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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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Religion)란 무엇인가?

  • 관리자 (ehompy0429)
  • 2014-05-26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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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宗敎-Religion)란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를 세상에 있는 여러 종교 중에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안에는 복음과 종교가 분명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이는 서로 정반대이면서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많은 기독교신도들 중에도 기독교를 종교의 일종으로 보며 어떤 신학자들까지도 기독교는 종교 중에 참된 종교라고 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는 너무도 악하고 잘못된 것이며 또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중에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를 복음과 종교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구별하는 일과도 동일한 것인데 종교는 사람에게 속하였고 복음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죄로부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 들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영)혼에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11:28-30)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보편적으로 이 말씀은 단순히 죄를 범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나 근심하는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으로 간단하게 생각해 버리지만 사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단지 죄인들과 근심에 쌓인 자들만 부르시는 말씀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율법이라는 종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란 단어의 라틴어의 뜻은 릴리지오(Religio)로서 신에게 결합시킨다, 또는 구속(拘束)시킨다, 즉 신에게 속박시킨다는 뜻으로 종교는 사람을 구속하며 속박하는 것입니다. 왜? 종교가 사람을 속박합니까? 여기에 사람이란 자체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인이며 선(善)을 알면서도 그 선을 행할 수 없는 심히 약하고 무능한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이 생각하기는 사람은 선할 수 있고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의 표준에서는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표준에서 보면 그것은 거짓말임이 입증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정결하나 주님께서는 그 영들을 달아 보시느니라.”(잠 16:2)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에는 깨끗한 행실인 것 같고 의로운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의 선도 하나님 앞에 세우면 더럽고 사악한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성자라고 칭송을 받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 앞에서는 누더기 같이 더럽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들은 더러운 걸레 같으며 또한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잎사귀 같이 시들며 우리의 죄악들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
  사람이 보기에 가장 선하다고 하는 자도 더러운 옷 같다고 표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선하다거나 의롭다고 말을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왜? 사람은 선할 수가 없을까요?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시편 51편 5절에는 “보옵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형성 되었으며 죄안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열매가, 수박넝쿨에서는 수박이 여는 것은 당연하다기보다는 절대법칙입니다. 사람의 조상 아담이 죄인 이였기 때문에(롬5:12)아담의 후손들은 자연적으로 죄인으로 출생하게 된 것입니다. 죄인에게서 의인이 출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이와 같이 아담이라는 인류최초의 조상이 죄를 범하여 죄인이 되었기에 죄인이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죄뿐이니 사람은 나면서부터 선을 행할 수 없는 죽은 자 같은 존재로서 죽은 자에게 하나님같이 선해야 한다, 거룩해야 한다, 고 명령하고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고 하는 완전한 의인의 의무를 가르쳐서 행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심히 무거운 멍에가 되며 속박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란 사람의 양심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사람들아, 하나님처럼 되어야한다. 는 것입니다. 사람이 받은 의무의 표준은 하나님입니다. 이상적인간이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일하게 완전하게 선한자만 그분 앞에 설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는 호리만한 허물도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서는 하나님의 선외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습니까?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만 짓고 살아온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걸어가라고 하니 이는 너무도 큰 고통이며 속박이 되는 것입니다.
  얼굴에 피 색 이라고는 없으며 몸은 여의여 뼈만 앙상하고 어깨는 늘어지고 허리는 꼬부러지고 다리는 절고 있는 병자에게 무거운 바위를 그 앞에 놓고 그것을 지고 가라는 폭군이 있어 그 손에는 채찍을 들고 버티고 그 앞에 섰다면 그 노예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원하지 않을 까요? 그것이 바로 종교의 멍에와 폭군 앞에 있는 인생 곧 독자 자신은 아닙니까? 종교(宗敎)라는 한문의 뜻은 근본적인 교훈이라는 뜻인데 이상적인 인간의 자세를 가르쳐서 그 자세에 부합된 행동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역시 종교는 구속이며 (束縛)입니다. 종교에 있어서 한문의 의미나 라틴어 의미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란 그 의미가 밝혀 주는 것같이 실로 쉬지 못하는 무거운 짐 인 것입니다. 실로 종교란 인간본능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이며 강력한 요소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로 영과 육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는 본능은 식욕이나 성취욕, 기타 욕망 등은 육신에 속해 있는 본질이며 동시에 영에 속한 본능은 바로 종교입니다. 육이나 영은 속성에 있어서 그 근본으로 귀속(귀소본능-歸巢本能)하려는 성질이 있는바 육신은 흙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장하거나 병들면 흙에서 나는 식물 곧 음식이나 또는 약품을 찾는 것같이 배가 고프면 식물로, 병들면 약품으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사람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분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 하셨더라.”(창1:27)
“하나님은 한 영(靈)이시니 그분께 경배 드리는 자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ㅡ경배 드려야 할지니라. 하시니.”(요4:24)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란 외모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 자체는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의 근본이 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근본으로 하는 영을 가진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영이 시조로부터 범죄해서 영이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근본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2장 1절은 “또한 허물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그분께서 살리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살아 계시는 분과 죽은 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이시며 사람은 그분 앞에 죽은 자와 같습니다. 죽은 자는 산자를 향하여 동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하시며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인간은 산 동작 곧 선이나 의로운 행위로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자는 죽은 자에 대하여 관여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나 죽은 자는 산자를 향하여 아무런 동작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김씨라는 사람과 이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두사람이 친구이나 김씨 앞에서 이씨라는 사람이 죽으면 두사람의 교제는 끊어지고 김씨가 이씨를 향해서 울면서 이름을 불러도 이씨는 대답을 할 수가 없고 이는 김씨를 향하여 아무런 움직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죽은 자로서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선한 행동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실 수가 있으시지만 사람은 거기에 대등한 의로운 행위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영혼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을 찾는 활동이 자체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종교로 나타나서 죽은 상태로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사람이 시장하면 음식을 찾는 것은 본능에 속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시장하여 영적인 먹이를 찾는 본능의 동작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에서 종교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에덴 락원을 상실해 버리고 영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막연하게 찾아 헤메는 중에 보이는 것마다 거기에 신(하나님)이 있는가? 하여 섬기기 시작하니 하나님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중에 별을 보면 거기에 하나님이 하여 만들어 섬기니 별신이 만들어 지고 태양에서는 태양신이, 나무에서는 목신이, 불에서는 불신이 물에서는 물신, 돌에서는 돌 신이 만들어진 현실들은 하나님을 찾아 헤메는 애닲으게 부르짖어야하는 처량한 신세의 인생, 하나님께로부터 잃어진 인생에게는 무지가 아니라 당연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좀 더 지성적으로 발달한자들은 철학적으로 하나님을 찾아 이론을 전개하고 혹은 수양이나 도덕을 생각해내어서 가르침으로 하나님에게 도달하려는 길을 제시해 놓은 것들이 곧 종교이니 이는 곧 사람의 영혼의 본능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메는 중에 만들어진 신과는 관계없는 인간 자기들끼리의 무지한 작난에 불과 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찾다가 찾다가 찾다가 찾아지지 않으니 아예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무신론이 제창되고 있으니 그것 역시 없다고 해보는 것이지 참으로 없어서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안계시다는 이론이나 증거가 입증되기 까지는 자신이 알지 못 할뿐 하나님은 살아계시되 그 자신은 어두움의 세계에서 자기 홀로 지껄여 보는 어리석고 무지하고 미련한 불평이고 허탄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이여! 지금 당신은 어떠합니까? 지금 종교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양심의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속박을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무거운 멍에를 벗어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까?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는 내가 지나다니면서 너희의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 라고 새겨진 한 제단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알지 못하면서 섬기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리라.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니 그분은 손으로 지은 신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같이 사람들의 손으로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들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행17: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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