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자냐? 아니면 성경이냐?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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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냐? 아니면 성경이냐?

(The Savior or the Scriptures?)
 
 

 


역사를 통해 볼 때, 인간은 하나의 극단적인 관점으로 빠졌다. 다른 모든 삶의 영역에서처럼 영적인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우리는 한가지 진리를 따르고, 동일하게 유효한 진리를 소홀히 한다. 반면에 다른 반응은 소홀히 여겨진 진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들의 배타적인 관점을 만든 진리에 적절하게 관심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우리는 동등하게 중요하고 중대한 두 가지 진리에 대해 어떻게 적절한 균형을 잃었는가를 탐구할 것이다.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초점을 둠:

 


예수님께서는 주장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한복음 8:12).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삶, 우리의 제자도의 초점이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관심을 개인적으로 그 분께 돌리도록 이끄셨다:

 


"나는 양의 문이다"(요한복음 10:7)

"나는 목자라"(요한복음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11:25)

"나는 포도나무라"(요한복음 15:1)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요한복음 6장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주님께서 주장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라; 내게 오는 자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35절). 이 장에서, 예수님은 그분께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믿는 것이 가장 본질적임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심지어 "그 분의 살을 먹고", "그 분의 피를 마셔야 한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영적으로 그분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안에 생명, 영생을 가질 수가 있다. 부활에서 쟁점이 되는 영생.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반응함으로써, 특별히 그분의 살과 피의 희생 안에서, 우리는 그 안에 거하고, 그는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현재 그리고 이후에도 영원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삶이 영원히 그분과 개인적으로 직접적으로 관련있음을 알고 계신다. 찬송가 가사에서 처럼 우리는 주님께 울부짖어야 한다, "내가 당신을 찾는 성스러운 시기를 넘어서, 내 영이 당신을 찾기에 숨이 헐떡이나이다. 오 살아계신 말씀이여"

 


예수님은 신약성경 전체의 주제이시다.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설교의 대상이심을 발견하게 된다. 빌립은 이디오피아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파했다"(행) 바울도 주장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너희 가운데서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고린도전서 2:2)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갈3:1)라고 썼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그 분을 믿는 믿음에 반응해서, 우리는 구속과 용서(엡 1:7), 약속하신 성령(갈 3:14; 엡 1:13), 하나님과의 화해(롬 5:10-11), 하늘의 기업(벧전 1:3-4),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고전 1:4)과 같은 축복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장점이나 선행이나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예수님과 그의 구속의 축복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단지 순종하는 믿음으로 그 분께 반응할 수 있다(롬 3:24-25; 요 3:36; 히 5:9). 구원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온다!

 


사도 바울은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후 우리 주 예수님께 열정적으로 헌신하였다. 그는 이 헌신에 대해서 여러 번 썼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바울은 또한 다른 곳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도 바울이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이러한 깊고도 풍성한 영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를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것을 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알고, 섬기며, 그 분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중점을 둠

 


위에서 살펴본 것과 평행인 주제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적으로 우리의 믿음과 삶을 예수님께 포커스를 맞추는 것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충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되풀이해서 강조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원 목적을 성취하시는 역동적이고 능력있는 대리인이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주제가 신약성경을 통해 어떻게 발견되는지를 주목하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통해 "산다"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혹은 영적 삶을 발견한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63). 예수님은 후에 만일 사람이 "그의 말씀을 지키면 그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고도 말씀하셨다(8:51). 대적하는 자들과 논쟁을 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인 헌신을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10:35).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시며 높이셨다. 그가 배반 당하시던 날, 예수님은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7). 예수님은 그렇게 확신에 차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셨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주 예수께서 그의 말씀(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셨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주제는 신약성경의 남은 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4:31).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지" 않으려고 주의했다(6:2).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8:14, 11:1).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말씀을 듣고자 하더라"(13:7)그리고 안디옥의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13:44, 46).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6:7)와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12:24, 19:20)와 같은 구절을 본다. 바울이 베뢰아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을 때, "베뢰아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7:11).

 


우리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에서, 사도 바울은 성경,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추론과 논쟁의 근거로서 사용한다. 그는 자주 모든 논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성경을 인용한다. 그는 묻는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롬 4:3). 바울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리고 기록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 17).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며(롬 15: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베드로는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기록한다. (벧전 1:23-25).

 


예수님 혹은 그 분의 말씀에 불균형하게 초점을 맞춤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주제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주제가 어떻게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만일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담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의 아들 에 대한 증거를 성경 속에 나타내신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믿음과 헌신의 목적이 되시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또한 우리 믿음과 헌신의 목적이 된다. 예수님의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인간들은 예수님을 강조하고 성경을 소홀히 하거나, 성경을 강조하고 예수님을 소홀히 하거나 해왔다.

 


성경에만 거의 배타적으로 강조를 한 분명한 예들을 보라. 예수님이 지상에 사시는 동안에 조차도, 예수님은 성경과 성경 해석에 관한 축적된 전통에 열심인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셨다.

하지만, 너무도 자주, 성경에 대한 그들의 헌신 모두는 단지 메마르고 아카데믹한 지성의 연습일 뿐, 그들이 알고 있고 순종을 고백했던 성경의 궁극적 저자이신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진정한 헌신을 결여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위선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드러내셨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42). 예수님은 그들이 의롭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외부적으로 드러내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5, 28). 그들은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9). 그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바리새인들의 비극은 성경에 헌신하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는 마음을 닫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그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찾았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구원과 그것을 주시는 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바로 원천이 되는 것이다.(딤후 3:15). 그러나 비극은 그들이 이것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생을 실제로 주시는 성경의 저자이자 목적이신 예수님 자신에게 나아가기를 원치는 않았다. 바리새인들의 예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통한 하나님과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바리새인들 외에도 다른 사람들은 성경의 저자이시며 성경에 영감을 불어 넣으신 분에 반응하는 필요한 사랑 없이 성경의 텍스트에 잘못 강조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그들은 무수한 시간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데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 헌신한 것 같은 이 사람들이 영적으로는 죽어있고, 성령이 없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감정적 반응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섬기려는 뜨거운 열정이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들은 처음 사랑에서 떠났던 에베소 교회와 같을 수 있다(계 2:4). 혹은 그들의 사랑이 식어지도록 내버려 두었을 수도 있다(마4:12). 주를 향한 그들의 헌신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게 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을 수도 있다. 그들이 약속을 가졌고,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불타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딛 1:16, 요한일서 2:3-6). 그들은 비록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 3:5). 내면은 그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차갑고 영적 생명은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찾고, 알고, 순종하려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음도 주목해야 한다.(요 5:39-40; 눅 8:1)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는 일을 소홀히 했다. 그들은 성경의 중요성을 축소하거나 다른 것에 대한 열망으로 복잡하게 하였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9). 요약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려는 열렬한 헌신도 없으며 그의 말씀에 대한 굳은 약속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말씀의 진리를 찾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은 아주 친밀하게 관련이 있고 연결되어 있어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강조하면 그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필연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을 그의 영광 가운데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게 된다. 그리스도와 그를 증거하는 그의 말씀을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관계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러한 두 관계-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갖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예수님을 거절하고 그 분의 말씀, 즉 가르침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다. 그 중 하나를 거절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단지 예수님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그 분의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었다.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이 너무 어려워 예수님으로부터 뒤로 물러날 때(요 6:60, 66), 예수님께서 열 두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베드로는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68-69).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을 하심을 확신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의 관계를 알았던 것이다. 이를 우리도 알 필요가 있다.

 


말씀을 다하시고,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 6:46). 다시 한번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주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만 이것이 진실된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거절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분명히 보여진다. 어떻게 예수님이 이것을 표현했는지를 주목하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21절). 우리가 기꺼이 그의 말씀에 반응할 때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된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 14:23-24).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은 사랑하고 그의 말씀은 무시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의 말씀은 순종하고 그분은 소홀히 하는 그런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그의 말씀도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말씀이 둘 다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보는데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참조하자. 예수님을 강조하면서 말씀은 소홀히 하거나 말씀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소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유사한 묘사

 


같은 표현들 중 몇 개가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에 주어졌다. 다음 몇 가지 표현을 살펴보자:

 


(a)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은 생명을 준다.

예수: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b)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이 판단하신다.

예수: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말씀: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c)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이 구원하셨다.

예수: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 1:15)

말씀: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1)

 


(d)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이 제자 삼으신다.

예수: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말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 8:31)

 


(e)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은 진리이다.

예수: "내가 ..진리요"(요 14:6)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

 


(f)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이 영적 죽음을 막는다.

예수: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50)

말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

 


이러한 비교는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확장"(extension)된 것이므로 다음의 대조의 표현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예수님은 그 분의 말씀으로 드러나고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그 분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 분을 증거하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배제하면서 예수님을 강조하거나 말씀을 주신 분을 소홀히 하면서 말씀에 몰두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님 자신이 "말씀(헬라어, 로고스)"이심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요한이 기록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그는 이 말씀을 구체화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2000년 전 유다의 베들레헴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말씀이 하나님의 "현현"(personal manifestation)이 되셨다. 그리하여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 있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 즉 "말씀"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언되었으며, 그는 "생명의 말씀"으로 불리셨다. (요한일서 1:1).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셨고 분명하게 보이셨고 인격화하셨다(요 14:9-11).

 


예수님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며, 인격화된 말씀이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6, 28; 7:16; 8:38).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요 17:7-8). 예수님은 이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신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 12:49-50).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이다.(마 10:40; 요 13:20).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다.(눅 10:16). 이것은 그리스도께 인격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반응하는 성실한 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주제라는 관찰에서 출발했다.(눅 24:25-26, 44-47; 요 5:38-40). 복음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구세주가 되심을 나타내주며, 그 분의 희생적인 죽음과 영광스런 부활을 통해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위한 유일한 길이 되시는가를 보여준다. 사도행전을 통해 어떻게 예수님이 전파되었으며, 사람들이 그들의 죄의 용서를 위해 그리스도께 반응한 것을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개인적인 삶과 그리스도의 몸, 즉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명백히 드러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가를 알아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우리의 영적인 삶에 양육을 받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있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청하는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그의 말씀에 대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에서 멀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풍부하고 깊고 의미 깊은 관계를 찾고 있지만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는 소홀히 하였다. 그들은 신비적인 경험, 감정적인 과잉, 정도에서 벗어난 이론, 그리고 거짓된 가르침에 방황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의지할 곳으로부터 탈선해서 방랑하고, 그들의 믿음에 대해 난파를 경험하였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성경에 그들 자신을 적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지적인 훈련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성주의나 전통 혹은 차갑고 냉담한 종교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실제적이고 풍부한 관계를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비극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길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영적인 탐구를 통해 신비적인 경험도 하지 못했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몰두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세상적이고 피상적인 종교의 형태에 안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은 무엇인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몸소 우리에게 오셨고 죄와 사망과 영원한 파멸에서 우리의 현재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예비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깊고, 풍부하고 넘치는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자녀로서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그분과의 교제를 누리는 다른 사람들과도 그러한 교제를 누리게 된다.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개인적이고도 단체적인 관계가 거룩한 성경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로 인해 형성되었고, 창조되었고, 지속되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았고, 용서받았으며, 거듭났으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양육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끝까지 견딜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대리인이다.

우리가 만일 성경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되고, 우리가 성경 속에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소홀히 하면 성경을 소홀히 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연애편지"

 


한 청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지만 장기간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매일 그는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그의 하루가 어떠했는지를 설명하고, 그의 성격을 얘기하고, 끊임없는 사랑을 묘사하고 그녀에 대한 헌신을 편지로 써 보낸다. 그러나 만일 손녀가 연애 편지를 계속 받고 조심스럽게 그 편지들을 그녀의 서랍에 보관을 하지만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지는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이 청년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정말로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왜 그런가? 그 청년의 편지는 그 자신의 확장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그의 마음, 정신, 성격, 그의 계획, 그의 꿈을 드러낸다. 그의 말들은 또한 그가 사랑하는 소녀에게 반응하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그이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는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열정적으로 그 편지들을 읽을 것이다. 그녀는 기대감에 차서 편지를 뜯고, 되풀이해서 그 편지를 읽고, 그가 하는 말과 표현에서 의미를 발견할 것이며 그녀를 향한 그의 말에서 깊은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녀가 이렇게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사랑 고백은 헛된 것이다.

 


우리에게 예시해 주는 교훈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반응함으로써 그분께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분께 헌신한다면, 우리는 그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듣고, 묵상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면서, 그 분께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헌신이 결여된 것임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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