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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제 목: 선한 사마리아인. (눅10:25-37)

  • 관리자
  • 2018-06-24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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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눅10:25-37. 

 제 목: 선한 사마리아인.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주신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율법은 끝난 시대라고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율법의 한 부분 을 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율법이 더하여진 믿음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중에 율법사가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행하여야 됩니까? 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율법사는 영생이 없는 자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오히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만 있기 때문입니다.(롬3:20)예수님은 그에게 반문 하셨습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나이다.(27절) 하니 주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 대답이 맞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 맞습니다. 율법전체를 행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전체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그는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는 간음하지 말라, 하신 그분께서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이니, 이제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 하여도 살인하면, 너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

이 율법사는 자기 자신은 그것을 다 행한다고 스스로 믿었기에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고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는 말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봅니다. 요즘도 자기는 의롭게 되지도 않았으면서 의로운 척 하는 모조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그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반쯤 죽이고 떠나갔는데,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을 내려오다가 그를 보았으나, 못 본척하고 다른 쪽으로 지나갔으며, 어떤 레위인도 그를 보고 다른 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자들이므로 율법에 시체를 보면, 부정하다는 말씀을 알기에 그들은 율법을 범하지 않으려고, 그냥 가버렸는데 그것은 율법에 가장 귀한 사랑을 잃어버린 행동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전하여 말하되 자기 백성들 중에서 죽은 자로 인하여 더럽혀지는 자가 아무도 없게 할지니라.(레21:1)

율법을 지키려다보니 율법을 범할까봐 그들은 이웃 사랑을 버리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들의 생각들은 율법이 주어진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음으로 자기들의 행위가 옳은 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은 것으로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랑이 율법을 성취하는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 어떤 빚도 지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라.(롬13:8)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누가 네 이웃이냐? 는 질문이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이웃은 강도당한 유대인 이었는데, 그들은 그 사랑을 몰랐음으로 그냥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웃은 하나님의 원수 된 우리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 하신 것입니다. 원수 된 우리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분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동족이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이나 레위인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는 사람들이 이웃을 버리고 그냥 갔습니다. 이것은 율법은 사람을 살릴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인 은 그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자를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 취급 당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멸시 천대 하였고 사마리아인을 상종치 않듯이 주님을 멀리 하였습니다. 심지어 나사렛 이단자로 까지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취급을 당하신 주님께서는 강도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기름과 포도즙을 부어 그 상처를 싸매 치료해 주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시어, 나무에 달려 죽으셔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셔서 우리들이 죄들을 사(赦)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운 것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의미하며, 포도즙을 부은 것은 우리의 죄들을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들이 사하여져서 양심이 치료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를 자기 짐승위에 태워 그를 여관으로 데려와 돌보아주고, 다음날 떠날 때에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 보아주라, 당신이 얼마를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다 갚아 주리라, 한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예수님이 타신 짐승은 나귀였으며, 그를 여관주인에게 보호를 부탁하였는데, 이는 교회에 치료된 양심을 가진 구원 받은 사람을 맡기신 것을 의미합니다. 두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이는 말씀과 성령을 의미 합니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 이 둘이 교회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만약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다시 오는 그날에 갚아준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그날에 교회들에게 보상하실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율법강도에게 또는 죄 강도에게 죽어가고 있지만, 먼저온자들은 다 지나가버리고, 마지막에 오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겨 성령의 기름을 바르시고, 피의 포도즙을 부어 죄들이 준 상처들을 치료해주시고 죄 없다고 싸매주셔서 그 상차가 보이지 않도록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며, 아울러 주님의 교회로 인도하셔서,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게 하신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님께 감사의 산제사를 드리며, 신실한 믿음을 지키면,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에 교회들에게 보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36절에 누가 강도 만나 쓰러진 자의 이웃이겠느냐? 라는 질문에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 입니다. 라는 대답이 증명 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이며,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 주님이 죄를 지어서 죽으신 줄로 착각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의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어가는 자들에게 다가 가셔서 그를 성령의 기름으로 치료해 주시고,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죄들로 죽어가는 우리는 살려 주시고, 보호해주시는 주님을 알고, 그분에게 나의 일생을 주님에게 끝까지 맡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반드시 그날에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곧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아있는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3: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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