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이트/세계정부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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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제자 히틀러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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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제자 히틀러
제수이트의 폰 파펜(Von Papen, 히틀러의 스승이자 독일의 수상(1932년 6월-1933년 3월))은 자신의 저서 「히틀러와 나눈 대화」에서 "히틀러는 교황권의 최고 이상을 실천에 옮겼다"고 기술했다. 이 기술 내용은 죽음의 캠프(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련이 있다. 수상 폰 파펜이 첫 번째로 수행한 업무는 독일 제국의 의회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업무는 히틀러의 '갈색 셔츠(SA)'에 대한 금지 명령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카톨릭의 젊은이 그룹을 '히틀러의 젊은이(Hitler Youth)'로 통합하여 히틀러와 제3제국이 권력의 무대에 서도록 했다. 「나의 투쟁(Mein Kampf)」이란 저서는 카톨릭 제수이트 스템플(Staempfle)이 히틀러를 위해 저술한 것이다. 대주교 에우게니오 파첼리(Eugenio Pacelli)는 독일 주재 로마 교황 대사(1917-1929)로서 독일의 일루미나이티 은행가들 및 산업가들(I.G. Farbin)과 함께 히틀러의 제3제국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준비 작업을 했다. 또한 히틀러가 전쟁에 패배할 수도 있음을 대비해서 예방책으로 유태인 수천 명을 바티칸에서 사라지도록 했다(히틀러의 실패 시를 대비한 것으로, 바티칸은 유태인을 보호해주었다는 명분을 세우기위해).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한복음 16:2)
바티칸이 히틀러를 비롯해 무솔리니, 프랑코, 살라자르(Salazar)와 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1933년 7월 20일 폰 파펜과 국가 담당 추기경 에우게니오 파첼리(훗날의 교황 Pius 12세)이 서명)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바티칸이 히틀러가 정복했던 국가가 모두 포함되도록 협약 조항을 확장시키려고 히틀러를 부추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히틀러의 저서 「히틀러의 비밀 대화」에 자신의 말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제3제국이 새로 획득한 영토가 모두 포함되도록 협약 조항을 확장하려는 바티칸의 시도에 대해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아르(Saar), 슈데텐랜드(Sudetenland), 보헤미아(Bohemia), 모라비아(Moravia), 라이츠가우 단스지금-동프러시아(Reichsgau Danszig-East Prussia), 와르테가우(Warthegau), 실레지아(Silesia) 및 알사스-로렌(Alsace-Lorraine)의 대부분 지역은 사실상 공식적인 국제 조약의 지원을 받고 있는 로마카톨릭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516쪽). "대주교 폰 파펜의 태도를 보면 전쟁 후 협약을 종료시키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협약을 지역 규제법으로 대체하고 현재 그 협약에 따라 보장된 재정 지원을 교회에서 철회하려 하고 있다(520쪽). 파첼리(Pacelli, 협약 조약 협상자)는 협약 조항에 따라 독일 국가가 '종교 교사에 관한 지역 주교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고, 주교가 요청하면 그 교사들을 사살할 의무가 있으며, 재정 의무를 모두 이행함과 동시에 교회법이 충실하게 적용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 베네트(Bill Bennett 또한 제수이트 조직인 동생 밥(Bob 현재 유타 주 상원 의원)는 레이건 행정부 하의 교육성 성과 기초 교육(OBE)의 포교자가 '어린이는 모두 제수이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요한 코트니 머레이(John Courtney Murray, 로마카톨릭 사제)가 워싱턴에 제출한 '종교 자유에 관한 조정 문서'란 조약의 내용이 몹시 의심스럽다.
일련의 사건이 히틀러의 일생을 좌우했음은 분명하다. 레오폴드 포에치(Leopold Poetsch)는 히틀러의 카톨릭 교사였으며, 스템플(Staempfle)은 히틀러를 위해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했다. 1919년 툴레 위원회(Thule Society)의 징병 사건은 '일루미나이티 역사 개술'(웹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히틀러의 '내부 그룹' 성원은 히믈러(Himmler), 괴벨스와 회스(Geobbels & Hoess), 카톨릭 신자 등이었다. 나치와 유고슬라비아 우스타쉬(Ustasha) 파시스트 전범 가운데 수천 명(일만 명 이상)이 바티칸을 통해(바티칸 비자와 훔친 적십자 여행 카드에 바티칸 직인을 찍음으로써 문서를 위조해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구아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등으로 도피 밀입국을 했다. 구출을 위한 대량 철수(Ratlines)는 지오반니 몬티니(Giovanni Montini, 훗날 교황 6세), 허발(Hubal), 드라고노비치(Dragonovic, 교황 Pius 12세(1945-1950)의 지시 하에 미군 정보기관(CIC)과 협조하여 게슈타포 수령과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에(Klaus Barbie)가 남아메리카로 도주하도록 주선) 등과 같은 바티칸 직원의 비밀 조직이 주도했다. "대량 학살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서 구해준 사람들은 페론(Peron,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독재자)과 그의 비밀 경찰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과 그 밀사들이었다. 사제, 교회, 수도원과 더불어 위조 바티칸 여권으로 대전 후 나치 전범들의 수색을 방해한 이는 바로 로마 카톨릭이었다. 이 구출 작전은 나치 시대에 계속 추구해 온 정책과도 일관된다. 제수이트 신학자 헨리 드 루박(Henri du Lubac)은 대전이 끝나기 훨씬 전에 로마 카톨릭과 친나치 비치(Vichy) 정권의 협조 관계에 관해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는 이번 달에야 공개되었는데, 드 루박(du Lubac)은 나치 정권 하에서 그 임무를 포기한 로마 카톨릭 주교들을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의 추기경과 성직자들은 수십 년 동안 프랑스 최악의 전범 폴 토이비에르(Paul Touvier)가 정의의 심판대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었다. 카톨릭은 획일적인 통치를 받으므로 최고 권위인 바티칸의 승인 없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째서 바티칸이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루살렘 포스트 지는 '최대의 과실(Maxima Cupla)'이란 1992년 2월 14일자 사설을 통해 이탈리아 바티칸 사원의 프란체스코 성직자가 홀로코스트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Adlof Eichmann)에게 바티칸 비자와 여권(1950년 6월 14일 리카르도 클레멘트란 이름으로)을 발급해 줌으로써 아르헨티나로 무사 통과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모사드에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오른 손을 들어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하고 나서 손으로 교황이란 표시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히틀러는 파벤(I.G. Farben)이 고용한 아이비 리(Ivy Lee, 아마도 John D. Rockefeller의 이미지를 계속 높여 주었기에 선발된 듯하다)의 승인을 받은 뒤 런던, 뉴욕, 베를린 등지에서 일루미나이티 은행가들의 지원(따라서 루돌프 헤스(Rudolph Hess)는 로드챠일드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망명할 수 있었다)을 받았다.

아우슈비츠 대학살
파벤(I.G. Farben)은 그 악명 높은 파벤부나(Farben buna) 비누를 아우슈비츠(I.G. Auschwitz) 공장 직원들에게 먹였고(3개월 뒤에 아사하도록 특별 처방), 유태인(프란체스코 신부회의 던스 스코투스에 따르면 유태인은 신의 명령에 따라 노예일 수밖에 없었다고 함)과 집시 등을 가스로 학살할 때 사용하는 독 지클론(Zyklon) B를 발명했으며, 이제는 미국에서 제약 산업, A.M.A.(미국의약협회), F.D.A.(미국 식품의약품국)를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레이어트릴(Laetrile)은 검사 받지도 않고 사용 금지가 되었으며 검사도 허용되고 있지 않다. 이 제품은 살구 씨 등에서 추출한 식품(비타민 B-17)이지 약이 아니지만 말기 암 환자 5명 가운데 3명을 치료할 수 있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F.D.A.는 2억 1천만 달러를 들여 10년 동안 연구한 끝에 비타민을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회사들의 비타민 제조를 효율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도록). 이 제약 회사들은 연방 정부의 승인 하에 연간 수백 만 달러씩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25년 동안 290억 달러), '암 산업'이 없다면 그 수입은 곧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텍사스 주에서 암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브레진스키(Burzynski) 박사가 어째서 박해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박사를 제쳐놓는 이유는 그 거대한 산업에 방해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1996년에는 마이애미 주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 주 오크랜드에 이르는 19개 주에서 병원 600개소 이상이 카톨릭 기관들과 통합했다).
암 환자 케네스빌(Kernersville N.C.)은 암을 고치려면 턱을 절반쯤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이 환자는 티와나(멕시코의 의사)에게 가서 라트릴(Laetrile) 치료를 받고 암을 고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먼저 의사에게 그 치료받은 일을 말해 주었다. 의사가 그 사실을 미국 의학협회에 보고하자 연방 직원이 그 환자의 집에 와서 라트릴이 있는지 조사를 했다.
히틀러는 「제3제국의 흥망」44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종파에도 비난의 여지는 있지만 정당은 과거 역사에서 순수 정당이 종교 개혁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다음과 같은 486-487쪽의 말과 비교해 보라. "이 민족들은 자신들의 모국, 곧 헝가리, 러시아, 독일을 그려 왔다. 그러나 슈데텐 사람들은 독일 제국에 속했던 적이 없으며(느슨하게 형성된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 이외에는)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을 뿐이다." 분명히 히틀러는 자신의 제3제국을 로마 카톨릭의 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 정당인 독일의 중앙당(2차 대전 뒤 '기독교 민주당'으로 개명. 당수는 루드비히 카스(Ludwig Kaas) 주교로서 동일한 이름으로 동일한 목적을 수행하는 부하가 페루에 있다)은 히틀러 배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던 파첼리(Pacelli) 추기경이 해체했다]. 히틀러는 린츠에서 영세를 받고 독일 주법에 따른 세금(Kirchensteuer)을 바티칸에 바쳤으며 사망할 때까지 교회법과 정책을 옹호하며 수행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히틀러가 어째서 협약 동맹자 프랑코와 무솔리니에게 끝까지 충실했었는지 알 수 있다. 프랑코는 카톨릭 경제조직 오푸스 데이(Opus Dei, Jose Maria Escriva 창단)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게 되었으며 통치 기간 내내 지원을 받았다. 또한 프랑코도 2차 대전 중에 크로아티아에 있는 우스타쉬(Ustasha)를 지원했으며 오늘날에도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의 용병을 지원하고 있다(매년 마드리드에서 히틀러 추모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오늘날의 아일랜드 카톨릭 언론에서는 스페인의 프랑코와 포르투갈의 살라자르(Salazar)를 찬양하고 있다). 무솔리니는 바티칸의 도움으로 권력을 장악했으며 그 밖의 국제 조약을 모두 파기시켰다. 21세기 현재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 시대처럼(1933년 5월 22일의 '강철 조약') 서로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39년 3월 2일 국가 담당 추기경 에우게니오 파첼리가 로마 카톨릭 교황 12세로 취임했다. 4일 뒤(히틀러의 탱크 부대가 폴란드로 진격했을 때) 파첼리는 히틀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위대한 아돌프 히틀러 각하, 독일 제국의 총통이자 수상 각하. 교황직을 수행하기 앞서 우리는 독일 국민의 영적 안녕을 계속 귀하의 지도력에 맡겨 두려고 합니다. 우리는 독일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전력을 다해 교회와 국가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확립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목회 책임을 맡아 기회가 많아졌는데,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지요? 어느 영토에서든지 독일 국민의 번영과 진보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결실되기를 기원하나이다!" 파첼리는 제3제국 내내 베를린에 로마 교황 대사(대주교 오르세니고)를 두었다. 그래서 오르세니고는 파첼리의 강력한 뜻에 따라(1939년 4월 20일) 히틀러의 50회 생일을 맞아 축제를 열었다. 이는 제3제국 내내 전통이 되었으며, 이때 베트람(Bertram) 추기경은 '독일 내 주교와 주교 관구의 이름으로 총통께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 드립니다'란 메시지를 보내면서 '독일의 카톨릭이 천국에 보내는 열렬한 기도'란 말을 덧붙였다(존 콘웰 저 「히틀러의 교황: Pius 12세의 비밀 역사」)(이 책에 관한 연구는 모두 바티칸 도서관에서 수행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온타리오에 있는 칙 출판사는 성경에 관한 서적이나 이야기 책 등 기독교 관련 도서를 출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 주제를 언급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죠셉 맥카비(Joseph McCabe -전 프란체스코 성직자로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이며 약 250권의 서적을 집필), 월터 몬타노(Walter M. Montano, 전 도미니카 성직자로서 「자줏빛 커튼의 배후」의 저자), 버나드 프레젠보그(Bernard Fresenborg, 전 사제로서 「지옥 속의 30년」, 「엉클 샘의 새 약혼녀」의 저자) 등이 이 출판사에 기고를 했다. 이 출판사는 바티칸에서 여러 해 동안 복무하다가 탈퇴해서 그 이야기를 위의 저자들처럼 책으로 출판한 전 제수이트 회원의 실화를 담아 책으로 출판했다. 이 전 제수이트 회원 알베르토 리베라(Alberto Rivera) 박사와 칙 출판사의 잭 칙은 다른 출판사의 저자들이나 마찬가지로 그 자료를 출판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었다(리베라 박사는 치과의사가 감염된 주사기를 턱 속에 넣은 채 부러뜨리고 여러 해 동안 체계적으로 독약을 주입하는 바람에 1997년 6월 20일 사망했다). 바티칸은 그 관례나 비밀 서적들이 폭로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예컨대 「제수이트에 대한 비밀 지시서」라든지 「제수이트의 비밀 역사」(생명의 서신 출판, 검은교황)와 같은 도서. 이 두 책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이 책들은 미래에 대한 바티칸의 명명백백한 의도와 방법을 폭로하고 있다. 여러 기간에 걸쳐 위와 같은 저자들이 직접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증거가 확실하다고 말하면서 그런 사실에 관해 저술한 책은 충분히 있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완전한 편협과 논리 부재에 빠져서 의도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제 정치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에만 성행한다고 본다.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책임」(Thomas M. Harris 저)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Thomas M. Harris 저) 「자줏빛 커튼의 배후」 「대음모」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에 관해 숨겨 있던 진실」(Burke Mccarty) 「로마 교회에서 지낸 50년」(전 카톨릭 사제 Charles Chiniquy 저) 「자유의 아들 교단의 배반의 역사」(Felix G. Stidger 저) 「로마 카톨릭 통제 하의 워싱턴」(Justin D. Fulton 저) 「미국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대음모 계획과 범행 역사」(John Smith Dye 저) 「John Surratt의 재판」(John Surratt 저) (John Surratt는 6주일 동안 캐나다 사원에, 4주일 동안 영국에 숨어 있었으며 Zuaves(바티칸 교황의 개인 보디가드 팀)의 성원이 되었다가 결국 워싱턴 D.C.로 인도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교수형을 면제받았다. 이때 재판이 휴정할 때마다 제수이트 회원들이 무더기로 존 슈라트(John Surratt)에게 퍼레이드를 해 가서 악수를 하면서 판사가 보호하고 있음을 확신시켰다) 「연방군 및 연합 해군에 관한 공식 기록」시리즈 Ⅱ Vol. Ⅲ(연방 보관 도서관)에서는 바티칸이 남부 연방군의 입장으로 개입해서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을 공모했으며 국무장관 윌리암 세워드(William H. Seward)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했다. 바티칸은 당시 정치, 교육(빌 베넷과 현재 유타 주 상원 의원인 그의 동생 밥은 레이건 행정부(레이건은 빌 베넷을 교육성 장관으로 지명하길 꺼려해서 저격당할 뻔했다) 하의 교육성 OBE(성과 기반 교육국)의 홍보관이 '어린이는 누구나 제수이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제수이트에 고백했다), 이민(182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창설된 바티칸 스파이 네트워크 Leopold 재단) 분야를 계획적으로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도 상당한 정도로 통제했다고 한다(그 뒤 점차 그 밖의 매스컴도 포함하여 통제). 교황 피우스(Pius)는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에게 서한을 보내 북부 연방군 내의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이 탈퇴할 수 있도록 리치몬드(Richmond) 신문에 기사를 게재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렇게 보도하자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은 1주일 내에 144,000명이나 탈퇴했다. 링컨이 뉴욕시에서 북부 연방군을 위해 징병을 시작하자(1864년) 대주교 휴게스(Hughes)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인종 폭동을 선동하여 흑인 고아를 불태워 죽이는가 하면 거주자들을 유린 살해하기도 했다. 우리는 일루미나이티의 국제적 은행가들이 제프 데이비스(이때 국무장관 주다 벤자맨(Judah P. Benjamin)은 로드차일드 가문의 대리인이었다), 윌케스 부스(J. Wilkes Booth), 자유의 아들(Sons of Liberty), 황금 서클의 기사(Knights of the Golden Circle: 윌케스 부스는 엘라 터너라는 여인의 부추김을 받아 아브라함 링컨을 암살했으며, 그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황금 서클의 기사'에 가입했다. 레온 촐고츠(Leon Czolgosz)는 '황금 독수리'에 가입했으며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이라는 여인의 부추김을 받아 윌리암 맥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을 암살했다), 미국 기사 조직(Order of American Knights: 코퍼헤드 조직) 등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때 자금은 제프 데이비스의 '캐나다파 내각'을 통해 몬트리올 지점인 온라리오 은행으로 공급되었다. 이는 바티칸이 세밀히 계획했던 바였으며, 이에 앞서 부르가드(Beauregard) 장군(카톨릭)은 섬터(Sumter) 요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살해하도록 조직된 중대는 비르네(Byrne)이라는 열광적인 카톨릭 신도가 이끌고 있다. 그 중대는 전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도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 속에 신부 두 명이 병사로 가장하고 있으면서 군대를 고무하고 통제하고 있다. 전보를 발명한 유명한 모로스 교수는 최근 자신이 로마에 있을 때 이 나라와 국가 기관에 대해 가공할 만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 나라를 피로 물들이고 이처럼 끔찍하게 황폐화시키고 있는 시민전쟁은 로마 교황의 대사와 그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기록은 모두 국회도서관에 있다. 미국 국무성 기록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1867년 6월 30일 바티칸과 국교를 단절했다가(로마 카톨릭 영역 내에서 비카톨릭 신도들(개신교도들)의 예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절. 이를 보면 TBN이 어떻게 로마에서 국제적인 종교 TV 방송국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1984년 1월 10일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 바티칸과 국교를 재개했다. 레이건은리비아의 가다피의 테러리즘과 기만 행위에 관해 여러 해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가다피가 로마에 폭탄을 투하한 다음에야 그에 대한 공습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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