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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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다비의 세대주의 거짓말 존 다비의 세대주의 거짓말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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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다비의 세대주의 거짓말
 
알메다 칼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대주의는 1830년경에 두드러졌던 형제교회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 운동 집단은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영국의 플리머스를 중심으로 한 출판 때문이다. 존 다비(John Nelson Darby)의 때로부터 세대주의자들은 다작의 작가들이었고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도 매우 많다. 형제교회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가르침으로부터 급진적인 변화를 한 요소가 되었다. 이 집단은 사도들의 시대 이후 사라졌다가 “재발견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매우 작은 유파였지만, 그들의 “재발견된 진리”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파에서 발견된다. 그 이유는 주로 스코필드 참조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의 영향이 컸기 때문인데, 그 성경은 스코필드가 예수회의 존 다비의 영향 아래 있게 된 후에 그러한 견해들을 영속시키기 위해 쓰여 졌다. 1909년에 출판된 이래 그 “성경”은 2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엘리스(Oswald T. Allis)(예언과 교회)에 따르면, 블랙스톤(W. E. Blackstone)의 책 예수께서 오고 계시다(Jesus is -Coming)도 미국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형제단 견해들을 크게 확산시켰다. 금세기 초에 그 책 수백만 부가 그리스도교 종사자들에게 무료로 우송되었다.
 
그 형제단은 19세기의 시작 때로부터 그들의 가르침이 그들의 선구자들 및 동시대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뛰어난 주석서들과 모든 교부들 및 심지어 종교개혁자들도 “인조 가르침”에 의해 기만되었으나 형제단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한다고 한다. 이러한 우월적인 태도가 우리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세대주의자들의 글에서 인용한 다음의 글을 보면 분명하다.   
 
 
 
 
최근의 책(왕인 돌아오실 때, pp. 13, 14)에서 캐나다의 전도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J. Smith)는 하나의 포괄적인 진술을 통해 모든 주요 주석서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주석서들이 그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언과 관련해서 믿을만한 오래된 주석서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주석서들은 구약의 예견을 정신적 의의로 해석하며 왕국을 교회와 혼동한다. 따라서 그들의 해석은 무가치하다.”
 
(그 책의 63쪽에서) 이사야 11:1-13; 12:1-6을 인용하면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의 초림에서는 이 구절 중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정신적 의의로 해석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위대한 주석가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성취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계몽하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셨다.”   
 
스코필드 성경은 또한 그 독자들에게 그 가르침이 역사적 그리스도교와 상반되며, 그러한 역사적 가르침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복음을 연구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며, 구약은 왕국이 교회 안에서 성취되는 것을 예견한다는 믿음으로부터 독자들이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한다. 스코필드는 이러한 믿음이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유산”이었다고 인정한다 (p. 989).  
 
구약에는 교회가 예언되어 있지 않다는 잘못된 세대주의 가르침을 언급하면서 아이언사이드(Harry A. Ironside)는 (하나님의 신비, p. 50) 그러한 가르침이 19세기에 다비에 의해서 소개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사실, 지난 세기 초에 탁월한 전직 성직자인 존 다비 (J. N. Darby) 씨의 글과 전파를 통해 부각되기 전에는 1600년의 세월 동안 단행본이나 설교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말에 의문이 간다면, 필자가 어느 정도 한 것처럼, 니케아 전후의 소위 교부들의 언급과, 신학자들의 신학 논문들과, 그러한 사상의 기미를 가진 로마 가톨릭 필자들과; 종교 개혁 문헌과; 청교도의 설교들 및 해설들과; 그리고 당시의 일반적인 신학 작품들을 연구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 ‘신비’가 없는 것이 오히려 사람의 눈길을 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차퍼(Lewis Sperry Chafer)의 책 (역사와 예언상의 왕국, p. 5) 서문을 쓰면서 스코필드는 말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모든 왕국 약속들과 심지어 큰 다윗과의 약속 그 자체가 교회를 통하여 성취될 것이라고 매우 일반적으로 가르쳤다. 그리하여 초래된 혼란은 ‘하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표현에 의해 지적되는 왕국 진리의 서로 다른 양상을 구별할 수 없게 될 정도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세대주의자 월부르드(John Walvoord)는 거룩한 장서(Bibliotheca Sacra)의 한 기사에서 (1-3월호, 1951, p. 11) 그의 천년기 생각은 위대한 종교 개혁의 신학자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개혁된 종말론(개혁주의신앙)은 현저하게 무천년주의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종말론에 있어서 무천년주의이며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인용문들은 적어도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자들과 관련하여 두 가지 것을 증명한다: (1) 그들이 역사적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사고를 사실상 경멸한다는 것과,
 
(2) 세대주의 가르침은 (교회가 이스라엘과는 분리된다는 그들의 가르침에 특히 유의하라)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대주의자들은 당연히 전천년주의자들(천년왕국 전에 교회가 비밀휴거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전천년주의 가르침은 세대주의 가르침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역사적 천년주의는 후 사도 교회 역사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의 세대주의자들은 19세기 초에 발생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교회 밖의 국가적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어떤 미래의 희망도 가르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러한 분리된 미래의 희망이 세대주의자들의 주된 가르침이다. 엘리스는 (예언과 교회, pp. 8, 9) 세대주의자들의 아홉 가지 특징들을 열거하면서 그들 중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불과 두 개뿐이라고 올바르게 기술한다.
 
 
 
 
그러므로 현대의 세대주의자들이 전천년주의의 투사들이라는 주장은 불공정하며 사실이 아니다. 모든 세대주의자들은 당연히 전천년주의자들이고 미래주의자들이지만, 모든 전천년주의자들이, 심지어 모든 미래주의자들이 세대주의자들인 것은 아니다. 세대주의와 미래주의 모두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최근에 부가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질적 요소이다). 두 가지 새로운 이론들 모두 19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그리스도교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른 세대주의자들의 믿음을 조사하기 전에 교리상의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가 어떻게 그처럼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심지어 교파의 경계를 뚫고 승인된 신조를 거슬러 날아갈 수 있었는지에 관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보기로 하자. 나는 그러한 역경에 대한 대답이 존 다비 시대의 영적 경향을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초에 대한 한 연구는 교리 전파는 들어볼 수 없었으며, 우리 주님의 두 번째 오심에 대한 어떤 강조도 신학자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자유주의가 유행하였고 무기력함이 교회에 슬며시 침투했다. 설교단은 “직업적 성직자들”로 넘쳤고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 평신도는 영적으로 굶주렸다. 그들은 예언에 대한 어떤 확실한 말을 갈구했지만, 일요일마다 설교단으로부터 불확실한 나팔 소리만 울려나올 뿐이었다. 그러한 환경의 당연한 부산물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 관련된 총체적인 무지였다. 형제교회주의가 태어난 것은 바로 그러한 부화 장치에서였다.  
 
 
 
 
그러한 영적 진공에 다비주의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혁신이 태동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르몬교도들은 존 다비(John Darby)의 시대와 관련하여 천년 왕국(천년주의)을 가르쳤다. 요셉 스미스(Joseph Smith)는 존 다비가 형제교회의 지도자로 인정된 해로 간주되는 1830년 같은 해에 한 권의 책(몰몬경)을 내놓았다. 존 다비처럼 몰몬교의 요셉 스미스도 이스라엘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을 가르쳤다.
 
1831년에 (예수 재림론의 창시자인) 밀러(William Miller)는 그의 “연구 결과”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밀러는 1843년을 세상의 종말이 오는 해로 정했다. 여러 명의 그의 추종자들은 재산을 팔았으며 주의 돌아오심을 기다리기 위한 예복을 입었다. 러더퍼드 판사는 유대인을 위한 위안(Comfort)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러더퍼드는 1880년경에 천년기 새벽주의를 창시한 러셀(Charles Taze Russell-여호와의 증인 창시자)의 후계자였다. 러셀은 존 다비가 죽기 전 해인 1881년 초에 그의 책을 발행했다. 러더퍼드 집단은 “만국 성경 연구생들”, “러셀파”로 알려졌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들의 열광적인 천년왕국 이론은 잘 알려져 있으며,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영적 환경은 존 다비 세대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발견된 진리”가 취한 방향에 대한 통찰력도 부여한다. 예언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는 형제단 거짓 가르침은 당대의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의 삶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진공 상태를 대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존 다비 세대주의가 그러한 환경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만났다는 것에 우리가 놀라지 않아야 한다면, 당대의 사람들이 성경적 가르침의 결핍으로 다비의 모든 영적 “법안”을 심지어 그중 많은 법안은 “추가 조항”(이상한 개혁)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통과시킨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존 다비는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그 믿음은 버려졌고 회복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었다―에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믿음을 훨씬 넘어서서 그 자신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내놓았는데, 그가 그것을 내놓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탁월한 세대주의자인 차퍼의 말은 이 점과 관련하여 매우 적절하다 (역사와 예언상의 왕국, p.14): “사탄의 거짓말은 항상 진리를 곁들이며 그러한 곁들임이 소홀히 취급되는 진리와 함께할 때 훨씬 더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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