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진리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8:32)

진리 분별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3:13:00
  • hit181
  • vote0
  • 1.245.98.13
제목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작성자 서달석 목사  ip 주소 221.154.187.66  
조회수: 379 작성일 2006-12-20 16:27:32  
파일명 061220_자신을_성찰하고_스스로_입증하라.pdf  파일크기: 299377 byte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서달석 목사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성찰(省察)하고, 너희 스스로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자신이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들이니라.”(고후 13:5)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여러 차례 권면의 글을 보냈지만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고 육에 속한 상태여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교회였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특별한 관심과 기도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를 생각하면서 두 번의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첫 번째 편지는 고린도 교회가 살고 있는 영적 상태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밝히고 폭로하면서 그 환부를 도려내는 아픈 수술의 칼을 사용하였다면, 두 번째 편지는 사랑어린 회초리를 때리고 난 후 아픈 마음으로 위로하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의 수술 후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고린도 후서라는 편지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최후의 글에 육에 속하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지나쳐 그들의 열매와 영적 상태를 보고나서는 “진정으로 거듭났을까?”하는 의구심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진심으로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할 것을 권면하고 있고 그 시험과 확증 결과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심령 안에 살아 계신 것을 그 자신 스스로 알고 있지 않으면 구원받은 신자가 아니라 이미 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신자라고 믿고 있고 고린도 교회가 알고 있는 교인이며 그들 모임에 참석하고 찬송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종교적 주문을 외우고 거룩한 외적 종교적 분위기라는 양의 가죽을 입고 있으나, 내적 생명은 자연인 그대로인 채 육적 생명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경우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환경이라는 분위기에 취하여 속고 가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마지막에 보낸 글에 깊이 있는 영혼의 검진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 시대에 가장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다. 우상숭배, 헬라 철학, 음란, 각종 신비주의가 만연하는 지역에 있는 교회라 오랜 세월동안 우상에 접해 있던 옛 때를 벗지 못하고 혼합 신앙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예리한 성령의 눈으로 바울이 볼 때는 어린아이 신앙이기 전에 단지 육신에 속한 교회이기를 넘어서 구원 문제가 의심스러운 교회였기에 구원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성찰하고 입증하라”(고후 13:5)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고린도 교회보다 더욱 영적 상태가 어린아이이고 더욱 육신에 속한 시대라면 더더욱이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에 있는가?’를 성찰하고 그 결과를 입증해서 믿음에 있다면 분명하게 믿음에 있는 열매로 증거를 드러내서 누가 보아도 믿음에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신앙생활이 필요하고, 만에 하나 믿음에 없다면 믿음에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둘도 없는 자신의 생명, 두 번도 없는 구원의 기회를 황금의 기회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믿음에 있는가를 시험하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사람을 통하여 너희에게 죄들의 용서함이 선포되었으며,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일들에서도 믿는 자는 다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되어있느니라.”(행13:38-39)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피터 럭크만 같은 영적 착란자의 말처럼 구약에는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얻고, 칠년 대환란에도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얻고, 천년왕국에는 행위로만 구원얻는다는 속임의 말은 사단을 기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욕되게 하는 사단의 두 혀의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대환란이라고 하는 기간에도(칠년 대환란은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외길, 즉 한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뿐이다.
 
구약에도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수많은 구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 아벨은 믿음으로 어린양의 피를 예물로 삼아 구원을 얻었고(히11:4),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침을 받았을 뿐 행위나 순종이나 할례가 구원의 조건은 결코 아니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결과 그것이 믿음을 증거하는 행위로 나타났을 뿐 아브라함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았으며 결코 믿음과 행위에 있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그(아브라함)가 받은 할례의 표적은 그가 아직 할례 받지 아니한 때에 가졌던 믿음으로 된 그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어 그들에게도 또한 의로 여기심을 받게 하려함이며, 또한 할례에 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을 때에 가졌던 믿음의 발자취들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할례의 조상이 되려함이니라. 이는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 율법을 통하여 하신 것이 아니요, 믿음의 의를 통하여 하신 것이니라.”(롬 4:11-13)
 
노아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율법을 전한 모세조차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마지막 율법이었던 침례 요한까지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 않았는가?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이 간수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변하였는가를 기억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救援)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또 네 집안도 그리하리라, 하고”(행16:30-31)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믿음이 중요한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만 얻기 때문에 구원얻는 참된 믿음을 진단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믿음 안에 있는가를 성찰하라 하였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얼마나 선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 어떻게 죄를 범하였는가? 얼마나 회개하였는가? 얼마나 양심의 고통을 당하였는가? 등을 살피라고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성찰하고 입증하라고 하였다. 그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바른 믿음은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고 거짓 믿음은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믿음에 있지 않고 행위에 있거나 불신에 있거나 율법에 있거나 철학에 있거나 또는 거짓 믿음에 있기 때문에 참된 구원이 의문스러웠고, 바울은 재검진을 권면하였던 것이며 이 권면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절대로 필요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요,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는 줄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곧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되려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갈2:16)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밝히 드러났으니 곧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언된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 있는 하나님의 의(義)가 모두에게와 모든 믿는 자 위에 임하였나니 이는 거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롬3:21-22)
 
모든 인생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믿음'뿐이다. 아담의 타락한 품성을 이어받은 우리들에게는 그 어떤 구원을 얻을 선한 행위를 기대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오해하여 율법의 목적인 죄를 깨닫게 하는 목적을 잘못 알고 율법을 행하려 하다가 멸망에 빠져버렸던 유대인의 전철을 밟고 있는 자들, 또한 자기 수양, 수련을 통해 하나님의 선에 도달해보려는 종교적 노력 또는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죄를 범하고 살아도 그냥 예수님의 피값이 천국에 간다는 이설, 거기에 하나님은 심판자이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인은 결코 구원의 가망이 없다는 불신앙의 사상들은 결코 구원얻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시며 단순히 죄악을 범하는 희망 없는 존재임을 아시고 계신다. 때문에 그 분의 사랑은 불멸하여 그 사랑의 열매가 믿음으로 구원얻는 길을 만들어 주시고 초청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게 해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길이요 진리(眞理)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요14:6)
 
 
그리고 확증하라
 
“사랑 받는 자들아, 함께 나누어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글을 쓰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써서 너희를 권면해야 할 필요를 느꼈나니”(유다서 3)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니, 이 믿음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바울 사도는 “ 이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음이라.”(롬8:24) 라고 분명하게 구원얻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믿어졌느냐? 거듭났느냐? 구원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같은 것이며 구원은 현재 얻었으며 받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구원얻은 사실, 즉 믿음에 있다면 구원을 얻었고, 구원을 얻은 자는 영생을 가졌으며(요5:2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자는 영생이 있다고 사도 요한은 선포하고 있다(요일5:13).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요일5:12) 선언하고 있고 바울 사도는 “내가 가진 의는 ...”(빌3:9)이라고 믿음으로만 난 의(義)를 현재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후에 그분을 신뢰하였으며, 또한 믿은 후에 거룩하신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印)치심을 받았나니...”(엡1:13) 라고 믿음으로 구원받아 인침을 이미 받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유스다, 순두게, 글레멘토의 이름을 들어 생명책에 있다고 밝힌다(빌4:13). 또한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구원의 완성을 주장하고 있으며(롬8:30) 히브리서에서는 “그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드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있느니라.”(히10:10) 또한 “거룩하게 된 자들”(히2:11)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며(롬5:1) “이제 주님의 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니”(롬5:9)이라고 구원받았고 거룩해졌으며 의로워졌고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수없이 말씀하시고 있다. 물론 역사 전체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구원얻을 것’ 이라는 표현도 여러 곳에 있지만 한 개인이 구원을 받은 사실은 믿는 순간 현재형으로 구원의 완성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에 있는지 시험한 후 구원받은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때문에 구원받은 사실을 질문할 수 있고 또 구원받은 사실 유무를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성경의 절대적 가르침인 것이다. 오늘 현재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버리운 자라고 바울 사도는 가르치고 있는데 구원은 죽어봐야 알 수 있다고 사단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장로교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앞세우고 예정론을 앞세워서 사람이 중생여부를 알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사실을 알 수 없고 죽어봐야 한다는 주장은 사단의 사기술의 가르침이란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성찰하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성찰해서 구원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찰해도 알 수 없다면 어찌하여 믿음 안에 있는지 없는지 성찰하라고 하였으며, 구원여부를 알 수 없다면 어찌하여 입증하라고 하였겠는가? 성찰해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무의미한 헛수고를 권면할 바울이 아니란 사실이다. “구원받았습니까? 거듭났습니까? 복음을 받았습니까? 믿어졌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따지거나 불쾌하게 생각하는 그 상태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당신은 믿음에 서 있습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시험이 되는 것이고 대답을 할 수 없거나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거나 이단이라고 정죄하거나 애매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즉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이 없고, 거듭난 사실이 없고, 죄 사함 받은 사실이 없으며, 성령님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구원의 입증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의 양심을 비추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범죄와 죄악을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듣고 우리들의 죄값을 예수님께서 단 번에 치루심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진 사실을 듣고 믿어지게 된다(히9:2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우리는 덮어지고 더 이상 속죄도 필요없고(히10:14-18), 더 이상 정죄도 없음을 알게 된다(롬8:1).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대언하시고 계심을 들어 믿고 있다(요일2:1-2). 죄는 우리의 본성에 있고 죄를 자각케 하는 기관은 우리의 양심이며, 양심을 깨우는 능력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공의의 말씀이 우리들 양심을 깨우쳐서 양심의 율법 아래 우리를 가두게 되고(롬2:14-16), 죄를 변명하거나 의를 주장하는 우리들의 입은 닫혀지게 되며, 저항 없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우리들 대신 저주를 받아 형벌을 끝내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믿어 양심이 평화를 누리게 되고,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게 되었고(벧전3:21), 양심은 두려움에서 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을 얻은 입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자이시고(마1:21),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고(요3:17, 12:47), 예수님에게 세상 죄가 넘어갔으며(요1:29), 피를 흘리면 많은 사람들의 죄가 사해져 버릴 것이라고 새 유언을 하셨으며(마26:28), 그 유언을 다 완성하셨고 “다 이루었다”(요19:30)고 선언하심으로 세상 죄가 사해졌다. 그 세상이 바로 나 자신, 우리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에 있고 구원은 받은 것이며 구원받은 사실은 입증된 것이다. 그 입증은 무엇일까? 느낌? 감정? 기분? 환상? 꿈? 방언? 아니다. 절대로 그런 것이 구원의 입증이 아니다. 더구나 영혼의 평화, 양심의 자유도 확증의 결과는 될지언정 그것이 입증이 아니다. 선한 행위, 찬송, 감사생활도 입증의 결과일 뿐 입증 자체가 아니다.
 
입증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입증이며, 예수님의 초림, 죽으심, 부활하심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입증이고 입증의 증거는 기록된 성경 말씀이다. 여기에 감정이나 느낌은 전혀 포함되지 않고 기록된 성경 말씀이 바로 구원의 입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안에 있는가?’를 시험하고 그 결과를 입증해야 한다. 입증은 기도원에도 금식기도에도 통성기도에도 주기도문에도 사도신경 암송에도 있지 않다. 입증은 어느 특정 교파, 교주, 자기들의 교회만 구원이 있다는 곳에도 있지 않다. 오로지 기록된 성경 말씀만이 유일한 구원의 입증인 것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너희가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라.”(요20:31)
“또한 너는 어려서부터 성경기록들을 알았나니, 이 성경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딤후 3:15)
 
바울 사도는 기록된 말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고(고전4:6), 베드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고(벧전1:23) 가르치고 있다. 기계를 검사하는 재료와 도구가 있을 것이고 식품과 약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재료와 도구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키를 재는 도구는 센치미터자이고 몸무게를 재는 도구는 킬로그램 체중기 저울일 것이다. 우리들의 믿음의 영혼의 검진 재료와 도구는 오로지 기록된 성경 말씀뿐이다. 성경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확증을 나타낼 수가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시험하고 성경을 통하여 확증해야 할 것이다. 특정 교리에 속지 말아야 하고 우리 목사님이 나를 알아주기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교회는 큰 교회며 사람이 많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고 나는 큰 교회에 속한 교인이기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성경 보다는 교리를 믿는 것, 내가 교회 직분을 맡고 있기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새벽 기도를 하고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잘 내고 있기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시험해야할 사람이고 시험 결과 믿음에 있지 않는 자라고 확증할 수 있다. 즉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확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무엇을 하고, 하지 않고’에 있지 않고, 또한 직분과 관계없이 기분과 감정, 방언, 환상, 주일 성수, 생활, 십일조 생활, 목사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자신이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들이니라.”(고후 13:5) 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성경이 성령님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알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믿고 알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받으셨고 의롭다하심을 위해 부활하셨다면 그 성경 진리가 우리 심령에 증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넘겨지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어나셨느니라.”(롬4:25)
“너희에게 진리(眞理)를 알게 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달은 사실(골1: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령에 깨닫는 것을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마13:23)라고 하셨고 이것을 베드로는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벧전1:23)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복음으로 내가 너희를 낳았다”(고전 4:16)고 표현하고 있다. 변화산에 모세와 엘리야가 있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대화하고 있었으나 그 후 그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더라”(마17:8)는 말씀이 있다. 성경에서 피를 흘려 죄를 속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나의 심령에 남는 것 즉 기록된 복음이 심령에 남는 것이 영혼의 문설주에 뿌려진 피이며, 말씀으로 성령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증거인 성경을 믿어진 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믿음에 있는 것이 확증된 그리스도인임을 믿어야 할 것이다.
 
 
가짜들이 차지하고 있는 교회당들
 
“또 하늘의 왕국은 바다 속에 던져놓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이 가득 차면, 그들이 해변으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버렸느니라.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義人)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7-50)
 
이 세상에는 가짜들이 판을 차지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 거짓 교사들, 그리고 거짓 것을 믿는 거짓 신도들도 있다(살후2:9-12)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을 대신하려고 했던 엘리에셀(창15:2)은 데려온 사생아로서 종이면서도 주인의 아들 노릇을 하려했다. 오늘날 데려온 업동이 엘리에셀같은 자들이 교회 내에서 주인의 아들인줄 착각하고 있으면서 자기를 시험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아들 노릇하려 했던 이스마엘(창16:11)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래의 제안 즉 사람의 뜻(요1:13)으로 출생한 교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지 않는 사람의 교리, 사람의 뜻, 사람의 유전 신학, 철학, 풍습의 생명에 기독교적 겉옷을 덮어씌운 기독교 종교인은 버리운 자들이다.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만들어진 교인은 결코 천국에서 볼 수가 없는 자들이며 생명책의 페이지를 뒤집어 찾아도 그들 이름을 발견 할 수가 없다.
 
“어떤 길은 사람에게 옳게 보이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14:12)이다. 성경의 눈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옳은 길 같지만 성경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멸망의 길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이 다름같이 다르기 때문에(사55:8-9) 사람의 눈에 바르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은 지금 자신을 성경으로 다시 시험하고 그 결과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넓은 길은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마7:13). 그리고 그 넓은 길에 들어섰던 자들은 좁고 협착한 진리의 길보다는 다수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입술에 비유 맞추면서 넓은 길을 갔던 자들에게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답변하실 것이다. 지금 넓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은 그 길이 죽음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를 성찰해보아야 하고 입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마22:32). 아담은 죽은 자로써 죽은 자를 낳을 뿐이다. 예수님은 사신 분으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시고 부활이시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것은 산 것처럼 보여도 산 것이 아니다. 조각품, 그림, 동상, 형상, 인형은 산 것같이 만들어졌어도 낳은 것이 아니고 만들어졌다는 그 자체로써 생명이 없는 것이다.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라. 이는 너희가 개종자(改宗者)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when he is made-KJVB),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마23:15)
 
이스마엘은 율법이 낳은 종의 자식이고 이삭은 약속이 낳은 약속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상속을 이어받을 것이다. 종은 아들과 같이 유업을 얻을 수 없고 집에서 쫓겨날 것이며(갈4:30) 영원히 자유를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요8:34-36). 내가 종인지, 아들인지를 시험해야하고 그 결과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긴급하고 시급한 구원의 입증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그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로다.”(눅19:9)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날마다 서로 권면하여 너희 중에 아무도 죄의 속임수로 인해 완악(頑惡)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이는 만일 우리가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확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되리라.”(히3:13-14)
 
깊은 밤이 오고 있다(마25:4).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암8:11). 복음이 변질되고 있고 전도자의 외침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교회들은 죄인들을 두려워하고 죄인들에게 아부하고 있으며 돈이라는 맘몬을 섬기고 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침례 요한의 목을 끊어 축복이라는 쟁반에 담아 사단에게 바치고 있다. 양심을 무디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빗겨 나가게 하고 있고, 세상에는 죽음을 부르는 사신들이 더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원의 기회, 은혜의 날이 사라져 가고 있고 역사적으로 방주의 문은 닫혀가고 있다. 자기를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소리가 사라질 날도 곧 오고 있다. 그날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성찰(省察)하고, 너희 스스로 자신을 입증하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를 뼈저리게 사무치게도 그리울 날들이 오고 있다. 종교의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도 수치를 모르는 영혼들에게 광야에서 외치는 침례 요한의 경고, 베드로의 위선의 잠에서 정신차리게 한 새벽 수탉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버려진 영혼들에게 얼마나 행복한 기회인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 바로 오늘 자신을 성철하고 스스로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면 믿음 안에 있고, 없다면 버려진 자인 줄 알고 버려지지 않게 되길 기도드린다.
 
“네 자신은 내일에 대해서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잠27:1)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