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2:15)

그리스도의 복음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깨달으라

  • 관리자 (ehompy0429)
  • 2016-01-16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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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눅 15 :11-32.

제 목: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깨달으라.

이 탕자의 비유는 복음의 은혜가 참으로 풍성함을 다른 비유들보다 더욱 넓고 충분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은 언제나 불쌍한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지도하며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을 알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공통의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시고 계시며. 우리는 모두 다 그분의 소생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한 분 아버지가 있지 아니하냐? 한 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우리가 우리 조상의 언약을 모독함으로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대적하여 속임수를 행 하느냐?(말2:10)

그분은 아버지이시기에 우리가 충실한 자녀인가? 아닌가에 우리를 가르치시고, 생명을 부여하시며, 그분의 언약가운데 우리를 넣어주시고. 또는 떼어놓으시기도 하신다.

우리 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알려주시기를 세리들과 죄인들을 그들이 멸시하지만 그들이 너의 형제이며, 그들이 같은 본성을 가졌음으로, 이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친절과 자비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롬3:29)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여 누구든지 그에게로 부르시는 모든 이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을 보여주는데,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견실(堅實)하고 엄숙하며 내성적이고 검소하고 침착한 아들이었으나,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다른 하나는 들뜨고, 쾌활하며, 긴장을 잘 참지 못하고, 유랑하며, 행운을 잡으려고 허황된 짓을 하기도 하며, 악한 손에 빠지면 탕아(蕩兒)가 되기도 하며, 변덕스럽기 까지 한 아들이 엇습니다. 이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들을 회개 시키려고 하셨던 것이며, 이 둘째 아들은 죄인들과 이방인들을 의미하는데, 사도들은 그들에게 회개를 전하기 위해 파송되었던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유대인들을 나타내며,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늘 왕국복음을 전하려고, 삼년 반 동안 애를 쓰신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방탕한자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성격과 해위의 묘사는 전형적인 죄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탕자로서 그의 분방과 방황 또한 그가 빠진 낭비와 비참을 살펴보면 그것은 탕자 같은 죄인들의 결과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본래 아버지의 것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열심히 잘 해서 내 것이 된 줄로 여기고 자기 맘대로 허비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도 모르고, 감사치 아니하고, 허비하는 것이 작은 아들 탕자의 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내 것을 주소서, 라고 당당히 요구하기에 주었더니, 그것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고작 하는 것이 낭비와 사치와 도박과 음탕한 생활뿐이 엇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지도하에 가정의 질서와 좋은 양육받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소위 자유라는 것만 추구하여, 그 자유를 죄짓는데 만 사용하는 가장 무서운 노예 생활인 그것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인들의 어리석음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잘 교육받으나, 교육이 금하는 것들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스스로 인생의 주체자요, 참 사람임을 모르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묶은 줄을 끊으며, 대신에 자기의 육욕의 줄로 자기를 묶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삶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법에 매이지 않고. 그들은 스스로 신들 같이 되어, 자기들이 즐기는 것 외에는 선악을 분별치 못하고. 그는 스스로 자만하고. 자기의 넉넉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의 생각엔 이제는 됐다, 내가 받은 몫으로 아버지보다 더 잘 경영하여 멋진 생을 영위하자, 라고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행위입니다. 죄악의 상태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탕자는 아버지 집을 멀리 떠난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치와 낭비와 타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행복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멸망으로 들어가는 지옥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탕자는 결국 자기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그 지방의 종살이로 전락 되었지만, 그것은 돼지만도 못한 대접의 삶이었고, 그나마도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들이 많은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하고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는 확신을 가지고 아버지 집을 향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아직 아버지 집에 도착도 안하여서 멀리서 작은 아들이 걱정되어 문밖에 행여나 돌아올까? 하여 기다리는 아버지! 그가 작은 아들이 멀리서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 달려 나가서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 울 자격이 없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여겨주소서,, 하나, 그 아버지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기를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먹고, 즐기자. 이는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기 때문이라, 하고. 그들이 잔치를 즐긴 것을 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더러운 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죄들을 자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죄인들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갑게 맞이하시는 것을 비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옷은 구원의 옷이고(사61:10. 갈3:27) 이며 반지는 언약의 반지이며, 살진 송아지는 예수님을 상징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때문에 하늘 잔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송아지는 그 죄인인 탕자 때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사람들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더 기뻐하리라(눅15:7) 는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큰 아들의 항의의 말을 봅니다. 아우는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아들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면서, 나는 아버지와 함께 견실하게 아버지의 재산을 다 지켜주었는데, 나에게는 친구와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으셨나이다. 아버지는 너는 나와 함께 있음으로, 내 것이 너의 것이지만, 너의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씀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말릴 수 없는 죄인 한사람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오늘도 죄인인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슨 죄라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는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으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고 빨리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죄들을 용서받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대속 물 (代贖 物)로 내어주려 함이라, 하시니라.(마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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