사였다. 오래전, 그는 리드포드 브룩의 전원마을 천막 안에서 모임을 가졌다. 마지막 모임을 마치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 그 복음전도사는 분주히 천막을 걷고 있었다. 한 젊은 청년이 그 설교자에게 다가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튼씨, 구원을 얻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너무 늦었네!" 그는 질문자를 힐끗 보고서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 늦었네, 친구, 너무 늦었어!"

  이에 놀란 젊은이는 전혀 태연할 수 없었다. "오, 제발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우튼씨! 단지 이 모임이 끝났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는건 아니겠지요?"

  "그렇다네, 친구여," 그 이웃의 눈을 마주보며, 복음전도사는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 자네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기를 원하였고, 나는 자네가 몇백년이나 늦었다!고 말한 것일세. 구원 사역은 이미 행해졌고, 성취되었고, 다 이루어졌네! 그것은 사형틀 위에서 이루어졌다네; 예수님께서 마지막 호흡과 함께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 이상 무엇을 더 원하는가?"
 

  그때, 그 곳에서 젊은이는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릎을 꿇고 구세주와, 갈보리 사형틀에서 그분이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은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죄인인 나의 친구여, 이 놀라운 죄사함의 제안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절하느냐라는 거룩한 책임을 당신에게 맡긴다. "예수님이 그것을 모두 갚으셨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하나님께는 다른 구세주는 없다. 당신이 오늘 믿음으로 그분을 당신의 마음으로 모시지 않겠는가? 지금은 당신이 이 결정을 해야할 하나님의 시간이다. 지금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오라 -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만일 당신이 아직도 그분의 부르심을 거절한다면,

           모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모욕한다면,

        어느날 당신으로부터 그분은 슬프게 등돌리시고,

           관용을 구하는 당신의 슬픈 기도는 물리쳐진다.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는 울부짖음이 있을 뿐,

            "당신은 당신의 은혜의 날이 스쳐지나게 하네."
 

                         3. 하나님의 구원의 길
 

  이 장을 위한 본문으로 요한복음 1:11-13을 읽어보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성경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두 길에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른 길은 롬 3:17 "평강의 길"; 행 18:25 "주의 道" ; 벧후 2:2 "진리의 道" ; 그리고 벧후 2:21 "의의 道"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의 길은 평강과 진리와 의로움의 길이다. 그 길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거짓된 길에 대해 잠 14:12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땅위의, 잘못인도된, 모든 길잃은 무리들은 도덕, 예의, 종교, 교회참석, 침례, 세례, 안수, 참회, 그리고 고백이라는 길들에 의존하고 있다. 선행, 개선, 교육, 철학 그리고 잘못된 숭배 또한 그릇된 구원의 방법이다.
 

  약간 놀라서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바른 길을 알 수 있습니까?" 이 매우 중요한  질문의 정답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노력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형틀 위에서 이미 행하신 사역에다 무언가를 더하려함으로써 그분을 강등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대한 말씀을 상고할 때, 초자연적인 탄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그분은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으로 즐거워할 영적 자녀들을 갖고자 하신다.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 어머니들이 산고를 겪듯이, 주님도 사형틀에서 산고의 고통을 겪으시고, 영적 자녀가 태어날 수 있게 하셨다. 이사야서 53:11에서 말씀하셨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는데 없어서는 안될 사역을 예수님은, 사형틀 위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자기의 피를 흘리시면서, 성취하셨다.
 

  요 1:13에서 우리가 거듭 나되,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는 말씀을 우리는 읽었다.
 

  "혈통으로 나지 아니하고". 이 거듭남은 자연적인 재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연적 후예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바울은 그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롬 9:5-6). 대개의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적 출산으로는 영적 자녀를 낳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라고 말씀하신다.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황실의 일원으로 만들 수 없다. 이 유대 관계는 출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지상에서 그의 의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하숙집의 하숙생이나 교회 회원, 또는 클럽의 회원이 될 수는 있지만, 거듭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로 나느니라".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통해서이다. 구원은 주님께 속한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 주님이 갈보리 사형틀에서 그분의 피를 흘리시며 돌아가실 때, 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졌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유대 재단 위에서 죽어진,

                    짐승들의 모든 피로도,

                  죄인의 양심에 평화를 줄 수 없었네,

                     그 흔적을 씻을 수도 없었네.
 

                  그러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양은,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네,

                  그것들보다 귀한 보혈이여,

                    보다 거룩한 이름의 희생이여.

                                                         - Watts
 

  사형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해 정해진 사역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시킬 수 없다. 우리가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느 목사의 일화를 읽어보자. 그는 타고 있는 기차 안에서 매우 불안해하는 한 소년을 발견하였다. 그 소년이 무척 괴로워하여, 목사는 도와주기 위해 인사를 청하였다. 처음에 소년은 대꾸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몇 개월 전 그는 자기 아버지와 다툰 후, 집을 나왔다. 그가 이성을 찾았을 때, 그는 무척 괴로웠고 절망하여,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집으로 보냈다. "어머니, 만일 제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면, 앞 마당의 배나무 가지에 하얀 수건을 묶어달라고 아버지께 전해주세요. 기차가 지나칠 때, 그것을 볼 수 있을거예요. 만일 수건이 매어있으면, 정거장에서 내리고, 수건이 없으면 계속 가겠어요."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소년은 "거의 다 왔어요. 저는 밖을 보기가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목사는,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라. 내가 살펴볼께."라고 말하고는, 얼마후 외쳤다, "저길 봐, 너희 집이야. 나무 가지마다 환영의 하얀 수건이 흔들리고 있어!"
 

   방황하던 아들을 아버지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사랑으로 용서하였음을 하얀 수건들이 말해준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모든 죄인들을 환영하실 준비가 되어있다. 이사야서 1:18절 말씀을 보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우리 마음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값진 보혈을 통해서만 깨끗해진다.
 

  요 1:12은 말씀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구절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그분의 이름을 믿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유의하라.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물론 나는 예수님을 믿어. 나는 복음을 믿어." 그러나 당신은 진실로 믿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에대한 머리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분이 태어나셨다는 것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분이 고통받으셨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실되게 믿는 죄인들은 기꺼이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간단한 믿음의 행동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쌍의 젊은이들이 막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주례 앞에 섰을 때, 주례가 남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여자를 당신의 법적인 아내로 맞이합니까?" 이와 같이 주례는 여자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이 남자를 당신의 법적인 남편으로 맞이합니까?" 주례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것이 믿음의 확정적인 행동이다. 당신 인생에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던 때가 있었습니까? 없다면, 혹은 당신이 그것에 의심을 품고 있다면, 왜 지금 당장 그분을 맞이하지 않습니까? 지금이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일 것입니다.
 

  요 1:12이 그리스도께서 진실된 믿는 자들에게 그분의 자녀될 "권세"(능력)을 주심을 가르쳐준다. 이 거룩한 권세로 인해 우리는 이제 그분의 가정에 속해있다. 따라서 구원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에 좌우되지 않고, 주 예수님과 그분이 사형틀에서 이루신 사역을 믿는가에 좌우된다.
 

  마지막으로, 구원은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 "마다 모두as many"를 위한 것이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누구도 제외되지 않았다. 당신은 안으로 들어갔는가? 당신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는가? 오늘 그분을 믿으시오. 지금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맞이하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당신은 구원을 얻고, 당신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4. 완전한 확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요일 5:13)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죠지 뮬러는 언젠가 말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라는 것과,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행하실 것이다, 라고 확신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진리로 믿는 것

                         그분이 주시는 것을 즐거이 취하는 것,

                            그것이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 것,
 

                         신앙이란 무엇인가? 다만 믿는 것

                             전능자에게 기대는 것

                         당신의 모든 짐을 그분께 맡기는 것

                             모든 것을 그분께만 양보하는 것

                         안식이란 무엇인가? 영원하신 팔에:

                             기대는 신앙

                         의심이 사라지고, 짐이 내려지고

                             불안의 한복판에서 누리는 완전한 평안
 

  상기 성경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에게 영생이 있기를 소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본문은 말씀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소망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렇게 아는" 믿음이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다, "거기 그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까?" 예, 그렇고 말구요. 당신에게 영생이 있음안다는 것과 영생을 얻기를 소망한다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다음의 예를 가정하여 살펴보자. 떠돌이 세 사람이 철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언젠가는 백만불을 갖게되기를 소망한다." 두 번째 떠돌이가 말했다, "난 2백만불을 갖게되기를 소망한다." 세 번째 사람이 덧붙인다, "나는 5백만불을 갖게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뉴욕의 무역 사무실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자. 의장이 말한다, "새 공장을 짓는데, 5억불이 즉시 필요합니다." 포드 사장이 말한다, "내가 1억 5천만불을 투자하겠습니다." 록펠로우 사장이 말한다, "나는 2억불을 투자하겠습니다." 이튼사장이 말한다, "나는 1억 5천만불을 투자하겠습니다." 그들은 함께 5억불의 기금을 모았다. 만일 당신이 이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이 5억불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하는 것"과 "가지고있는 것"의 차이는 떠돌이와 백만장자의 차이다. 영적으로 말한다면, 오늘날의 비극은 너무 많은 떠돌이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반면, 백만장자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대답은, 비록 다르긴 하지만, 종종 매우 흡사하다: "영생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천국에 갈 것 같아요." "나는 십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나는 주일마다 예배를 드립니다." "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종교적인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잃어진 자들이다. 구원은 주님께 속한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바울은 로마서 8:1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KJV 에는 다음 구절이 있음:그는 육체를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느니라)"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교파(denomination)"에 속해 있음을 언급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은 종종 "교파(persuasion: 주)보통 확신, 신념이라는 뜻으로 사용됨)"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최근에 구원받은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떤 교파(persuasion)입니까?" 그는 결코 이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성경의 말씀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확신하노니(persuade-확신하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다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롬 8:38,39). 나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이 청년의 대답에대해 "아멘"이라고, 그리고 이대답이 또한 나의 교파(persuasion)인 것이다. 어떤 교회, 예배당, 또는 모임에 속하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리스도가 구주되심을 그사람이 확신하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그것을 말씀하셨기에, 나는 구원을 얻었음을 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맞이하였고, 내가 그분을 믿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요일 5:9에서 우리는 다움 말씀을 읽는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증언)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증언)는 더욱 크도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의 증언을 믿는다. 예를 들어, 나는 장거리로 신문사에 전화를 건다. 물론 신문사는 나를 모르지만 신문 1톤의 주문을 받는다. 사무실 부장은 신문을 선적할 것을 약속하고, 우리는 30일 이내에 대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신뢰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아주 소수 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 고후 1:20에서 우리는 다음을 읽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얼마 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된 스무명 남짓되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였다. '우리는 자기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한 중년 여인이 말했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당신은 결혼하셨습니까?" "예, 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그것을 제게 증명해보십시오. 당신이 결혼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제게  결혼했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당신은 그것을 모르겠다구요? 결혼하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26년" "당신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까?" "글세요, 제게는 남편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아내와 남편은 어느 결혼에서나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요." "오, 그래요, 그리고 나는 가족이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그러나 당신은 가정을 가지고서도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당신은 혼인 증명서를 가지고 있습니까?" "예, 그럼요, 있고 말고요. 혼인 증명서가 증거예요."

 

  그렇다, 단지 혼인 증명서가 결혼에대한 법적 증거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얻은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떻게 당신은 당신의 주택을 소유했다는 것을 아는가? 증명되고 등록된 증서가 당신이 주인이라는 법적 증거이다. 그것처럼, 성령님에의해 증명된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에대한 우리의 확신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주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롬 8:16을 읽어보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갈 4:6에는 또한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달리 말해서, 성령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우리의 구원이 사실임을 증거하신다.
 

  어떻게 성령님은 증거하시는가? 만일 내가 지금 여러분들을 보고있다면, 당신들중 몇 명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에대해 "아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주님께서 하신 일들로 인해 마음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여,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의 증거하심이다.
 

  어느 날, 나는 그 일년 전에 전도 집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었던 한 10대 소년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너는 구원을 받았니?" 하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확실히 구원받았어요, 그리고 그건 정말 경이로운 것이예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증거하심이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어느 날 두 살박이 아이가 혼잡한 도로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아이는 잠시 후 간신히 자기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게되었다. 갑자기 한 경관이 나타났다. 아이는 자기의 손을 경관에게 쥐어주었고, 그들은 함께 안전하게 인도로 돌아왔다. 차들은 매우 빠르게 운행했고, 아이는 거의 다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이는 안전했다. 왜냐하면, 아이의 안전은 경관을 붙든 아이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이를 붙든 경관의 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우리의 손은 하나님의 아들의 못-박힌 손에 닿아야 한다. 그때, 그분의 손은 우리를 붙드신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오, 결코 나를 놓지 않으시는 주님,

                       제 지친 영혼이 주님 안에서 안식합니다;

                       저는 주님께 제가 빚진 생명을 돌려드립니다,

                       주님의 바다 깊은 곳으로 그것이 흘러

                       더 풍성해지고, 더 충만해지도록.

  만일 당신이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혹은 당신이 자신있게 구원에대해 확신할 수 없다면, 당신의 눈을 오늘 예수님께로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신뢰하고,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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