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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 벧세메스 암소희생의 의미.(삼상6:1-19)

  • 관리자 (ehompy0429)
  • 2020-08-08 12: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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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삼상6:1-19.

제목: 벧세메스 암소희생의 의미.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자기들의 축복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는 민족들이라, 자기들의 믿는 다곤 신전에 하나님의 궤를 함께 두는 어리석음을 범했는데 그들은 자기 신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려는 두 가지 마음을 품었기에 하나님의 궤를 자기들의 신전에 같이 두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려면, 정결한곳에 모시는 것인데 곧 성전입니다. 성전은커녕 자기들의 신전인 다곤 신전에 하나님의 궤를 함께 둔 것은 오는 날 죄인들이 자기들의 신인 맘몬 신을 버리지 않은 채, 하나님을 땅에 축복이나 몰아다 주시는 분으로 착각하고, 하나님에게 세상 복이나 구하는 축복이나 빌어주는 기독교로 믿고 있는 기독종교인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럴 것을 아신 우리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며,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그가 한 주인을 존중하고. 다른 주인을 멸시하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 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이러한 블레셋사람들에게 축복은커녕 재앙이 내려져서 블레셋 모든 사람들에게 은밀한 부위에 종기가 나게 하셔서 그들을 심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곤 제사장들과 점치는 자들을 불러 모아 회의 끝에 법궤를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돌려보내는 결론을 내리고. 하나님의 궤를 그냥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먼저 속건제(贖愆祭)예물을 돌려드려야 한다하여 블레셋 군주들의 수를 따라 금 종기 다섯과 금 쥐 다섯의 형상으로 드려야 한다고 결정을 하고. 그것들을 준비한 것을 봅니다. 그들이 최고의 금으로 그것들을 만든 것은 가상할지모르나, 그들의 속건제 예물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속건제예물은 속건제물의 피인 것인데 그들은 전혀 상관없는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요즈음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려는 자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그들은 법궤를 보내기로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봄으로 자기들에게 이른 재앙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를 시험하기 위하여 다음 것들을 준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멘 적이 없는 젖 나는 암소 둘을 끌어다가 그 수레에 매고, 그 송아지들은 그들에게서 떼어내어 집으로 보내고 주님의 궤를 가져다가 그 수레위에 싣고 너희가 속건제 예물로 그분께 드릴 금 보물들을 그 옆에 있는 상자 안에 넣어 그 궤를 보내어 가게 하라. 보라, 만일 그 궤가 자기의 본래 경계 길을 따라 벧세메스로 올라가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리신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은 그분의 손이 아니며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 우연한 것임을 우리가 알게 되리라, 하니라.(삼상6:7-9) 그들이 그 수레위에 주님의 궤와 금 쥐들과 종기의 형상을 담은 상자들을 싣고 그 새끼를 억지로 떼어놓은 암소 두 마리를 수레에 매고 벧세메스 길로 가게 채찍을 가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그 암소들이 벧세메스 길로 가는데 소리 질러 울면서도 우측으로나, 좌측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곧장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간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벧세메스 사람들이 13절 골짜기에서 밀을 수확하다가 그들이 눈을 들어 주님의 궤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 수레가 벧세메스 여호수아의 밭에 들와서 한 큰 돌이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첫째 멍에를 멘 적이 없는 암소는 곧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곧 죄의 멍에를 멘 적이 없으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 합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암소들이 길을 따라 가면서 울면서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하늘 보좌를 뒤로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속건 죄 예물이 되시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모형이며, 14절, 그 수레가 여호수아의 밭으로 들어온 것은 구원의 땅.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큰 돌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선 것은 큰 돌은 곧 반석 되신 예수님의 구원을 의미 합니다 곧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고전10:4)의미하며, 그 수레의 나무를 쪼개어 그 암소를 하나님께 번제 예물로 삼은 것은, 우리 주님께서 번제 예물 되셔서 자기가 메고 가신 나무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님께서 그의 혼을 한 속죄제(贖罪祭)예물로 만드실 때에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또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형통 하리이다.(사53:10)

이렇게 벧세메스의 암소같이 하나님의 법(속제)을 이루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을 피같이 흘리시며, 하나님께 간구 했지만, 하나님은 입을 닫으시고. 그분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므로 나의 워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워대로 하옵소서, 하고 순종하여 골고다에서 죽기 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희생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새끼를 억지로 떼어낸 암소는 외양간을 뛰어 넘을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 질러 울고. 소의 고삐 줄이 약하면 그것을 끊고 새끼를 찾아 외양간을 뛰쳐나오는 것을 필자는 어릴 적에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암소가 그것도 두 마리가 벧세메스 길로 곧바로 간 것은 모든 육정(肉情)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육신의 정과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의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구원은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길은 희생의 길인데 그분을 따르려는 이들이 자기 의를 버리지 않고는 결코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을 갈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님들이여, 우리 모두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갑시다. 그분을 따르려면 우리 모두 희생하며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생명을 찾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마10:38-3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 하시니라.(마11:28-30)

20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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