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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사마리아 여인의구원(요4:4-30)

  • 관리자 (ehompy0429)
  • 2018-12-30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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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4:4-30

제목: 사마리아 여인의 구원.

주님께서 반드시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하겠으므로, 그때에 주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성읍 곧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준 그 땅에서 가까운 수가라 하는 곳에 이르시니, 이제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님께서 여행에 피곤하셨기에 우물 위에 앉으셨더니, 때는 제 육시쯤 이였더라. 거기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는데,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시니(요4:4-7)

사마리아성읍은 혈통과 종교에 있어서 혼혈 유대인으로 앗수르 왕이 열 지파를 포로로 하고 그곳에 이주시킨 식민들의 후손들이며, 이 후손들이 불모(不毛)의 땅인 박토(薄土)에 남았던 유대인들과 이후에 돌아온 다른 많은 유대인들과 혼합된 민족이므로, 유대 사람들이 그들을 천민으로 여기며, 상종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경쟁하듯이 그리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천한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들과 유대인들은 큰 적개심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번창하면 그들이 같은 혈족이라고 하다가 이스라엘이 쇠퇴하면 자기들은 메데와 바사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기에 이스라엘사람들은 그들을 상종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큰 욕(辱)이였습니다. 예수님도 한때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너희는 사마리아의 어떤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마10:5-6) 이렇게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상종조차 하지 않으니, 사마리아 인들도 유대인들을 적개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 이신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하니,(7절)사마리아 여인인들 곱게 물을 떠서 줄 수 있었겠습니까? 평소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인들을 천민(賤民) 취급하다가 목마름을 해결코자 마실 물은 왜 달라하는가? 하는 적개심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한마디 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나이까?(8절)하고 답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마실 물을 달라고 구한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너는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하시니(10) 여기서 우리는 이 여인의 어리석은 대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이 여인은 육신의 것으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11절) 한 발 더 나아가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주었고,(12절)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의 의(義)를 드러내 놓는 것을 봅니다. 그 우물은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준 것이지, 사마리아인들에게 준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조상 야곱이 준 우물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필자도 전도를 하다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목사님도 훌륭하신데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상하네요? 부정합니다. 예, 성경말씀이 그런가요? 하고, 믿는 사람들이 없고, 우리목사님 아니면, 내 생각에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는 자기 생각을 들고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여인 역시 우리조상 야곱이 준 우물 참 좋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우물은 깊고, 물기를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생수를 준다는 말입니까? 그러면서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 한편으로 주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손님 대접하기를 잘 하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낯선 자들을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는 이로써 어떤 이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들도 이었기 때문이라,(히13:2) 참조,(창18:1-15)(창19:1-25)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의 말과 예수님을 본 자들의 말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만,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오직 내가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시니(13-14) 주님께서 생수를 주신다는(10절)말씀에서는 비웃다가 누구든지 내가주는 물을 마신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에 그 여인은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여기에 다시 물 기르러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말씀 속에서 귀가 열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는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참으로, 거리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나에게는 남편이 없나이다. 는 진실한 고백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도 주님 앞에 진실한 고백이 필수입니다. 거짓된 고백은 주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는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또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므로 그에 대하여 네가 진실하게 말하였음이라, 하시니(16-18) 그 여인은 남편을 여섯이나 가진 지저분한 여인 이었는데, 곧 창기와 방불한 여인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의 괴로운 것은 물 길러 다는 것이 엇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 우물이었기에 물기를 때 마다 손가락질 받았으므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물을 기르는 것이 큰 부담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다는 말씀이 그를 자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그 여인은 주님에게 당신이라는 말이 한 선지자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들의 남편은 진정으로 누구입니까? 대답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남편은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제일먼저 돈 남편이 있고. 명예남편이 있고. 권력남편. 쾌락남편, 정욕남편, 사랑남편 등 여섯 남편들을 다 거느리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 중에 제일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남편과 지금도 동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 따라 정리하기 어려운 남편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기왕에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내 남편이 아닌 남의 남편과 살고 있었던 것이므로, 주님의 말씀에 그 여인은 찔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아직도 주님을 시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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