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버림받은종교적행위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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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을 종교적 행위  
 

나온곳: www.biblenews.net

 

버림받을 종교적 행위

 
[복음, 죄사함, 거듭남에 관하여...]

존 R. 라이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위의 말씀에서도 보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자랑하지만 그날에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수많은 도덕적인 사람들, 교인들, 심지어 교회 봉사자들, 자칭 선지자들, 목회자들, 또 자신은 분명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지만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축복대신 지옥의 저주가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정확한 의미이다.
  가끔 신문칼럼에서 "인생에서 가장 당황되는 순간"에 대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날에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거절당한다면 그 끔찍한 굴욕과 실망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는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구원을 외치지만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그들은 미혹과 거짓 피난처 아래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라는 엄청난 말씀을 들을 것이다.
  이것은 구원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가 아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아신 바 된 사람이 그 날에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결코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없다. 그러나 자칭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엄숙한 경고이시다. "내가 너를 결코 알지 못한다. 너는 결코 구원받지 않았다. 너는 결코 거듭나지 못했다." "주여, 주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 그러한 권능을 예수님 이름으로 행했지만 예수님은 그날 그들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들은 교인(마 23:15)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다. 그들은 개심된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등불은 갖고 있지만 기름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 덧입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있었다.

  많은 목사들, 교회 봉사자들, 귀신을 내쫓은 많은 능력있는 자들, 주여 주여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전도하고 봉사해왔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경고의 말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은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개종시켰던 목회자들, 말 그대로 마귀들을 내쫓았던 사역자들, 예수님의 이름을 외쳤던 사람들 - 결코 우상숭배자나 성경을 반박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 이 하나님 나라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겠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예수님의 호통을 듣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들을 행했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는 복음을 전했고 사람들을 구원시켰다. 그 역시 나머지 열 한 제자들과 함께 가서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았다.(마태복음 10장) 그 역시 선교자였고, 예언자였고, 한 제자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던 사역자였고, 교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버림받았고 지옥으로 갔다. 아무리 많은 종교적인 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확실하게 거듭나야 한다!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을 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은 이가 적음이니라"
  놀랍고도 서글픈 진리가 여기 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보다는 지옥으로 가는 자가 많을 것이라 하였다. 구원받는 자보다는 버림받는 자가 더 많을 것이라 했다.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은 협착한 길이어서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 그러나 파멸로 이끄는 넓은 문과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많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속이는 가운데 세상 영의 미혹을 받아 결국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여러 종교인들이나 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길로 천국에 가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길은 오직 하나라고 하셨다. 좁은 길, 협착한 문이 그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이를 수 없다.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자만이 그 길을 찾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보혈에 의한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 자신들의 선한 행동, 자신들의 윤리, 의식들, 느낌 또는 경험들에 의지하는 자들은 파멸로 이끄는 넓은 길에 서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것은 그들에게 영원한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있다. 카톨릭, 유대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등 그들은 그들의 교리나 철학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윤리학이나 유니테리언설, 진화론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이른바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내세에 죄와 형벌같은 것들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옥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종교인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종교적인 의식에 의존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막연히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관념에서 선한 행동과 윤리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대다수가 잘못된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에 그 사실을 알고 이를 갈며 지옥으로 끌려 갈 것이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영혼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자기 착각일 수도 있다. 당신도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당신이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고 정말로 장담할 수 있는가?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감리교인, 충성스러웠던 장로교인, 침례교인, 루터파 교인들, 성공회, 제칠일 안식교, 카톨릭,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을 포함해서 참으로 거듭난 사실이 없이 영원한 천국의 길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었을 것이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십일조를 잘 내고, 금식일을 지키고, 신앙고백을 하고, 기도회에 참석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가 문제이다. 그렇게 많이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도무지 모르시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상고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많은 경고들

  최근에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나 마음 속에 확신도 없으면서 미래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일하고 아무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 성경에서 여러 번 읽어주었다. 분명히 잘못된 소망에 의지하는 사람은 무서운 위험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며 결국엔 영원히 버림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다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마 13:3-6)
  확실히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들이란 복음을 듣고 어느 정도 반응하지만 진실로 거듭난 자들이 아님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속에서 듣는 자들의 종류를 설명하셨다.
"돌밭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
  위의 말씀처럼 마음에 뿌리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잠시 말씀을 듣고 기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엔 진실된 은총의 능력도 거듭남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에서 두 종류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관심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쳐버린 자들, 그리고 기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치면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실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 즉 자신들의 마음에 뿌리가 없는 자들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구윈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주장할 것을 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 혼인식에 참석했다가 예복을 입지 않아서 거절당한 사람의 비유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길 아들의 결혼식 잔치를 베푼 어느 임금이 하인들을 시켜 사람들을 부르도록 보냈다고 하셨다. 초대를 했지만 초대받은 사람들은 거절했다. 하인들은 악한 자들, 선한 자들 모두를 찾아 모았고 결혼식은 손님들로 채워졌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의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상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는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1-14)

  결혼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결혼 예복을 입고 온 다른 자들과 그 집에 들어오기는 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옷에 충분히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 옷이 화려했을지는 모르지만 임금이 바라던 그런 옷은 아니었다. 임금의 눈에 합당하지 않은, 결혼 예복을 입지 않고 결혼식을 찾은 그 사람은 왕 앞에서 유구무언이었고 밖으로 내어 던져졌다. 그곳에서 그는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를 희망하지만 그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초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자신이 입은 옷이 결혼식에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사람과 다른 교회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았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결혼잔치를 여실 때, 그리고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결혼 만찬에서 즐기고 있을 때, 당신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져질 것이다. 당신은 확실히 구원을 받았는가? 당신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운 결혼 예복을 입고 있는가?

  또 다시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로 이 문제에 대해 경고하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등불을 든 열 처녀가 있다. 그들 중 다섯은 현명했지만 다섯은 어리석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등불만 갖고 있었지 기름은 없었다. 현명한 다섯 처녀는 등불과 함께 기름병도 준비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자 기름이 떨어지고 심지가 다 타버렸다. 기름을 준비했던 현명한 다섯 처녀는 다시 기름을 채워 등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나갔다. 그들이 돌아왔을 땐, 다섯 처녀는 결혼식에 들어간 후였고 문은 닫혀 있었다. 신랑은 문을 두드리는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께서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구원을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기름이 없는 등불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라고 이야기한다. 구원받은 자와 함께 섞여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날에 밝혀질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하고 두려움에 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계속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모아진 물고기들 중 좋은 것들은 취하고 나쁜 고기들은 버렸다. 바다에 먹지 못할 나쁜 물고기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고기와 함께 그 상한 물고기들이 섞여 있다는 것임을 주목해야 된다.(마13:47-50)
  예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논에는 알곡만 자란 것이 아니라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랐던 건이다. 알곡과 가라지의 분리는 추수 때에 하게 되는 것이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 13:39)
  세상의 끝에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자와 버림받을 자를 구별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논이나 밭이 아닌 잡초투성이 속의 가라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밀밭 안의 가라지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척하는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그날에 깨어나 자신이 영원히 버림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두려움으로 치를 떨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에 바로 지금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이 문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확인되어져야 한다. 말씀을 듣는 자나 성경을 가르치는 자나 교회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이 문제만큼은 솔직해야 한다. 모든 목회자들은 참으로 이 사실이 확실한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오히려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목회자가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확실히 많은 사역자들이 거듭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다시금 살펴보아야 하고 당신의 소망이 잘못된 소망이 아닌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참소망과 참기쁨이 소생하게 해야 한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주님께서 언제까지나 이 문제로 당신에게 경고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기회는 당신에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감화를 받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벧후 1:10)
  바울 사도는 성령에 의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 두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또 한사람은 세리였다.(눅 18:9-14)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말했다. 그는 성당 어귀에서 거룩하게 기도하고, 십일조를 내고, 금식하고, 율법적인 삶을 살았지만, 의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세리는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시인했다. 그런데 그 죄인은 의롭다 함을 얻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율법을 쫓아 삶을 쫓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셨을 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때로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영혼

  텍사스 테카트루 근처의 작은 마을 교회에서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를 위해, 또한 아내와 딸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어느 날 밤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장막 옆에 있던 덤불 숲에서 딸과 그 친구들이 노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라이스 형제여, 이 아이들에게 나를 내버려두라고 이야기하시오. 나는 괜찮소"
  그는 자신의 아내와 딸들이 계속해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그가 대답했다.
"라이스 형제여, 나는 교회 감독자로 지냈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했었소. 나는 믿음이 충만하오."
"하지만 그러한 것이 거듭나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고 교회 일을 하고,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거듭나지 않는다면 버림받은 죄인입니다."
"나는 옳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선한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거듭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매우 엄숙히 그가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바로 지금이 그것을 결정할 때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나는 그분에게 죄와 형벌에 관한 그리스도의 속죄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셨고 이제는 천국에 대한 약속을 받은 것을 확신했다.
  만약 그날 밤 그에게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텍사스 달라스에서 1932년 야외 집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부인이 나에게 쪽지를 보내왔다. "라이스 형제님, 나는 22년간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고 나를 위선자로 생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부끄러움은 나중에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될 부끄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말씀을 듣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밤 그녀는 모든 체면을 팽개치고 달려왔다. 그녀는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들었다.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고 침례를 받았다.

  텍사스 포트 워스에서 큰 집회가 있었다. 한 젊은 여인이 와서 울며 말했다. "내 이름은 교회 기록부 위에 있지만 주님의 생명 책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이 사실을 늦지 않게 깨달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행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필요없게 된다. 이 말씀대로라면 행위로 인한 구원이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란 율법적인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8-29)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 교회에 참석하는 것, 기도하는 것, 십일조,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길은 그분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예언하고 귀신을 내쫓고 많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것이 천국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영속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을 구세주로서 받아들이는 자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들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

  거짓 피난처

  선지자 이사야는 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여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이사야 28:15-18)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이사야 28:20)

  혹시 당신은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라고 말하는 자들과 같지는 않은가? 당신은 잘못된 구원에 희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는 "해일이 거짓의 피난처를 삼켜버릴 것이고 바다가 그 감추는 곳을 덮칠 것이다"라는 말씀이 내리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아래서 밟힘을 당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거짓으로 피난처를 삼는다면 말이다.
  천국의 진실한 희망은 오직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견고한 기초돌을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다른 피난처는 거짓 피난처이고 사탄의 미혹일 뿐이다. 또한 잘못된 희망으로 당신을 저주의 무덤으로 이끄는 것이다.

  당신이 속고 있는 희망이란 무엇인가?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다. 성경에 나타나 있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그 길이 넓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넓지만 그 목적지는 하나이다. 좁은 길은 하나님의 길이고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의 길이다.
  그것은 좁은 길이어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찾아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매우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가끔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한다. "저, 나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선한 삶을 사느냐에 대해 물어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거듭났느냐를 물었던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바리새인을 기억해보라. 그는 외적으로 세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했고 모든 재산의 십일조를 바쳤으며 여러 사람 앞에서 기도도 하였었다.
  그는 실제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즉 외적으로 보았을 때는 말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주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갈 때는 버려진 죄인이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4:25-28)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틀림없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선한 행동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바리새인들이 가진 커다란 문제점은 다름 아닌 외식이었다. 외부에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내부엔 억지와 허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겉과 속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들의 위험은 그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내세우는 의(義)라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자랑하는 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단지 더러운 누더기일 뿐이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만약 당신이 거듭나지 못했다면 당신의 외적인 선은 거듭나지 못한 악한 마음을 덮어씌우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지한다. 솔직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이것이 문제이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머리로는 믿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하고 있다.
  사람들의 믿음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행위에 신뢰를 두고 싶어한다.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세우기를 원한다. 죄를 고백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으로 그 죄를 가리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의 옷은 자신의 의(義)의 옷 위에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의를 벗어버릴 때 입혀지는 것이다.

  교회나 종교적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

  유대 종교에 충실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는 사실은 슬프고 놀라운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된 믿음 이외에도 많은 종교적인 길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열성이 깊었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인의 선두는 바로 가인이었다. 그가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그가 기도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듣지 않으셨다. 소위 말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신앙은 있지만, 죄의 고백이나 피에 의한 속죄, 거듭남이 없는 신앙이다.
  카톨릭 교인들은 매우 종교적이고 헌신적이지만, 마음의 평화와 거듭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몇몇 카톨릭인도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그것을 보증하지 못하고 있다. 우상 앞에 절하며, 교회와 그 의식들에 의지하고, 고해 성사나, 성경에 없는 마리아와 성자들의 중재에, 그리고 사제들에 의한 미사를 의지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소서"라고 했던 자들은 매우 종교적인 열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열성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인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은 땅의 열매의 제물이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제물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제물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죄를 속하는 피가 없었다. 가인은 보혈에 의한 속죄를 믿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께 나갔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구원받기 위해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에만 치중하는 모든 종교적인 사람들을 대표하는 자가 바로 가인이다.
  "그렇지만 난 침례 받았습니다." 침례에 의지했다면 마른 죄인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가 젖은 죄인으로 다시 나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물이 마음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물이 당신을 구원받게 하지는 않는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신은 유아세례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아기를 위해 죄를 사하여 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이 당신 속에서 나오는 죄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피 이외에는 아무것도 당신을 구원시킬 수 없다. 어떤 전도자나 신부가 당신의 죄가 사함 받았다고 말했을지라도 당신의 양심과 성경에서 이것이 증거 되어져야 한다. 당신에겐 그러한 사람들의 말보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마음 안의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나의 신앙은 살아 있는 동안은 소용 있었지만 죽음 앞에는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클라호마 루스벨트에서 몇년 전 큰 집회가 있었다. 어떤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가 무엇이며 그 형벌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해 모든 속죄가 골고다에서 완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
  나는 처음엔 그녀의 아버지를 뜻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카톨릭 신부를 의미한 것이었다. 그 신부는 카톨릭 사제가 그러하듯이 아주 친절하고 경건한 자였다. 그 신부를 통해 이 소녀는 훌륭한 카톨릭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기도도 배우고 견진 성사를 위해 준비해 왔었다. 그 소녀가 견진 성사를 받기로 하던 날,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연기되었다. 그러던 며칠 후 그녀는 갑자기 큰 병이 들고 말았다. 많은 의사들이 그녀의 병을 위해 다녀갔지만 병은 자꾸만 악화되었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종교가 살아있을 때 참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느꼈지만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것이 나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지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주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죽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을 아시고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 같았다. 그녀는 병든 몸을 이끌고 즉시 집회가 열리는 텐트로 찾아왔다. 그러한 마음에 주님의 진리가 채워지지 않을 리가 없다.
  그녀는 이 집회에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 주님의 평화가 임했을 때 그녀의 눈은 기쁨으로 얼룩졌다. 자신의 죄가 십자가에서 이미 갚아졌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녀는 기쁨으로 주님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침례를 받았다.

  당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들이 지금은 좋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 상태라면 그러한 모든 것은 당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넓은 길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의(義)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 예복을 입지 않았던 자가 그랬다! 그는 자신의 옷으로 만족하였다. 왕의 인정한 결혼 예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될 때 유구무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던져져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한분 이외의 당신이 가졌던 모든 희망들을 버려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로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영원한 구원을 얻는 비결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구원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분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갚아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갚으신 대가로 만족하셨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을 구하는 자들에게 대가 없이 용서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거듭남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당신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고 그분만을 믿으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다. 간단하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주 예수님께서는 버려진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나 자신을 철저히 포기했을 때 성령께서는 나에게 충만된 기쁨과 확신을 주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0)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분께 당신을 맡겨라. 우리가 마음 속에서 이젠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을 갖는 것은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넓게 퍼지게 하시고 당신과 함께 증언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제 당신의 위안자가 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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