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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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크리스마스를기념해야하는가?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2: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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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야 하는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奇妙者)라, 모사(謀士)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無窮)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自今) 이후 영원토록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로 그것을 보존(保存)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熱心)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온 세계에서 신자나 비신자나 모두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리는 휴일('신성한 날'이 아닌) 행사에 대해 비판을 하면 나 자신이 조롱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은 두 부류이다.
첫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유전(遺傳)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사람들로서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 사람들을 그릇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골로새서 2:8)
둘째, 이른바 성탄절을 축하할 때 부분적으로 자신의 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과거 믿음과 습관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전에 이 문제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비신도를 진정한 기독교 교리와 의식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 완전히 새로 개발된 개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그렇지 않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겠다.
 
사도들은 성탄절을 한 번도 기념하지 않았으며, 기독교 교회도 처음 300년 동안은 그랬다.
그 예로 백과사전에 있는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하겠다.
 
카톨릭 백과사전: "크리스마스는 초창기 교회 축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성경에 따르면 죄인들만 기념했고 성도들은 기념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탄절을 가장 크게 축제하는 카톨릭 사전까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크리스마스는 초창기 교회 축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기독교 교회 초창기 1세기 동안은 기념 행사가 없었다. 일반적인 기독교인 관례에 따르면 저명한 사람들의 사망은 기념해도 탄생은 기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관습은 원래 기독교 관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전 또는 비기독교 관습에서 나온 것인데, 기독교 교회가 이를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앞에 말한 문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해 여론의 압력에 밀려 진실을 밝혀야 할 때마다 바로 이 문제가 상향 조정되었다.
기독교권 밖에서도 어느 나라나 크리스마스 행사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하여 아무 준비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영국에서는 1644년 의회법에 따라 크리스마스 행사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찰스 2세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이 금지 규정을 철폐시켰다. 국왕은 카톨릭계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의회법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1-22)
 
이제 앞에서 말한 이사야 구절 부분을 보면서 2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겠다. 이 구절이 이스라엘 메시아의 탄생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2가지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첫째,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고'란 구절은 아기 예수의 몸이 베들레헴의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이며, 이스라엘의 아이라는 뜻이다.
둘째,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이란 구절은 이스라엘의 아이로 태어난 그 몸에 생명이 내재하고, 몸으로 태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에 주셨다는 뜻이다.
'태어난 아기'이란 몸을 가리키고 '주신 아들'이란 그 몸 속에 내재하는 사람이란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아기는 태어난 것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주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아기를 말할 때에는 이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3-4)
 
(1)예수 그리스도는 예레미야 31:22에서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고 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아기로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2)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아기로서 율법 하에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때가 차매(마리아의 9개월째)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갈 4:4).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내진 것 이상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 이상이다(로마인들이 말하듯이 마리아는 성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율법 하에 태어난 것보다 더 위대하신 분으로,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요 17:5)라고 말한 것 같이 영원부터 존재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시작한 것이 새로운 시작이아님은 분명하다.
(3)이스라엘의 아이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내준 약속의 징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그 메시아-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사야 7:1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이스라엘에 주어진 것일뿐 아니라 전세계에 주어졌다. 곧 요한복음 3:16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스라엘의 아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 국민을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세속의 왕좌에서 다스려야 했다. 곧 이사야 9:6-7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세우고 자금(自今)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버림받고 경멸을 당하고 배척받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
(5)이스라엘의 아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평화의 정사(政事)를 펼치는 왕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사야 9:7에서는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마태복음 10:34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한 바와 같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또한 누가복음 12:51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함이로라."
(6)이스라엘의 아이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았다. 곧 "그 이름은 기묘자(奇妙者)라 모사(謀士)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7).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참람(僭濫)한 말을 하는 자요 목수의 아들이었다." (눅 7:34, 마 26:65, 마 13:55).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아이와 하나님의 아들을 비교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10:5-7에서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곧 태어난 베들레헴에 있을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며 천국으로부터 와서 태어날 때 이스라엘 아이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면서 했었고 해야 하는 전체적 역할을 위해서는 유대 동정녀를 통하여 세속으로 태어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백성들과 관계되는 전체적인 역할을 위해서는 아이로 세속에 태어나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역할이라면 전혀 태어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숙한 몸으로 세속에 보낼 수도 있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을 때에는 정말 그랬다. (고린도전서 15:3-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성숙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다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왕은 여자에게서 나야 하고 율법 아래서 나야 하며 다윗의 씨로 나야 했기 때문이다(갈4:4, 마 2:2, 요 7:4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죽고 장사 지낸 후 부활해야 했지만, 나중에 유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기적적인 동정녀 탄생을 통해 세상에 오셔야 했다. 성경의 두 구절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마태복음 2:2에서는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렇게 물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이것이 옳은가? 박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가? 그리스도가 직접 왕이 될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그리스도 탄생의 본질인가? 왕이 되어야 했다면 유대인의 왕이 되어야 했다. 그러면 구원받는 자의 왕도 아니요 교회의 왕도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차라리 주(主) 또는 수장(首長)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맡겨 두자.
요한복음 18:37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 통치자 빌라도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는 구절이 나온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이 구절을 보면 더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째서 모두 세속적인 약속인지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아이가 이스라엘인들을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번영과 축복을 누리면서 정의로움과 함께 살아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세속적이 아닌 영적이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患難)을 당하나……." (요 16:33). 또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基業)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그러므로 이스라엘 아이로서 율법 아래 동정녀 탄생을 하고 세속 왕국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보내진 것은("아비(세속적인)도 없고 어미(세속적인)도 없고 족보(세속적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히브리서 7:3))" 은혜의 시대에 예수님을 영접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신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이스라엘 아들임을 주장하려면 율법의 지배를 받는 셈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보다는 알게 모르게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활에 따른 구원을 주장하는 셈이다.
또한 교회가 이스라엘의 위치를 떠맡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이스라엘인들을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다루고 있음을 뜻하므로 분명히 터무니없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요한복음 1:11-12에서는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아이로서 자신의 왕국에 왔을 때는 그리스도의 백성(또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자신을 영접하려 하는 이 세상의 누구에게 대해서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이 점은 바울이 로마서 11:11에서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한 말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렇다! 이스라엘의 아이는 자신이 말한 대로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여러 사람의 죄값을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내가 이때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요 12:27).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태어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교회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시려고 천국에서 오신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아이와 천국에서 보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성경을 통해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와 관련해 다른 측면들도 몇 가지 언급하겠다. "기독교인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러면 먼저 예수님의 생일은 언제인가라고 물어 보겠다. 물론 누구나 그 날짜를 모르고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으로 그 날짜를 알려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의로 그 날짜를 비밀에 부쳐 두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려 주면 예수님께서 다음 번 이 세상에 오실 날짜를 우리가 정확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할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이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는 자신이 살던 이스라엘 국가가 붕괴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2). 베드로후서 3:8에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과 같다"고 했다. 이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흔히 나오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1천 년을 '주의 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둘째 날 마지막에 부활한다면, 그때는 2천 년 뒤가 될 것이다.
그러면 1천 년의 셋째 날은 이스라엘인이 자신의 땅에 다시 모여 있는 날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 날 동안 이스라엘인과 함께 지상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알고 있다면 2천 년 뒤인 그 두 번째 날이 언제 닥칠지 쉽게 계산해 낼 수 있을 것이며, 그때는 그리스도가 지상에 두 번째로 오시는 날이 될 것이다.
시간 계산법은 우리가 알기로 다소 정확하지 못하다. 성경에서는 365일 대신 360일을 1년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7:11, 24, 창세기 8:3, 계시록 11:2-3 참조). 또한 그리스도가 두 번째로 오시려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날 중에서도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고 근본주의 목사들이 누구나 설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포함해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히브리서 12:1) 한다.
주님의 죽음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속죄양으로 희생된 정확한 달과 날짜를 말해 주고 있다(고린도전서 5:7). 레위기 23:5에서 모세는 "정월 십 사 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정월은 아빕월이다(신16:1 참조). 유대인 달력으로 아빕월은 우리 달력으로 3월 마지막 9일부터 4월 21일까지에 해당하므로, 아빕월 14일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4월 5일에 해당한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날짜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날을 기념해야 하고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까지도 알려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11:25에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했다. 바로 다음 구절 11:26에서는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아니라 죽으심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인데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성경에는 지금까지 전혀 기념하지 않았던 생일이 두 가지 나온다. 모두 왕의 생일이다. 창세기 40:20-22에 나오는 바로 왕의 생일에서는 바로 왕이 떡 굽는 관원장의 목을 매달았다. 마가복음 6:21-28에 나오는 헤롯 왕의 생일에서는 침례 요한의 목을 베었다. 독자들이여! 매년 이른바 예수님 탄생 기념일에도 또한 수백 명이 죽음을 당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들의 기념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신문을 읽어 보라.
그러나 주님의 식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있을 때 누가 죽음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진지하게 기념해야 한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기"(전 7:1) 때문이다.
출애굽기 23:2에서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했다. 어떤 독자들은 '다수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은 따르지 않겠다. 나는 아기 예수를 숭배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겠다.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해서든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것인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위는 다수를 따라 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크리스마스는커녕 예수님 탄생 기념에 관한 구절이 한 군데나 있는지 찾아보길 바란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정도 다수를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일이 죄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기념이 죄악이라는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벗어나 보려는 것이다. 필자는 성경을 통틀어 볼 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일은 무조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기념하라고 명했다고 하더라도 벌써 오래 전에 멸시해야 할 것이라고 저주를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회를 열고 엄숙한 집회를 열며 번죄하고 소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열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러나 선지자 아모스(아모스 5:21-23)를 통해 한 말씀도 들어보자. "내가 너희 절기(節期)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희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어째서 당신이 명령하신 것을 모두 거부하실까? 다른 것이 섞여서 타락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기념도,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신 적도 없지만, 다른 것이 섞여서 이미 오래 전에 타락했고 순수함이 없기에 하나님이 증오하고 계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 장식용 가시나무, 겨우살이, 크리스마스 이브용 장작, 크리스마스 트리, 스타킹 걸기, 카드 보내기, 선물 교환, 산타 클로스 등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모두 예외 없이 로마 카톨릭이나 고대 이교도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상업주의와 결부된 이런 것들과 함께 하나님을 모독하기, 폭음, 폭식, 죄악, 댄스 무대에서 벌어지는 세속적 향락 등을 크리스마스에서 제거해 버리면 크리스마스는 신속히 종말을 고할 것이다.
독자들이 도서관에서 조금만 찾아본 다면 쉽게 발견해 낼 수 있는 점도 예로 들어 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연구하지 않고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데이: 백과사전을 포함한 어느 사전에도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의 미사'라고 나와 있다. 교황 피우스(Pius) 4세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미사란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해 죄들을 사함받기 위해 정당한 희생예물을 바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로마 카톨릭은 언제나 이렇게 가르쳤다. 그렇게 때문에 카톨릭에서는 미사를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미사는 그 대상이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그들의 죄들의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기 354년에는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는 12월 25일에는 3가지 미사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현재 로마 카톨릭의 이날 미사에서는 죄들의 희생제물로 바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대로 미사가 대상자의 죄악에 대해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라면 예수님은 가장 큰 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에게 3가지 미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 3가지 미사를 해마다 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
어째서 교황은 12월 25일을 선택해 이런 천한 기념 행사를 열고 있을까? 이교도 신화에 따르면 그 날은 '태양의 날'이기 때문이다. 곧 이교도들은 태양이 12월 25일에 태어난다고 믿었기에 그 날을 숭배했다. 그런 태양 숭배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 혹시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 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교황이 말했다고 하더라도)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죽이되" (신명기 17:2, 3, 5)
 
크리스마스 선물: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은 어디서 생겼으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생일 선물이 필요하면 그 주인공에게 주어야 한다. 또한 선물을 주려면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한 교회를 통해 주께 주어야 한다는 점을 시급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12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2월에는 교회의 재정이 거의 고갈 상태에 빠진다. 세속에 따르지 말고 예수님께 선물을 주도록 하라.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마귀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곧 계시록 11:20에 나오는 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마지막 두 선지자를 죽이고 즐거워하도록 마귀가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대부분이 선물을 주고받는 데 돈을 많이 소비함으로써 하나님을 약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빚을 내기까지도 하기 때문에 그 빚을 갚느라고 일년 내내 하나님을 약탈하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이여! 크리스마스 행사에 그대가 소비하거나 빚을 진 금액과 12월에 주께 바친 금액을 비교해 보라.
 
크리스마스 카드 및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란 말을 얼마나 해 보았고 얼마나 들어 보았는가? 수없이 그렇게 말하고 들었으면서도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진지하게 그 말의 기원을 탐구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만 있다.
약 1세기 전인 1860년 교황은 이른바 크리스마스 시즌에 추기경, 주교, 사제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 해에는 모두 크리스마스를 즐겁게(메리 크리스마스) 보낼 수 있도록 면죄부를 값싸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면죄부 판매를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회개하는 죄인이 이생에 지은 어떤 죄에 대해, 또는 연옥에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가할 일시적인 벌에 대해 정식으로 참회할 수 있도록 교회 권위를 넘겨주는 일'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벌이 없다는 약속으로서 '면죄부'를 팔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을 때에는 '메리'라고 말함으로써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 사업을 인정해 주는 셈이며, '크리스마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죄를 3가지 미사를 통해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보는 로마 카톨릭의 그리스도관에 대해 동조를 하는 셈이다.
 
이처럼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마 카톨릭이나 이교도와 관련된 것이다. 필자는 이교도도 아니며 카톨릭 신자도 아니다. 필자는 크리스챤이며 거듭난 재침례교도이다. 따라서 그런 넌더리나는 미사와는 관련이 없다.
 
크리스마스 트리: 처음으로 푸른 나무를 잘라 집으로 가져온 뒤 장식용으로 사용했던 사람들은 기원전 1900년경의 이집트인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브라함이 처음 이집트에 가서 사라를 아내가 아니고 동생이라고 말했을 때였다.
이런 이교도 풍습이 생긴 까닭은 그 사람들이 하늘, 태양, 달, 별과 같은 천체의 신들을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 가정마다 1년에 한 번씩 산에서 나무를 베어 집으로 가져온 뒤 세속적인 보물을 달아놓는 풍습을 만들어 냈다. 나무에 보물을 많이 달아놓아 천체의 신들을 기쁘게 해 주면 그 신들이 죽지 않도록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각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마을별로도 그런 행사가 벌어졌다. 마을이 그 행사에 참석할 때에는 푸른 나무 아래 묘 속에서 그 행사를 벌였다.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었을 때에는 이런 이교도 풍습이 정착되어 이교도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몹시 싫어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무 아래나 무덤 속에서 벌리는 공공 행사에 대해서도 가정에서 벌리는 개인 행사에 대해서도 경고를 하셨다. 다음 두 구절은 그런 경고의 일부 예에 불과하다.
먼저 공공 행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열왕기상 14:22-2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경고를 내리셨는데도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장이라든지 지역 사회의 공동 크리스마스 트리 또는 이교도의 행사 때와 유사하게 푸른 나무 아래 모여 행사를 벌이고 있다.
둘째로 개인 행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 (예레미야 10: 2-4, 8)
이 구절이 주목을 끌게 되자, 그 이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이어서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벌어진 일이기에 죄악이라고 말씀하셨다면, 당신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의도적으로 순종하고 있지 않은 행위를 성안으로 보시도록 한다면 얼마나 더 큰 죄악인가?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행사를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그리스도의 이름과 인물을 그런 이교도 풍습과 관련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이 마음껏 푸른 나무를 잘라 장식하는 행위가 옳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 행위는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은 잘못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잘못이었다면 하물며 오늘날에는 어떻겠는가? 하나님의 태도가 바뀌었거나 부드러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이교도의 관습은 여전히 이교도적이고 죄악이다. 그 일을 그리스도와 결부시킬 수는 없다. 그리스도가 그 일과 관련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언젠가 심판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 때 신앙이 독실했던 교회가 오늘날에는 타락하고 변절한 것이나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교회에서는 이전에는 댄스나 카드놀이 등을 죄악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댄스를 자선 무도회라고 하고 카드놀이를 자선 브리지라고 하면서 교회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화시켰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지지를 받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때는 크리스마스란 말 대신에 X마스란 말을 사용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X란 미지수를 나타내므로 크리스마스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미지수'인 것은 그리스도가 크리스마스에 계셔 본 적이 없으며 인간의 상상 속에는 예외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이 영원한 말씀으로 저주를 내린 바에 대해서는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산타 클로스: 필자는 산타 클로스의 어원이 '사탄의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어원학자가 아닌 만큼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말의 어원이든 아니든 올바로 적용되었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산타 클로스는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절하고 숭배하도록 사탄이 만들어 놓은 '사탄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산타(Santa)'란 말로 사탄(Satan)'이란 말을 만들려면 가운데 있는 n자를 마지막으로 옮겨 놓으면 된다. 곧 Sa(n)ta-Sata(n). 또한 산타 클로스(Santa Clause)란 말은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나 성 니크(Saint Nick)란 말과 마찬가지 형태이다. 우리는 Old Nick이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사탄이다.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다(고린도후서 11:14). 또한 자신을 Old Nick이 아닌 Saint Nick이라고 칭하고 있어서 누구나 그의 사당에서 절을 하게 된다.
이 Old Nick에 관한 전설은 많다. 그러나 그런 전설은 Saint Nick이란 이름으로 전해 온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Nick은 어린이들의 수호신과 같아서 죽은 어린이 3명을 소생시켰다고 한다. 또한 그 어린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간호사를 갈기갈기 찢어서 조각마다 소금통에 넣고 고통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둘째, Nick은 처녀의 수호신과 같아서 처녀 3명의 순결성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딸을 3명 두고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부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들에게 매춘을 시켜 생활비를 벌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St. Nicholas는 그 처녀들의 순결성을 보호해 주고 싶어서 매일 밤 찾아가 성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각각에게 금화 한 잎씩을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남성들이 접근하지 못했으니 그 딸들은 순결성을 지키면서도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내용으로 크리스마스 행사와 관련된 이교도 및 카톨릭 전통을 모두 망라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위의 어느 내용도 모두 그런 전통과 관련된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그런 전통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遺傳)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느뇨.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태복음 15:3, 6)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마가복음 7:8, 9, 1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영감을 주시어 이런 글을 쓰도록 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나 구원받지 않은 자나 모두 그런 유전을 따르며 이교도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라디아서 4:10-11)
이 크리스마스 행사에 관한 문제를 독자들이 얼마나 다음과 같은 데살로니가전서 5:21-22에 비추어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헤아린다'란 말은 판단하거나 검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판단하거나 검증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매사를 하나 또는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선의 범주요 다른 하나는 악의 범주이다. 우리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주의를 받았으므로, 아무리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해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도 이 말이 제한된 영역으로는 참가할 수 있다는 뜻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입장을 취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는 곧 파탄이 일어날 것이다. 교회가 파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친구들을 많이 잃고 오해를 받으며 명성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크리스마스 문제에 관련해서 성경상의 입장에 대한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필자는 몇 년 동안 목사직에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때에는 재정 손실이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가하는 목사들은 금전으로나 재물로나 선물을 많이 받는다. 회중의 규모나 그 연고성에 따라 어떤 목사들은 매년 수백 달러씩을 벌고 어떤 목사들은 1천 달러 이상 벌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또는 성경상으로 부닥쳐야 하는 목사들은 그런 손실을 놓고 악마와 겨루고 있는 셈이다. 그 손실이 성경상의 입장을 가로막는 장애물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로 볼 때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목사들이 이런 죄악에 찬 행사와 손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목사들도 대부분 일반인들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경우에는 더 심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재정 원천을 건드린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12월에는 다른 달보다도 부흥회, 복음 전도회, 성경 연구 회의, 구원 행사 등이 적다. 목사나 전도사를 크리스마스 시즌, 특히 크리스마스 주간에 교회로 초청하여 모임을 열도록 하기 바란다. 그러면 영혼 구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면서도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떤 사람을 초청하는 데 성공했다면, 다음으로는 교회 식구들을 조그만 기도 집회에 참석시키고 개별 심방을 하도록 하며 일부는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하라.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10%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미친 듯이 상업적인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모두 파티에 참석할 계획으로 꽉 차 있다. 쇼핑하고 카드를 보내고 집 안팎을 장식하기에 바쁘다. 또한 어느 날 저녁에는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곤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며 금전을 많이 소비한 탓에 자선 냄비에는 한 푼도 넣지 못하는 수가 많다.
독자들이여! 필자가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직한 독자라면 인정함으로써 비난받는 한이 있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사실이다.
여러분이 이 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밀쳐 둘지도 모른다. 필자가 1950년 설교단에서 이 메시지를 처음 전달했을 때도 그렇게 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필자는 예수, 베드로, 바울, 스테판의 설교나 최근 수년 동안 근본주의 목사들의 설교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으려 한다. 그래도 그런 설교는 중단되지 않았다. 또한 필자의 설교도 역시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에게 대해 과장이 심하다고 한다. 물론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영적 문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들은 거뜬히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켰다(마태복음 23:24).
이제 이 글을 맺으면서, 기독교인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면, 또한 하나님은 크리스마스가 여러 사람들을 돕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믿는다면 알게 모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로마 카톨릭의 미사와 연결시킴으로써 그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2. 존경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3. 진리를 위해 신념과 습관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4. 어떤 사도도 한 적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5. 교회가 초창기 300년 동안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셈이다.
6. 영국에 있을 때 크리스마스를 배척했던 우리 재침례교도 조상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7. 악을 헤아리지 않고 그 모습을 피하지 않는 셈이다.
8.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거나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간주하는 셈이다.
9. 이스라엘의 아이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두 가지 성격의 진리를 거부하는 셈이다.
10.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율법 하에 놓고 죽으심을 은혜 앞에 놓는 셈이다
11. 구원이 갈보리와 피흘리심이 아닌 베들레헴과 마굿간에 있다고 보는 셈이다.
12.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징표나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표를 주장하는 셈이다.
13. '지상의 평화'가 교회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14.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을 통해 유대인의 왕이 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셈이다.
1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따라 그리스도가 기독교인의 구원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16. 천국의 약속보다는 세속의 약속에 희망을 걸고 있는 셈이다.
17. 스스로 율법에 매달려 자신을 저주하고 있는 셈이다.
18. 그리스도의 삶을 믿지 죽으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공언하는 셈이다.
19. 하나님이 일부러 비밀을 지키고 계신 출생날짜를 알아보려고 하는 셈이다.
20. 주의 거룩하신 몸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무가치한 존재로 주의 식탁에 참가하고 있는 셈이다.
21. 문자 그대로 해마다 수백 명씩 인명이 죽어가고 있는 바벨론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셈이다.
22. 다수를 좇아 악을 행함으로써 성경을 직접 거역하고 있는 셈이다.
23. 인간의 유전(遺傳)에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 의식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24.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25.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을 때보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 적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敬畏)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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