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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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종류의큰이단교리들-거짓교리의 미혹들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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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종류의 큰 이단 교리들- 거짓 교리의 미혹들  
나온곳: www.biblenews.net
 
네 종류의 큰 이단 교리들 - 거짓 교리의 미혹들
 
[성경적인 교리]
존 R. 라이스
 
 
             1. 첫번째 이단 교리 - 극단적 칼빈주의
 
  나는 이것들을 이단이라 말한다. 나는 다른 악하고, 비 성경적인 교리들과 같이 그것을 이단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과 진리의 반대편이다. 그것은 성경을 왜곡한다. 그것은 성경대로 믿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한다. 그래서 강경한 칼빈주의는 거짓교리이다.
 
  칼빈의 시대에 그가 선행과 교회에 의해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 카톨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시고 그들을 지키신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많은 선한 사람들이 칼빈주의자 또는 온건 칼빈파라고 스스로를 칭했기 때문에, 나의 말하는 바는 이상스럽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얻도록 예정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지옥가도록 예정되어 있으며, 결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문제는 기만적으로 거짓 성인 어거스틴에 의해 서서히 가르쳐기 시작했다. 천년 후 칼빈은 그를 따라, 칼빈주의의 5개 신조라 불리는 것을 공표하였다. 그것은 성경의 교리가 아니라 칼빈의 교리이다. (어거스틴은 후에 예정론을 철회했다-역자 주)
 
 
  칼빈의 5개 신조는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와 영속이다. 먼저 전적 타락부터 살펴보자.
 
 
                                 (1)전적 타락
 
 
  인간은 죄인이다. 죄 중에 잉태된 모든 인간은 죄와 범죄 가운데 죽는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가진 문제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회개하게 하실 때까지는 인간은 회개할 수 없으며, 그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개할 수 없도록 결정하셨다고 믿는 것이다.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하지 못할 것을 결정하셨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인데, 성경은 어디서든 하나님께서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7:30에서 바울은 불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이....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따라서 구원의 복음, 구원의 주어짐은 어느 곳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권리는 없다.
 
 
  고넬료가 구원받은 이후, 이방인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것을 전에 이해하지 못했기에 매우 놀란 유대인들은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 몇몇 이방인이 아닌, 선택받은 이방인들도 아닌,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은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 인간이 항상 그에게 주어진 것을 얻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회개할 수는 있는 것이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침례자 요한은 "내가 그 빛이 아니요 예수께서 그 분이시라"고 말하였다. 이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빛, 죄에 대한 어떤 자각, 구원 얻을 어떤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 12:32,33) 양심으로나 복음으로나 죽음의 두려움으로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악한 자라 할 지라도,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형태의 끌림, 어떤 부르심, 어떤 열린 문, 어떤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사형틀에서 피 흘리시며 죽으신 구세주인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18-20)
 
  어떤 죄인도 구원얻지 못한 것을 핑계할 수 없는 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조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으로 자기들이 죄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모든 사람이 초대받았고, 각각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모시는가 거절하는가에 대한 책임을 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 19:1)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4) 이와같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물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시 19:7)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잇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어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롬 2:11-16) 그는 결코 십계명에대해 듣지 못했지만, 그러나 살인이 잘못 임을 안다. 그는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은 마음에 그것을 두셨다. 예수님, 세상의 빛이 모든 악한 심령 위 어느 부분엔가 빛을 비추심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양심으로 자신들의 죄들에 대해 알게 하신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악해도,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할 정도로 악하지 않다.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리고 말씀은 빠르고 강하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부르시고, 모든 죄인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2) 무조건적인 선택
 
 
   선택, 좋다 - 그러나 무조건적인 선택은 아니다. 성경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8,29) 누구를 하나님께서는 천국가도록 미리 정하시고, 예수님의 형상대로 확정하셨는가? 그분이 미리 아신 자들, 그분이 시간 전에 아신 자들은 구주를 믿을 것이다! 여기에 선택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들은 예수님께로 돌이키고 예수님을 믿게되리라는 것이 선택의 근거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 때, "나는 천국으로 그들을 인도할 것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택하심을 입은 자들? 그렇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과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택하실 때, 그 택하심은, 인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이킬 것을, 그가 복음을 들어 구원을 얻게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결코 지옥갈 자나 천국갈 자를 영원부터 결정지으신 사실은 없다.
 
 
                              (3) 제한된 속죄
 
 
  제한 속죄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단지 그것의 일부만을 - 구원하시기에 충분토록 -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일부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제한된 은혜이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예수님은 세상 죄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말씀하신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라고 침례 요한은 말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세상 일부의 죄만을 의미한다 하는가? 예수님의 죽으심은 온 세상 죄를 담당키 위하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아담의 죄로 인한 추방 때문에 타락하게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인간은 자기 죄들에 의해서, 자신이 알고있는 죄들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그리고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 이것은 제한된 속죄가 아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예수님께서 온 세상 죄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보다 분명한 것은 없다.
 
  어떤 이들은 "주권적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결정할 기회를 주시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결정하신다, 그의 의지에 반해서, 혹은 그를 위해서? 아니다! 거기에 어떤 단어(주권적 은혜)도 더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사랑하고 믿습니다 혹은 미워하고 경멸하므로 떠나갑니다라고 말할 권리를 죄인들은 갖고 있다.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죄인의 손에서 빼앗지 않으신다.
 
  세상의 모든 죄들과 관련하여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만일 백만명 이상의 죄인이 있다면, 그들 모두를 위해 충분한 은혜가 여전히 존재한다. 결코 "제한된 속죄", "제한된 은혜", "제한된 사랑", 그리고 제한된 구원의 기회에 대한 이야기에 속지 말라.
 
 
  스펄젼(Spurgeon)도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죄인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냄으로써, 그들에게 내가 보내는 초대장에 대해 어떤 형제들은 크게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사람은 하나님 말씀에는 일반적 초대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도록 청해졌다는 확신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러나 여기 분별할 자격조차 갖춰지지 않은 죄인들을 부르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발 끝 부터 머리까지 완전히 타락했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그는 덧붙여 말했다, "오늘 아침 나는 커다란 그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불가항력적인 은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으신다. 따라서 그가 회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죄인들의 결정이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아니다;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최고의 은혜이지만, 그들에게 강요되지는 않는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모으려" 하셨으나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은혜는 결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다. 은혜는 주어졌지만, 자의에 의해 거절되었다. 따라서 누구도 하나님의 주신 것이 불가항력적이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이것 역시 거짓 교리이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잠 1:24,25) 하나님은 그분의 손을 벌리셨고, 죄인들은 그것을 잡지않으려 했다. 하나님은 기꺼이 사람들을 구원하려 하시지만, 그들은 구원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은혜가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갈 2:21).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 사람들도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지 않는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분에게 사랑을 되돌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모습으로 닮아가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따라서 은혜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마음이 강퍅해져 결국 성령이 그들과 씨름하시기를 중단하기까지, 그들이 구원 얻지 못하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5) 성도의 영속성(永續性)
 
 
  영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말씀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지,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양심을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그른 것과 옳은 것을 분별케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그 양심에 책임지도록 하셨다. 당신이 악한 마음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그분은 악한 영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계신다! 당신의 어두운 영혼을 밝히는 빛이 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그 빛이다.
 
 
  인간은 자기의 책임이 아닌 것들로 인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죄들로 인해 심판대 앞에 서게된다. 도덕적 의무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그분은 강제하실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너는 지금 가서 6월 30일에 시카고에서 태어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출생일 문제를 정하신다. 하나님은 옳고, 그름 그리고 도덕적 의무와 영적 의무와 상관없는 것들을 결정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누구도 그릇 행하게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옳바르게 행할 기회를 주신다.
 
 
  죄인이여, 당신이 할 수 있을 기회에 회개하십시오!
 
  구원받기 원하는 자는 오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두번째 이단 교리 - 침례로 구원받는다
 
 
  '침례가 구원받는 데 필수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의견은 구원을 얻는 것이 행위에 의해서냐, 예수님 피로만 구속된다는 믿음으로냐는 문제와 관계된다고도 할 수 있다.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어느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원을 가르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살 수 있고, 구원받을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 그 하나고, 하나님의 선물로서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둘째이다. 이는 인간의 의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의와 불쌍한 죄인들인 우리들을 대신하시기 위한 주님의 구속을 위한 죽음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침례는 단지 구원받은 첫 고백일 뿐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사도행전 16:31,32에서, 불쌍한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서는 묻는다,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였다."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께로 돌이킴 혹은 그리스도인이 되어감을 일컬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용어이다.
 
  누가복음 7장의, 불쌍한 죄인인 한 여자는 예수님께로 와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50)하셨다. 그녀는 구원을 얻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저를 믿는 자는 심판(정죄 - KJV)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구원받는다는 것은 당신이 정죄되지 않는 것이다. 즉 당신의 죄들이 사해졌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2장에서, 가버나움의 한 중풍병자가 지붕을 통해 달아내려졌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다. 구원받음으로 해서, 우리는 정죄되지 않으며, 당신의 모든 죄들도 사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 3:36)
 
  "내가 진실로 진시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정죄-KJV)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님을 믿고있는 자는 지금 영생을 가지고 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요 5:24). 예수님에대한 복음 즉, 주님이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듣고, 구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다. "믿는다"라는 단어가 침례를 받게된다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는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에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자.
 
 
                       행위없이 은혜로만 얻어지는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값으로 사는 구원에 관하여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써 값없이 받는 구원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는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인간 스스로의, 외형적인 씻음이 아니라 내면에서의 예수님이 하시는 중생의 씻음으로. 당신이 주님을 믿을 때, 주님께서 친히 당신의 내면을 깨끗케 하시고, 당신의 본질을 바꾸시며, 당신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다. 만일 구원이 침례에서 출발한다고 당신이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그릇된 생각들을 버리자.
 
 
  이제 사람들이 성경에서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는 침례에 관한 몇 구절을 살펴보자.
 
(1)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가복음 16:15,16)
 
 
침례를 받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가? 한 사람이 침례를 받을 때, 그는 이미 구원을 얻었는가? 만일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는 구원을 얻고, 그 후 구원을 얻은 외적 간증으로 침례를 받게된다.
 
 
  위의 성구에서 누가 정죄를 당하는가?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해답이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믿어 예수님으로 부터 구원의 공로를 가로채는가? 그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길 원하는 것은 이미 악한 것이다. 침례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2)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8,39)
 
  베드로 역시 침례를 받으라고 설교하였다. 그러나 먼저 회개하라 하였다. 인간은 회개할 때, 구원을 얻는다. "(KJV-너희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5)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회개는 소위 믿음의 다른 면이다. 믿게됨으로써 죄로부터 돌이킨다. 그것이 바로 회개이다.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것은 마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행동이다.
 
  만일 내가 세상에서 천국으로 갈 때, 나는 세상에서 출발하지만 천국으로 가고 있다. 그것은 오직 한 여행, 한 의지이다. 당신이 믿음이라 부르든, 회개라 부르든, 구원이란 죄로부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성구에서 베드로는 죄사함을 받기 위해 침례를 받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즉 당신이 회개할 때 당신은 구원을 얻고, 침례는 구원의 외적 표현이다. 죽어 장사 지낸 옛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을 살기 위해 이제 다시 산 것이다. 침례는 죄에 대한 회개, 또는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표시해주는 것이다.
 
 
(3) "저가 또한 영으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19-21) 예수님은, 지금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셔서 전하셨다. 그분은 홍수 전, 노아의 날에 그들에게 성령으로 전하셨다. 위 성구에 침례가 구원한다고 말씀하시는가? 아니다, 침례는 구원의 표이며, 또한 구원의 방법을 표시해 준다. 침례는 이제 죽었다고 간주된 옛 죄인을 장례 치르는 것이다. 그는 옛사람에게 "잘가; 나는 이제 예수님을 위한 새로운 삶을 살겠어. 나는 새 영혼을 가지고 있어. 나는 천국을 향해 가고 있어.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야." 그것은 선한 양심의 대답이다. 그의 죄들은 용서받았다. 그 표이다. 마치 주님의 만찬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을 수 없으나, 주님의 만찬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의 모형을 보는 것이다.
 
 
  침례는 복음을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일으키신 변화를 보인다. 그것은 믿음의 공개 자백이다. 그것은 구원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당신이 이미 구원을 얻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침례는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가진 구원을 드러내는 방법, 구원을 선언하는 방법이다.
 
 
(4)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이 말씀 역시 침례가 당신을 예수님께 합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주님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따라 침례된 것이다. 즉, 침례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죄의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는 그분을 믿는다. 구원의 문제는 예수님을 믿을 때 해결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침례없이 구원얻은 몇가지 예
 
 
  첫째, 지상에서 예수님 사역 당시에도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다. 그분은 죄인된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녀는 침례 없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 갈보리 형틀의 도둑에게도,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 날에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도둑은 침례를 받기 위해 형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성경에서 구원을 얻는 모든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처럼 구원을 얻었다. 행 10:43 "저(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구원의 계획은 신약과 구약에서도 동일하다. 만일 침례가 신약에서 필수적이라면, 누구도 침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구원을 얻지못했다는 말인가?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에 대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고 말씀하신다. 한편,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에 대한 본보기로 제시된다.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은 구원받으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셨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으시다. 그러면 왜 그분은 침례를 받으셨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와 부활을 친히 보여주셨고,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사망에서 부활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친히 공개적으로 이루셨다. 우리는 침례로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다시 사신 것과, 언젠가 나도 다시 살 것을 믿는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침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죽었음과 그의 장례치름 그리고 부활의 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십시오.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침례의 참 의미대로 옛사람은 죽고, 다시 산 새사람으로 예수님을 좇는 기쁨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3. 세번째 이단 교리 -
            방언(Tongues)과 카리스마 성령은사 운동의 이단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다른 언어들 -KJV speak with other tongues)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경에서 방언(영어 성경 tongues)은 외국어를 의미한다. 사도행전 2장에서 재자들은 사람들에게 각각 그들의 모국어로 말하였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큰 무리가 모여" 그리고 각각 자기의 방언들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방언들은 언어 즉 사용하고 있는 외국어들을 말한다.
 
 
  오순절날 이 사람들에게 외국어로 말하는 능력을 주셨다. 왜? 그들은 지상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땅끝까지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유하라"(눅 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제 증거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 각지에서 모인 자들은 말했다,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각 지역의 말들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물론, 성령 충만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기록 당시에 얻을 수 있던 것을, 현재도 얻을 수 있다. 성경은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하신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사도행전 2장, 제자들의 성령으로 충만됨, 성령으로 침례받음, 성령을 물 붇듯 부음 받음,  성령이 임하심, 성령의 선물은 특별한 권능을 부여 받았드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일을 하신다. 성령의 충만함이나 성령의 침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을 좇아 성령의 역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 은사들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기록된 모든 은사들 중 어떤 것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다 사도겠느냐?"(고전 12:29) 분명히 '아니다'. 당시에도 오직 12명뿐이었다.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행하는 자겠느냐?" 이러한 여러 성령의 사역들은 모든 사람 각자에게 동일하게 있는 것이 아니다.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모든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들은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주심을 성경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들을 그분의 의지대로 분배하신다.
 
 
                    성경적인 방언의 은사: 참 의미
 
 
  성경에서 방언의 은사는 한 사건-오순절-에만 주어졌고, 그 밖의 다른 두 경우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고전 14장, 행 10장, 그리고 행 19장에서 그것이 방언의 신비한 은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즉 미지의 언어로 말을 하는 신비한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다고 확실하게 알려진 단 한 사건은 오순절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떤 것이었나? 모인 무리의 각 사람의 태어난 곳 방언으로 말하는 능력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들었고,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배웠다. 즉, 이 사건은 약속의 이행이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경에서 방언으로 말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외국어로 말하되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최후의 그리고 최소의 은사였다. 현재는 그 시대보다 방언의 은사가 훨씬 적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데, "오, 하나님, 라틴어로 설교하게 해주십시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방언은 결코 "성령 침례의 대표적 확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성경은 방언이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능력,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결코 성령 충만의 증거로 방언을 말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린다거나 혹은 다른 성령 충만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성경은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령 충만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것을 위해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은사를 받았다.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바라는 것은 옳은 일이다. 성경이 말씀하시기에, 성령 침례를 원하는 것은 옳다. 크리스쳔은 권능을 개인적으로 부여받을 수 있다. 성경은 "성령 충만"을 자주 말씀하시며, 또한 "성령의 부으심", "성령의 침례", "성령의 은사"라고 언급하신다. 눅 24장에서 그것은 "위로부터 입히운 능력"(눅24:49)이라 하셨다. 오늘날의 크리스쳔들도 합당하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사람들이 그것의 대표적 확증으로나, 성령 충만의 어떠한 증거로 방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없다.
 
 
            결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방언이 요구되지 않는다.
 
 
  성경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방언을 하지 않으셨다. 바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너희들 모두 보다 여러 말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그는 자연적인 언어를 염두해 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아람어와 표준 히브리어를 말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코이네 헬라어로 대화하였고, 모든 편지를 그것으로 썼다. (신약의 14편지) 그는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어로 말씀을 전했다(행 21:40). 바울은 적어도 세 개 언어를 말할 수 있었다.
 
 
  방언은 결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웅얼거림(알지 못하는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이 결코 자신이나, 타인의 가르침을 위해 어떤 언어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없으며, 또한 그의 말을 타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기록도 없다. 성경의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방언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오순절을 제외하고 성경에서 확실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외국어를 의미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19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비한 은사로서의 방언은 오순절을 제외하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 역시 참석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어 주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3천명이 구원을 얻었다.
 
 
             최고의 은사: 능력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구해야 하는가? 아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 13장에 가장 좋은 은사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14장에는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믿는 자들이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이다.
 
 
  믿는 자들은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를 구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여, 구약이나 신약의 예언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전해야 한다. 그것이 예언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언(말씀증거)할 수 있기를 구해야한다.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한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주님의 성령을 제게 임하게 하소서, 주님 그리하여 제가 가서 능력으로 증거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러나 누구도 "주님, 방언을 원하옵나이다"라고 기도하지 말라. 왜냐하면 방언 은사는 이미 폐해졌기 때문이다.
 
 
                    방언을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종종 가장 신실해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약간 감정적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쳐지지 않아서, 종종 방언의 그릇된 길로 인도된다. 하나님은 예언(말씀의 대언)이나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구하라고 하셨다. 방언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다. 즉,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구하라고 명령되지 않았다.
 
  방언은 반드시 있어야할 영적 축복이 아니다. 현대의 방언 운동은 결코 옳지 않다. 수많은 카톨릭 신자들도 방언을 한다. 그들은 노틀담 대학이나 다른 장소에서 만나서, 방언으로 대화한다. 그들은 성경을 알 필요가 없다.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을 필요도 없다. 심지어 마음을 변화시킬 필요도 없다. 카톨릭 신자들은 죄인을 용서해주는 신부에게 의존하면 된다. 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할 수 있다. 그들은 그 모든 것과 함께, 방언을 할 수 있다! 그러한 방언은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고, 어긋난 믿는 자가 되게 한다.
 
  믿는 자들 중에도  그런 우연적이고 외부적인 표시를 얻고,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는 데, 그것은 슬픈 일이다.
 
 
                   방언을 하지 않는 자는, 확신할 수 없는가?
 
 
  나는 중풍성 섬망증을 앓은 적이 없다. 술에 취한 적도, 약물 중독이었던 적도 없다. 나는 경험을 통해 그것이 잘못임을 안 것이 아니다. 나는 성경에서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으로 내가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하는지, 소위 자신을 즐겁게할 수 있는 무아경의 언어의 웅얼거림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한 영국 국교회 예배당에서는 토요일 밤 무도회를 갖는다. 그후 주일 밤 에큐메니칼(연합)운동과 신령한 의술 치료가 행해진다. 외부적인 형식만을 가진 체, 바르게 하나님 과 교제 나누고 있지 않는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영적인 사람이다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이 아무리 신실하거나 혹은 그런 척 하거나. 믿는 자들은 성경을 따라야 한다. 성경의 계획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따라 그것을 위한 은사, 예수님을 증거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은사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능력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죄인들과 아야기할 때,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바라며 주님을 섬긴다면 물론이다.
 
   전도 사역에서 위대했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방언을 하지 않았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위대한 영혼 구원자들, 스펄젼(Spurgeon), 무디(D.L.Moody), 토레이(R.A. Torry), 챨스 피니(Charles G. Finney), 집스 스미스(Gipsy Smith), 윌리암 비돌프(William Biederwolf), 밥 죤스(Bob Gones). 나는 이들 중 누구도 방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시지 않았다면, 왜 그들이 해야하는가? 그들이 짊어진 짐은 단 하나 주님 주신 명령 -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 역시 이것을 제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잘못 인도된 길을 가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따르는 대신 자기가 가진 감정, 느낌, 누군가의 말과 증거들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구하는 하나님의 능력 대신 우발적인 감정적 경험을 원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도록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베드로는 말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주님은 영혼을 구하라고 명령하셨고, 그분과 그 명령에 순종하도록 성령을 주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도 이를 위함이다. 믿는 자들은 그 능력, 성령의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영혼 구원을 바라야 한다. 그 다음은?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구해야하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청해야하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구한다"는 현재 시제이며, 계속되는 행동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갖기를 원하거든,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라.
 
 
  영혼을 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게되었음을 당신이 진정으로 알게될 때, 그 만족함과 기쁨과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4. 네번째 이단 교리 - 병고침이 반드시 주님의 뜻이다
 
 
주님의 거룩한 치유(신유은사)에 대한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다. 성경적으로 상고해보자.
 
 
  "너희 중에 병 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 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때때로 주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고치신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한다. 예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까지 동일하시다. 성경시대와 꼭 같이 성령의 권능을 우리는 입을 수 있다. 주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을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항상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아니며, 또 누구에게나 매일 행하시는 것도 아니다. 침례 요한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바울은 한 번 죽은 자를 살렸다. 베드로도 한사람 일으켰다. 즉 매일 매일,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고침에 대해 여전히 성경은 말씀하신다. 성경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많은 경우에 놀랍게 고쳐주셨다. 병자를 치유하시는 것이 반드시 주님의 뜻은 아니지만, 때때로 주님은 그것을 뜻하시고, 주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의약으로 하지 못하는 것도, 주님께서 의사들과 의약을 사용하여 하신다. 주님은 심지어 복음을 전파하시는 데도 여러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성경과 복음서적들을 보급하기 위해 인쇄 도구들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라디오를 사용하신다. 주님은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여러 방편들을 사용하신다. 복음을 위해 주님은 때때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신다.  
 
 
                   병고침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신유은사에대한 이설들, 거짓 가르침들이 있다.
 
 
첫째,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님께 세 번 이것에 대해 기도드렸다. 그것은 육체의 가시요, 그의 육신의 가시요, 그의 건강의 가시였다. 바울이 세 번 주께 간구하였으나 주님께서 그것을 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바울의 육체에서 가시를 치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는,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포도즙을 의미한다. "자주 나는 병". 왜 바울은 "우리는 네 병이 완치되기를 기도하겠다"고 쓰지 않았는가? 오늘날,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닌 것과 같이, 그 당시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디모데후서 마지막 장에서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드로비모는 병 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4:20). 왜 바울은 그를 치료하지 않았는가?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항상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요"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치유는 일시적인 것이며, 부분적인 것이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 역시 후에는 병들고 죽었다. 치유된 사람도 다시 죽을 것이다. 즉 오늘날의 모든 치유는 다른 중요한 일들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이다.
 
 
 
육신의 건강에 대한 그분의 놀라운 도우심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건강에 대해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아니라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죽겠는가? 하나님은 죽음을 일시적으로 연기하실 수는 있지만 그것은 연기일 뿐, 제거는 아니다. 병고치는 일을 하는 것과, 주님께서 치유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를 치유하신다는 가르침은 그릇된 것이다. 주님이 믿는 자들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한편 주님은 바울이 육체에 가시를 가지고 있기를 원하셨다. 주님은 디모데가 그의 "자주 나는 병"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셨다. 즉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언제나 주님이 뜻하시는 바는 아니다. 또한 특별한 사도적 신유은사도 이미 폐해졌음을 알아야 한다.
 
 
  매우 성경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때로 의사와 약을 사용하는 것이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치유하심을 믿기에 비타민 같은 것을 먹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이다. 그러나 병고침은 반드시 주님의 의지가 아니며, 때때로 주님의 의지일 뿐이다. 만일 하나님이 병고침에 대한 믿음을 주셨다면, 그분은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병고침에 대한 믿음을 주시지는 않는다.
 
 
  "약을 복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히스기야는 병들었고 죽기 직전이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십 오년 동안 그의 생을 연장해 주셨다. 사람들은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였고 그는 나았다. (사 38: 21).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인가?
 
 
  신약에서 바울은 누가에 대해 "사랑받는 의원 누가"(골 4:14)라고 기록하였다. 의사되는 것이 나쁜 것인가? 누가는 누가복음을 썼고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그는 "사랑받는 의사"였다. 의사는 하나님의 정직한 하인일 것이다. 그가 치유를 도우는 만큼 그는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항상 의사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의사들이 현명하다 해도, 그들은 불쌍하고 타락한 인간으로서 거쳐야하는  과정을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병고침에 너무 사로잡혀 항상 약을 찾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적당한 식사, 운동, 휴식, 돌봄,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믿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많은 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이 약이 된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인간적인 것을 우선으로 하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을 취하되, 주님께 그 방법과 의사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 주님이 의사에게 은헤를 더하여 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의료 수단들을 사용하실 수 있으며, 그것들 없이도 놀랍게 그것을 하시지만, 결코 후자의 치유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의사와 약 그리고 적당한 식사와 운동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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