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설교방송

말씀을 선포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써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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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만나를 싫어한 심판.(민21:1-9)

  • 관리자 (ehompy0429)
  • 2019-11-17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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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민 21:1-9.

제목 : 만나를 싫어한 심판 .

그들이 에돔 땅을 돌아서 가기 위해 호르산 에서부터 홍해의 길을 따라 이동하였더니 , 그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혼이 상하였더라.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 어찌하여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에서 죽게 하나이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으니 우리 혼이 하찮은 빵을 싫어하나이다. 하니 주님께서 불 뱀들을 백성들 가운데로 보내시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니,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더라.(민 21:4-6)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이제 광야를 벗어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시작 하였으며, 그 약속의 땅인 입구에 도착하였는데 가난안의 본토 왕 아랏 왕이 대적함으로 그를 격파하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 라, 불렀는데 이렇게 완전한 멸망을 뜻하는 이름으로 명명해놓고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돔 땅을 통과하여 바로가지 못하고, 그 땅을 둘러 먼 길로 가야했기 때문에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혼이 상하였다는 말씀이 있는데, 사람은 누구든지 혼 (魂 )적일 때는 육신의 일만 보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 (靈 )적일 때는 가만히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영과 혼을 잘 분별해보면, 혼은 육신의 일과 가깝고, 영 (靈 )은 하나님의 일과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이 구원을 받아야 항상 주님의 일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결국 곧 너희 혼들 (개혁성경은 영혼 )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 1:9) 그리고 혼은 마음이고, 영은 양심인데 우리의 마음은 육신적인 것들을 하고 싶어 하게 하여 혹 잘못행하면, 그때 양심이 그 잘못된 것들을 지적합니다. 그것을 양심에 걸린다, 또는 가책 (呵責 )을 받았다. 가책은 꾸짖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영의 책망인 것입니다. 그 양심이 하나님 앞에 가서 자기 죄들을 이실직고 (以實直告 )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육신의 것만 생각하고 이집트를 그리워하며,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그저 있는 것은 하찮은 만나, 곧, 이 빵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우리는 이것을 싫어한다고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빵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의 빵은 곧 없으면 죽는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그것이 싫어 졌다니, 이는 곧 삶이 싫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빵이 싫은 자들은 죽은 것과 같으므로, 죽음의 사자 불 뱀 들을 백성들 가운데 보내시어 물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만나가 무엇입니까? 만나의 빵은 곧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요 6:35)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으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니, 만일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려고 하는 그 빵은 이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주는 나의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50-51)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양식은 오직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 외에는 우리의 양식은 없는 것입니다. 만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만족을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들을 여러 번 경험한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싫어하면, 죽음 밖에는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생명의 빵이며, 참 식물이므로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말씀을 박한 식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씀을 소홀히 여길 때, 그는 사탄의 표적이 되어 사탄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불 뱀 사건이 곧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혹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긴 적이 없는가? 자기를 살피고.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듣는데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 뱀은 곧 옛 뱀, 이브를 속였던 뱀입니다. 그 사탄이 말씀을 떠난 이들을 죄로 물들게 유혹하여 혼적으로 살도록 유혹하여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혹 누가 혼 (육신 )적인 생각에 끌림을 당한다면, 그는 속히 주님에게 고백하고.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면, 그는 반드시 나무에 나를 위해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그의 영이 살아나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불 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로 모세에게 나와 모세의 지시에 따라,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을 처다 보고 살아났습니다. 놋은 심판을 의미 합니다. 놋 뱀은 뱀이 죄를 세상에 넣어주었으므로, 그 뱀의 선물인 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이 왔으므로, 예수님께서 그 죄들을 속죄하시기 위해 나무에 높이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반드시 그렇게 들려 올려 져야만 하리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3:1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 뱀의 공격을 받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방법을 쓰지 않고, 먼저 모세에게 달려갔는데 7 절에 보면, 우리가 주님과 당신을 대적하여말함으로 죄를 지었나이다. 라고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불 뱀을 물리쳐 줄 것을 간구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이 있은 후에 모세는 그 백성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자기를 살피고,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범한 죄들을 자백하면,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셔서 다시 평안과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놋 뱀을 아무리 달아 놓아도 뱀에 물린 자가 쳐다보지 않으면,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놋 뱀의 치료법을 우습게 여기고 다른 약물을 의지한 자들은 필연코 죽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리셔서 구원의 죄들 사함을 이루어 놓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나무위의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의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놋 뱀의 효력을 본 후 그 놋 뱀을 장대에 높이 달고 행진 했고. 가는 곳마다 놋 뱀을 장대에 달고 다니며, 그것을 숭배했는데, 언제 까지 숭배 하였는가 하면, 히스기야 왕 때까지 놋 뱀을 우상 숭배 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 형상들을 부수고. 작은 숲들을 베어 냈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산산조각 내었으니, 이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그것을 느후스단 (놋 조각 )이라, 불렀더라.(왕하 18:4)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위에서 나무에 달려 속죄를 완성하시어,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만들어 놓으심을 믿는 다면서 교회당 안팎에 십자가 형상을 걸어놓고, 그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지금 까지 공공연히 행하는데 모든 기독교 종교가 그것을 교회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의 십자가는 놋 조각 같은 나무 조각에 불과 한 것입니다. 왜 나무 조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까지 바라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동차 안에 걸기도하고, 목에다 걸고 다니기도 하는지 참 한심한 일입니다. 그 위에서 죄 사함의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들에게는 십자가만 보이지, 예수님의 죄 사함의 복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니 (히 11:1)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의 죽으심의 흔적을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모든 어떤 경우에도 그분을 쳐다볼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히스기야 왕이 놋 뱀을 부수며, 이것은 놋 조각이다. 라고 한 것 같이, 우리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런 신앙은 산산조각날것을 아시고. 항상 주 예수님의 죄 사함의 복음만 바라보며,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주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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