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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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심판 : 지옥의 다섯 가지 고통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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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심판 : 지옥의 다섯 가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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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무엇인가를 아주 명료하게 이해하기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죄에대한 영원한 심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이며,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파멸로 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옥에 관한 설교는 거의 듣기가 어렵지만, 죄사함을 받지 못한 모든 죄인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형벌의 처소에 관하여 당신과 몇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라. 지옥이 어떤 곳인지 예수님께서 사실적으로 묘사해주신다. 나는 이 성경구절에서 지옥의 일곱 가지 고통을 볼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다섯 가지에 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죄사함받지 못한 죄인이 영원을 보내게 될 곳에 관해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어떤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호화롭게 지내는데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가 있어 헌데 투성이인채로 그 부자의 문전에 누워서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더니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핧더라 그 일 후에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에의해 아브라함의 품 안으로 옮겨졌고 그 부자도 죽었으며 장사되었더니 그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 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가 울부짖어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시원하게 하소서 이는 내가 지금 이 불꽃 중에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니이다 하나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네 생전에 선한 것들을 받았고 이와같이 나사로는 악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있고 너는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이 모든 것 이외에도 우리와 너 사이에는 크고 깊은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너희가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 하니”(눅16:19-26) 

엄습하는 두려움의 고통 

지옥의 고통들에 관하여 묵상해보자. 무엇보다도, 내가 “엄습하는 두려움”이라고 정의내린 고통에 당신이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성경은, 그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멀리 보았다, 고 말씀하신다. 

죽음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죽음을 맞은 직후 당신은 눈을 들어, 당신이 지옥의 구덩이 속에 있음을 본다. 성경은 요한일서 4:18에 말씀하신다,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 당신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지옥에서 자기의 눈을 떠서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를 보았을 때 그의 심령에서 폭발하듯이 피어오르는 그 두려움? 히브리서의 기자는 말한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히10:31)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죄인들이 죽음 너머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것에 관하여 종종 증거해준다. 이 생에 한 발을 디디고 한 발은 영원에 디딘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라: 

리치(M. F. Rich), 유명한 무신론자인 그가 죽어가면서 말했다, “내 영혼을 위협하는 영원한 공포심을 가지고 영원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백만년동안 스토브 위에 누워서 끓는 편이 낫겠다. 나는 내 불멸(不滅)의 영혼을 주고 금을 샀으나, 이제 그 금의 무게가 나를 영원이 희망이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지옥으로 나를 가라앉히고 있다.” 

프란시스 뉴포트 경, 영국 이교도 클럽의 회장은 임종시 침대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은 내게 하나님이 결코 안계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진노하신 그분의 임재 앞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게 지옥이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이미 내 영혼이 그 불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내가 느끼기 때문이다.” 

오, 지옥으로 가는 자들의 고통이여! 죽은 다음 눈을 들어 자신이 지옥에 있음을 발견한 모든 남자, 여자들의 심령에 엄습할 두려움의 폭발이여!! 

꺼지지 않는 불의 고통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가 울부짖어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시원하게 하소서 이는 내가 지금 이 불꽃 중에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성경에서 지옥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지옥에 있는 불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서 21차례 예수님께서 지옥의 불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3장에서 그분은 그것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말씀하셨다(눅3:17) 마태복음 5장에서 그분은 그것을 “지옥불”(마5:22)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장에서 그분은 그것을 “영영한 불”(마18:8)이라 칭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사실적으로 “용광로불”(마13:42)이라고 묘사하셨다. 지옥이 불 타는 곳임을 숙지하라. 

지옥불에 관한 교리는 최근들어 커다란 반대에 직면해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더욱더 지옥에 불이 없다고 나를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의 육신이 어떻게 지옥에 남아있을 수 있고 영원히 불에 탈 수 있는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들을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묻고 싶다: 당신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용광로 불속에서 걸어다녔고 그들의 육신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지혜가 부족하다 생각하는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셔서 그들의 육신을 영영히 태우고 고통받게 하시되, 그들의 육신들이 결코 불에 소멸되지 않게 하실만한 지혜가 하나님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오직 육신만 지옥에 가고 영혼은 무효화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쟁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그분을 두려워하라”(마10:28)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부인하셨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의 고통이 있다. 

양심을 쥐어뜯는 고통 

아브라함이 말했다, ‘아들아 너의 생애를... 기억하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그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 그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그곳 즉 지옥까지 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로 그의 일생에 지은 죄에대한 기억이다. 

그 부자는 지금도 여전히 지옥에 있고, 그는 그의 일생동안 지은 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는 그의 구원을 위해 그의 어머니께서 기도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는 구원받을 수 있었으나 잃었던 기회들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는 여러 차례 그가 나사로를 지나쳤던 것을 기억하고 그가 나사로를 경멸하며 쳐다보았던 것과 자신이 나사로를 돕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부를 축적한 이후에 하나님을 항하여 품었던 자신의 배은망덕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는 그가 어겼던 불법들을 기억한다. 또는 아마도 그는 자기의 초호화판 사치와 향락을 기억한다. 

여러분에게 묻고싶다: 당신의 기억에는 무엇이 있는가? 당신의 일생으로부터 축적된 당신의 기억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속에 무엇이 쌓여있는가?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고자 하는가? 당신이 알 것은 기억과 양심은 지옥에 함께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도처에는 교도소 감방이나 감화소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곳에 앉아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를 들고 그들이 그것을 가느다랗게 찢는다. 그들은 그 찧겨진 종이들을 한데 묶고 그들은 그 종이의 한 끝을 그 감방 위의 어딘가에 묶은 후 침대 위로 올라가서 그 종이의 다른 끝을 자기들의 목에 묶는다. 그후 그들은 뛰어내려 그들이 스스로를 교수형시킨다. 간수가 아침에 와서 한 죄수가 그의 감방에서 목매어 죽은 것은 목격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당신은 왜, 수차례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그 죄의 기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은 30에 주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이스가룟 유다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양심이 너무나 괴로웠던 나머지, 그는 그 은 30을 가지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그 은 30을 그들의 발치에 던졌다. 그들은 말했다, 
“이에 수제사장들이 그 은전을 거두며 말하기를 이것은 피의 값이라 성전고 안에 넣어두는 것이 합당하지 않도다”(마27:6) 

이스가룟 유다의 기억과 그의 양심이 그를 파멸시켰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가 은전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았더라” 아마도 그는 그 성전을 떠나서 그는 자기의 기억을 없애려 노력하며 달리고 달리고 달렸을 것이다. 자기의 양심을 가책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배반하였다는 그 기억말이다. 아마도 그는 한 나무를 발견하고 줄을 매고 그 나무에 한 끝을 묶고 그 나무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는 그 줄의 다른 끝은 자신의 목에 걸고 스스로 목을 매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를 비난하는 자기 양심을 가지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행위는 자기 양심으로부터 도피수단이였지만 지옥에서는 결코 양심으로부터 도피할 수가 없다. 

당신의 양심과 당신의 기억이 당신을 송사할 것이다. 당신의 기억 속에 무엇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형제를 속이고 기만하였는가?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구타하였는가? 당신은 세금을 탈세하였는가? 당신은 거짓을 말하였는가? 당신은 수군수군하였는가? 당신의 양심은 조용한가 아니면 당신의 양심이 당신에게 울부짖고 있는가? 

마가복음 9장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지옥에 관하여 말씀하시는데, 여기에 여러분과 함께 살펴볼 아주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다: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아니하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그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아니하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그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쪽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그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3-48) 

나는 당신이 이 구절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인지하기를 원한다. 성경은 그 구더기(the worm-단수가 아니다)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실제로 그들의 구더기(their worm)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가? 지옥에서 결코 죽지 않는 그들의 이 벌레는 무엇인가? 만일 당신이 헬라어 신약성경의 이 구절을 읽는다면, “그들 자신의 그 벌레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믿기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벌레는 우리의 기억이고 이 벌레는 우리의 양심이다. 

본문의 부자와 같이, 잃어버린 자가 죽어서 지옥에 갔을 때, 그는 자기의 기억과 자기의 양심을 가지고 지옥으로 간다. 지옥은 그들이 일생을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곳이며, 그 기억의 벌레는 결코 죽지 않는다. 

죠지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수년전에 버스를 몰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학교로부터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기위해서 버스길을 운전중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철로를 지나게 되어, 철길로 다가갔다. 그가 왼쪽을 쳐다보니 거기에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오른쪽을 보고, 기차가 철로를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았으나, 기차가 얼마나 빨리 오는지 속도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그 날 버스에 있던 한 어린 소년이 후에 그 버스 운전사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 생각에 충분히 지나갈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철로 위로 들어섰고, 그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불행하게도 그 버스는 철로 가운데서 멎어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이 운전수가 미친듯이 그 버스를 출발시키려고 노력할 때, 그 기관차는 무서운 속도로 그들에게 질주해왔다. 기관차는 수백톤의 힘으로 그 버스에 부딪쳤고, 그 버스는 완전히 부서졌다. 그 차체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사건은 그 작은 마을이 겪은 가장 처참한 비극이었다. 그날 버스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중 대부분이 죽었다. 그들중 대부분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날 일어났던 또 다른 비극들중 하나는 그 버스 운전사는 살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유령처럼 그 작은 도시의 거리들을 쏘다 니기 때문이다. 유령처럼.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그 어린이들을 태우고 버스길을 가던 그 무서운 날, 그 철길 위에서 버스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영원으로 보냈던 그 날의 기억을 가지고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 당신은 영원히, 영원히 당신의 기억을 가지고 살 수 있겠는가? 

이제 만일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님께 비참한 죄인임을 고백하라고 당신에게 애원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만일 내가 제발 그렇게 하라고 당신에게 간청하고 간청하는 한 가지 이유를 들라면, 그것은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 생애를... 기억하라...’ 당신은 지옥에서 당신의 일생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도피처가 없는 고통 

아브라함이 말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네 생전에 선한 것들을 받았고 이와같이 나사로는 악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있고 너는 고통을 받고 있느니라 이 모든 것 이외에도 우리와 너 사이에는 크고 깊은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너희가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 하니” 

당신은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는가? 그 부자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거대한 천국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과 천국을 갈라놓는 한 거대한 구렁을 보았다. 그는 마음에 지옥으로부터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말했다, ‘아들아 우리와 너 사이에는 크고 깊은 구렁이 놓여있어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너희가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 나는 그 구절에서 도피처가 없는 고통을 느낀다. 

성경에의하면, 지옥은 모든 문이 닫혀있는 곳이며, 모든 정문이 봉인된 곳이며, 모든 창문이 닫혀진 곳이다. 친구여, 지옥에는 결코 비상구 간판이 없다. 그곳은 전혀 도피할 가능성이 없는 곳이다. 지옥에는 빛이 없는 어둠뿐이며 ‘기회’란 단어가 없는 곳이다. 

샌 프란시스코 만에서 샌 프란시스코 서쪽으로 약 3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바다로 향해있는 한 바위가 있다. 그것은 알카트래스라고 불린다.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 정부가 한 연방 교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그 감옥을 “달아날 수 없는 감옥”이라고 별칭했다. 

알카트래즈 감옥: 그 벽은 난공불락이다. 20혹은 30 피트 높이의 가시가 있는 철선이 그 감옥을 둘러싸고 있다. 탑 사방에는 총을 든 간수들이 지키고 있다. 당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섬 주변으로 사방이 소용돌이치는 파도들뿐인 태평양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뛰어내린 후에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샌프란시스코까지 51도 물속에서 3마일을 수영하여 도달하는 것뿐이다. 실화에 가깝게 들리는, 그곳에 관한 이야기나 전설이나 영화가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에 관하여 직접 말해줄 수 있도록 도망쳐서 살아나온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라.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감옥을 생각해보라. 그 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한 감옥을 만드실 수 있음을 생각해보라. 성경에 따르면, 여기 이 부자는 밖을 보았고 도망갈 가능성이 없었다. 

벗이여, 귀를 기울이라. 어떤 사람도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한 곳으로 당신이 뛰어들기전에 먼저 주위를 둘러보지 않겠는가? 그곳은 사람이 한 번가면 결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은 그곳에 관하여 생각해보라. 

고통 속에 끝없는 영원을 보내는 고통 

예수님께서는 종종 지옥의 영원성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5:46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들은 영원한 형벌 속으로 들어갈 것이나 그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8에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영영한 불”이라고 명명하셨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영원히 지속되는 영영한 천국을 믿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영원히 지속되는 영영한 지옥도 믿어야 한다. 

영원토록 갈증을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영원에대한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의 심령들은 종종 영원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꺼리지만 그러나 당신은 반드시 영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뉴욕의 롱 아일랜드로부터 이륙하는 한 제트기로 잠시 돌아가보자. 그것은 TWA 제트기였다. 그것이 이륙하여, 12,000피트 상공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륙한 지, 약 8 내지 10분 후, 갑자기, 어떤 경고음도 없이, 제트기가 대기 속에서 폭발하였고 약 200명이 폭발로 사망하였다. 그들은 바다 속으로 빠졌다. 

그것에 관하여 생각해볼 때, 나는 그 비행기 속에서 그 밤에 아마도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어머니들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아마도 자기들의 자녀들과 꼭 껴안고 있었던 어머니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실감나게 생각해본다. 그곳에는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들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자기들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에 관하여 읽고 있던 아버지들도 있었을 것이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들도 그 비행기상에 있었을 것이며 그들은 아마도 각자 남자 친구나 혹은 여자친구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경고없이, 다음 2초후에, 그들은 영원 속에 서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망의 화살들이 보이지 않게 날아가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단지 너무나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을 데려갈지 아닐지 누가 알겠는가? 영원을 생각하라. 

불신자 마라보가 침대에서 누워 죽어가고 있다. 그가 그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내가 영원을 생각하지 않도록 아편을 좀 더 주세요.” 

영원에 관하여 신중하게 생각하라: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그 부자는 지금까지 2000년이상 동안 그곳에 있었다. 그는 심지어 영원 속에서 이제 막 고통받기 시작한 셈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지옥에서의 영원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진노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심과 진노하심을 겪는 것이 끔찍한 일인데, 당신은 그것을 영원토록 겪어야만 한다. 이 격렬하고 무서운 공포에 결코 끝은 없다. 당신이 앞을 볼 때 당신은 영원을 보게될 것이다- 당신 앞에 있는 경계가 없는 무기한의 영원, 그것이 당신의 생각들을 먹어치울 것이고 당신의 영혼을 놀라게할 것이며, 당신은 절대적으로 다른 어떠한 해방구 없이, 아무런 끝도 없이, 고통의 아무런 경감없이, 아무런 쉼없이 절망할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오랜 동안, 시간의 개념이 없는 영원을 견디며 보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것이다 - 수백만년의 수백만년동안. 이 전능하신 분의 자비없는 공의와의 씨름과 분쟁에서, 당신이 그렇게 견디고있을 때, 수많은 날들을 실제적으로 당신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보냈을 때, 당신은 지옥에서의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남아있는 것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고, 따라서 지옥에서 당신의 형벌은 실질적으로 무한할 것이다.” 우리가 지옥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바 모든 것은 지옥에관한 아주 약간의 제시에 불과하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누가 주님의 분노의 권능을 아나이까 주님의 두려우심은 주님의 진노와 같나이다”(시90:11) 

영원을 생각해보라.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만일 당신이 잃어버린 자이고 당신이 결코 거듭 나지 않았다면, 영원한 형벌을 생각해보라: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한 지옥불의 형벌을 그리고 영원한 양심의 찔림을. 

우리들 모두는 죄인이다.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제 갈 길로 갔다. 당신과 나는 영원한 형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우리 각자가 죄를 사함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벌에 처해져야 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죄중에 오늘밤 죽는다면, 내가 방금 당신에게 부자에관하여 이야기해준 그 이야기가 당신의 집에서 영원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 구절을 거듭해서 읽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말할 것이다, “나는 결코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만일 당신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영원을 보내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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