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진리 분별

요한계시록강해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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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계 11장 1- (2)
 
  “또 내가 나의 두 증인들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리하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하니라”(계11:3)
 
  여기서 두 증인들이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할 것이라고 하는데 일천 이백 육십일(1260)은 이미 11장 2절의 ‘마흔 두 달’과 같고 12장 6절의 일천이백 육십일, 14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와도 같은 기간을 여러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교황권의 절대통치기간을 말하며 동시에 교회가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받고있는 기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에서는 한 때와 두 때 반 때(단7:25, 12:7)로 표현하고 있는데 짐승, 적그리스도, 즉 교황권의 철권통치기간이며 거듭난 성도들의 순교가 극에 이르렀던 때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두 증인에 대하여 분별하겠습니다.
 
  두 증인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등잔대(11장 4절)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상징이라고 수차례 밝힌 것같이, 두 증인은 문자적인 두 사람이 아니라 교황권 전성시기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은 증거의 숫자로서, ‘증인’, ‘증거’는 반드시 둘 셋이 원칙입니다.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 것이요...”(신17:6)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19:15)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하게 하라”(마18:16) “이후에 주님께서 다른 칠십명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고 했던 각 성읍과 각 처로 앞서 둘 씩 보내시니라”(눅10:1)
 
  열 두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6을 상징하는 세상에 둘 씩 보내시려고 열 두 제자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두 증인’은 가장 어둡고 박해가 극한 시대에도 굽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중세시대의 ‘적은 무리 교회’를 말씀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증인(행1:8)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되 그것을 생활에서 경건의 능력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둘’(증인의 숫자) 그리고 두 증인이라는 말씀의 또 다른 뜻은 그들의 숫자가 적다는 뜻입니다. 서기 538년에 동고트족(Ostrogoths)을 세 번째로 정복한 작은 뿔 교황권(단7:20, 7:8)이 이교 로마 제국의 황제 권력을 탈취할 때부터 나폴레옹에의한 교황 체포 때인 서기 1798년 교황 비오 6세가 포로로 잡혀간 때까지, 극심한 박해 때문에 대다수 성도들이 종교재판에 순교당하고 극소수 만이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으므로 숫자가 적습니다. 적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양심을 찌르는 설교로 증거하였기에 그들을 ‘두 증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두 증인은 엘리야와 엘리사, 모세와 침례 요한, 또는 율법과 복음, 성령과 말씀, 유대인과 교회 등 다양한 해석과 같이 문자적 둘이 아니라 ‘증거하는 적은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교 로마 제국의 네로 같은 ‘황제’가 ‘용’으로 표현되었다면, 당시의 교황은 ‘짐승’(the beast)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교황권의 철권 통치가 수많은 성도들의 순교의 피를 마시는 전성기였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3장의 마흔 두달 역시 동일한 시기이며, 또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에 취한지라”(계17:6)는 말씀이 성취되는 시기의 성도들이였습니다. 그들을 두 감람나무로 묘사하였는데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나무로서 노아가 비들기를 놓아주었을 때 비들기는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온 사실이 있습니다.(창8:11) 감람유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성전으로 묘사된 교회가 박해라는 측량을 당하고 있으나 성령의 충만하심 속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 모습이였습니다. 또한 두 등잔대는 중세 암흑시기라고 하는 교황권 시대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을 뜻합니다. 두 증인의 교회가 피흘리며 순교하면서도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였고, 분명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왕과 머리삼는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였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들은 교황과 짐승의 표를 받은 카톨릭교도와 이방인들에게 진리의 등대불이였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기름을 세상에 보이며 보관해온 주님의 뜨거운 교회들이였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거의 사라질 듯 수가 적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였기에 계시록 10장의 ‘펴진 작은 책 성경’ 이 열려 에라스무스, 루터 등에 의해 유럽에 성경이 열리고, 영국에서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이 세상에 주어졌고 그 말씀이 미국으로 옮겨져 오늘날의 세계의 감람나무와 등잔대의 교회가 되게하였습니다.
 
  두 증인들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이름들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교황 짐승과 세상을 정죄하여 그들의 양심을 괴롭게하는(계11:10) 불같은 말씀을 토하였는데(계11:5),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그리고 바울을 따르던 바울시안(Paulicians), 북아프리카의 일부 몬타니스트(Montanists)파, 서기 251년경부터 소아시아 이태리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져있었던 노바티안(Novatians)파 또 어거스틴에의해 ‘흠잡을 수 없는 성도들’로 불렸던 북아프리카의 도나티스트(Donatists)파 성도들, 마리아 숭배를 거절하고 루터보다 1400년 전이나 앞서서 “믿음으로만 의로워짐” 신앙의 발렌티니안(Valentinians)파, 마리아 동정녀설을 거부했던 4세기경의 마샬리안(Massalians)파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헛됨을 주장했던 애리안(Aerians)파, 4-5세기의 조비니안(Jovinians)파 성도들, 변절자 제롬을 비판하고 로마 교회를 떠났던 비질란티우스(Vigilantius)파,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성물들을 우상숭배로 간주하였던 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s, 7-9세기)파, 10-15세기의 보고밀(Bogomils)파, 이태리에서 번성하였던 11세기의 파타린(Patarine)파 성도들, 카톨릭에 대항했던 베렝가리우스(Berengarius)파와 아놀드(Arnoldists)파, 재침례교도들이 어둠의 시대에도 등잔대 빛을 비추었고 죄악의 사막같이 복음이 목마른 시대에 은헤의 성령의 기름을 흘렸던 두 증인들이였습니다. 또한 12세기경의 앙리(Henricians)파와 카톨릭의 유아세례, 미사 화체설을 부인했던 12세기경의 페트로브루시안(Petrobrussians)파, 네덜란드 중심의 기도의 사람들이였던 베가드(Beghards)파, 그리고 잘 알려진대로 오늘날의 킹제임스 성경의 뿌리인 올드 라틴 성경을 보존시켰던 왈덴시스(Waldenses)파들이 13세기의 두 증인들이였고 알프스 산악지방에 숨어살던 보드와(Vaudois)파, 남프랑스 지역의 카타르파(Cathares), 그들이 순수했기에 “카타리 순수하다”라는 이름을 얻은 바 있으며, 이태리 지역에 퍼져있던 알비겐시스(Albigenses)파와 도위(Dowieites)파, 그리고 영국의 영어 성경을 출판한 후 로마 카톨릭에의해 무덤에서 시체로 파헤쳐져 이단 재판을 받고 시체가 불태워졌던 위클맆(John Wycliffe, 1330-84)을 따랐던 롤라드(Lollard 14세기)파 성도들, 콘스탄틴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화형당한 존 후스(John Hus 1372-1415)를 따랐던 후스(Hussites)파, 그들이 복음을 전하여 타보르(Taborites)파, 형제단(Unity of Brethren), 모라비안(Moravians)파로 복음을 증거하였고 킹제임스 성경 직전의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을 따랐던 성도들, 그들이 길고긴 로마 카톨릭의 짐승의 터널을 뚫고 세상을 구해왔던 예수님의 두 증인들 곧 재침례교도(Anabaptists)들이였으며 스위스의 개혁파 쯔빙글리(Zwinglions)등의 모임들이 일천이백육십년이란 짐승의 전성시기에 세상에 복음을 증거했던 두 증인들이였습니다.
 
  두 증인들은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베옷은 회개의 상징입니다. 교황권의 태양신 숭배 십자가 형상표를 받고 우상을 따르던 영혼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증거할찌라도 역사에서 음녀는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계2:21). 예수님의 첫 설교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4:17)였습니다. 죄악 세상, 멸망받을 세상을 보고 상한 심령을 가진 굵은 베옷입은 교회들, 그리고 짐승의 극악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죄인들의 양심을 찔러 괴롭게하는 불같은 말씀이(계11:5) 그들의 분노를 일으켜 스데반을 죽이던 것같이 교회를 박해하기 때문에 받은 고난의 굵은 베옷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토해졌습니다(계11:5). 복음의 불, 말씀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바티칸의 무리들, 심지어는 교황까지도 성도들을 죽이면서도 증인들의 설교에 양심이 찔렸습니다. 그들의 가슴을 불태웠던 두 증인들의 설교가 오늘날에도 계속 울려퍼져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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