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진리 분별

기독교안에스며든누룩들 1.용어편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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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에 스며든 누룩들 -1 용어편  
“사랑받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들어왔음이라”(요일4:1, KJVB)
 
 
 
(1) 목사가 제사장(祭司長)인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KJVB)
 
 
 
  제사장(祭司長)이란 직분은 성경의 레위인을 제사장 지파로 부르시기 전에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애굽 땅에는 이미 태양신을 섬기는 ‘온’ 제사장이 있었다(창41:45, 47:22). 또 미디안 땅에도 제사장이 있었는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그 제사장이었으며 우상을 섬기는 블레셋 제사장도 있었다(삼상6:2). 그리고 바울 시대에도 쓰쓰(주피터) 태양신 제사장이 있었다(행14:13).
 
  이렇게 각각 다른 이교제사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우상에게 제사를 할 때 의식집행자를 두고 말하는 제사장들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세계 민족들의 ‘제사장 나라’ 또는 ‘제사장 민족’(출19:6, 사61:6, 66:2)들로 호칭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제사는 “피흘림으로 얻는 속죄”를 집행하는 레위 민족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레위 지파를 제사장 민족으로 부르시고 30세부터 50세 까지의 남자만 아론의 후손들로 택하셔서 희생 예물을 통해 죄사함을 얻는 의식을 집행하도록 하셨다(민7:47-54, 3:5-11).
 
  여기서 모든 희생예물은 예수님을 의미하며 제사장은 구원얻은 성도들, 대제사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뜻한다(히4:14-16).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시며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사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피 안에서 모두 끝나버렸기에 더이상 제사, 제사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히7:17-19). 모든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이 만인 제사장 원칙 하에서 제사장으로 비유하여 부르고 있을 뿐 교회에 목사나 누구든지 구약의 제사장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를 ‘제사’라고 부르거나 목사를 '제사장'으로 부르는 행위는 구약으로 뒷걸음질하는 행위인 것이다.
 
 
 
(2) 지금도 제단(祭壇)을 쌓는가?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위 단을 쌓고...”(창8:20)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12:7)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규빗 광이 오규빗의 단을 만들며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규빗으로 하고...”(출27:1)
 
“너희 어리석고 맹인된 자들아 어느 것이 더 크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그 제단이냐”(마23:19, KJVB)
 
 
 
  오늘날 ‘새벽제단을 쌓는다, 가정 제단을 쌓는다, 기도제단을 쌓는다’라는 용어는 모두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제단이란 용어는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제단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 미츠바(mizbeach)라고 하는데 희생예물을 도살하고 그 예물을 드리며 향을 태우는 곳으로 영어로는 ‘Altar’인데 그 뜻은 ‘도살하는 장소’에서 유래되었다.
 
  때문에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쌓은 단이나 모세의 성막의 뜰에 있는 제단은 모두 예수님의 골고다 희생을 뜻하고 성막 뜰의 제단에서 수많은 동물이 희생되어 피흘려 이스라엘의 속죄를 이루었음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제단에서 자기의 피를 흘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히9:12)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제단’도 ‘제단 쌓는 일’도 끝나버렸다.
 
  오늘날 ‘제단을 쌓는다’는 의미는 다분히 이교우상숭배인 ‘정성을 쌓는다’, ‘불공을 드린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가정 제단도, 새벽제단도, 기도제단도 성경적인 용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제단은 골고다에서 끝나버렸고 더 이상 쌓는 것은 없다. 다만 구원얻은 자들의 '진리를 쌓는 일'과 죄인들의 '죄를 쌓는 일'이 있을 뿐이다(마12:35-37). 당신은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
 
 
 
(3) 지금도 제사(祭祀)와 제물을 드리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긍휼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나니 너희 몸들을 하나님께 거룩하고 기쁘게 받으실 살아있는 예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KJVB)
 
“그러므로 그 분을 통하여 우리가 찬양의 희생 예물을 하나님께 항상 드리자 이것이 그 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들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기꺼이 나누어주기를 잊지 말자 이러한 희생예물들을 하나님께서 심히 기쁘게 받으시느니라”(히13:15-16, KJVB)
 
 
 
제사는 히브리어로 ‘제바흐(zebach)’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나가기 위한 의식을 뜻하고 그 제사는 반드시 희생 예물이 동반되었다. 최초에 제사를 드린 이는 아벨이었고(창4:4) 피없이 제사했던 가인의 제사와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여기서 제사는 어떤 종교, 예배 의식이 아니라 죄를 짊어진 희생이 피흘려 죽는 의식이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자기를 드려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드려 이루셨기 때문에(히7:27, 9:12-14, 9:26, 10:10-18) “이제는 이것들을 사면하셨은즉 더 이상 죄를 위하여 희생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히10:18 KJVB)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의식을 제사라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다만 생활, 찬송, 사랑을 제사로 비유만했을 뿐이다.
 
  또한 ‘예물(Offering)’이란 죄를 넘겨 받는 속죄 제물을 뜻하는데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들인 황소, 암송아지, 양, 염소들, 산 비둘기, 집 비둘기, 산 새들은 모두 예수님의 모형이었고 예수님 희생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다.
 
  때문에 오늘날 예배를 제사로 부르거나 헌금을 제물, 일천번제물로 부르는 용어는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갈2:18) 다른 복음인 것이다.   
 
( 4 ) 건물이 성전(聖殿)인가?
 
 
 
“또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기초 모퉁잇돌이 되셨으며 주님 안에서 모든 건물이 서로 맞추어져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ναοσ-naos)을 되어가고 또한 주님 안에서 너희도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져 있느니라”(엡2:20-22 KJVB)
 
 
 
  성전(Temple)은 히브리어로 ‘히칼(Hekal)’이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건물을 뜻하는 ‘히에론(ιερον-Hieron)’과 모임을 뜻하는 ‘나오스(ναοσ-naos)’가 있다.
 
  구약성전은 모세성막(출25:1-9), 솔로몬의 성전(왕상5:3-5), 스룹바벨성전, 헤롯성전(요2:13-20)이 있다.
 
  그러나 헤롯 성전은 서기 70년에 파괴되어 버렸고 하나님은 예수님 몸의 그림자였던 성전을 폐기시키심으로(마27:51, 히10:19-20) 주님의 몸된 교회(모임)를 참 성전이라고 하셨다(마18:20, 고전3:16-17, 살후2:4, 엡2:21).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당은 예배당, 교회당뿐 성전이 아니다. 성전 건축이란 말은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다. 예배당 건물이 결코 성전이 될 수 없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니, 그 분은 손들로 지어진 신전들에 거주하지 아니하시며...”(행17:24 KJVB)
 
 
 
(5) 예배를 드리고 끝나는가?
 
 
 
“그러나 참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KJVB)
 
 
 
  예배(禮拜)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엎드려 드리는 경외심과 외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예배(worship)는 일반적으로 공경의 대상에게 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율법의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 의식에 따라 드렸으며 이교 예배는 우상에게 하는 제사의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 산(그리심산)에서도 말고 살아있는 영으로 진리와 더불어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셨다(요4:19-24).
 
  그것은 장소, 의식, 시간 개념을 없애버리고 심령이 죄사함 받아서 24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진정한 예배 생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예배생활, 예배 삶이 있을지언정 예배가 끝날 수는 없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참 예배의 간증에 불과할 뿐 11시부터 12시까지 의식이 예배드렸고 예배끝났다는 생각은 다분히 카톨릭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다.
 
 
 
(6) 주일 성수란 용어?
 
 
 
“너희는 날들과 달들과 때들과 해들을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갈4:10 KJVB)
 
 
 
  구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는데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하고 일을 해서도 나무를 해서도 안되고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와서도 안되는 것이 율법이었다(출12:16, 레23:39, 민15:32, 렘17:21, 출31:14)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율법이었고 안식일의 주인(마12:9)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였다(골2:16-17).
 
  주일은 주 예수님이 부활한 일요일로서 사도들이 모였고(행20:7)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받은 날(계1:10) 성도들이 모여 연보를 한 날(고전16:1)이였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날마다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다른 날을 끌어내리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주일이며 날마다 성수해야 할 것이 아닌가?
 
 
 
(7) 학습세례 문답은 어디서?
 
 
 
“그 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니 그 날에 약 삼천 명의 사람이 그들에게 더하여지더라”(행2:41 KJVB)
 
 
 
  성경은 본래 침례(Baptism)이다. 세례는 씻는다는 용어일 뿐 물에 잠겨 함께 죽은 용어는 아니다. 세례는 콘스탄틴이 만들어 놓은 의식으로서 로마 천주교가 성세성수(聖洗聖水)할 때부터 생겨난 의식이다. 학습세례는 먼저 학습을 받은 후 세례를 주는데 로마 카톨릭은 수세(水洗)가 있고 혈세(血洗)가 있고 ‘화세’가 있다. 모두 개신교로 넘어와서 오늘날 학습문답, 세례문답으로 변경된 것이다.
 
  유아세례 역시 로마 카톨릭에서 유래된 것인데 카톨릭은 아기가 출산하면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성수(聖水)를 뿌리고 십자가형상을 표식(666)하여 죄악을 씻는다고 한다. 여기서 유아세례가 유전되었다.
 
  세례, 유아세례는 모두 바벨론에서 시작된 로마 카톨릭 유전이다. 또한 구약의 할례가 유아세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칼빈이 주장한 구약의 할례는 결코 유아세례의 모형이 아니고 죄의 몸을 끊어버리는 그림자인 것이다(골2:11).
 
 
 
(8) 성령대망회는?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우리 모두가 한 성령님에 의하여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님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KJVB)
 
“이제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분께서 또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고후5:5 KJVB, 엡1:13, 4:30 참조)
 
 
 
  성령님은 오순절에 한번 세상에 강림하셨고 성령님으로 거듭난 때, 성령님으로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거듭나는 순간 성령님을 동시에 받는다.
 
  구원받고 따로 성령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중생은 곧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미 오신 성령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으로 단회적이며, 인쳤기 때문에 영원하다. 
 
  성령충만은 날마다 필요하겠으나 성령님은 한 번이기 때문에 ‘성령대망회’란 용어는 비성경적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9) 성령쇄신운동(聖靈刷新運動)은?
 
 
 
  1967년 미국에서 시작된 신비주의 은사운동 중의 하나로 1696년부터 로마 카톨릭 수녀원, 수도원에 유입되어 오늘날 로마 카톨릭이 즐겨쓰는 용어이다. 이 운동의 목적은 오순절 성령강림 체험을 그대로 재현해 보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 영성운동, 영성개발, 치유신학이란 용어로 개신교에 침투했다. 소위 성령의 죽음이란 쓰러지는 현상은 완전 귀신의 장난에 불과하다.
 
  “성령충만을 받으라”(엡5:18)고 했으나 사람이 스스로 성령을 쇄신할 수 없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 은사운동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늘날 이 운동의 이름으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오순절 은사 운동가들이 연합하여 계시록의 음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계17:1-5)
 
 
 
(10)현대 방언(方言)은 지역 언어인가? 알아듣지 못할 잡소리인가?
 
  “그런데 우리 각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의 언어로 듣게된 것이 어찌된 일인가”(행2:8 KJVB)
 
 
 
방언(方言)은 당시 지역에서 언어로 활용하는 말들이었다. 초기 바벨탑을 쌓을 때는 ‘하나의 언어’(창11:1)이였으나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케하셔서 혼잡이라 ‘바벨’이 된 것이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이방 지역 언어를 배운 적이 없는 120여명의 성도들이 16개 지역에서 흩어져 살다가 오순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교도들에게 그들이 알아듣는 말(방언들)로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큰 일)를 증거한 언어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방언이란 온 세계에서 사용중인 언어의 한 부분일 뿐 소위 은사주의자들이 하고 있는 속살거림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잡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의미없는 잡소리를 부인하되 성령님과 성령님의 은사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방언의 은사는 성경이 완료되면서 이미 폐해졌다. 현대 방언주의자들은 대부분 로마 카톨릭과 연합하고 있는 악령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오랄 로버츠, 베니 힌, 짐 베이커, 펫 로버트슨과 한국의 조 목사등이다. 그들은 모두 로마 교황을 영접한 자거나 로마 카톨릭과 연합한 증거들이 있다.
 
 
 
(11) 추도예배는 성경적인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전하신 바,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심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22:31-32 KJVB)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눅9:60 KJVB)라고 말씀하셨다. 추모제, 추모일, 조상숭배, 제사에서 유래된 것이 추도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인데 조상 죽은 날을 기념하여 조상을 기억하며(추모하며), 예배하는 것은 귀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전10:21)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죽은 자를 성인식하고 월요일은 천국의 성인성녀, 화요일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념하는 ‘축일(祝日-festum)’이 있다. 여기서 추도예배가 유래했다. 성경에는 추도예배 명령이 없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만 있을 뿐이다.
 
 
 
(12) 주기도문(Lord's Prayer) 암송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모양으로 기도하라”(마6:9)(After this manner-KJVB)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에 기도문을 암송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런 형식으로 하라고 원칙만 가르치셨고 그 기도는 골고다에서 이루어졌다.
 
‘기도문’이란 용어 자체가 로마 카톨릭적이다. 초대교회는 주기도문 암송이 없었다. 로마 카톨릭은 구도(口禱)와 염도(念禱)가 있고 입으로 기도문을 암송하는 행위는 주문종교, 즉 죽은 의문(儀文) 종교이다. 여기서 ‘기도문’이란 용어는 습관적 암송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다만 습관적으로 암송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도가 이미 응답되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기도만 할 것인가?
 
 
 
(13) 사도신경의 ‘공회(公會)’와 ‘성도들의 교통’은?
 
 
 
  사도들이 만들었다는 신앙조문은 고대 로마 신조(Symbolum Apostolrum)에서 유래되었다. 사도신경의 최종완결자는 로마 카톨릭의 피르민(Pirmin)이였다. 거룩한 공회는 라틴어의 ‘거룩하고 공인된 교회(catholican-라틴어)’를 뜻한다. 카톨릭(Catholic)이란 용어는 고대 바벨론 용어이다. 이것이 오늘날 로마 카톨릭(Catholice Church)을 뜻하기 때문에 암송해야할 필요가 없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The communion of Saints)’을 본래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Sanctorum communionem-라틴어)라는 말에서 나왔기 때문에 카톨릭은 죽은 성인들과 교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톨릭은 죽은 다음 성인식하고 그 성인들의 영혼과 교통한다는 영매술, 초혼술(신18:10, 레20:27)에 해당하기 때문에 암송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중요한 교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의 일부이다. 또 통공(通功)이라는 카톨릭 의식은 카톨릭의 교리인 이 세상 신전교회, 연옥에 있는 망령교회, 하늘에 있는 개선교회 신도들이 서로 기도하여 공(功)을 나눈다는 뜻도 들어있다. 왜냐면 카톨릭교도는 공을 쌓아 의인이 되는데 모자란 공력을 죽은 성인들에게 빌려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즉 공을 나눠갖는 것이다.
 
 
 
(14)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너희 전통을 핑계삼아 하나님의 계명을 무효가 되게 하는도다”(마15:6 KJVB)
 
 
 
12월 22일에 동짓날 해가 짧아서 태양이 죽었다고 믿었고 25일날 태양이 살았다고 믿어 태양신 생일이 되었는데, 12월 25일은 본래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기념일이란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예수님은 10월 초순 들판에 양떼들이 양을 방목할 때였고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 시기였다. 그러나 성탄 생일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이것은 모두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 놓은 유전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트(그리스도)를 미사(Mass)한다는 합성어로 12월 24일 로마 카톨릭이 미사 드리는 풍습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는 완전히 카톨릭 용어이다. 미사는 가증한 바벨론 인신제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개신교에는 미사가 없다.
 
 
 
(15)산타클로스(Santa Clause)의 풍습은?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밭(교회)에 독보리들을 뿌리고 가버렸으나”(마13:25KJVB)
 
  산타클로스는 본래 로마 카톨릭의 성 니콜라오 주교 축일(12월 6일)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신부였는데 가난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가정의 여자의 결혼 자금을 넣어준 것이 선행의 기념이 되어 그가 죽은 서기 352년 12월 6일을 기념하여 시작된 풍습이다.
 
  니콜라오는 라틴어로 상투 니콜라우스(Santus Nicholas)이며 영어로는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로 불렸으나 네덜란드인들은 ‘산 니콜라이스(San Nicholaas)’이며 신대륙(미국)에 이주해서는 산테 클라아스(Sannte Klaas)로 부른 것이 발음의 계기가 되어 ‘산타 클로스’로 부르게 되었다.
 
  그 형상은 이집트 사랑의 신 ‘베스’와 합성되어 오늘날에 유래한 풍습으로서 성경이나 그리스도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산타(Santa)의 어원은 사탄(Satan)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16) 십자군(十字軍-Crusades)은?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싸움을 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생활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택해 주신 분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KJVB)
 
 
 
  성경은 어떤 면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군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군(十字軍-Crusades)’은 그 용어와 출발부터가 사단적이고 부정적이다. 우선 십자가 형상은 바벨론 태양신 숭배의 이교상징으로 신약의 헬라어는 십자가가 아닌 나무기둥을 뜻하는 ‘스타우로스(στανροξ-stauros)였다(갈3:13, 벧전2:24).
 
  두 번째 ‘십자군’은 서기 1096년 로마 교황 울반 11세가 성지를 탈환하려고 조직한 로마 카톨릭 교황 군대였을뿐 주 예수님의 군대는 아니었다. 그런 십자군은 수차례 유대인, 그리스도인, 아랍인들을 학살했고 소년 십자군을 모집하여 아랍에 노예로 팔아버렸던, 사악한 교황의 군대인 사단의 군대였다.
 
  그런데도 오늘 C.C.C.(캠퍼스 크리스챤 크루세이더)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진실한 성도들은 십자군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십자군(Crusades)를 세우신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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