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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않은뱅이의 구원을보라. (행3:1-11)

  • 관리자 (ehompy0429)
  • 2020-06-14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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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행3:1-11.

제목: 앉은뱅이의 구원을 보라.

이제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기도 시간에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니, 모태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실려 왔는데, 이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제하여 줄 것을 간청하려고 사람들이 날마다 그를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성전 문에 내려 두는 자더라. 그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제하여 줄 것을 간청하매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그를 주목하여 말하기를,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면서 그들을 쳐다보니라.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즉시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가 뛰어 서서 걸었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행3:1-8)

이 사건은 성전에서 일어났는데 그 당시 성전은 모이는 장소였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도 함께 그곳에 올라 간 것입니다. 특히 오순절 명절기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음을 상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일 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간 것은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에 맞추어 올라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하는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아침 9시와 정오 12시와 삼시 즉 구시 오후세시에 세 번씩 각자가 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드리며 큰 소리로 부르짖으리니, 그리하면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 로다.(시55:17)

이제 다니엘이 그 문서에 인장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그가 자기 집으로 가서 그의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창문들을 열어두고, 그가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으며 그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더라.(단6:10)

모든 기독교인들은 강제성은 띄지 않지만 마음으로 작정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고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그리스도인들 의 경건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미문(美門)에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역사(役使)가 일어났겠는가? 기도 (祈禱)의 역사가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6-17) 기도와간구로 항상 기도하되(엡6:18) 등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러 가는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는 건물성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성전인 것입니다. 율법시대는 하나님의 임재 장소가 지성소 이었지만, 지금은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모임에 충실할 때 주님은 그 영혼에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앉은뱅이 역시 그들에게서 무엇이라도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달랐지만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가진 것이 구원의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주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즉시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가 뛰어 서서 걸었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행3:6-8)

베드로는 돈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앉은뱅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앉은뱅이에게 돈 이상의 것, 더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선천적인 병은 의학으로 못 고친다고 포기하는 실례(實例)가 있습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 앉은뱅이도 돈을 드려 고칠 수 있었다면 고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침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병 고침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걷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이러나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곧 복음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아니 모태에서부터 죄인들 이였습니다.

보옵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형성(形成)되었으며, 죄 안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선천적으로 죄인들이기에 죄를 떠나 살 수 없는 죄인들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곧 나면서 앉은뱅이 와 같은 것입니다. 즉 영적 앉은뱅이 지요. 사람은 죄를 떠나 살수 없습니다. 그 죄들 때문에 하나님나라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는 병자같이 영적 병자가 (죄인)되어 천국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는 불쌍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전한 복음, 신약 성경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의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말씀을 보내시어 그들을 고치셨으며 그들의 파멸로부터 그들을 건지셨도다. 오, 사람들아 그분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손에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할지어다.(시107:20-21)

말씀을 보내심은 예수님께서 오심이요. 그들을 고치심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들의 죄들의 병을 고치심이요. 그들의 파멸로부터 건지심은 지옥 멸망에서 구원하심이니, 그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찬양하지 않으리오. 그러나 죄인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말씀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나니 누구든지 적막한 곳으로 내려가는 자도 못하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리로다. 주님을 찬양할지어다.(시115:17-18)

다시 의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앉은뱅이가 일어나듯이 즉시 죽은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을 향하여 걷기도하며, 뛰기도 하여 주님의 모임과 전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걷고 뛰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은 곧 생명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사도는 말씀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영적 성장을 해야 처음엔 걷다가 다음엔 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상인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영적 성장을 하여 걷고 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기도드립니다.

새로 출생한 갓난아이들같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것으로 너희를 자라게 하려 하기 때문이니 만일 너희가 주님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렇게 하라.(벧전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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