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영광스런복음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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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복음   
 
 The glorious Gospel 
1923-J.K.포팸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3,4) 


  본문에 염두에두고 있는, 믿지 않는 모든 여러분들의 처한 상황은 형용할 수 없이 슬픈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감겨져있고, 여러분은 이 세상의 신들의 법칙 아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 세상의 신에 대해 말해줍니다. 성도들을 대상으로하여 그는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육체와 피에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통치자들에게 대적하고 높은 처소들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적하는 것임이라”(엡6:12) 우리중 몇몇은 이미 대적해 싸우고 있는 그러한 마귀들, 우리가 때때로 다투고 씨름중에 있는 그 마귀들에게 믿지 않는 여러분은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에대해 생각해보게 하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에 관하여 확신하고, 그리하여 여러분을 구세주의 보혈의 샘으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서 명령하는 불신은 아담이 타락했을 때 아담 안에서 명령하였습니다. 아담이 자신을 떨어뜨렸던 동일한 파멸과 흑암의 구덩이로, 아담은 당신을 떨어뜨렸습니다. 오, 만일 그를 그 상황으로부터 끌어내신 주님께서, 그를 그 구덩이 밖으로 건져내신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오셔서 동일한 일을 하신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눈을 멀게하는 죄 
 

  광범위하고, 무시무시한 단어가 있습니다 - 이 세상의 신: “그들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고후4:4) 그렇습니다. 그는 당신을 종교로 눈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쾌락으로 누군가를 눈멀게 합니다. 그는 정욕으로 다른 자들을 눈멀게 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신성모독으로 눈멀게 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미신으로 눈멀게합니다. 그는 당신을 성경에 대한 믿음으로 눈멀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으로 만족할 수 있고 결코 그것을 영감주신 하나님과 그분의 권능에 관하여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관계를 맺을 필요가 그 분에 관하여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되겠습니까! 세상 신의 위대한 결말은 파멸입니다; 그의 위대한 결말은, 그가 허용되는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마음의 눈을 막습니다, 복음의 빛이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그는 주님이 그를 허락하신 곳에서 돌아다닙니다. 당신은 아주 편안합니다, 당신중 누군가는 당신의 상태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죄가 당신에게 고통이 아닙니다. 마음의 슬픔도 아니고, 짐도 아닙니다; 죄가 당신을 무릎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소위 쾌락으로부터 당신의 골방들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죄는,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은혜를 허락하소서”라고 부르짖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으나, 당신의 만족은 죽음이고,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오, 그것은 지독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돌아보시고, 당신의 영혼에 “너에게 빛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길 간구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현재 처한, 위험, 두려운 위험을 보게될 것입니다. 때때로, 죽음에 관해 인간에게 주어진 경고는 짧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덮치고, 그리고 그들의 심장들은 고동치기를 멎습니다. 

영원한 불가운데 처한 자들 
 

  그들은 영원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옥에서 자기들의 눈을 뜰 때까지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성령님께서 속히 당신의 영혼을 흔드시고, 당신의 눈을 여시고, 당신에게 당신이 끌려가고 있는 그 두려운 상태를 깨달을 수 있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거기서 당신은 죄와 이 세상 신에 붙들려있습니다.  

영원, 오 영원! 그것에 관해 우리중 몇몇은 준비해왔고, 수년동안 그래왔습니다. 영원, 하나님께서 계신 그 영원 속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가지며, 우리는 반드시 영원을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한 불순한 피조물이 만난다면, 과연 어떤 만남이겠습니까! 그들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만일 한 죄인과 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만난다면, 어떤 만남이 되겠습니까! 그들은 결코 함께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죄와 허물 가운데 죽었다면, 당신이 잠시동안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될 때, 그리고 그후 그 다음 순간에 그 무시무시한 선고문;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25:41)고 듣게된다면, 그 만남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로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시원하게 하소서 내가 지금 이 불꽃 중에 고통을 받고있나이다”(눅16:24) 

“세상의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큰 용광로 불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에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9) 

“거기에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그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막9:48) 

 

여기 복된 소식이 있다 
 

여기에 한 소식, 복된 소식,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복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이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죄로부터 거룩함으로 가는 길; 자아로부터 예수님께로 가는 길; 세상으로부터 십자가로 가는 길; 정죄로부터 칭의로 가는 길, 오염된 자로부터 거룩함으로 가는 길, 위험으로부터 안전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처해짐으로부터 주 예수님 안의 안전으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부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기꺼이 당신의 심령에서 이러한 위대한 진리들의 실재성을 중요하게 부각시키시길 간구합니다, 그래서 세리장이 “하나님이시여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눅18:13)하고 외쳤던 것처럼, 당신이 거듭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이 복음의 본질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 이제 그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소식들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물건들은 그것들이 사용되어지는 그 순간을 제외하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기에; 우리 피조물로부터 파생된 좋은 소식들은 없습니다, 그것은 타락된 것입니다; 이 영광스런 복음의 좋은 소식은 하늘로부터 와야합니다. 그것은 먼 나라로부터 온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 앞에 배달되었습니다. 그 성경은 좋은 소식을 말씀하시고, 좋은 것들에관한 기쁜 소식들을 전해주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입니다. 그것은 어떤 심령들을 대상으로 발화(發話)된 것인데, 명확한 특징의 죄인들, 성경에 묘사된 분명한 성격의 죄인들, 그 죄인들의 심령 안으로 생명과, 빛과, 능력과 영광과 함께 들어옵니다. 모든 죄인들이 아니라, 한 죄인으로서, 그 개별 죄인을 회개하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막2:17)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의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자체의 판단과 느낌으로는 죄인들인, 명목상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죄인들을 주님께서 부르러 오셨는데, 그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부요함을 보여주시고자 함입니다. 이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령 가운데서 울리는 깨어진 율법의 소리를 들었던 그 가난한 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을 듣고, 그들의 양심의 자각으로 정죄되고, 전적으로 죄인되고 상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이제 이 복음, 그리스도의 이 영광스런 복음, 또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능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먼저, 사랑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속죄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값없는 약속들의 복음입니다, 죄인들의 심령들에 강권적으로 작용하는 복음입니다, 죄인들을 하늘의 왕국으로 데려가는 왕국 복음입니다. 그것은 값없는 죄사함의 복음입니다; 능력의 복음,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권능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이에대해 나는 기쁘게 설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라건대, 아주 아주 조금 그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체험하고 느끼는 신앙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주시는 바로 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님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영혼을 치료하는 복음 

   첫째, 그것은 사랑, 영원한 사랑의 복음입니다. 요한 복음의 아름다운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님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오 얼마나 좋은 복음입니까!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다시 한번 사랑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분을 통하여 살게하려 하심이라”(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그분으로 품 밖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당신이 복음의 선물로서 이 사랑을 볼 때, 당신은 복음을 사랑할 것이며, 당신은 복음을 믿고, 그것에 따를 것입니다. 한 죄인에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모든 말씀은 그 죄인의 심령을 깨뜨려서 회개에 이르게 하고, 다시 모아서 행복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복된 소식은 그것이 도달하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이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다가감에 있어서, 우리는 그 말씀을 듣기위해, 그것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를 때,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복음이 능력, 달콤함, 그리고 위로로 한 죄인의 영혼에 이를 때; 그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복음이 자신에게 이르렀다고 느낄 때; 만일 그의 이름이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불려졌을 때, 복음이 그에게 이를 때, 그리고 그가 그 자신의 영혼에서 복음의 능력을 인지했을 때, 그와 그 복음이 각각 서로에게 낯선 것이 아니고, 그들이 서로 서로를 이해할 때, 즉, 그 복음이 이 죄인의 공허함을 깨닫고, 충만을 가져올 때; 그것이 그의 죄를 깨닫게하고, 죄사함을 가져다줄 때; 그의 약함을 깨닫고 힘을 가져다 줄 때;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멀리 떨어져있음을 알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올 수 있게 할 때; 그리고 그가 자신의 특별한 죄의 자작에서 복음을 인식할 때, 그때보다 더 분명하게 복음이 역사할 때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잃어진 자였으나, 현재는 찾아졌고, 나는 죽은 자였으나 이제 살았고, 나는 어두웠으나 이제 빛 가운데 있고, 나는 죄인이었으나, 이제 의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 가엾은 죄인에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그분 안에서, 값없는 복음, 살아있는 복음, 복된 소식, 죄인의 가난함과 가책과 억매임과 두려움과 고통의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복음이, 빛의 광선들처럼 퍼져나가, 아픈 자, 죄로 아픈 자의 영혼을 치유합니다. 

 

복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놀라운 복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그 관대하심과 그 영원한 은혜 베푸심에서 이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분은 그분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게 주실 것이 없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보다 더 크거나 위대하신 것을 주실 수 없으셨습니다. 이 선물에 비할 것이 없고, 피조물 전체에서 예수님과 동등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아주 특별한 이유로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육신을 가지신 분으로, 인간이 되도록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실제 신분을 한켠으로 두시고, 지상으로 내려오셔서,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시고, 그분의 형제들이 진 빚을 갚아주시기 위함입니다.”(빌2:6-11)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들이 만날 수 있고,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죄인은 하나님의 아주 기뻐하시는 얼굴을 뵐 수 있고, 동시에 죄에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증오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죄인은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을 볼 수 있으며, 그가 이것들을 볼 때, 그의 심령은 그 과거로부터 돌이키고,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과 동행하며, 과거의 것을 버리게 됩니다. 오, 이토록 위대하신 그분의 선물에 나타난 불쌍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이여! 그 사도는 모든 것을 이것으로 응집시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에 관하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말해주며, 그것을 빛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4)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 사람 중에 우리에게 주신 다른 이름이 없느니라 우리는 반드시 이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느니라”(행4:12) 

  자, 이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에 있어서, 예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것,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선포하시고 드러내신 복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은, 복음을 믿어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죄인의 심령에서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인격의 표현된 형상, 그분의 아버지의 영광의 밝음”; 그리고 제 생각에 의하면, 여기에는 죄에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증오, 본질적인 증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빛은 빛이 납니다; 만일 우리에대한 율법 안에서 빛이 난다면, 그것은 우리를 두렵게하고, 우리를 떨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율법 안에서 나온 그 빛으로인해 두려워했었고, 여러분중 누군가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오 우리에게 실로 두려운 것이며, 죄에대한 하나님의 증오는 무한하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다만 그것을 보지못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본성이십니다. 불순하고, 불경한 모든 것을 증오하는 것이 그분의 본성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에서 보일 때, 그 율법은 죽음의 사역자가 되고, 정죄의 사역자가 되며, 이 율법의 사역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 지옥의 고통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율법의 사자 아래 있을 때는, 죽음의 슬픔들이 우리를 에워쌌습니다.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이신 요구들로 율법은 하나님을 표현해 줍니다; 이것이 율법이 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공포스런 모습으로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그런 율법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진 그 심령은 공포를 경험합니다. 

  

죄의 저주를 담당하신 분 

   이제 동일한 하나님의 완벽성, 율법이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완벽성들, 그리고 제가 열거하는 특수한 것, 즉 하나님의 죄에대한 무한한 증오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도 빛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복음이 밝혀지는 심령들에게 그 복음이 그토록 경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증오는, 주님을 정죄하고, 그분을 저주함으로써, 귀하신 구세주의 바로 그 심장에서 한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의 정죄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혼들의 구속(救贖)은 주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요구합니다; 그분은 목숨을 내려놓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본 모든 자들은, 그분 안에서, 그분이 나무 형틀에 달리실 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증오를 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죄를 보는 것과, 불법을 보는 것과, 그것을 징벌하지 않으심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대신 그 처벌을 내리셨고, 그렇게 그분의 공의를 표출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영원하신 심판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완벽하심이 조화를 이루는지,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지 봅니다. 율법 안에서는 당신은 이것을 볼 수 없습니다. 율법 안에서는 당신은 거룩함의 완벽성, 공의의 완벽성을 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끝까지 죄를 미워하심을 봅니다, 율법 안에서, 죄를 징벌하는 능력 안에서, 무한한 공의가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당신은 복음에 전시되어 있고,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과 공의의 형상은 볼 수 없는데, 왜냐하면 복음에서만 이러한 완벽성이 연합되고, 조화되고,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당신은 죄를 미워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죄에대한 그 증오는 예수님의 상처난 심장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순종하심과 죽으심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해주시는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친히 하나님의 형상이신 주 예수님 안에 계신 인격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값없이 의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화목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들과 화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주 예수님 안에서 보여지시고, 알려지시고, 가까이 접촉되셨고, 음성이 들려지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통해 가난한 죄인들의 영혼들에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들이였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느니라”(롬5:8) 
 

천국에 가는 길, 오직 믿음 뿐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 거룩한 신앙이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하는 신앙입니다. 그 이외의 것으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신은 복음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눈들을 멀게 하여, 우리를 즐겁게하는 많은 것들에 붙들어두지만, 그러나 성령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모든 세상 것들로부터 거두어들여서 이 영광스러운 복음으로 인도해가십니다. 우리중 몇몇은 처음 하나님을 보았을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 그분을 만나서 전율할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는 절대 있을 수 없을거야”. 한편의 하나님의 완벽성이 제 심령 위를 비추었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빛나고 있는 다른 완벽성은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명령법이자 그 자체가 행위의 언약인 율법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격의 완벽성은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인내, 그분의 권능, 그분의 측은히 여기심, 그분의 죄사함입니다; 이것들은 율법 안에서는 빛나지 않습니다. 

  율법은 그것들에대한 울림이 없고, 그것들에 대한 암시도 주지 않고, 그것들에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뿐이며, 그것은 한 순결한 피조물, 그 율법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피조물에 관하여만 인정합니다; 그 인정만이 율법이 알고있는 모든 것입니다. 율법은 한 죄인을 알고, 율법은 그를 정죄하고, 그것이  율법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불인정. 율법은 죄를 발견할 때면 언제고 죄를 정죄하고, 죄를 저주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율법 아래 있다면, 그것에 의해 당신은 반드시 평가받아야 하고, 재판받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율법 아래서 영원으로 들어간다면, 복음 밖에서 당신을 변호해줄 단어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듣게될 모든 것은 선고를 내리는 율법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의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서 죽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누가 율법의 정죄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전(目前)과 그분의 전능하심 앞에서 하나님의 입술 밖으로 정당하게 죽음으로 정죄받게되는 장면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만일 이 복된 완벽성들이, 내가 이후로 더해서 열거했던 빛들과 함께, 우리의 심령 안으로 비추인다면, 우리는 아주 다른 상황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정반대의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됩니다-행복하게, 양자로 받아들여져서, 거룩하고, 죄사함받고, 의롭게되고, 거룩하게 되어서 섭니다; 따라서, 영원히 행복하고, 축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 아니면 어떤 것도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음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족시켰고, 따라서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지금 이것을 말씀드리는 순간, 만일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확신이 없다면, 당신에게 복음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알고,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면, 만일 당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그후에는 복음은 경이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 복음에는 한 분, 사람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은 자신의 사역을 담당하셨고, 목숨을 내어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위해,  그래서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음 단어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만족시키시고, 기쁘시게 해드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불만족하고 계십니까? 그분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로 인해? 나로 인해, 당신으로 인해.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첫 번째 머리된, 아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로, 우리의 심령으로, 우리의 생각들로 인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로 인해, 바로 우리가 타락한 피조물들이기에 불만족해하십니다. 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키셔야 하고, 그분의 법을 충족시키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충족시키시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모든 율법의 개념들, 모든 율법의 요구들에 들어있는 율법의 바로 그 목적한 바까지 이루셨습니다. 어떠한 의무도 축소하지 않고; 그분 위에 그분의 백성들의 불법들과 모든 그들의 의무들을 스스로에게 지우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들이 해야할 의무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할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그것들을 그분은 스스로에게 지우시고, 전가받으셨는데, 완벽하게 전가받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분 외에 다른 아무도 아닙니다. “여기 주님 안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났고,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중 누군가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조금은 깨닫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셨고, 우리에게 미소지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우리를 만나셨고, 우리를 복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따뜻한 말씀을 우리의 심령들에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죄사함을 우리의 양심에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은혜의 집으로 우리의 영혼들을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우리와 만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의 길에서, 그분은 우리를 만나셨고, 우리를 의롭게하시는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속량하시고, 빛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업을 우리가 받을 수 있도록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라노라”(갈1:4) 

 
  이제 만일 당신이 천국으로 가야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이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이는 반드시 당신이 만나야하는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우리중 어떤 이가 만나기 바라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슬픔은 무엇입니까, 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당신이 그분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당신 때문 아닙니까; 당신이 바라는 그분과 교제를 갖지 못하는 것은; 마땅히 사랑받으셔야할 그분을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 당신이 그분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신뢰를 그분에게 돌리지 못하고있는 것 때문아지 않습니까? 이것이 당신의 슬픔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우리의 심령들에 빛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안에서 만나고 계시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을 만나십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심령들로 오는 그분의 긍휼을 체험할 때, 그들은 그분을 보고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듣고,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심령에 빛나고 있는 복음  영광스러운 복음   
 

 The glorious Gospel 
1923-J.K.포팸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3,4) 


  본문에 염두에두고 있는, 믿지 않는 모든 여러분들의 처한 상황은 형용할 수 없이 슬픈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감겨져있고, 여러분은 이 세상의 신들의 법칙 아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 세상의 신에 대해 말해줍니다. 성도들을 대상으로하여 그는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육체와 피에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통치자들에게 대적하고 높은 처소들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적하는 것임이라”(엡6:12) 우리중 몇몇은 이미 대적해 싸우고 있는 그러한 마귀들, 우리가 때때로 다투고 씨름중에 있는 그 마귀들에게 믿지 않는 여러분은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에대해 생각해보게 하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에 관하여 확신하고, 그리하여 여러분을 구세주의 보혈의 샘으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 안에서 명령하는 불신은 아담이 타락했을 때 아담 안에서 명령하였습니다. 아담이 자신을 떨어뜨렸던 동일한 파멸과 흑암의 구덩이로, 아담은 당신을 떨어뜨렸습니다. 오, 만일 그를 그 상황으로부터 끌어내신 주님께서, 그를 그 구덩이 밖으로 건져내신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오셔서 동일한 일을 하신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눈을 멀게하는 죄 

   광범위하고, 무시무시한 단어가 있습니다 - 이 세상의 신: “그들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고후4:4) 그렇습니다. 그는 당신을 종교로 눈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쾌락으로 누군가를 눈멀게 합니다. 그는 정욕으로 다른 자들을 눈멀게 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신성모독으로 눈멀게 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미신으로 눈멀게합니다. 그는 당신을 성경에 대한 믿음으로 눈멀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으로 만족할 수 있고 결코 그것을 영감주신 하나님과 그분의 권능에 관하여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관계를 맺을 필요가 그 분에 관하여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되겠습니까! 세상 신의 위대한 결말은 파멸입니다; 그의 위대한 결말은, 그가 허용되는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마음의 눈을 막습니다, 복음의 빛이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그는 주님이 그를 허락하신 곳에서 돌아다닙니다. 당신은 아주 편안합니다, 당신중 누군가는 당신의 상태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죄가 당신에게 고통이 아닙니다. 마음의 슬픔도 아니고, 짐도 아닙니다; 죄가 당신을 무릎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소위 쾌락으로부터 당신의 골방들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죄는,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은혜를 허락하소서”라고 부르짖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으나, 당신의 만족은 죽음이고,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오, 그것은 지독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돌아보시고, 당신의 영혼에 “너에게 빛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길 간구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현재 처한, 위험, 두려운 위험을 보게될 것입니다. 때때로, 죽음에 관해 인간에게 주어진 경고는 짧습니다. 죽음이 그들을 덮치고, 그리고 그들의 심장들은 고동치기를 멎습니다. 


영원한 불가운데 처한 자들 

   그들은 영원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옥에서 자기들의 눈을 뜰 때까지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성령님께서 속히 당신의 영혼을 흔드시고, 당신의 눈을 여시고, 당신에게 당신이 끌려가고 있는 그 두려운 상태를 깨달을 수 있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거기서 당신은 죄와 이 세상 신에 붙들려있습니다.  


영원, 오 영원! 그것에 관해 우리중 몇몇은 준비해왔고, 수년동안 그래왔습니다. 영원, 하나님께서 계신 그 영원 속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가지며, 우리는 반드시 영원을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한 불순한 피조물이 만난다면, 과연 어떤 만남이겠습니까! 그들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만일 한 죄인과 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만난다면, 어떤 만남이 되겠습니까! 그들은 결코 함께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죄와 허물 가운데 죽었다면, 당신이 잠시동안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될 때, 그리고 그후 그 다음 순간에 그 무시무시한 선고문;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25:41)고 듣게된다면, 그 만남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로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시원하게 하소서 내가 지금 이 불꽃 중에 고통을 받고있나이다”(눅16:24) 

“세상의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큰 용광로 불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에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9) 

“거기에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그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막9:48) 


여기 복된 소식이 있다 

 
여기에 한 소식, 복된 소식,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복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이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죄로부터 거룩함으로 가는 길; 자아로부터 예수님께로 가는 길; 세상으로부터 십자가로 가는 길; 정죄로부터 칭의로 가는 길, 오염된 자로부터 거룩함으로 가는 길, 위험으로부터 안전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처해짐으로부터 주 예수님 안의 안전으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부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기꺼이 당신의 심령에서 이러한 위대한 진리들의 실재성을 중요하게 부각시키시길 간구합니다, 그래서 세리장이 “하나님이시여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눅18:13)하고 외쳤던 것처럼, 당신이 거듭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이 복음의 본질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 이제 그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소식들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물건들은 그것들이 사용되어지는 그 순간을 제외하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기에; 우리 피조물로부터 파생된 좋은 소식들은 없습니다, 그것은 타락된 것입니다; 이 영광스런 복음의 좋은 소식은 하늘로부터 와야합니다. 그것은 먼 나라로부터 온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 앞에 배달되었습니다. 그 성경은 좋은 소식을 말씀하시고, 좋은 것들에관한 기쁜 소식들을 전해주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입니다. 그것은 어떤 심령들을 대상으로 발화(發話)된 것인데, 명확한 특징의 죄인들, 성경에 묘사된 분명한 성격의 죄인들, 그 죄인들의 심령 안으로 생명과, 빛과, 능력과 영광과 함께 들어옵니다. 모든 죄인들이 아니라, 한 죄인으로서, 그 개별 죄인을 회개하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막2:17)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의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자체의 판단과 느낌으로는 죄인들인, 명목상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죄인들을 주님께서 부르러 오셨는데, 그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부요함을 보여주시고자 함입니다. 이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령 가운데서 울리는 깨어진 율법의 소리를 들었던 그 가난한 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을 듣고, 그들의 양심의 자각으로 정죄되고, 전적으로 죄인되고 상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이제 이 복음, 그리스도의 이 영광스런 복음, 또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능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먼저, 사랑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속죄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값없는 약속들의 복음입니다, 죄인들의 심령들에 강권적으로 작용하는 복음입니다, 죄인들을 하늘의 왕국으로 데려가는 왕국 복음입니다. 그것은 값없는 죄사함의 복음입니다; 능력의 복음,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권능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이에대해 나는 기쁘게 설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라건대, 아주 아주 조금 그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체험하고 느끼는 신앙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주시는 바로 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님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영혼을 치료하는 복음 

  

  첫째, 그것은 사랑, 영원한 사랑의 복음입니다. 요한 복음의 아름다운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님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오 얼마나 좋은 복음입니까!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다시 한번 사랑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분을 통하여 살게하려 하심이라”(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그분으로 품 밖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당신이 복음의 선물로서 이 사랑을 볼 때, 당신은 복음을 사랑할 것이며, 당신은 복음을 믿고, 그것에 따를 것입니다. 한 죄인에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모든 말씀은 그 죄인의 심령을 깨뜨려서 회개에 이르게 하고, 다시 모아서 행복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복된 소식은 그것이 도달하는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이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다가감에 있어서, 우리는 그 말씀을 듣기위해, 그것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를 때,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복음이 능력, 달콤함, 그리고 위로로 한 죄인의 영혼에 이를 때; 그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복음이 자신에게 이르렀다고 느낄 때; 만일 그의 이름이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불려졌을 때, 복음이 그에게 이를 때, 그리고 그가 그 자신의 영혼에서 복음의 능력을 인지했을 때, 그와 그 복음이 각각 서로에게 낯선 것이 아니고, 그들이 서로 서로를 이해할 때, 즉, 그 복음이 이 죄인의 공허함을 깨닫고, 충만을 가져올 때; 그것이 그의 죄를 깨닫게하고, 죄사함을 가져다줄 때; 그의 약함을 깨닫고 힘을 가져다 줄 때;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멀리 떨어져있음을 알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올 수 있게 할 때; 그리고 그가 자신의 특별한 죄의 자작에서 복음을 인식할 때, 그때보다 더 분명하게 복음이 역사할 때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잃어진 자였으나, 현재는 찾아졌고, 나는 죽은 자였으나 이제 살았고, 나는 어두웠으나 이제 빛 가운데 있고, 나는 죄인이었으나, 이제 의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 가엾은 죄인에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그분 안에서, 값없는 복음, 살아있는 복음, 복된 소식, 죄인의 가난함과 가책과 억매임과 두려움과 고통의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복음이, 빛의 광선들처럼 퍼져나가, 아픈 자, 죄로 아픈 자의 영혼을 치유합니다. 

 

복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놀라운 복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그 관대하심과 그 영원한 은혜 베푸심에서 이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분은 그분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게 주실 것이 없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보다 더 크거나 위대하신 것을 주실 수 없으셨습니다. 이 선물에 비할 것이 없고, 피조물 전체에서 예수님과 동등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아주 특별한 이유로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육신을 가지신 분으로, 인간이 되도록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실제 신분을 한켠으로 두시고, 지상으로 내려오셔서,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시고, 그분의 형제들이 진 빚을 갚아주시기 위함입니다.”(빌2:6-11)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들이 만날 수 있고,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죄인은 하나님의 아주 기뻐하시는 얼굴을 뵐 수 있고, 동시에 죄에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증오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죄인은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을 볼 수 있으며, 그가 이것들을 볼 때, 그의 심령은 그 과거로부터 돌이키고,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과 동행하며, 과거의 것을 버리게 됩니다. 오, 이토록 위대하신 그분의 선물에 나타난 불쌍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이여! 그 사도는 모든 것을 이것으로 응집시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에 관하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말해주며, 그것을 빛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4:4)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 사람 중에 우리에게 주신 다른 이름이 없느니라 우리는 반드시 이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느니라”(행4:12) 


  자, 이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에 있어서, 예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것,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선포하시고 드러내신 복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은, 복음을 믿어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죄인의 심령에서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인격의 표현된 형상, 그분의 아버지의 영광의 밝음”; 그리고 제 생각에 의하면, 여기에는 죄에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증오, 본질적인 증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빛은 빛이 납니다; 만일 우리에대한 율법 안에서 빛이 난다면, 그것은 우리를 두렵게하고, 우리를 떨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율법 안에서 나온 그 빛으로인해 두려워했었고, 여러분중 누군가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오 우리에게 실로 두려운 것이며, 죄에대한 하나님의 증오는 무한하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다만 그것을 보지못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본성이십니다. 불순하고, 불경한 모든 것을 증오하는 것이 그분의 본성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에서 보일 때, 그 율법은 죽음의 사역자가 되고, 정죄의 사역자가 되며, 이 율법의 사역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 지옥의 고통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율법의 사자 아래 있을 때는, 죽음의 슬픔들이 우리를 에워쌌습니다.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이신 요구들로 율법은 하나님을 표현해 줍니다; 이것이 율법이 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공포스런 모습으로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그런 율법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진 그 심령은 공포를 경험합니다. 

 
죄의 저주를 담당하신 분 

 
  이제 동일한 하나님의 완벽성, 율법이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완벽성들, 그리고 제가 열거하는 특수한 것, 즉 하나님의 죄에대한 무한한 증오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도 빛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복음이 밝혀지는 심령들에게 그 복음이 그토록 경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증오는, 주님을 정죄하고, 그분을 저주함으로써, 귀하신 구세주의 바로 그 심장에서 한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의 정죄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혼들의 구속(救贖)은 주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요구합니다; 그분은 목숨을 내려놓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본 모든 자들은, 그분 안에서, 그분이 나무 형틀에 달리실 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증오를 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죄를 보는 것과, 불법을 보는 것과, 그것을 징벌하지 않으심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대신 그 처벌을 내리셨고, 그렇게 그분의 공의를 표출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영원하신 심판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완벽하심이 조화를 이루는지,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지 봅니다. 율법 안에서는 당신은 이것을 볼 수 없습니다. 율법 안에서는 당신은 거룩함의 완벽성, 공의의 완벽성을 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끝까지 죄를 미워하심을 봅니다, 율법 안에서, 죄를 징벌하는 능력 안에서, 무한한 공의가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당신은 복음에 전시되어 있고,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과 공의의 형상은 볼 수 없는데, 왜냐하면 복음에서만 이러한 완벽성이 연합되고, 조화되고,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당신은 죄를 미워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죄에대한 그 증오는 예수님의 상처난 심장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순종하심과 죽으심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해주시는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친히 하나님의 형상이신 주 예수님 안에 계신 인격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값없이 의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화목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들과 화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주 예수님 안에서 보여지시고, 알려지시고, 가까이 접촉되셨고, 음성이 들려지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통해 가난한 죄인들의 영혼들에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들이였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느니라”(롬5:8) 

 천국에 가는 길, 오직 믿음 뿐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 거룩한 신앙이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하는 신앙입니다. 그 이외의 것으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신은 복음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눈들을 멀게 하여, 우리를 즐겁게하는 많은 것들에 붙들어두지만, 그러나 성령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모든 세상 것들로부터 거두어들여서 이 영광스러운 복음으로 인도해가십니다. 우리중 몇몇은 처음 하나님을 보았을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 그분을 만나서 전율할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는 절대 있을 수 없을거야”. 한편의 하나님의 완벽성이 제 심령 위를 비추었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빛나고 있는 다른 완벽성은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명령법이자 그 자체가 행위의 언약인 율법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격의 완벽성은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인내, 그분의 권능, 그분의 측은히 여기심, 그분의 죄사함입니다; 이것들은 율법 안에서는 빛나지 않습니다. 


  율법은 그것들에대한 울림이 없고, 그것들에 대한 암시도 주지 않고, 그것들에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뿐이며, 그것은 한 순결한 피조물, 그 율법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피조물에 관하여만 인정합니다; 그 인정만이 율법이 알고있는 모든 것입니다. 율법은 한 죄인을 알고, 율법은 그를 정죄하고, 그것이  율법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불인정. 율법은 죄를 발견할 때면 언제고 죄를 정죄하고, 죄를 저주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율법 아래 있다면, 그것에 의해 당신은 반드시 평가받아야 하고, 재판받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율법 아래서 영원으로 들어간다면, 복음 밖에서 당신을 변호해줄 단어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듣게될 모든 것은 선고를 내리는 율법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의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서 죽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누가 율법의 정죄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전(目前)과 그분의 전능하심 앞에서 하나님의 입술 밖으로 정당하게 죽음으로 정죄받게되는 장면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만일 이 복된 완벽성들이, 내가 이후로 더해서 열거했던 빛들과 함께, 우리의 심령 안으로 비추인다면, 우리는 아주 다른 상황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정반대의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됩니다-행복하게, 양자로 받아들여져서, 거룩하고, 죄사함받고, 의롭게되고, 거룩하게 되어서 섭니다; 따라서, 영원히 행복하고, 축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 아니면 어떤 것도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음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족시켰고, 따라서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지금 이것을 말씀드리는 순간, 만일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확신이 없다면, 당신에게 복음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알고,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면, 만일 당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그후에는 복음은 경이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 복음에는 한 분, 사람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은 자신의 사역을 담당하셨고, 목숨을 내어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위해,  그래서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음 단어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만족시키시고, 기쁘시게 해드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불만족하고 계십니까? 그분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로 인해? 나로 인해, 당신으로 인해.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첫 번째 머리된, 아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로, 우리의 심령으로, 우리의 생각들로 인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로 인해, 바로 우리가 타락한 피조물들이기에 불만족해하십니다. 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키셔야 하고, 그분의 법을 충족시키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충족시키시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모든 율법의 개념들, 모든 율법의 요구들에 들어있는 율법의 바로 그 목적한 바까지 이루셨습니다. 어떠한 의무도 축소하지 않고; 그분 위에 그분의 백성들의 불법들과 모든 그들의 의무들을 스스로에게 지우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들이 해야할 의무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할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그것들을 그분은 스스로에게 지우시고, 전가받으셨는데, 완벽하게 전가받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분 외에 다른 아무도 아닙니다. “여기 주님 안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났고,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중 누군가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조금은 깨닫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셨고, 우리에게 미소지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우리를 만나셨고, 우리를 복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따뜻한 말씀을 우리의 심령들에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죄사함을 우리의 양심에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은혜의 집으로 우리의 영혼들을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분은 우리와 만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의 길에서, 그분은 우리를 만나셨고, 우리를 의롭게하시는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속량하시고, 빛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업을 우리가 받을 수 있도록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라노라”(갈1:4) 

 
  이제 만일 당신이 천국으로 가야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이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이는 반드시 당신이 만나야하는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우리중 어떤 이가 만나기 바라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슬픔은 무엇입니까, 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당신이 그분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당신 때문 아닙니까; 당신이 바라는 그분과 교제를 갖지 못하는 것은; 마땅히 사랑받으셔야할 그분을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 당신이 그분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신뢰를 그분에게 돌리지 못하고있는 것 때문아지 않습니까? 이것이 당신의 슬픔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우리의 심령들에 빛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안에서 만나고 계시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을 만나십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심령들로 오는 그분의 긍휼을 체험할 때, 그들은 그분을 보고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듣고,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심령에 빛나고 있는 복음 

 
  이것이 빛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물체들 위에서, 우리의 눈에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빛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의 빛 가운데서 사물들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분명하게 봅니다. 우리는 이제,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령들로 그분의 복음 안에서 빛을 비추실 때, 그것은 그토록 영적으로 밝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통해 많은 사물들 속으로 빛을 내게 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도록, 우리를 빛나게 합니다; “한 화(禍)는 그 좋은 것으로 보상되었고, 한 이방인이 한 자녀가 되었다” 어떻게 한 죄인이 그의 이름과 성격과 기반을 바뀌게 하였습니까? 그는 더 이상 진노의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더 이상 거짓의 아비의 진노와 주권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에게 속한 자이고 순결한 처녀로서 예수님의 정혼녀입니다. 더 이상 그는 이제 그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그를 구원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음의 빛이 그에게 이것을 보여줍니다. 이 복음은 이 진리를 드러내게 해준 경이로운 것입니다. 한 가난한 죄인에게 다가올 수 있는 모든 은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관하여 그의 심령으로 빛이 비추임입니다. 

   복음의 빛은 죄인을 화목시키고, 그것은 죄인들을 주님께 이끌고 옵니다; 적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이방인으로서가 아니라 자녀로서; 오염된 피조물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하나님의 성령님에의해 거룩하게된 자로서. 이 어찌 기쁜 소식 아닙니까! 당신은 이에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들어왔다고 말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다시 듣고자 원합니다. 어떤 이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 안에 있는 그 소원이 살아있는 소원이라면, 당신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고, 아무것도 당신을 이롭게 할 수 없고, 오직 이 복음만이 당신을 채울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듣기를 바란다”고. 당신은  이제 말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은 그 날에 내 귀들에 있었고, 나는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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