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불가사의한 피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3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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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음이라”


M.R. 디한 박사


 


“너희는 너희의 거처 어디서나 새의 것이든 짐승의 것이든 어떤 피도 먹지 말지니라 어떤 피든지 먹는 혼이 있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끊어질지니라 하시니라”(레7:26,27)


 


성경은 피의 책이고, 피로 가득한 책이다. 피의 복음을 전한다고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할 때, 우리는 자랑스럽게 그 죄상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르침에 생기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을 주는 유일한 것은 복음의 생명이자 능력인 바로 피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이 “생명”책이며, 세상에서 유일한 생명책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히브리서 4장에서, 우리는 다음 구절을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어 어떤 양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며…”(히4:12)


 


이 구절에서 살아있다(quick)고 번역된 단어는 “산” 혹은 “살아있는”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으로서, 한 가지 이유로인해서 다른 모든 책들과 전적으로 구별된다. 즉 성경속의 각 장을 통하여 그리고 매 구절구절, 순환하고 있는 피가 들어 있기때문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이 책에 부여해주시는 피의 흐름을 본다. 성경에 그 피가 없다면, 그것은 여느 다른 책이나 다름 없고 그것들보다 값지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성경이 생명이 피에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에 관한 이 간단한 시리즈물을 시작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근본적인 원칙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근본적인 원칙은 레위기 17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


“이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피가 혼을 속죄함이니라”(레17:11)


이와 동일하게 영감된 원칙이 14절에도 반복되는데, 다음과 같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요 육체의 피는 그 육체의 생명을 위해 있음이라 ”(레17:14)


과학이 결코 규정지을 수 없고 통찰할 수 없는 신비한 무엇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육체의 피에 있고, 따라서 피 없이는 결코 생명이 없다. 이제 이것이 온 육체에 있어서 진리인 이상,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는 인간의 피와 달리 특별하신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물리적 생명 뿐만아니라 영한한 생명까지 들어있기 때문이다.  


 


피의 생리학


 


인간의 몸에는, 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조직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근육, 신경, 지방, 선, 인대 등등으로 규정한다. 모든 이러한 조직들은 공통점 한가지를 가지는데, 그것들이 아주 미세하고 고정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이고 한정된 기능들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 세포들과 달리, 피는 유동성이며 움직인다. 즉, 피는 몸의 한 지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이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모든 다른 고정된 세포들을 건드리며, 우리가 물질대사라 부르듯이 그것들에 영양을 공급하고, 세포 활동의 잔해들과 부산물들을 실어나른다. 정상적인 인간의 몸에는 약 5 파이트의 피가 있고, 심장에의해 펌프질된 이 피는 약 매 23초마다 그 조직을 통해서 순환하며, 따라서 몸안의 모든 세포는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깨끗해지며 동시에 그 몸에서 다른 모든 세포들과 지속적으로 교통하고 연락한다. 이 피는 모든 조직들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으로서, 여러 성분들과 혼합물들과 이상한 화학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능은 여전히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것의 모든 것이 생명의 신비와 관계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피가 그 몸의 세포들과 각 지체들에 도달하는데 실패하면, 그것들은 즉시 죽으며, 피가 회전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는 인간은 죽지 않는다. 생명이 그 피에 있다.


 


그리스도의 피


 


이제 이 모든 것이 물리적인 몸에 있어서 진리이지만, 모든 것은 보다 더 크고 깊은 영적인 진리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의 몸이라 불리고, 우리는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며” “각자 서로서로 지체들”이다. 이 몸에서 예수님은 머리이시며 모든 믿는 자들은 지체들이다. 이 지체들은 예수님의 피로 연결되어 있다. 각 지체의 생명은 그분의 피에 달려있고, 생명, 영양, 정결과 성장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거듭난 믿는 자는 그 몸의 지체이며 그들을 결합시키고 그들을 “친척들과 형제들”로 만들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하나에 의해서 모든 다른 지체들과 영적인 공통 생활을 영위한다. 이러한 지체들은 손과 발처럼 그 몸에서 폭넓게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색깔 면에서도 광범위하게 상이할 수 있다: 마치 하얀 지체 - 이빨과 검은 지체들 -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처럼. 그들은 신경과 피부처럼 기능면에서 광범위하게 상이할 수 있으며, 혹은 지방과 근육처럼 구조면에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 몸의 지체들이고, 도처의 모든 지체들에게 도달하는 그 피에의해 연합되어 있다. 바로 그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진정한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색깔 면에서 상이하여, 백인종이거나, 혹은 흑인종이거나 혹은 황인종일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재능이나 은사에 따라서 기능면에서 상이할 수 있다. 그들은 에스키모인들이 남아프리카의 보에르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각자의 선 자리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카톨릭교도들과 폴리머스 형제단처럼 형태 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그러나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예수님의 성취된 사역을 믿는 모든 거듭난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피에의해서 형제들이고,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카톨릭이든 혹은 프로테스탄트든, 왕이든 소작농이든 예수님의 피에 의해서 한 가족과 한 몸의 지체들이다. 모두가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하나이다.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모두가 하나이다.


 


여러분이여 잘 들어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만든 분열과 그룹들에 관해서 전혀 개의치 않으시며, 우리의 자기의(義), 사소한 것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 그리고 종교, 인간이 만든 공식들 그리고 조직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예수님의 몸 안에서의 연합을 인식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사역은 교파를 만들거나 남자들과 여자들을 소위 한 교파로부터 다른 교파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며, 당신이 어느 교회에 속해있든 당신이 주 예수님의 보혈에 씻김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자기 교회의 회원을 늘리는데 더 관심이 있는 남자나 혹은 여자를 내게 보이라. 그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믿는 자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데 있어서, 연합시키시고 정결케하시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예배의 형태 혹은 의식 혹은 형식 안에서 하나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며, 우리 머리이신 주 예수님을 높이고, 지체된 서로 서로를 사랑하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귀중한 교리들과 편협한 교파적 견해를 지키고 교회 회원들을 모으는데 너무 바빠서, 그들은 결코 예수님을 위해서는 한 영혼도 구원하지 않는다.


 


피로 인해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죄있고 오염된 피, 죄와 허물들로 죽은 아담의 그 피로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또한 모든 민족들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지면 위에 거주하게 하시고 미리 정해놓은 때와 그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정해 놓으셨으니”(행17:26)  


 


모든 사람들은 아담이라는 공통 근원을 가진다. 백인이건 혹인이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야만인이건 문명인이건 모든 사람들의 혈관에 흐르는 것은 아담의 피이다. 이 피는 아담의 죄때문에 사망의 선고를 운반하며,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공통적으로 죽는다. 이제 생명이 피에 있음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면 그것은 그 피에 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아는 것은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피가 중독되었다”는 것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망이었다:


“네가 먹는 그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사람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숨이 그에게 어떤 것을 불어넣으셨다. 그 무언가는 피였다. 피임에 틀림없다. 다른 것일 리 없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따라서 생명이 하나님의 숨에의해 더해졌을 때, 그분께서 인간의 형태를 띈 진흙덩어리에게 피를 공급하셨고, 인간은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아담의 몸은 흙의 산물이었다. 그의 피는 하나님의 별개의 선물이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고 모든 생명의 저자이시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


 


인간이 죄를 짓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는 죽었다. 영적으로 죽었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죽었다. 이제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사람이 죽었다면, 무슨 일이 그 피에 생긴 것이다. 죄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피에 영향을 미쳤고, 육신이 피에의해 공급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육신도 죽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로 죄는 몸에 있지 않고 피에 있고, 몸은 오직 “죄있는” 육신이라 불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죄있는 피에의해 영양을 공급받고 먹여지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죄는 피를 통해서 전달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들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죄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전달된다. 죄지은 한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처녀 출생


 


죄가 피에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예수님의 처녀 출생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예수님께서 아담의 아들이 되셔야 한다면 그리고 여전히 죄없는 인자이셔야 한다면 말이다. 바로 이 이유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죄성을 유전받지 않고 아담의 육신에 참여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결코 아담의 피에는 참여하실 수가 없으신데, 그 피는 완전히 죄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방법을 마련하셨고, 그에 따라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게서 나신”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실 수 있으셨고, 그럼에도 예수님의 혈관에 아담의 죄의 피를 한 방울도 가지지 않으셨기 때문에 결코 아담의 죄를 공유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처녀 출생에대한 주제를 여기서 깊이 다루지 않겠지만, 다만 죄가 피에 있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따라서 그 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입증하는데 그 내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피의 계보


 


이제 나는 확신하건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바는 “왜 성경이 피의 책인가?” 라는 질문에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가 피에 있고, 따라서 죄가 속죄되기 위해서는 죄없는 피가 반드시 누군가에의해서 공급되어야만 하며, 그분은 전적으로 아담의 죄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 분이며 여전히 인류에 속하신 분이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 피의 계보를 쫓을 수 있다. 피에 관하여 최초에 언급된 것은 창세기 4장으로, 아벨의 피가 땅속으로부터 복수를 위해서 울부짖었다. 그 앞장에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피가 내포되어 있다. 당신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우려고 무화과 잎들을 엮어서 옷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전 인류의 역사이다. 죄는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대신, 인간은 계속해서 자기 손의 행위들에의해서, 그 자신이 만든 옷으로 스스로를 가리우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게 그는 윤리와 문화와 선행과 율법적 행위들, 종교, 교육 그리고 개혁 그리고 사회 복음의 얄팍한 무화과 잎사귀 옷을 엮으면서, 자기들 손의 행위로 스스로를 구원해보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조상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실패하였을 때, 우리 모두를 실패시켰고, 그때 인류가 실패하였고 또한 실패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셨고, 우리는 창세기 3장 21절에서 다음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외투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시니라”(창3:21)


 


희생에 관한 이 첫번째 기록에서, 우리는 피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전체 계획과 관련하여 예고편이었던 하나님의 이 행동에서 세가지를 주시하라. 첫째,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간섭을 불렀다. 구속은 하나님의 일이지 결코 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죽 코트를 만드셨다. 구원은 완전히 주님의 일이시다. 둘째, 구원은 한 죄없는 대속물의 죽음에의해 이루어진다. 이 코트들은 가죽으로 만들어졌기에, 최초에 동물이 덮개를 제공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했다. 불쌍한 대속물(아마도 어린 양)이 아담이 구원얻기 위해서 죽어야만 했다. 셋째, 그것은 반드시 피가 흘려짐에의해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가죽 코트를 주기위해서 짐승이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고, 이 희생에서 그것의 피가 흘려져야만 했다. 피흘림이 없이는 결코 죄사함이 없다. 영혼을 속죄하는 것은 피이다.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하셨다.”


 


성경 전반을 관통하는 것


 


이 최초의 희생에 놓여있는 이 피의 원칙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선홍색 줄처럼 달리고 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각각 예물을 가져왔다. 하나는 받아들여졌고, 다른 하나는 부인되었는데, 왜냐하면 가인은 피없이 드렸고, 아벨의 제사는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는 방주 밖에서 정결한 동물들의 피를 흘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의 말씀을 주신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하여 수풀에서 잡은 어린 양을 희생물로 드렸고, 그 대속물의 피가 죄인을 구원했다.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유월절 양을 본다. 레위기에서, 우리는 성막의 제사들을 보면서 피의 흐름을 보며, 성경 나머지 전체에서 우리는 이 피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그 원천인 갈보리에 이르러, 하나님의 완전하신 어린양을 본다. 다른 모든 것은 그에대한 모형이었고 그림자였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세가지 조건을 완전하게 충족시키신 한 분을 만난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 자신의 선물이셨다.


둘째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셋째 그분의 귀하신 피가 흘려짐으로써 성취되었다.


오, 여러분, 당신은 당신 자신의 무화과 잎사귀 노력들로 당신 자신을 구원[코자 시도]하는 것이 가장 쓸모없는 것임을 이해하는가? “영혼을 구속하는 것은 바로 피다. 피흘림이 없으면 결코 죄사함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디한 박사가 전하는 말: “한 개인이 구원받기 전에, 그는 먼저 그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중생을 전합니다; 개혁이 아니라, 교육이 아니라, 율법이 아니라, 중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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