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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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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일상신앙생활(제1부)-1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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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일상 신앙생활(제1부)-1  
그리스도인의 일상 신앙생활
         (The Christians’ Devotional Life)
 
                                           -로날드 터닝햄 박사-
 
 
 
                     헌          사
 
 
  이 책을 나의 현재의 직원들과 일반 교회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이 설교자가 그 많은 무력하고 어려운 상태에 처한 지역들에서도 진리를 나타내도록 너무나 충성스럽게 봉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목회자에겐 많은 영향과 감동이 작용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 사역자가 특별히 이 책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봉사자들입니다. 이는 결코 자발적으로 일하는 우리 교회 주위의 사람들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사실, 매우 많은 분들이 있고 그 모두가 상을 받을 만합니다. 아주 특별한 감사일지라도, 우리 사역자 주위의 봉사자들에게, 바로 여러분들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팀과 티나 스테판, 제리 존스, 주디 쿡, 파트리샤 모어, 브로 에릭과 제니퍼 멕칸델리스(나의 사위와 딸), 그리고 토니와 린다 프리챠드, 이들은 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나의 무언의 동료들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들에게 더 많은 감사와 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속해져야 함을 압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그들에게 평안한 보살핌이 있으시길.
 
 
 
           제1부. 신앙을 갖는 법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들과 일일이 교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읽으면 아마 당신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상담을 해왔고 사람들이 왜 문제점들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그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시편 119편 145-152를 보면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악을 좇는 자가 가까이 왔사오니 저희는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줄을 알았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말하려 하고 하나님께 머무르려 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 다음부분에는 하나님과 이야기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지은이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이 단락은 실지로 신앙적인 삶을 사는 법이 아니라 매일매일 신앙적인 시간을 갖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일종의 기독교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시대에서, 실질적인 강제 없이도, 우리는 실제로 신앙 시간을 갖기 위해서 매우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삶은 신앙 그 자체로부터 저절로 오게 됩니다.
  우리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커다란 영적인 것들의 결핍들을 보게 됩니다. 표면상으로는 영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표면상으로 그리스도인의 형태를 띤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영적인 것들의 손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마음을 위한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의 행동범위 안에서 우리의 양심을 겉보기에 올바른 형태로 만들어 주거나 또 그에 적당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에 맞게 우리들의 마음을 형성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많지 않습니다.
 
            
 
             신앙에 관한 안내서들
 
 
  소책자들은 우리의 신앙을 인도하기 위해 매우 많이 배포되어 있고 거기에는 신앙을 위한 많은 조언들이 있습니다. 교회들은 그것들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신앙심이 약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용합니다. 신앙을 위한 누군가의 가르침이 바로 이 소책자입니다. 성경적 사고를 통해 당신을 알기 위한 누군가의 계획, 이야기 설명들은 성경적 원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은 성경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한 두 구절의 성서 인용구를 참고하고 그에 관련해 여러 번 인쇄된 기도에 관한 책들을 갖게 되어,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시간을 참고구문을 대강 훑어보는 데 보내게 됩니다. 만일 그가 그런 식으로 그의 신앙을 유지한다면 끝까지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과는 멀리 이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익한 안내 프로그램 대신에 그저 방관적이고, 실지로 신앙에 관한 분야 속에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결론으로 이끌 것으로 보이는 기독교 방송의 텔레비전을 켜겠지만 성경으로 인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성경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기독교 잡지와 출판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보는 법과 성경에 접근하는 법을 말해 줄 논문(기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많이 알 필요도, 우리 스스로 하나님 말씀의 내면적인 면을 파고들어갈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너무 성서적으로 박식하지만 너무 영적으로 부족하여 막상 그들이 힘을 가져야 할 때 그들 생명(삶)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포인트를 찾아 헤매며
 
 
  우리는 정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관한 사실들과 자료를 제공해주는 많은 컴퓨터 디스켓과 프로그램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쉽게 접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들을 접할 때 우리 스스로가 실질적으로 성경말씀의 내면적인 면을 찾게끔 이끌어지지 않습니다. 안에서의 소화시킴 없이 우리가 찾아낸 것을 내뱉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의 그러한 영적인 공허감이 왜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신앙 관련” 자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인용들은 뉴 인터내셔널(새로운 국제적인) 버전이나 그 외 다른 비(非) 킹제임스 성경판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읽는 거의 모든 성경 도움글, 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듣는 모든 것들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나온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자, 이 모든 것들은 지나치고, 하나님과 같이 앉고 그 분을 배우길 원하는 곳으로 돌아와 그 분의 위로하심을 찾읍시다. 어떻게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우리 스스로 어떤 몸가짐을 세워야 할까?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이제, 당신이 거듭났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런데 그것은 매우 엄청난 가정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길,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 (요 3:3)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 안에서 태어났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거역하여 태어났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죽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죄의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죄를 지어 왔다는 것을 자인하며 ‘그에 따른 외적 상징(표현)을 하는 것’(자백)입니다. 이것은 아이로 하여금 그들이 아이라는 것을 자백하게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어리석은 자라도 어린 아이가 그들이 어린 아이라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어린 아이임을 시인하는 것을 아무런 놀람 없이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론입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들이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에서 영웅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죄인을 보고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들이 그 명백한 것을 알면서도 그들 자신을 영웅화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오늘날 많은 복음들이 죄인으로 하여금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너무나 당연한)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을 영웅화한다는 전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우리를 다시 거듭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바보입니다. 이것은 필연적 결론입니다. 세상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과 멀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멀리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그 점을 알도록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은 죄가 병이라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문제인데 죄가 일종의 육체적 또는 영혼의 병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길 ‘우리는 그렇게 (죄인으로) 태어났고 사람에게는 어떤 선한 점도 없다’고 합니다. 세상은 말하길 ‘그들의 ‘자아’는 과거 어느 때에 심리적으로 손상되었기에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더 높은 자아 그리고 그 밖의 모두를 추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났고 사람에게는 어떤 선한 점이 없다’고 합니다.
  세상은 누군가가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면, 그들을 죄인이라 말하면서 그들 자신의 마음을 언짢게 하는 것이 사회와 그들의 건강에 대한 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이교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모든 사람은 죄의 본성으로 태어났고 사람에게는 선함이 없다’고 합니다.
 
 
          거듭나는 법
 
 
  이제 구원 받기 위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 이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정된 결론입니다. 바로 당신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인의 속성은 사람의 신앙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 또한 그 사실을 바꿀 수 없고 침례가 그 사실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서 마리아와 성자들에게 기도하면서, 염주를 돌리면서, 또는 요가 자세로, 정좌한 자세로 앉아 있어도, 사회 어느 곳이라도 그러한 행위들 중 어느 것 한 가지를 해도 사람은 태어났고 그래서 죄의 불변하는 속성으로 내면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행위들 중 어느 것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곳으로 와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와서 그분의 영광으로 만이 구원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능력으로 만이 구원이 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죄 값을 대신하여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해답으로써 충심으로 우리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마음으로 들어오셔서 거듭나게 하시며 힘을 주시고 영적인 사람으로 재구성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죄 가운데에 있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죽음으로부터 이끌어내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품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는 새로운 성품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들어오시고 그 하나님의 영은 즉시 우리로 하여금 우리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신다는 성경의 말씀에 순응하게 하도록 역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일 그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고 그분의 선한 즐거움을 베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을 멈출 만한 힘은 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지만 결코 그것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계속 말하면서도 충성스런 신봉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지도, 결코 하나님을 위해 진실한 열의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코 십자가에 있어 본적도 없고 진실로 내부에서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헛됩니다.
 
 
       신앙으로 돌아가십시오.
 
 
  자, 만일 당신이 거듭났다면 신앙적인 삶을 원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신앙을 갖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여기 핵심적인 세 가지 조항이 있습니다. (1)계획하십시오. (2)두 가지를 계획하십시오. (3)더 확실하게 계획하십시오.
 
 
  제1장 계획하십시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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