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그분의피를통한구속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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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피를 통하여 받은 대속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 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나니”(엡1:7)

 


저는 오늘 바울에의해 기록된 가장 핵심적인 구절중의 하나인 이 값진 사도서신 구절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사도서신을 다른 서신들 앞에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영감에의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도서신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다른 사람들의 의지에의해서도 아니며,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세상 모든 자에게가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바라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것들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들로 우리에게 복주시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하노라”(엡1:1-3)

  모든 영적 복들은 한 분 복주시는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 또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과 희생물로 드리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행하라”(엡5:1,2)

 


  여러분은 반드시 항상 성경에 그려진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동일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만족하고 싶지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한 크리스쳔이라고 불리기를 원치않는다고 느낀다면, 당신이 실제로 크리스쳔이 아니라면, 당신은 이리로 와야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그 빛에게로 오나니 이는 자기 행위들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 드러내고자 함이니라 하시니라”(요3:21)

 


  제가, 구체적인 체험도 없이 종교를 위한 지푸라기를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 브룩(Mr. Brooke) 씨의 사역은 제가 이제껏 참석했던 것중 가장 엄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그렇게 엄격한 사역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나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심에 따라서” 이는 모든 영적 축복들의 근원입니다. 인간은 세상적 복들을 가질 수 있으나, 그러나 거기에 모든 영적 축복들은 결여되어 있을 것입니다. 세상 복들은 모두 이 세상의 좋은 것들, 특히 건강과 힘을 말합니다. 그것들은 다른 좋은 것들보다 더 나은 것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축적된 우리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일종의 세상적 복입니다. 합리성을 가졌으면하는 고통을 현재 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을 커다란 세상적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세상적 복은 우리의 시각, 청각 그리고 다른 감각들을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감각들을 조금씩 잃어갑니다.

 


  영적인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거룩한 생활 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신 자 외에는 누구도 이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3)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14:27)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128:1,2)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시19:9)

 


  당신은 이 경외함을 가진 자입니까?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 하였으며”(말2:5)

저는 이것이 제가 받은 최초의 영적 복이라고 믿습니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하고”(렘32:40)

만일 당신이 이 경외함을 가진다면, 그것이 멸망으로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당신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에 이를 자들이 아니요 오직 혼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니라”(히10:39)

  저는 이러한 영적 복들이 심령의 충만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아둔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들을 내고 악한 사람은 쌓아둔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들을 내느니라”(마12:35)

 


  그 다음 영적인 복은 은혜와 충만의 영을 갖는 것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65:4)

하나님의 자녀는 그분께 자신의 심령을 쏟아내도록 압박당할 것입니다. 모세는 고라와 모든 그의 회중에게 말했습니다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민16:5)

죄인은 하나님 가까이 끌려오도록 성령님의 내적 가르치심에의해 강제당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라 그리하면 그분께서도 너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리라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들을 깨끗하게 하라 너희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너희 마음들을 정결하게 하라”(약4:8)

 


  다음 영적 복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비록 믿음이 너무나 작을 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 되심을 마땅히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믿음에서 연약한 자들이 있으나, 우리는 그들의 믿음을 폄하하지 않아야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그의 의심하는 것들에 논쟁하지 말라”(롬14:1)

 


“가장 연약한 자의 기도라도, 만약 믿음이 있다면 모든 공허한 지식을 앞선다.”

  살아있는 믿음의 원칙은 말씀을 믿는 것과,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혈루병을 앓던 불쌍한 여자는 이 믿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심령에 믿음은 있는데, 여전히 우리는 병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내가 아주 밑바닥까지 낮아졌을 때인, 어제 나는 동일한 질문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나는 힘을 얻었었으나, 어제 나는 풀이 죽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변화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도 바로 그러한 일을 겪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짐 아래서 생활하고 일한다. 비록 약할 지라도, 그것은 결코 죽지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낙심하는 피조물들중 하나입니다.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운) 데서부터 낙담과 의심이 나옵니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주저앉음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일어남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내일 일을 생각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을 들려줄 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실 여러분이 성경의 모든 말씀을 골고루 믿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사도들의 기도를 알지못합니까? 그것은 일상의 나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옵소서” 그들의 믿음이 그들로하여금 믿음의 자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잠16:23) 가난한 자는 구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여기에 싸움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원칙들, 믿음과 믿지 아니함이 있는 곳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그것은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

  불신은 당면문제였습니다. 이는 모태에서의 야곱과 에서의 싸움입니다.

 


  그 다음 축복은 소망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믿기 전에 소망을 가졌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그러한 것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가 소망을 갖기 전에 믿음을 가졌다고 읽습니다. 당신이 크게 낙심한 상황에서 그 말씀을 듣고자 왔다고 가정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심을 내가 알려주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믿음이 오고, 그후에 소망이 샘솟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시119:49)

  당신이 말씀 안에서 소망하기 전에, 당신은 먼저 그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말씀이 먼저 심령으로 받아들여진 후, 소망이 뒤따릅니다. 이는 당신에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열매이자 결과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서...”(살후2:16)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

 


그 다음 복은 하나님의 호의(好意)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시5: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잠19:12)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잠16:1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호14:5)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때때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녹아지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이것이 그분의 호의입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신32:2)

야곱에게 빌어준 이삭의 복이 이것입니다--“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같으니라”(호14:7) 이 재활력(再活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독특한 것입니다.

 


그 다음 복은 평안입니다. 그것은 의의 열매이자 결과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악한 자들은 이에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57:21)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이 구절은 꿀보다 사탕보다 내게는 단 말씀입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6,7) 우리의 재능에의해서도 아니며, 우리의 가치 때문도 아닙니다. 구속은 무엇입니까? 그 단어는 다시 되산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는 히브리서 12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뿌린 피”에 도달합니다. 영원한 속량이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성취되었고,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잃어진 자였고, 영원히 사라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잃어진 자들을 속량시키시기 위해 오셨고, 속전을 지불하시러 오셨습니다.

“그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대속하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아들들로 입양되도록 하려 하심이라”(갈4:4,5)

  따라서, 그분은 구속자라고 불리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59:20) 주님은 시편40편에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40:7,8)

  그분은 우리가 범했던 율법을 마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들로서 그것을 깨뜨렸으나, 예수님의 순종은 창조주의 순종입니다. 나는 이 점에 대한 호커 박사의 표현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요구를 초과해서 성취시키셨다고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완벽하게 충족되어져야만 합니다. “이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너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대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그 보배로운 피로 받은 것이니라”(벧전1:18,19)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들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이는 사면이 없느니라”(히9:22)

  예수님의 피와 강권에의한 구속입니다.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시107:2) 여기에 사랑에 기초한 강권에의한 구속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연합하여, 예수님의 피와 능력으로 구속함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 세상 밖으로 데려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아닙니까? 당신은 죄의 사함에의한 구속을 알고있습니까, 죄들의 사함을 받는 구원에대해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주님은 그것을 당신에게 보여주셨습니까? 나는 그분이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적용되어지는 말씀들로 죄의 사함을 받습니다. 제게 적용되는 말씀이 있었던 것처럼.

  “아들아, 기뻐하라, 너의 죄들이 사해졌다.”

 


나는 이에 대한 하트씨의 말을 좋아합니다--

 


“신실한 믿음으로, 자신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믿고 받아들이는 죄인은 그 순간부터 죽음을 지나서 천국의 상속자로 인침받았다.”

 


나는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예수님의 구속하심에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들이 사해졌음이 믿어졌다고 믿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죄사함을 자각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가장 훌륭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죄 사함의 달콤하고 축복받은 결과입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에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죄들은 사해졌습니다.

“그녀의 허다한 죄들이 사함받아졌다; 왜냐하면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에의해서만 오직 죄사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매우 값진 피!)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하신다(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영혼을 화목시킨다,

모든 죄와 모든 허물로부터”

 


  죄에대한 주님의 용서하심을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것을 가지고있다면,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라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전15:58)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영적 축복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의 사함으로 당신을 복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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