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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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인가? 유월절인가?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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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Tom C. McKenney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절기들'로 인식되는 모든 기독교적 거룩한 절기중, 그 시작 기원과 시간의 조건에 있어서 우리가 성경에서 어느 실질적인 타당성을 살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위 부활절(Easter)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당신이 지금쯤 의아해하는 것처럼, 현재 행해지는 형태 모든 것이 성경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마도 송축하고자 하는 것은 유월절(Passover)이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커다란 열정과 기쁨으로 송축했다고 한 것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의 부활절 송축들의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유월절(Passover)은 "어린 양의 피 아래"있는 집들을 사망의 천사들이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기념 축제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계속되어 섬겨져온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배신당하시던 그 밤에,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기념하시기를 "원하시고 원하신 것으로서" 의례적 식사였다.
 
 
초기 크리스쳔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죽음, 장례, 그리고 부활 이후 유월절을 송축하였다. 그 시작부터, 크리스쳔들은 매주일에 만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송축하였으며, 매년 봄(히브리 니산월, 우리의 3월/4월에 해당)에 그들은 유월절(Passover)을 기념하였다.
 
그러나 부활절(Easter)은 아니였다. 거기에는 유월절 양이 있었지, 토끼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부활절은 교회 내에서 자라기 시작하였고, 유월절은 사라져갔다. 흠 없는 유월절 양은 사라지고, 우리는 예수님의 자리에 초자연적이고 미신적인 토끼를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 그 근거들을 찾아내고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지 살펴보자.
 
이교들은 수세기 동안 새로운 생명, 유복 그리고 매년 같은 기간(봄, 춘절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았던 춘분)에 만물소생의 반복을 축제로 즐겨 왔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봄에 일어났기 때문에, 오래된 이교 풍습들이 서서히 교회 생활의 일부분들로 들어오게 되었다.
 
초대 교회에는 그런 이스터-부활절 기념은 없었다. 그러나 이교주의 봄철 활동들은 유월절의 연례 기간에 접목되기 시작하였고 서서히 이스터-부활절은 성장하였고, 마침내 부활에대한 연례 송축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다음은 이스터-부활절 풍습들의 주된 외형들이자 그들의 기원들이다.
 
 
"부활절Easter"이라는 명칭. 크리스챤 역사가이자 이론가로서 8세기 저술가인, 거룩한 자 비드(Venerable Bede)에 의하면, 그 명칭은 'Oestre'(때로는 Estre라고 철자함-에스트루(Eestruh)로 발음됨)라는 축제로부터 나왔으며, 앵글로-색슨 족의 봄의 여신이며, 다산과 새 생명의 신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Eastre 기간"은 쉽게 "Easter 기간"이 되었다.
 
 
알을 낳는 토끼. 심지어 내가 꼬마였을 때도, 나는 달걀을 낳는 토끼에대한 생각으로 고통받았다. 나는 그 달걀모양의 사탕들이나 채색되고, 삶은 달걀들을 즐겼지만, 그러나 암탉처럼 달걀을 낳는다는 토끼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선천적으로 분석적인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닌지 의아해 하곤 했다. 초콜렛 달걀, 황금색 달걀, 밝게 채색된 달걀 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어린 아이 마음 속에 토끼가 사탕 달걀들은 물론이고 보통 달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조차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부활절 닭, 혹은 부활절 오리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달걀을 낳는 토끼라니?!?
 
나는 이 맛있는 달걀들을 반갑게 받아들이기는 했지만(어떤 소년 소녀들이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궁금했다. 지금,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따라서 당신과 그 해답을 공유하도록 허락해 달라.
 
고대 이후로, 이교도들은 토끼들을 성과 다산의 신들로 숭배해왔고, 그것들을 부, 성적인 힘, 그리고 재생의 상징으로 섬겨왔다.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전통에는 토끼 신들이 있었고 그들은 특별히 봄에 숭배되어졌다.
 
이와같이, 달걀도 고대 이후로 다산과 성 그리고 새 생명의 상징이였다. 달걀은 항상 새로운 생명, 다산, 등등에대한 봄철의 이교 기념에 있어서 중요한 형상이였다. 지구의 기원에대한 고대 전설은 지구가 거대한 계란으로부터 부화되었다고 한다(만일 당신이 이것을 조금만 새심하게 읽어본다면, 당신은 현재의 "우주적인 달걀" 기원에대한 진화적인 (이교) 이론과 현저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광범위한 이교 사회, 이집트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영국까지, 밝게 장식된 달걀들은 다산과 성적 성공을 매년 봄에 (초자연적으로) 가져다 주는 선물들과 마법으로서 묘사되었다(지금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봄의 여신, Oestre(Estre)의 이교 전통 속에 있는 우리들의 이스터 풍습 속에 함께 녹아있는 것이다. 그 이교 스토리를 보면, 의도적으로 토끼가 되기를 소망하는 거대한 새가 있었다. Oestre(Estre) 여신은 은혜롭게 그 새를 토끼로 변화시켜 주었고, 그 감사로 토끼(여전히 새의 달걀을 낳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던)는 매년 봄 Oestre(Estre) 축제 기간에 와서는, 자애로운 여신을 위해서 아름다운 달걀들을 낳았다. 어떻게 우리가 미신적인, 달걀을 낳는 토끼 신을 우리의 이스터-부활절 전통에 갖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날짜. 이교 Oestre(Estre) 축제가 유월절 기간인 매년 봄과 동시였기에, 이 이교 신앙과 풍습들이 교회의 생활 내부로 수월하게 전이되었고 유월절을 대체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 이제 우리는 알았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유월절 토끼의 비밀이 풀렸다. 어떻게 다양하고 경이로운 종류의 달걀들을 낳는 미신적인 토끼를 우리가 이어 받았는 지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것들이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교회의 연중 봄 행사로 들어왔는 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은 이 모든 것 안에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제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는가? 그것을 위해 이 글이 쓰여졌고, 읽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이상 그토록 쉽게 속고, 방해받고, 멸망되지 않도록 지식과 사실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당신과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은 당신과 주님 사이에 해결되어야할 문제인데,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있는가? 나는 좀 화가 나고, 이와 관련된 자리들에서 설교적으로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 대해서 화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속았고, 영혼이 도둑맞아 왔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나는 이와같은 방법으로 영혼을 도둑맞고 있고, 상처받는 순진하고 순수한 작은 어린이들에대한 생각으로 화가 난다. 그러나 나는 설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사실들에 대해서 제시하고자 할 따름이며, 그 사실들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할 따름이다.
 
 
어쨌든, 결론은 우리의 전통적인 이스터-부활절 풍속에 이교주의가 있고, 그 이교주의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주님을 공격하고, 고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 방식대로 따르긴 하지만, 그것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리해도(그리고 대부분,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하고있는 지에 대한 의미도 알지 못한다) 말이다. 실제로, 현재의 교회 내의 이스터-부활절 풍습들은 이교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돌아와, 바니(Bunny)! 나는 믿어!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는 한 아름다운 이스터 주일에 친구들을 방문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맏 아이가 진리를 배웠다고 말해주었다... 즉 이스터 바니(토끼)는 없다는 것 말이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게해 달라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 아이의 상심을 재미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였다! 아이는 그 날 아침 자기에 관해 알고자 하는 약간은 현학적 분위기를 눈치를 채긴했으나, 자신의 "성장한" 지식을 스스로가 주지하는 것 같았다. 곧 아이는 혼자 뒷 문에 서서, 숲이 우거진 큰 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 뒤에 있었다. 나는 아이를 지나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제껏 보지 못한, 커다란 토끼 한 마리가 숲 속에서 나타나, 그 집쪽으로 서서히 뛰어오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 아이는 그것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주시하였고, 얼마후 그것은 집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긴장하였고, 갑자기 앞 문 쪽으로 달려나가 그것이 방향을 돌려 서서히 이웃집을 향하여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이 급박한 상황과 투쟁하며 무엇을 느끼는 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돌아와, 바니... 돌아와! 나는 믿어... 나는 믿어!"
 
 
그 때 나는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것은 내 마음을 아프게한다. 그것은 지금 나를 울게 만든다, 왜냐하면 아이가 했던 일은 히브리서 11장 6절에 표현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내게 있어서, 그것은 쉽사리 믿는 작은 소녀의 감정들에대한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눈물이였다; 그리고 소녀가 한 말은, 아주 사실적인 방식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회개해, 바니, 나는 내 불신과 믿지 못하는 것을 회개해; 나를 제발 용서해줘; 내게 다른 기회를 줘, 그러면 너와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 나는 네가 진짜임을 믿어, 그리고 만일 내가 오직 너를 믿고 구하면 네가 내게 달걀을 줄 것을 믿어!" 그것은 불쌍하고 진지한 아이가 한 이교 다산 신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이였다. 도대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소녀는 그것이 우리가 그녀에게 가르쳐온 것을 믿는 순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였다. 그것은 생명보다 더욱 그녀를 사랑하시는 참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쳔들은 그것을 계속해서, 대대로, 대물림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것과 관련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각각의 개인과 주님 사이에 해결되어야할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자 하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아이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멈춰야하고, 우리는 그들을 속이는 것을 멈춰야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가정과 삶에서 이교주의의 모든 흔적들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찾아 발견하도록 우리의 신발이나 바구니 혹은 뒤뜰에 와서는 사탕 달걀(그리고 실제 달걀 혹은 비슷한 것들)을 낳아주는 자애롭고 미신적인 토끼에대한 이 모든 불경스런 허구들은 적어도 우리의 눈을 주 예수님의 실제에 대해 눈멀게하고, 가장 중요한 유일한 사건: 사망에대한 그분의 부활 승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 어떤 "무해한 재미"로도 이것을 보상할 수 없다, 실제로 그것이 해롭지 않다해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무해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기도로서 모든 반-기독교적인 이교주의들을 당신의 삶에서 제거하기를 촉구하며, 주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고 그것으로부터 참으로 자유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평안에 관한 .... 마지막 말.
 
 
나는 이 전통들이 우리 삶에서 매우 견고한 것임을 깨달았다... 적어도 그들중 대부분은. 그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종종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가 이 것들의 진실을 알고 있고 그것들로부터 즉시 완전히 떠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훨씬 어렵다. 그렇게 하는데 일년도 더 소요된다.; 심지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매년 자기들의 이름을 꿰매 걸어놓는 크리스마스 양말들이 그렇다. 우리들은 우리 가정 생활에서 그것들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명확하게 사실들을 직시하라; 스스로가 그 기원들을 확인하라. 그에관해 기도하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진리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하라. 이 전통들중 어떤 것은 매우 매우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진실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하루만에 완전히 변화시킬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께서 당신을 변화시키기 구하라. 그것이 즉시 혹은 천천히 일어날 지라도 말이다.
 
 
충고에 관한 마지막 말.
 
 
만일 당신이 여전히 이 모든 것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지 의아하다면, 그것은 자유롭게 살거나 방해받으면서 살거나에 관한 것이다 : 우리가 그토록 즐기던 모든 그 절기들은 강력하게 이교주의에 흡수되어온 것들이거나, 혹은 전적으로 시작부터 이교적인 것이었다. 이교주의(심지어 순수한 이교주의)는 열린 문으로서, 그것을 통하여 사탄은 고통과 아픔과 종속을 야기시키며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올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어떤 형태의 이교주의 혹은 이 절기들을 기념하는 또 다른 것들을 받아들였다면, 우리 삶에서 그런 문제들을 야기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작은 책이 쓰여진 이유이다.
 
 
결론
 
 
따라서 결론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만일 이 절기들과 연합한 이교주의가 당신의 가정이나 당신의 삶으로 침입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모든 방해들로부터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이 우상숭배적인 잡초들을 당신 삶이라는 정원에서 뽑아버리라. 당신은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당신은 반드시 결심해야 한다; 당신에게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구하라, 당신이 직면하는 각각의 문제들에 정직하고, 그리고 결심하라. 그 후 행동하라. 지혜와 사랑 안에서 행동하라, 그러나 행동하라.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들을 뿌리 뽑아 던져버리라. 그것들이 당신에게 가져다준 모든 종속과 아픔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주님께 구하라,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삶을 시작하라. 당신은 그 차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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