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죄와 구주

  • 관리자 (ehompy0429)
  • 2014-08-18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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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구주

-M. R. 디한 -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 (롬7:23)

 

죄. SIN. 한 글자로 된 단어지만, 우리는 그 단어로 인해서 인류 역사 처음부터 시작된 죽음, 비탄, 질병과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죄가 있기 전에는 죽음, 고통과 눈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이렇게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으로부터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매, 다시는 죽음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 (계21:4)

 

인류가 조금씩 더 나은 종으로 진화하고 나중에는 질병과 죽음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믿는 요즘 사람들은 죄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죄가 있는 한, 무조건 괴로움과 죽음이 따릅니다. 고통, 질병, 곤란, 슬픔, 아픔과 죽음은 어떤 병의 증상 일 뿐입니다. 그 질병은 바로 죄이고 죄가 없어져야만 그 증상들이 사라집니다. 결국엔 오직 성경만이 권위적이고 믿을 만한 본문입니다; 인간은 인류 역사 시작부터 죽음이 왜 존재하는지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였습니다. 무엇이 슬픔과 고통을 일으키는가? 왜 사람들은 늙는가? 왜 우리는 영원히 젊지 아니한가? 왜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죽은지 몇 년 후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가? 오직 성경만 이 이야기들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

 

죄의 본성을 알기위해서, 우리에게는 성경 계시 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 성경을 매우 주의깊게 묵상해 보겠습니다. 죄의 끔찍함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가혹한 처벌(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끔찍함의 근원은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공정함, 의로움 그리고 정의에 대한 그분의 모든 성품이 완벽하셔서 아주 조금의 죄라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주 조그만 범죄 또는 부당한 것을 간과하시지 못하십니다. 만약에 아주 조금이라도 간과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공정하지 않음과 그분의 거룩함이 완벽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정함이 확고하기 때문에 아주 조그만 흠 또는 죄를 허용하지 못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짓는 혼은 죽으리라”(겔18:20) 또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조그만 죄 일지라도 죽음으로 처벌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대해 불실성하시고 또 자신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입증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죄가 끔찍한 이유입니다. 죄는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공정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반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죄(Sin)- 죄들(Sins) 이 아님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죄들이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단 한 번의 죄로도 그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의 시선으로부터 영원히 정죄당하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존재에게 죄를 짓는다면 무한한 형벌이 따릅니다. 죄의 시작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 아담이 죄를 짓기 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그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죄-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한대의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아담은 그 뒤로 많은 죄를 지었지만 그 첫번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형벌을 받았습니다.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그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죄의 세가지 양상

 

성경에는 죄를 뜻하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 예를 들면, 죄, 불법, 범죄, 악, 등등. 히브리어 또는 헬라어 원본들의 단어들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죄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여러분을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성경에 따르면 죄가 무엇인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여섯 가지의 가장 유명한 단어를 언급해야만 하겠습니다. 많은 성실한 사람들이 죄는 부도덕, 절도, 살인 등 악한 행동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들도 죄지만, 성경에 나오는 죄는 훨씬 다양하고 많습니다. 죄는 행동이라고 하기보다는 죄를 대하는 성향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욕하지 않고, 절도하지 않고, 술 취하지 않고, 부도덕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더욱 깊이 알려줍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죄들은 인간의 마음에 자리잡은 진짜 죄의 결과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절도하기 전에 남의 물건을 탐냅니다. 그리고 그 탐욕이 진짜 죄입니다. 절도는 그저 당연한 열매 또는 결과일 뿐, 탐욕이란 죄의 겉으로 드러난 표식입니다.

 

살인도 같습니다. 살인 행위는 표면적 죄이고, 내면의 진짜 죄는 아닙니다. 진짜 죄는 증오입니다. 그리고 살인은 그 증오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들을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 (요일 3:15). 이 미움 때문에 살인자라고 불리우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행동들도 똑같습니다. 이 행동들을 저지르기 전에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지든 말든, 마음속의 그 탐욕이 진짜 죄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죄입니다.

 

구약의 죄

 

구약과 신약에 쓰이는 몇몇 죄를 뜻하는 단어들 중에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시선을 이해하게 해주는 뜻이 일치하는 세 히브리어 단어와 세 헬라어 단어들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죄를 뜻하는 세 단어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차타(Chata) – 표적을 잃어버리다

아본(Avon) – 삐뚤어진

패샤(Pesha) – 범죄

 

이 단어들과 일치하는 신약의 세 단어들은:

 

하마르타노(Hamartano) – 표적을 잃음

파라바시스(Parabasis) – 범죄

아디키아(Adikia) – 삐뚤어짐 또는 왜곡

 

이 단어들 속에 죄의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 있으며, 이 단어들은 죄를 짓는 행위 보다 더 깊숙히 죄에 대해 알려줍니다. 먼저 세 개의 다른 뜻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히브리어 차타(Chata) 그리고 헬라어 하마르타노(hamartano)는 표적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길을 잃고 표적(혹은 좌표)을 놓쳤다면,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오십보나 백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머리카락 너비만큼 좌표를 잃어버렸다 해도 좌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뒤뜰에 있는 까마귀를 총으로 쏘았을 때 머리카락만큼 놓쳤지만 마치 다른 방향으로 쏜 것처럼 완전히 놓친 것입니다. 나는 좌표(표적)을 놓쳤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약에 표적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 표적은 율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속박에서 풀려났지만, 그들은 은혜만으론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데 합당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스스로 무언가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의지의 완벽한 표현인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심중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느냐? 너희가 내 기준을 너희 행위로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것이 내 기준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완벽한 율법이 새겨진 돌판을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행하고 살라.” 하지만 그 율법의 최소한의 위반도 표적을 잃는 것이며, 죄였습니다. 그들이 모든 율법들, 아니 거의 모든 율법들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머리카락 하나 만큼 하나만 놓쳐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유죄였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그는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 2:10)

 

 

죄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

 

표적을 잃어버리는 것(놓치는 것)은 죄라는 단어의 겉에 드러나지 않는 내제된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따르도록 내려진 명령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죄를 지었고 실패하였기에,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정죄당합니다. 인간들이 표면적인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완벽하다고 믿는 이 가짜로 거룩한 시대에 죄의 이러한 심오한 뜻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은 그저 절도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부도덕하게 살지 않는다고 자기들이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의 첫 번째 뜻이 이 주제에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해줍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실패하면 유죄입니다. 만약에 부정한 생각을 했다면, 조용해야 했을때에 떠들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유죄입니다.

 

만약에 인생에 일초라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유죄입니다. 만약에 적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명령), 당신은 유죄입니다.

 

율법은 정죄한다

 

이제 알겠지만, 율법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정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기 위해 그분께 도망치게 하려는 것이였습니다. 아담의 자손 중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 안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타락한 죄인이 율법을 지키리라고 절대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완벽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지, 얼마나 좌표를 잃어버렸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위 하여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들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 (갈2:16)

 

“율법을 통하여서는 죄를 깨닫기 때문이라” (롬3:20) 하지만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롬4:15)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의하면

 

이제 율법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후,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들을 판단하기 위한 다른 기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까지, 모세의 율법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법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양심 홀로서 줄 수 없는 새로운 기준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았습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하나님은 보다 확실한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로 주셨습니다. 이제 완벽의 기준은 율법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완벽의 신성한 기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벽의 기준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좌표를 잃는 것이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완벽하고 나무랄 데 없고 결백할 때까지는, 여러분은 좌표를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뜻하는 신약의 단어, 하마르타노는 이 죄의 깊은 뜻을 재차 강조합니다.

그래서 롬3:22,23 에서 바울이 죄의 뜻을 요약해 줍니다.

 

“이는 거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이는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울은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못미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함에 못 미치는 것은 표적을 놓친 것입니다. 감히 누가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나는 예수님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완벽하고 나무랄 데 없고 결백하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입니다- 표적을 놓치고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것.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기 전, 당신은 반드시 자기의 진짜 모습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당신이 의지적으로 인정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착한 사람들이 아닌 죄인들을 위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도다, 한 것이라.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로다.” (딤전1:15)

 

모든 이들이 죄를 지었다

 

다시한번 말하듯이, 죄인이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나니” (눅5:31) “내가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느니라.” (눅 5:32)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경적인 죄의 뜻, 하나님의 완전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 그리고 표적을 놓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의 이 내재된 숨은 뜻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다른 두 단어들은 죄를 다른 시선으로 해석합니다: “비뚤어진” 을 뜻하는 단어와 “범죄”를 뜻하는 단어. 히브리어 단어 아본(avon)과 헬라어 단어 아디키아(adikia) 둘 다 똑같은 죄의 본성을 다르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일직선 선을 그으셨습니다. 처음엔 율법으로 드러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주셨습니다. 이 완벽하게 일직선인 이 선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바꾼다면, 이 선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이고 표적을 잃는 것입니다. 그 선은 많은 굴곡과 곡선이 있게 심하게 비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 선을 비뚤면 유죄입니다. 유죄이고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할 때에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그리고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롬3:10),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롬 3:12).

 

우리가 알고 있는 표면적인 죄의 양상

 

이 두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들 말고 죄의 표면적인 면을 보여주는 범죄를 뜻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철저히 분별할 시간이 없지만, 확실히, 죄는 표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율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죄의 표면적인 의미이고, 죄의 깊은 속 뜻인 표적을 놓치는 것(주님의 완전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 역시 율법을 위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읽은 후에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기준에 따르면 죄인이고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요” - “죄의 삯”(죄들이 아니고 죄).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죄인입니다. 인간에게 유전된 아담의 죄는 골고다의 주님의 보혈로 인해 씻겨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의 단 하나의 희망은 자신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뿐입니다.

 

인간과 윤리와 교회의 기준에 따르면 당신은 흠잡을 데 없지만, 잃어버린 자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가정에서도, 아무도 당신에게 손가락질 하며 비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표적을 잃어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백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이 세상의 최악의 죄인 같이 역시 잃어버린 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육신을 신뢰할 만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나니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대해서는 바리새인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에 있는 의로움에 대하여는 흠이 없느니라. 그러나 내가 얻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나니” (빌3:4-7)

 

이 윤리적이고, 율법을 순종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도도 자기를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한 뒤 말했습니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로다.”(딤전1:15)

 

이제 문제를 직시하십시오. 표적을 놓쳤던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가십시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오직 죄인들을 위해. 죄인으로 와서, 자기의 이기적인 신앙의 허물을 던져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통한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 날에 펄 펄 끓는 지옥의 유황불에서는 너무 늦어버리고 아무도 당신의 절규를 들어 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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