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진리 분별

기독교안에 스며든누룩들-2 의식편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33:00
  • hit190
  • vote0
  • 1.245.98.13
기독교 안에 스며든 누룩들 -2 의식편  
 “너희는 이전 행실에 관하여는 속임으로 가득한 정욕들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너희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었느니라”(엡4:22-24 KJVB)
 
 
 
(17)교독문 암송은?
 
 
 
“또한 그 분은 우리를 새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들로 삼으시되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영으로 하신 것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로되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 KJVB)
 
 
 
  주일예배 시간에 사회자와 회중이 성경 말씀을 읽고 암송하며 고백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좋은 일이겠으나 그것이 형식이 되고 의식이 되어 사람의 유전, 더구나 로마 카톨릭의 유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과감하게 개혁을 해야할 것이다.
 
  본래 교독문(交讀文-Responsorium-라틴어)을 로마 카톨릭 수도사(신부계통)였던 베네딕토(Benedictus 480? 550?)가 수도사를 모아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그 이름을 따서 후에 베네딕토 2세 교황에서부터 제 14대 베네딕토 14세 교황까지 출현했는데 교독문을 베네딕토회칙(rule of St Benedict)과 380년 암부르시우스(Ambrosius) 회칙에 나타나 있다.
 
  교독문은 로마 카톨릭에서 만든 의식이었다. 로마 카톨릭은 사제와 회중을 엄격히 구분하기 때문에 교독문 의식이 나온 것이다. 초기 안디옥 그리스도인들은 교독문 암송이 없었다. 교독문 암송이야말로 대표적인 형식인 것이다.
 
 
 
(18)목사가 손들고 하는 축도(Benediction)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출17:11)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왕상8:22, 54)
 
 
 
  성경에 남자들도 거룩한 손을 들어(딤전2:8)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솔로몬이 손을 드는 것은 하늘과 세상의 중보를 뜻한다. 모세나 솔로몬이 손을 들고 기도한 것은 세상과 하나님의 중보이신(딤전2:5-6)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현재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진리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들이 손들고 축도하는 행위는 로마 카톨릭 신부들이 십자가를 그으며 축도하는 ‘강보’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는 특정인 목사에게 축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직접 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축도가 로마 카톨릭에서 나왔기 때문에 교황 베네딕토2-14세까지의 이름을 따서 로마 카톨릭이나 개신교의 축도를 라틴어로는 ‘베네딕토(Benedicto)’ 또는 ‘베네딕션(Benediction)’이라는 뜻의 축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딕토는 카톨릭 신부였다. 예수님은 승천 이후 날마다 기도하고 계신다(히7:25, 롬8:34).
 
 
 
(19)목사의 까운과 스톨의 유래는?
 
 
 
“오히려 그들의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니, 곧 가죽 성구함을 넓게 만들어 지니고, 옷단을 넓혀 입느니라”(마23:5 KJVB)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입는 까운과 스톨(후드)과 신부들의 제복은 그 출처가 어디인가? 로마 카톨릭은 ‘수탄(Soutane)’이라는 긴 사제의복을 입는데 그 옷은 본래 로마의 이교사제들이 입었던 제의(祭衣)로 사제복은 1251년 마리아 계시를 받아 입게되었다고 한다.
 
  “내가...바알의 남아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Chemarims)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스바냐1:4)
 
  여기서 ‘그마림’이란 검은 겉옷을 입은 제사장을 뜻한다. 특히 검은 색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기에 신부들이 미사할 때 검은 사제복을 입고 하는데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이 검은 까운을 입는 것은 여기서 유래된 바벨론 이교사제복인 것이다.
 
  제수이트(Jesuits)들의 제복이 검은 색이다. 그러므로 검은 교황(Black Pope)이라 부르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스톨(후드) 역시 계시록의 자주색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은 음녀와 같이 모두 로마 카톨릭의 유산들이다.
 
 
 
(20)예배시간 타임종(bell)치는 의식의 유래는?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18:10-11)
 
 
 
벨(bell)은 바알(baal)에서 유래한 이교숭배 풍습에서 온 이름이다. 바벨(Ba-bell)-바알(Baal)-벨(Bel)-벨알(Bellal)-벨(Bell) 순으로 이어져 왔는데 태양신(Aryan Sun god) 숭배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종(鍾)이 있다. 불교에서도 절 안에 종이 있다. 회교에도 무속 종교에도 종이 있고 아프리카 부족들에게도 종이 있다.
 
  종이 없으면 북이 있는데 이러한 이교숭배 의식은 ‘종’을 울리면 神이 왔다가 종을 다시 치면 神이 떠난다는 ‘초혼자, 영매술’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무당은 귀신을 불러내고 다시 보낸다. 신접자 여인이 사무엘로 가장한 귀신을 불러낸 사건을 기억하자(삼상28:8-14). 이런 풍습이 바티칸 카톨릭에 스며들어 성당에 종탑이 있고 종이 있는 것이다.
 
  이교풍습에서 나온 종음악(Quattor)이란 것도 여기서 출발하여 주로 로마 카톨릭 ‘미사’ 때에 사용한다. 개신교 예배시간에 종을 치는 것이나 챠임벨 종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내 안에 인치신 성령께서 어떻게 종소리 듣고 왔다가 가는가? 이것은 귀신을 불러내는 풍습에서온 가증한 의식이다. 찬송가에 있는 ‘황금종을 치네’(226장)도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성경에는 어느 곳에도 종이 없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삼종(三鐘) 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기도하기 전 ‘땡땡땡’ 세 번 또 쉬었다가 세 번, 그리고 기도 후 세 번 종을 친다.
 
  11세기 십자군 시대부터 시작된 이 의식이 만종(晩鐘)으로 저녁에만 치다가 ‘새벽종’으로 변했다. 밀레의 ‘만종’도 카톨릭 유품이다.
 
▲ 미국 자유의 종(벨-Bel)은 바벨탑(Ba-Bel)과 가나안의 태양신 바알(Baal) 숭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1) 헌금자루 돌리는 의식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치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앞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왕하12:9)
 
“예수님께서 연보함 맞은 편에 앉으시어 백성이 그 연보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실 때에...”(막12:41 KJVB)
 
 
 
  본래 성경은 ‘헌금함’을 성전 제단 옆에 두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 뜰에 연보궤가 있었다. 구약에도 연보궤의 구멍을 뚫어 헌금했고 신약에도 헌금함에 자유롭게 헌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회당마다 헌금채 또는 헌금함을 돌리고 있다. 사실 헌금 바구니를 개인 앞으로 돌리는 행위는 로마 카톨릭이 세워진 4세기경부터 로마 카톨릭에서 미사(Mass)에 쓸 빵, 포도주의 봉헌 대신 헌금을 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교회당에서 헌금함 돌리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유전이다. 많은 교회들이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마23:24)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22. 십일조라는 용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18:21)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감사의 외적표현이었고 야곱은 약속이였으며(창14:20, 28:22) 레위인은 기업(직업)을 갖지 못하고 날마다 성전에서 속죄의식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아스라엘 열한지파들이 십일조를 거두어 먹여 살리기 위해 십일조가 명령되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이후 돌아온 이스라엘이 십일조 훈련이 되지 않아 레위인들이 배곯아 들과 밭으로 도망을 치자, 이에 느헤미야는 책망하였고(느10:37, 13:10-12), 훗날 말라기가 역시 책망하였으며(말3장) 예수님께서 피흘리시기 전까지도 유효하였으나(마23:23) 골고다에서 피흘리신 이후 휘장이 찢겨짐으로 율법도 레위인의 사역도 끝나버렸기에(마27:51-52) 율법의 십일조는 끝이 났고 오늘날은 교회에서 연보(감사헌금)만 있을 뿐이다(고전16:1-9). 지금도 말라기 말씀으로 십일조를 뺏어 먹는 자들은 종교적 강도들이다. 돈이 아닌 것은 ‘진리대로 성경대로’라고 외치지만, 돈(맘몬-mamon-재물의 神)의 신(god)은 계속 섬기고 있다.
 
 
 
(23) 주여 삼창과 새벽, 통성기도는?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35:13)
 
 
 
구약시대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렘33:3)는 말씀 등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오늘날은 통성기도만 했다하면 ‘주여’ 삼창을 하고 아수라장같이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난장판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감성적 부흥사들이 산에서 부흥회에서 쌓인 한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주여 삼창 기도와 통성기도가 생겨났다.
 
  오늘날 무당적 사고 방식을 가진 기독교 무당들인 미신적 부흥사들이 창안해 낸 스트레스 해소식 방법중에 하나일 뿐 결코 성경적인 기도는 아니다. 진실로 통회자복한 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새벽기도 역시 한국교회의 작품이다. 길선주 목사가 창안한 새벽기도는 산에서 물 떠올리고 백일기도하는 풍습과 약간 유사하다. 그러나 기도는 새벽뿐 아니라 저녁, 낮에도 항상 해야할 것이다.
 
  어디에서인가? 기도원이 山에 있는데 구약에는 산당(왕하17:9)이 있었다. 기도는 영과 진리로 가슴에서 항상 드리는 것이다. 즉 심령의 기도원에서이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