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에대한질문과답변(3)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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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주이시며 피흘림으로 인하여 세상 모든사람들의 죄들을 단 한번에 용서해 주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이후로 범한 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범죄하고 자복만하면 되는가요? 자복으로 그때 그때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것인가요?  하나님의 징계는 무엇인가요? 징계는 심판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인가요? 자세한 해답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변 ; 예, 오늘날 처음 복음을 들을때는 은혜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가도 .세월이 흘러 그 기쁨도 사라지고 다시 육신의 뿌리가 돋아나서 죄를 범하고 첫사랑의 기쁨을 상실한 것 같이 보이는 성도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면서 죄를 범해서는 아니됩니다. 하지만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육신의 본성이 남아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죄를 전혀 안짓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과 육신의 본성과의 치열한 투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충만한 생활이 필요한것입니다.  또 한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행위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전혀 범하지 아니하고 살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동시에 한번 구원을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도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한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기존의 죄성이 있는 육신의 본성에 하나님의 성령님이 내주하시게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이시며 예수님의 인격이신 성령님은 절대로 죄를 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분(요16:8-9)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충만할때에는 죄를 범하지 않고 살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성령님)가 그 사람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요, 그가 죄를 지을수 없음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라."(요일3:9)

여기서 구원을 받은 성도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속에 계신 "하나님의씨"인 성령님께서는 죄를 지을수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억제하거나(살전5:19) 성령님을 슬퍼하게 할때는(엡4:30) 죄를 범할수가 있게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상 이방인들과 다른 점은 구원받기 전에는 죄를 즐기고 죄를 쫒아다녔지만 구원 이후에는 거룩한 생활을 즐기고 성령님을 따라 살고자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그리스도인들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눌때는 죄를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특히 순교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운명할수가 있었습니다.(행7:54-60) 반면 고린도교회성도들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요, 육신에 속하여 (고전3:3) 파당, 음행, 무질서, 세상법정에 고소행위,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고, 신비주의 잡소리 방언을 하는등 실로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문제 투성이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았지만 육신에 속한 자들이였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중에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자가 아니겠느냐?"(고전3:3) 초대교회중에서 교회마다 약간의 육신적인 문제들이 있었지만 고린도교회처럼 문제 투성이인 교회는 드물었습니다. 사람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들이 고린도교회에는 존재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기 아비의 아내까지 범하는 음란한 죄도 있었습니다(고전5:1) 물론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육신적이고 자라지못하여 타락한 교회였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교회였으며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성도라 불리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였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자들과...."(고전1:2)

그렇다고 해서 죄를 범하는 일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성도들이 죄를 범하고 자복하여 돌이키지 아니하면(생활속에서의 회개) 어느날 가혹하게 징계를 내리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불순종의 생활을 하면서 양심과 말씀과 성령님의 권고를 들으면서도 습관적인 죄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가혹하신 사랑의 징계를 받고 나서야 늦게나마 회개하고 돌아서게 됩니다. 이때 성도가 죄를 범하면 육신과 혼에 즐거움이 있을지라도 양심과 성령님에게는 슬픔과 괴로움이 계속되는것입니다. 즉 불신자가 범죄하면 즐겁고 통쾌할지 모르지만 성도가 범죄하면 양심과 성령님이 고통스러워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성경 어디서든지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할수 있는한 구원받고 침례로 죽었음을 시인하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한다고 강조하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예수님께서는 은혜를 받고 거듭난 성도들이 더이상 죄가운데서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보라, 네가 온전하게 되었으니 더 심한 일이 네게 일어나지 않도록 더이상 죄를 짓지말라."(요5:14)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라,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하시니라."(요8:11)
신약성경 전체의 흐름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죄를 짓고 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 하리요?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금하시느니라.(롬6:1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신과 영의 온갖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신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성령님을 따라 살라 하였고(갈5:24-25) 속임으로 가득한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사람을 벗어버리라.(엡:22) 어둠의 일들을 책망하라 했고 음행 우상숭배 더러운것들 색욕 탐심등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가르쳤으며(골3:5) 사도요한 역시 죄를 범하는자들마다 유황불 호수에 참여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계21:8) 지금까지 모든 말씀들중에 성도들은 죄를 범하지 말라는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명령안에는 성도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성과 본성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루종일 분노를 품지말라 했으나 그 자신은 바나바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 서로 갈라선 사실도 있었으니" 그리하여 두사람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있어 서로 갈라져 떠나니..."(행15:39) 란 말씀도 있고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변호인이 계시니, 곧 의로우신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2,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했을 때 즉 말씀과 성령님에 의해 죄의 자각을 하게 되면 곧바로 주님앞에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죄가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는것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아버지와 교제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인 성령충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을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대적 환경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노아시대보다 더 험하고 소돔 고모라보다 더악한 세상이라  눈감으면 코베가는세상이 아니라 성령으로 눈 뜨고도 죄짓게하는 세상입니다. 시궁창길을 걸을 때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옷깃에 진흙이 튀는 것 같이 정말로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하면 죄를 떠나서 살기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한 성도가 어떤 죄를 범했을 때 즉시 그죄를 자각하여 주님앞에 자복하는 일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난후에 자각하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의 명령들 가운데 하나라도 거역하여 행한 범죄로 죄가 있다가 (시간이 지난후라도) 만일 그가 범죄한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거든 ..."(레4:22-23)  죄를 범하는데 성격차원의 본성적인 죄도 있고 욕망의 발로 때문에 의지적으로 알고 지은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죄들이 즉시로 자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또는 기도할 때에, 교제할 때에 자신의 양심과 말씀 성령님의 역사로 죄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때에 죄를 자복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자유의지 결정으로 자기 책임하에 불순종하여 범죄하였다고 하나님앞에 시인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연약해서 그랬다느니, 세상이 다 그렇지 않느냐?라든지 사탄이 그렇게 했다느니, 또는 어쩔수 없이 죄를 범했다는 마음등은 결코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핑계일뿐으로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복이란, 자신이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고 슬프고 아픈마음과 다시는 죽을 지라도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자세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다른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다면 할수 있는한 원상회복이나 보상이 필요하고 그 죄가 상대적이라면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죄들을 그렇게 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양심과 말씀앞에 최선을 다할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자들에게 가까이 하시고 통회하는 영을 가진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죄를 자복할 때에 그 자범죄가 용서를 받는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모든 죄들은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히9:22)는 말씀은 구원받은 이후에도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자복은 죄용서의 조건이 될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죄"자가 붙은 것은 무엇이든지 용서란 있을수가 없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자복이란 이미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미래에 범할죄를 용서받았고 구원이후의 죄를 자복함으로 교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죄를지엇을때는 그것을 형벌받을 죄로는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모든생애의 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속에 용서가 완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라지못한 어린아이의 미숙함으로 보시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고의적일때는 교훈차원에서 회초리가 필요한죄로보시는것입니다.  일단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고 양심에 걸리기되면 그죄가 작은것이고
하나님앞에 머리카락만한 죄라도 있으면 교제는 단절되고 평안의 기쁨이나 구원의 기쁨은 잠시 사라집니다. 다윗왕이 밧세바의 아내를 범하고 양심이 괴로울 때에 성령님으로기도하며 그죄를 용서해다라는 기도는하지않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님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시51:12)

아버지와 아들의 신분은 변함이 없지만 죄를 범하므로 교제가 단절됩니다. 교제의 단절이란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는것이 아니라 내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등을 돌리시기 때문에(억제당하시고 슬퍼하심) 어떤면에서는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신다는말씀도 될수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회개하고 자복하면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되었기 때문에 교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교제의 회복까지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피)때문이지 결코 그 자복행위가 공로가 될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기전에 자복하기 전에 피를 흘리셔서 먼저 죄를 용서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도 예수님의 피로, 교제의 회복 역시 예수님의 피 때문에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자복은 단지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되돌아가는 메개체에 불과합니다. 그역사는 말씀과 성령님께서 양심에게 깨닫게하심으로 시인하게되고 아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구원받을 때의 그믿음으로 원상 회복시켜주십니다.

구약에는 성막의 뜰에 성막입구에 제단과 회막문입구 사이에 있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희생물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지만  그 상태로는 성막에 들어 갈수가 없고  중간에 놓여있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피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용서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손에 발에 씻어야 할 더러움은 바로 죄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용서받을 죄가 아니라 씻음받을 죄로서 생활의 변화 그리고 성도로서 자라가는 교육을 의미합니다. 물두멍이 놋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미 용서가 되었고 이미 심판이 완료된 것을 의미하고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으로 구원을 받고 신구약 말씀으로 날마다 생활속의 죄들을 자복하고 씻음 받으며 경건한 성령님의 학교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며 자라가고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곳에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을 것임이라."(출30:21) 제사장들은 율법에서도 전신목욕은 단 한번만합니다. 임명식 때 한번 목욕을 받고 성막에서 섬기러 들어갈때나 나올때마다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물로 씻기고..."(레8:6) 이 의식은 제사장 임명식때에 하번만 하지만 손발씻는 것은 섬길때마다 해야 합니다. 임명식때의 목욕을 받는것은 구원의 그림자이고 손발을 씻는것은 자복과 성화의 그립자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때에 그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겨 가실때에 베드로는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지만 만일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주님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시니 베드로는 손과 머리까지 씻어달라고 요구하였고 주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을 받은자는 (구원을 받은자) 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나니 온몸이 깨끗하니라..."(요13:10)

이미 구원을 받은자는 죄있을 때마다 자복만 해야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대야에 주님께서 준비하신 물, 주님이 원하셔서 씻어주신것 은  주님께서 신약성경을 주셨고 주님께서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변호사로 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일은 무엇인가요? 오직하나 그것은 더러운 죄가 있다고 시인하고 주님앞에 마음의 손발을 겸손히 내어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갈때 까지 성령님의 교육차원에서 배워가는것입니다. 또는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인격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매를 맞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듯  성도들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기를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수 있나니, 이는 주님께서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히7:25) 

3, 성도들이 죄를 스스로 자복하여 버리지 아니하고 지속적인 불순종은 하나님의 징계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그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일 뿐 결코 죄의 심판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는 만찬을 먹을 때에도 파당을 만들어 한몸된 주님의 교회를 분리시킨 죄들이 있었습니다. 5장에는 아비의 아내와 관계를 갖은 사람에게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징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5:1-5) 그러한 영혼은 몸은 사단에게 내어 주어 멸하게 하시고 그 영혼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날에 구원(부활)을 받게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11장에서는 파당을 만든자들을 징계하셨는데 연약하고 병들고 잠자는자(죽는징계)도 적지않다고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너희중에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잠자는자(죽음을당한자)도 많도다."(고전11:30) 그러나 징계는 모든죄마다 즉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범하고 어느날 성령님의 강한 죄책이 따르고 말씀이 양심을 찌르고 심령에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이 들려 올때에 (기억날 때에) 자유의지를 결정해서 죄를 버리고, 자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징계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공공연하게 막는다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심하게 박해한다든지 아니면 모든교회의 모델로 보이시려고 하실때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구약에는 나답과 아비후마냥 즉각적인 징계도 있습니다.  징계는 즉시 오기도하고 오랜 교훈후에 오기도 합니다. 또한 레위기에서 문둥병과 생리적인 대머리는 분리하게 하심같이(레13:40-41) 구원을 받고 자라지못하여 생리적인 것이나 연약하여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즉각적으로 징계가 오지 않습니다. 한 예로 성질은 고약하나 마음은 그렇지 않는상태를 말할 수 있습니다.구약에는 이스라엘과 제사장의 일벌백계로 나답과 아비후를 성막안에서라도 즉사하게 하셨는데 이는 전 제사장들에게 교훈차원에서 징계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인 아비후가 각자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 그안에 불을 담고 그위에 향을 피워, 주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시지 아니한 다른불을 주님앞에 드렸더니 주님으로부터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주님앞에서 죽으니라."(레10:1-2)

그들은 분명히 제사장 임명을 받을 때에 모세로부터 구원의 그림자인 전신 목욕을 받았으며 (레8:6) 오른쪽 귀와 오른쪽 손가락 그리고 오른쪽 발가락에 피와 기름까지 뿌림받은 제사장들이였습니다.(레8:24. 30)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성막에서 그것도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피운 불이 아니라 사람이 피운 다 른불로 섬기다가 즉사했던 것입니다. 그 성막은 오늘날 주님의 거룩한 교회의 그림자였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첫번쩨 징계였습니다.여기서 징계는 단지 징계일뿐  죄에 대한 심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 채찍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보시는 그날 이세상과 이미 화해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심판받을 죄는 하나님의 눈앞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에서는  거룩한 교회를 보호 하시려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일이 있을까요?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는 앞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를 믿는고로 또 구원받은 감사로 자기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앞에 드렸고 사도들은 그것을 가난한 성도들에게 분배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당시는 구원을 받으면 나사렛 이단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유대율법을 따르는 가족들로부터 추방을 당하는 시기라서 진실로 구원을 받지 않고는 심한 박해를 감수하고 교회공동체에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구원받은 성도로서 재산을 팔때까지는 성령님으로 충만 했을 것이나 팔고나니 견물생심이 생겨 인간의 기본 욕망 욕심이 발동해서 판 것에서 일부를 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도적 권위가 예수님의 권위이기 때문에 사람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바쳣기에 즉 판것을 다바친척을 했기에 이런 사악한 거짓이 하나님의 교회안에 들어올수 없도록 일벌백계로 즉결징계를 내리셨습니다.

"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였느니라."(행5:4)

그 아내역시 거짓말을 하여  즉석에서 죽음을 당하는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사람앞에 거짓말을 했다면 곧바로 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나중에 사람앞에 자복해야하고 진실을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징계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역시 공개적으로 교회를 박해하거나 복음을 막는 죄들은 곧바로 죽음이나 아니면 그와 유시한 징계를 받을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산을 팔고 사도앞에 거짓말을 했다고 그들의 영혼을 지옥에 던지셨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아주 약할뿐이고 그저 가벼운 죄인들만 구원을 받게되는 능력없는 복음이 될 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징계로 초대교회는"큰 두려움이 온교회와 이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 위에 임하니라."(행5:11) 는 말씀으로 징계의 효과를 얻게된 것입니다. 첫시작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간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안에 누룩이 들어올 여지를 처음부터 징계라는 방법으로 차단하신 것이지요.

기왕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얘기를 하다보니  한국의 장로교파중 하나인 통합측교단 교리는 총회법규에 "성경을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양심의 자유"를 선언하면서도 자기들의 교리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지옥에 갔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른교파에서  그들이 징계를 받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자기들의 교리에 어긋난다고하여" 이단"이라고 정죄를하는 어리석을 짓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양심의 자유에 입각하여 성경을 자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사로이가 아니라 성령님이 계시고 은사를 받았다면 곧 옳바른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주석가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장로교회총신대학 학자였던 박윤선박사의 사도행전주석118페이지에는" 아나니아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을까?하는문제에 대하여는 답변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구원을 받지못하였다고 답변을 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신자의 영혼만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의 육신이 죄벌을 받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징계"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영혼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주제로 비켜나가서는 아니됩니다. 그들의 사후문제는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지는 아니하지만 바울사도의 가르침을 보면 징계라고 봄이 가장 타당할것입니다
"그러한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신을 멸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그 영은 주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함이라."(고전5:5)

우리는 징계를 말하기보다는 치열한 성령님과 육과의 투쟁을 통해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신을 죽이고 성령님의 충만으로 날마다 죄를 이기고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가야 할 것입니다. 징계를 받느니보다는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소금으로서 맛을 내고 향기를 뿜어 성도의 경건한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천일의 그럴사한 입으로의 설교보다 단하루의 경건한 삶이 가족들의 영혼과 이웃의 영혼들의 마음을 열어 주님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것입니다.

"이제 징계가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아니하고 슬퍼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는 그로 인하여 단련된 자들에게는 그것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는니라."(히12:11)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나그네들과 순례자들같은 너희에게 권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정욕들을 멀리하라."(벧전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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