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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선포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써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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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나아만 장군의 구원.(왕하5:1-14)

  • 관리자 (ehompy0429)
  • 2019-09-08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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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하 5 : 1-14. 제목 : 나아만 장군의 구원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믿는 기독인은 아주 적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나아만의 기적의 치료나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문둥병도 고칠 수 있다. 치료가 안 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적은자여, 하나님을 열심히믿으라. 정성을 다해 믿으라. 는 말로 치료치 못하는 것은 믿음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의 진리가 담겨있는 것이지, 꼭 병 고침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치유의 기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말씀의 사실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의 나병은 곧 죄인들의 죄를 상징 합니다. 나병환자는 살이 섞어 들어가도 통증이 없고, 감각도 없는 것이 나병의 특징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들은 사람의 영혼을 영원히 멸망 받게 하는데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도 죄를 자각하지 못하기도 하며, 자기의 범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그 영혼들이 죽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가 자기를 죽게 만들고.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곧 나병환자와 같은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곧 교만한 죄인을 상징하는데, 나아만의 교만은 결코 나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교만도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과시하며, 왕의 친서를 가지고. 선지자에게 갔습니다. 그는 병자로 간 것이 아니라, 장군의 위엄으로 갔습니다. 그는 선지자의 대접가운데 호화로운 치료생활을 하고. 돌아올 것으로 알고 갔으며, 그는 선지자의 깍듯한 대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그것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의 생각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영접은커녕 자기 사환을 시켜서 기껏 하는 말은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 는 말 뿐이었습니다. 나아만은 노(怒)하였습니다. 다메섹의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그 강에서 씻으면 깨끗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에 분노에 차서 돌이켜 가니,(12절) 라는 말씀처럼 돌아가려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아만 장군이 과연 누구인가? 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주님을 믿으려 교회당에 가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이전에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 하시는가? 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생각에 맞추어보고, 목사의 설교가 내 마음에 들면, 그것이 옳은 것이고, 내 생각과 다르면, 그 설교는 의미 없는 설교로 넘겨버리며, 나는 모태 신앙이며, 수십 년을 믿음생활을 했고. 나는 장로요, 권사요, 집사요,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배우지 않았는데, 말하기도 하며, 우리 목사님은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는데 하며, 교회의 규모와 목사의 유명세와 교인들의 많고 적음을 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나아만은 돌아가려는데, 그의 종이 만류했습니다. 장군님 선지자가 이 작은 일이 아니고, 큰일을 지시했던지 어려운 것을 명하셨다면, 장군님은 그것을 행 하셨을 텐데, 이 작은 일이라 하여 그냥 가시려 하십니까? 하물며, 주인님에게 씻어 깨끗해지라. 하셨는데 왜 그냥 가시렵니까? 하고 만류함에 나아만은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에게 어려운 큰일을 명령 하였으면, 행하였을 텐데, 쉬운 일이라고 내가 무시하고 가려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요르단에 일곱 번 담그니, 살이 어린아이 살같이 되어 깨끗해 지니라.(14절) 말씀처럼 깨끗하게 치료 됐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들이 깨끗하게 사함 받은 것의 모형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주님께서 우리의 원죄는 사하셨지만, 우리의 자범 죄는 회개해야 사함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원죄란 단어도 없고. 자범 죄란 단어도 없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죄와 범죄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감성에 맞게 지어내서 하는 말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감성에도 맞음으로, 그런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알기도 전에 우리의 죄들을 모두 사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는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느니라.(롬5:8)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들은 깨끗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 한 번에 드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느니라.(히10:10)

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단 한 번에 거룩한 처소 안으로 들어가시어,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느니라.(히9:12)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모든 죄들이 깨끗하게 사함 받음을 믿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 함 때문에 넘겨지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어나셨느니라.(롬4:25)

예수란 뜻은 구원자란 뜻입니다.(마1:21)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속죄해 주시려고 세상 죄들을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나무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들은 흰 눈같이 희게,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는 말씀을 성취하셨으므로, 우리들의 모든 죄들은 단 한에 모두 용서를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에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도다.(엡1:7.)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주님과 함께 살리셨고, 너희의 모든 허물들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였던 손으로 쓴 법령들을 지워 버리시고, 또한 그것들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길에서 제거해 버리셨으며, 정사들과 권세들을 탈취하여 그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2:13-15)

이는 그리하였다면, 주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반드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세상의 끝에 단 한번 나타시어, 그분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 하셨느니라.(히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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