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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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잔치와 예복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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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잔치와 예복
작성자 서달석목사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다시 비유로 그들에게 가르치시며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왕국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婚姻) 잔치를 베푼 어떤 왕과 같으니, 그가 자기 종들을 보내어 혼인식에 초대받은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이 오려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다시 그가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초대받은 자들에게 전하라. 보라, 내가 저녁식사(dinner-KJVB)를 준비하였고 나의 소와 나의 살찌운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니 혼인식에 오라 하라, 하였더니, 그들은 그 초대를 가볍게 여겨 제 갈 길로 가되, 어떤 이는 자기 밭으로 어떤 이는 장사하러 갔으며, 또 남은 자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을 주고 죽였느니라. 이에 왕이 그 말을 듣고 격노(激怒)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성읍을 불살라 버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식은 준비되었으나 초대받은 자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큰 길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혼인식에 청해 오라, 하였더니, 그 종들이 큰 길로 나가서 나쁜 자든 선한 자든 만나는 대로 다 불러 모으니 그 혼인식에 손님들이 가득하니라. 왕이 그 손님들을 보러 들어와서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아니한 한 사람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친구여, 그대는 어찌하여 혼인 예복도 입지 아니하고 여기에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니라. 이에 왕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그의 손발을 묶어 데리고 나가 바깥 어둠 속에 내어 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는 부름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적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마22:1-14)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잔치는 결혼 피로연일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결혼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결혼잔치를 인생최대의 잔치로 여기고 있는데 역시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죄인들이 만나는 과정을 혼인잔치로 비유하셨던 사례가 여러 곳에 나타난다. 주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셨고 구원의 사역을 결혼잔치로 비유하셨는가 하면 최초의 표적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푸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요2:1-11)에 초대받으셨던 주님께서 포도주가 바닥나서 잔치의 즐거움이 시들어 가는 시점에 여섯 돌 항아리에 아구까지 물을 채우게 하신 후 그 물을 떠다 하객들에게 나눠줄 때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고 그 포도주는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한 양질의 포도주였고 하객들이 연회장을 칭찬할 정도였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신랑으로써 죄인들을 구원시켜 신부삼으시고 죄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을 혼인으로 비유하시는 최초의 기적이었고 바리새인들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때에도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예를 들어 대답하신 사실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혼인집의 하객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들이 오리니 그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니라."(마9:15)
즉 침례인 요한은 율법 선포자로써 통렬하게 죄를 책망하였기에 듣는 심령들이 죄를 자각, 자복하고 금식을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요1:19)으로써 그 죄를 짊어지셨기에 이제 슬픔에서 즐거움으로 잔치가 시작되었기에 "혼인집"으로 비유하시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실 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등불과 기름을 예비하여 기다리면서 비록 졸았지만 밤중에 들리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25:6)는 소리를 듣고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혀버린 비유를 하셨고 마지막 재림하실 때도 "어린양의 혼인잔치..."(계19:9)로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혼인잔치를 '구원잔치'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얻은 아들"로 비유하면서 살찐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인 비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요한 혼인잔치를 베풀어 두시고 먼저 33년 공생애 기간에 이스라엘을 초청하셨지만 그들은 그 구원의 잔치보다 이 세상에 더 분주했고 그들의 마음은 세상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으며 또한 초청을 받고 왔다고 할지라도 예복을 입지 않고 왔기에 저 슬픈 운명에 처하는 곳으로 버림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혼인 잔치의 비유와 예복에 대하여 우리는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묵상해 보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징조들을 볼 때 이렇게 복된 구원의 잔치도 불원간 끝날 것같이 보이고 있고 더불어 예복을 입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아들을 위해 준비된 잔치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다시 비유로 그들에게 가르치시며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왕국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婚姻) 잔치를 베푼 어떤 왕과 같으니..."(마22:1,2)

앞서 언급하였음같이 혼인잔치는 "자기 아들을 위하여" 어떤 임금이 베풀었다고 하셨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하여 베풀어 두신 잔치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찌하여 아들을 위한 잔치인가? 죄인들을 위하여가 아니고 아들을 위한 것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중심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시고 창조주이시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시려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의 베필을 준비해 주셨는데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창2:18)라는 말씀으로 아담의 독처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일이 아니였고 또 뜻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써 예수님의 표상(롬5:12-14)이였으며 독처란 사랑을 부어줄 짝이 없는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사랑을 부어주는 즐거움이 없는 상태가 '홀로 있는'는 상태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들어 선물로 주셨는데 비록 아담을 위하여 만들어 주셨지만 아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하와를 위한 것이 되는데 왜냐하면 아담은 하와에게 사랑을 부어주는 것이 그의 최고의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아들을 위하여"(마22:1)는 결국 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라 죄인이 구원을 받음으로 예수님이 즐거우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하여"는 곧 죄인을 위하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최고의 즐거움은 곧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을 위하여(골1:16) 창조되었다고 할지라도 죄로 인해 멀어져 버린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즐거움 곧 예수님의 즐거움의 극치는 곧 죄인이 구원받는 일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근엄하고 성스러운 잔치인 '혼인잔치'로 비유하셨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리라."(눅15:7)
"여자가 산고(産苦)할 때면 그녀의 때가 이르렀으므로 슬퍼하나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 때문에 그녀가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크고 귀하고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비유로 밝혀주셨는데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베풀고 돌아와서 주님께 고하며 귀신들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놀라움을 표시했을 때 그런 것보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그 기쁨의 근거를 말씀해 주신 사실이 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죄인으로 출생하여 평안이 없고 즐거움과 안식이 없는 상실된 죄인으로 살면서 빈 공간 같은 심령을 세상 것으로 채우려고 발버둥치며 안간힘을 쓰듯 범죄하고, 허전해하고 또 괴로워하고, 범죄하며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왔을 뿐 아니라 현재도 버림받은 상태이지만 먼 훗날 영원히 지옥에서 버림받을 뻔 하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분의 은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하고 완전한 의인(義人)되어 이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생명책에 기록된 기쁘고 즐거운 신분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혼인 잔치를 베푸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찾아보자. "자기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뜻은 바로 오직 그 아들의 행복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예수님의 진정한 기쁨은 그분 자신의 행복이 결코 아니었다. 그분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이처럼 추하고 더러운 세상에 그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사람들보다 더 천하고 비참하게 저주받아 희생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고 놀랐듯이(그의 얼굴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상(傷)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의 아들들보다 더 심히 상하였도다.)"(사52:14)
"그분은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고 거절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疾苦)에 익숙한 사람이라.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그분에게서 숨긴 것같이 그분은 멸시를 받았고 우리도 그분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2:7-8)

이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잃어진 영혼을 구원하시느라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의 영에서 예언하셨고(벧전1:10-12) 때가 차매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 오셨으며 저 가난한 목수 요셉의 집안에 장자로 출생하셔서 30년간 이 세상의 노동을 하셨고 3년 6개월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구원의 잔치를 베푸셨으며 결국 그들에게 버림받으시고 죄인들을 위해 골고다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마27:46) 외치신 후 영혼이 돌아가셨고 사흘만에 승천하시고 이 땅에 사십일 간 부활을 증거하신 후 하늘에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권능의 자리에 앉아계시다가 왕중 왕으로 다시 오실 날 진정한 신랑으로 신부를 데리러 오실 날까지 중보기도 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오늘 우리의 영혼을 위해, 우리들의 안식과 평안을 위해 가시면류관과 흉포 그리고 120대의 채찍과 200근이 넘는 사형틀을 짊어지시고 세 번이나 넘어지시면서 옆구리, 손목, 발목에 12센티 넘는 못이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에 찔림을 받아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 우리의 기쁨을 "다 이루었다"(요19:30)하시며 선언하셨다. 여기서 세상의 죄들이 완전히 사해졌고 죄악의 검은 구름은 물러갔고 두려움과 심판의 태풍은 지나갔으며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길이 열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광채를 보며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딛2:14)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벧전2:9-10).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죄인들이 구원받아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즐거움 그리고 구원의 우물들에서 날마다 기쁨으로 물을 길으는 행복(사12:1-3) 바로 그것이 아들의 즐거움, 예수님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위해 구원의 혼인잔치를 마련하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도 구원의 중심이 우리들에 있지 않고 아들(예수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예비된 만찬(dinner)

"다시 그가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초대받은 자들에게 전하라. 보라, 내가 저녁식사(dinner-KJVB)를 준비하였고 나의 소와 나의 살찌운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니 혼인식에 오라 하라, 하였더니..."(마22:2)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오찬(점심)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헬라어나 KJVB영어 성경은 모두 만찬(저녁식사)으로 나타나 있다. 만찬은 오찬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오찬은 오전과 오후의 일을 하는 과정에 잠시 쉬어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일이 끝나기 전이기에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진정한 쉼의 잔치가 아니다. 만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루의 모든 노동, 일과를 끝내고 즉 모든 일을 완료하고 온 식구들이 저녁 식탁에서 시간의 제약 없이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아 포근한 마음으로 잔치를 나눌 때 그의 즐거움이 어떻겠는가?

하나님은 언제부터 구원의 일을 하셨으며 언제 그 위대한 사역 즉 구원의 일이 끝났는가? 하나님께서는 육일간 천지와 만물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으셨으며..."(창1:4) 아담을 창조하신 후 모든 창조가 완료되었을 때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창1:31).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만들어졌을 때 사랑을 부어줄 수 있는 대상이 생겼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심히 기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날을 복 주셔서 '안식일'로 삼으셨던 것이다. 안식이란 즐겁게 쉬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담은 그 안식일에 범죄하여 자신의 안식도 하나님의 안식인 즐거움도 송두리째 깨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만물을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시는 창조의 일을 하시기 시작하신 것이 바로 "여자의 씨(seed)"(창3:15)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차분히 준비하시면서 역사 속에서 아벨, 셋, 노아,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를 통해 말씀의 역사를 꾸며 오시며 유월절 절기를 세우시고 피 흘림으로 인한 속죄의 사역을 이루어 오시며 어느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이 그 큰 구원의 일(히2:3)을 위해 오셨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있다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느니라, 하시니라."(요5:17)
"내가 네게 전하는 이 말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주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행하시는 것이라."(요14:10)
"내가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사오니 곧 아버지께서 내게 하도록 주신 일을 이루었나이다."(요17:4)
그리고 골고다에서 최후의 일, 즉 일의 완성인 희생을 이루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

만찬의 의미는 휴식을 뜻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이제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마음껏 음식을 먹고 노래 부르며 잔치를 즐기는 것이 만찬인 것이다. 모든 일을 끝내고 ... 바로 예수님께서는 길고 긴 역사에서 구원의 일을 골고다에서 완성시키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시고 이제 누구든지 와서 잔치에 참여하라고 초청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에 "날이 서늘할 때..."(창3:8) 즉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해가 지려는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찾아오셨는데 그 이유는 "먹는 그날"에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고 하셨기에 그 날이 끝나가려는 저녁때에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먼저 죄를 자복받으신 후 인류 최초에 '가죽옷'(창3:21)을 친히 지어서 입혀 주셨던 것이다.

여기서 만찬의 역사 구원의 만찬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만찬은 육식 등 진수성찬이었을 것이며 즐거움의 극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 만찬은 곧 초청받은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만찬이란 점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식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요4:34)

그 어린 양은 죄를 짊어지고 죽은 저주받은 희생물일 뿐이지 결코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아닌 것이다. 죄인들이 구원받고 그 기쁨이 하나님의 양식이요 만찬인 것이다. 여기서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절기가 정해진 것인데 유월절의 어린 양은 해질 때 잡게 되어있다.
"그들이 그 피를 취하여 그들이 그 양을 먹을 그 집의 좌우 문설주(門楔柱)와 인방에다 바르고..."(출12:7)

그리고 여기서부터 진정한 대속의 희생은 늘 저녁 해질 때에 드려졌고 엘리야도 해질 저녁에 희생을 드려 하늘에서 불로 응답을 받았으며(왕상18:25-46) 늘상 태양신(gods) 숭배자들은 태양이 떠오른 시간에 태양을 경배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예언적으로 시행되어오다가 드디어 예수님은 유월절을 성취하시려고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혼인잔치 만찬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 먹기를 원하고 또 원하였느니라."(눅22:15) 그리고 떡(빵)과 포도즙을 준비하시고 "또 주님께서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만찬 후에 잔(포도즙)도 이와 같이 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유언(遺言)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것이니라."(눅22:19-20)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피를 흘리면 많은 사람들의 죄가 사해진다고 약속하셨고 다음날 새벽부터 고난당하신 후 유월절날인 그날 수요일 저녁 해지기 전에 운명하시고 해질 때 유월절에서 무교절이 시작되는 오후 6시경에 무덤에 묻히신 후 삼일 만에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것이 주님이 이루신 유월절이며 하나님이 준비하신 만찬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찬은 완전히 하나님이 준비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피 초청인도 준비할 것은 없다. 죄인들이 구원을 위해 준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냥 초청에 응하면 되는 것이고 자격도 조건도 없다. 단 하나 초청인이 보내온 예복은 반드시 입고 와야만 한다. 이 만찬을 위해 하나님의 희생물 소, 살진 짐승이 피 흘려 희생되었다. 즉 죄인이 구원받는 즐거움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되셨고 "이 모든 날 마지막"(히1:2)부터 오늘까지 영적으로는 깊은 심판의 밤이 오기 전 만찬의 잔치가 계속되고 있고 또한 계속하여 성령님은 사람들을 초청하시고 있는 것이다.
"보라 지금이 받아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여기에 오는 자들은 축의금 부담도 없다. 그냥 와서 참여하면 족하다. 돈 없는 자, 목마른 자, 그냥 와서 마시고 먹으면 되는 것이다(사55:1, 계22:17).

'율법의 일'에 바쁜 이스라엘 민족들

"그들(이스라엘 종교인들)은 그 초대를 가볍게 여겨 제 갈 길로 가되, 어떤 이는 자기 밭으로 어떤 이는 장사하러 갔으며, 또 남은 자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을 주고 죽였느니라."(마22:5-6)

예수님은 삼년 육개월간 이스라엘 민족들을 초청하셨고 그 후로도 다니엘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스데반 순교 때까지 삼년 육개월을 기회를 주셨고, 오순절에 삼천 명이 구원을 받고 베드로, 요한, 빌립, 스데반, 그리고 훗날 바울을 부르셔서 위대한 구원의 혼인잔치에 초청하였지만 그들은 '율법의 일' '행위의(義)의 일', '종교의 일'에 바쁘다 못해 시간이 없다고 하나같이 초청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일부는 오히려 예수님의 종들인 초청자들을 죽이고 능멸하고 박해를 하였던 것이 과거 이스라엘 역사이며, 초대교회, 중세 유럽 로마 카톨릭의 박해, 그리고 지금은 에큐메니칼, 카리스마 성령운동, 개신교들로부터 주님의 초청인들(전도자들)은 계속해서 능멸 받고 조롱받고 때로 순교하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귀한 혼인 잔치의 초대를 가볍게 여기고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보지도 않고' 즉 그들의 마음에 빈손으로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자아'라는 자존심이 자신들의 행위로 이룬 의(義)를 축의금으로 가져가서 당당히 대접을 받으면서 큰 소리를 치고 싶었던 것이다. 천국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들이 선물로 구원을 받아 들어간다는 진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이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기', '자아'를 비우는 일이다. 빈 그릇에 물을 채우시는 주님(요2장), 빈 항아리에 기름을 채우시는 하나님(왕하 4장),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의 복이 주어지는 진리가 성경의 진리인 것이다(마5:3). 바리새인과 세리의 차이는 마음의 행위 부자와 율법에 정죄된 의의 거지의 차이이며 그것이 지옥 간 부자와 천국 간 나사로의 차이인 것이다(눅16장).
"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요.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롬10:2-3)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고도 거절한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갔다(마22:5). 굳이 그 밭을 억지로 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주 예수님의 말씀에 연관시켜본다면 그 밭은 육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인이 최초에 땅의 농사를 하여 그 농산물로 하나님께 희생 예물을 드리려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한 사실이 있고 그것 때문에 심령에 평안이 없어 얼굴의 화색이 분노로 변해있고 결국 그 분노가 친동생이자 의인된 아벨을 돌로 쳐 죽여 버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밭이 있었다. 육신의 행위를 심고 육신의 의를 거두려고 부지런히 밭에서 일을 해왔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조상의 유전, 율법, 의식, 절기, 할례 등을 지키며 부지런히 육신의 땀을 씨로 뿌리고 육신의 의로움을 열매로 거두려 하였지만 그 수확들은 천국에 이룰 수 없는 가라지들 뿐이었고 알맹이는 없었던 것이다. 밭은 세상일 뿐 아니라 흙이다. 흙은 결국 사망을 뜻한다. 육신은 한 줌의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흙에서 나온 것들 즉 사망의 열매들 사망의 양식들을 먹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창3:19). 그러므로 부지런히 육신을 수양하고 개발하고 단련하고 노력하고 신(gods)들이 되어보려고 땀 흘려 애를 쓸지라도 악에 익숙한 죄인이 선이 될 수 없는 것은 에티오피아인(구스인)이 그 피부를 변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스스로 변케 할 수 없는(렘13:23) 진리인 것이다.

결과는 초청을 거절한 최후는 부지런히 육신의 밭에 씨만 심다가 허물어지고 의의 굶주림에 지쳐 병들어 죽어 지옥으로 던져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빈 손으로, 있는 그대로, 추하고 죄 많은 그대로 천국의 초청자의 목소리에 따라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참으로 복된 자들인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자기의 상업차 즉 장사하는 가계로 달려가면서 초청을 거절했다. 장사는 무조건 이익을 남기기가 목적인 것이다. 무엇을 팔고 있었겠는가? 그것은 율법 가계였다. 613가지 율법의 상품을 팔고 그것으로 이익을 남겨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하였다.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구원의 잔치는 죄인들만 참여할 수 있는 잔치이기에 그들은 결코 '죄인'이란 말을 듣기 싫어하였던 것이다. 부지런히 율법을 지키고 유전을 지키고 절기를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이겨보려는 니고데모(백성이 이긴다라는 뜻)였다. 이스라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옷술을 길게 하고 길거리에서 기도하고 외출 후나 식사 때마다 손발을 씻고 부정한 짐승들은 먹지 않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안식일에 여행도 하지 않고 짐도 지지 않고 새벽부터 밤까지 율법 가게에서 장사를 하였지만 남는 것은 없고 늘 손해만 볼 뿐이었으나, 그것을 숨기고 오늘도 의를 많이 남겼다고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화 있을 외식자들'(마23:13)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솔직했던 베드로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행15:10)라고 율법 장사에서 손해만 있을 뿐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장사하는, 인간의 행위를 팔고 사는 시장들과 백화점들 할인점등이 여러 곳에 널려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시킨 어떤 종교, 철학에서도 결코 천국의 의로움을 얻거나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초청자를 죽이고 능멸하였으니 과거 아벨부터 바가랴의 아들 스가랴의 피(마23:35), 스데반, 야고보, 그리고 8,000여만 명의 로마 카톨릭의 박해를 받은 순교자들, 모두가 거저 받은 구원, 은혜로, 빈손으로 천국에 오라고 초청자의 삶을 살다가 학살을 당하고 핍박을 받았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뿐만 아니라, 참으로 결박과 감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유혹을 당하고 검으로 살해당하기도 하였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입은 채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11:36-37)

초청받은 악한 자와 천한 자들

"자기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식은 준비되었으나 초대받은 자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큰 길(highways)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혼인식에 청해 오라, 하였더니 그 종들이 큰 길로 나가서 나쁜 자든 선한 자든 만나는 대로 다 불러 모으니 그 혼인식에 손님들이 가득하니라."(마22:8-10)

"이에 왕이 그 말을 듣고 격노(激怒)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성읍을 불살라 버리고"(마22:7) 이 말씀은 서기 70년 4-8월 사이에 로마의 '타이터스'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들이 불타죽고 노예로 팔려가고 예루살렘이 불타버린 사건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그때 그들은 "전에 초대받았던 그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내 만찬을 맛보지 못하리라"(눅14:24)는 말씀대로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거리, 즉 영혼의 대로들은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그 곳은 넓은 하이웨이들 즉 대로들이였다. 넓고 큰 길, 사람들이 많은 그 길은 멸망의 길이였다. 그들은 분명히 길을 가고 있었지만 아직 장사할 곳도 일할 밭도 없는 방랑자들이었다. 어느 길이 진리이며 생명이며 구원인지를 모르는 자들이었고 그저 사람들이 가는 곳이면 진리와 해답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에 어떤 해답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넓은 길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마7:13). 왜냐하면 그 길은 사람들이 개척한 길 즉 종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던 것이다. 다행히 그들은 그 넓은 길을 가면서도 회의와 불안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돈 없이 값없이 풍성한 은혜가 준비된 혼인 잔치에 초대받고 이의 없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도 길이 좁다고 찾는 이가 적다하여 신학자들과 로마 카톨릭의 누룩에 취한 자들이 성경에다가 바벨론의 유전, 카톨릭의 유전, 그리고 철학, 사람의 계명을 추가하여 넓은 길로 확장해 두고 포장까지 하여 예수님을 사대성자의 대열에 나란히 끼워두고 모든 종교의 계급 중 기독교도 한 분야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용은 가인의 종교인데 옷만 기독교의 옷을 입혀 생명 없고 알맹이 없는 도금한 신앙으로 위로삼고 속아 지옥가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사실이다.

초청자들이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 데려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크게 위로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잔치가 준비될 때 "나의 소"(예수님)를 잡아 피를 흘렸기에 그 악하고 선한 자들의 죄들이 모두 사해져버렸던 것이다. 만찬 자체가 심판이 끝난 증거이다.

그렇기에 자칭 의인들은 더 나쁜 죄인들이지만 초청에는 선하고 악하고 구별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과 사람들의 도덕 윤리 기준으로 볼 때에는 선하고 악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도 악한 자는 없어져 버렸다. 이미 세상 죄는 짊어져졌고 세상은 하나님과 화목되었으며 이제 예수님이 피 흘려 속죄하신 이후부터 지옥 가는 영혼은 결코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을 듣지 못해 믿음이 없어 지옥 갈 뿐이다. 구원 초청에는 돈도 경력도 직분도 혈연, 지연, 학연, 성격, 이력, 선하고 악하고 남녀노소 인종차별도 없는 그저 아무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열려있는 문이기에 복된 것이다. 여기에 악한 자에게도 선한 자에게도 모두 열려있는 구원의 잔치, 그 잔치를 저버리는 그 영혼이 악한 자일 뿐이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만 죄인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어 세상을 자신에게 화해하게 하시므로, 세상의 허물을 그들(세상)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예수님께 돌리시고), 우리에게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맡기셨느니라."(고후5:19)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니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도다, 한 것이니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로다."(딤전 1:15)

예복을 입은 자들과 입지 않은 자들

"왕이 그 손님들을 보러 들어와서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아니한 한 사람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친구여, 그대는 어찌하여 혼인 예복도 입지 아니하고 여기에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니라. 이에 왕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그의 손발을 묶어 데리고 나가 바깥 어둠 속에 내어 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는 부름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적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마22:11-14)

이스라엘 민족들의 결혼 풍습 중에는 초청자가 하객들을 초청할 때는 반드시 예복을 입고 올 수 있게 하려고 먼저 예복을 보내주는 풍습이 있다. 그러므로 초청자들이 들이나 길에서 잔치에 초청할 때는 먼저 예복을 나누어 주면서 초청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먼저 초청하였으나 그들이 거절하였기에 길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초청케 하여 악한 자, 선한 자 모두 초청하여 잔치 자리에 하객, 손님들이 가득하였다.
드디어 잔치를 열기 위해 임금되시는 주 예수님께서 잔치 자리에 와서 보니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앉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평상시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앉아 있었기에 그 이유를 물었으나 대답이 없자 즉시 밖에 묶어 슬픈 운명의 지옥에 던져버리게 하셨다.

여기서 왜 임금은 잔치에 참여하고 않고의 자유를 허락치 않으셨으며 예복을 입지 않는 자는 왜 지옥에 던져 버렸을까? 그것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자유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구원을 받고 받지 않고 자유는 있으나 받지 않은 자의 심판을 거절할 자유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예복은 무엇인가? 최초에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으로 앞치마(apron)를 만들어 입었으나 그것들이 그 양심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가리워 줄 수는 없었기에 입었지만 벗었다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였던 것이다(창3:10). 그 짠 것으로는 자기 행위를 가리울 수 없고(사59:6) 우리들의 행위는 말라가는 잎사귀 같기에(사64:6)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끝내시고 죄 없다는 증거로 최초에 가죽옷(창3:21)을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 입히셨다. 한 마리의 죄 없는 어린 양이 죽어 남긴 가죽옷, 누구 때문에 죽었는가? 아담의 죄를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표상이었다.

그날 후로 예수님은 죄인들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워 주는 구원의 옷(사61:10) 그리고 여호수아의 새 옷(슥3:1-5), 탕자에게 입혀진 제일 좋은 옷(눅15:21), 그리고 흰 옷(계3:18)이며 흰 세마포(계19:8)로 예수님이 오셨던 것이다.

여기서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유구무언' 즉 입이 있으되 말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예복이 없었느냐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분명히 예복은 보내주었는데 입지 않고 왔을 뿐이다. 무슨 이유였을까?

독자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임금되시는 주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아 들어온 사람들의 신분이나 직업 그들의 행위 죄의 많고 적음, 악한 자, 선한 자를 구분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악한 자들을 보시고도 여기에 왔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천국은 악한 자들 즉 자신의 죄의 중함을 알고 있는 자칭 악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의로우신 분으로써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희생하셨기 때문에(벧전3:18) 천국은 자신이야 말로 더러운 죄인이요 악한 자라고 생각하는 영혼들의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이 예복을 입었느냐 입지 않았느냐 였다.

의복은 첫째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는 것이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계3:18)
" 보라 내가 한 도적같이 오리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은 채로 다니지 아니하여, 사람들에게 자기의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노아는 술에 취하여 하체를 벌거벗고 자면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었으나, 어느 날 둘째 아들 함의 고자질에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노아의 의복을 어깨에 메고 아버지의 하체를 가리워 준 사실이 있다(창9:23). 아담은 무화과 잎으로 죄를 가리울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제조하신 피 흘림이 있는 가죽옷으로 부끄러움을 가리울 수 있었고 이것이 최초의 복음이 되었다.

죄의식이 없는 유아들은 벌거벗고도 재롱을 떤다. 왜냐하면 양심에 선악의 개념이 없기에 부끄러움이 없고 천진난만함만 있어 하나님 앞에 그 양심들은 깨끗하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하고 천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이 있다.

오늘 죄인들의 의복은 누구인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롬13:14)
"이는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요, 너희 중에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이라."(갈3:26-2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부활하신 그분에게서는 어떤 점도, 흠도, 죄도 찾을 수가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사라져버린 아사셀 염소는 찾을 수가 없다(레14:7).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성경에서 깨달은 속죄의 복음을 말씀으로 진리로 양심을 덮은 자는 진실로 예복을 입은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성령님에 의해 주신 영혼의 예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의복은 그 신분을 나타낸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聖徒)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고전 1:2)이라는 말씀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예수님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 속에 본성은 야곱의 목소리이지만 목과 손목에 꾸며진 털 때문에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의 죄성은 그대로 있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천국의 복을 받은 것이다(창27:22-23). 그리고 한 번 입은 예복은 다시 더러워지지 않고, 헐지 않고, 세탁할 필요가 없다(신8:4). 곧 예수님은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시며, 헤어지지 않는 분이시며, 영원하시기에 예수님이 영원하시면 우리의 예복이 영원하고, 예수님이 깨끗하시기에, 그 옷을 입은 우리도 영원히 깨끗할 뿐이다. 우리들의 기쁨과 슬픔은 행위, 믿음, 느낌에 의해 변할지언정 우리들의 신분은 영원할 뿐이다.

끝으로 예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예복을 받았고 초청을 받아 잔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옷을 더 신뢰했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손님들은 예복에 가리워져 예복만 보일 뿐 자신들은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을 옷으로 입은 성도들은 예수님만 보일 뿐 그 어떤 사람들의 의로움도 죄악들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는 사람들의 자칭 의로움은 사라지고 죄악들도 덮어지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의인, 그것이 자기 옷으로 치장하고 잔치에 앉아있는 자들, 결국 손발이 묶여 어둡고 슬픈 곳에 던져져 그곳에서 이를 갈게 될 뿐이다.

예루살렘 오순절에는 예복을 입은 삼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열두 제자 중에도 유다 한 사람만 자기 옷을 입은 자였다. 모두들 예복을 입었기에 예복을 입지 않는 자는 금방 분별되었고 스스로 어울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혼인 잔치 집이라는 교회당들에 임금되시는 예수님이 찾아 오셨더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모두들 악한 자, 선한 자들은 있는데, 수명에서 수십만 수백만 손님들이 초청되어 왔는데 예복을 입은 자는 극히 드물고 예복을 입지 않는 자들이 군중을 이루고 있어 그들이 손님들이고 예복을 입은 자들이 '이단아'처럼 여겨지는 시대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초청자들까지도 예복을 보거나, 들어보거나, 입어본 사실도, 가지고 간 사실도 없으니, 예복을 입은 자들이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예수님은 예복을 입은 자들 모임에서 입지 않는 자들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마13:49) 용광로불에 던져버리실 것이며, 예복을 입지 않는 자들 중에 있는 예복을 입은 자를 보시면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계18:4)고 분리시켜 주님의 양무리에 이끄실 것이다.

이 세상의 비극적이고 슬픈 사실이 하나있는 것은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벌거벗은 사실을 모르기에 예복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데 있다. 오늘 진실로 영혼의 수치를 경험하고 성경의 복음으로 죄를 가리운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구원의 예복을 입은 자들이며 불원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들임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리기 바란다.

"그녀가 자기 가족을 위하여 눈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그녀의 모든 가족이 주홍색(朱紅色) 옷을 입었음이라."(잠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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